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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신서 19: 2, 십계명이 의의 완전한 규칙이 되었다는 표현을 먼저 고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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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신서 19: 2, 십계명이 의의 완전한 규칙이 되었다는 표현을 먼저 고쳐야 합니다
  • 신대원생(바른믿음 독자)
  • 승인 2021.12.20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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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직접 관련없는 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의 젊었을 때 사진. (사진 하나가 함께 올라가야만 기사 작성이 되기 때문에 ...)
기사와 직접 관련없는 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의 젊었을 때 사진. (사진 하나가 함께 올라가야만 기사 작성이 되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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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담에게 주신 법: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행위 언약으로서 한 법을 주셔서 그것에 의해 그와 그의 모든 후손들을 인격적인, 완전한, 정확한, 그리고 영속적인 순종의 의무 아래 두셨고; 그것의 실행에 근거한 생명을 약속하셨으며, 그것의 위반에 근거하여 죽음을 경고하셨고; 그것을 지킬 힘과 재능을 그에게 부여하셨다.

2. 도덕법(Moral Law): 이 법은 그의 타락 후에도 계속 의(義)의 완전한 규칙이었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에 의해 십계명에 그렇게 선언되었으며 두 돌판들에 기록되었는데; 처음 네 계명들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그리고 그 나머지 여섯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담고 있다." (웨신서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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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순종의 의의 전가가 비성경적임을 충분히 인지합니다. 단 웨신서 19:1항에 대해서 수정을 요구하셨는데 사실 실행에 근거한 생명을 약속했다는 표현이 실행을 계속하면 영생이 있기 때문에 영생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데 실행에 근거해 영생을 계속 소유하게 하셨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되기 때문에 글 자체는 오류가 없습니다. 해석이 문제지요. 행위언약이 행위를 통해서 영생을 얻게 된다는 의미가 결과적으로는 성립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행위언약이 우리에게도 적용되냐는 것입니다. 이 행위언약은 두 지 측면이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측면과 순종하면 산다는 측면입니다. 그런데 이 이 두 가지 측면 중, 순종하면 죽는다는 측면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적용하시는 언약입니다.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온 원죄의 죄성과 죄책을 유전받아 자범죄를 짓는 죄인이어서 첫째 사망 둘째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순종하면 산다는 측면은 우리에게도 적용하시냐입니다. 순종하면 산다는 행위언약의 측면은 죄를 짓지 않은 상태의 온전한 자유의지를 가진 아담과 하와에게만 주어진(적용되는) 언약입니다. 우리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불순종의 자범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며, 외부적으로 아무리 순종한 것처럼 보여도 원죄의 죄성으로 뼛속까지 죄 덩어리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순종이 하나님보시기에는 의롭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지 않은 아담은 온전한 자유의지로 순종할 수 있기 때문에 주신 언약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면 산다는 언약을 폐하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불순종의 값을 대신 치르셔서 죄를 사하심으로 의를 주십니다.

히 7:18-19절,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히 8:7절,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히 10:9절,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전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여서 폐한 언약입니다. 흠이 있습니다. 율법(제사법, 도덕법)을 지키는 것이 무익하다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의를 주지 못하기에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의 의를 주기에 무익하고 연약하여 폐하였고 하나님은 흠이 없는 둘째 것,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로 피를 흘리는 것으로 죄를 사함으로 영생의 의를 주시기로 계획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두 번째 방법입니다.

첫 번째 방법, 행위 언약으로 의를 얻는 방법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면서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십자가의 잔을 옮기어서도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방법이 있다면 전지전능하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어찌 그렇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지 않으셔서 이 세상 살면서 율법을 다 지켜서 의롭게 된 그 의를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의를 전가받으면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고 영생을 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방법이 된다면 뭐하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겠습니까?

저는 이 행위를 지키면 영생을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행위언약을 우리에게 적용시키는 것이 잘못됨을 주장합니다. 즉 웨신서 19:1항보다는 2항이 문제입니다. 이 행위언약이 타락 후에도 도덕법 즉 십계명으로 연결되어서 의의 완전한 규칙이 되었다는 표현입니다. 율법이 의를 주고 다 지키면 영생을 준다는 말입니다.

도덕법인 십계명의 율법은 의를 얻기에는 무익합니다. 의를 얻는 데는 폐하여졌습니다. 하지만 죄를 깨닫게 하고 (율법의 1용도),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초등교사의 역할을 하고 (율법의 제2용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침과 표지판이 되는 역할 (율법의 제3용도)을 합니다.

율법은 선하고 의롭지만 율법은 우리에게 의를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웨신서는 율법이 의의 완전한 규칙이 되었다는 말로 의를 주는 하나님의 방법인 양 이야기해서 능동순종의 의의 전가 논리를 이끌어내게 합니다.

웨신서가 아담에게만 주신 순종하면 산다는 행위언약 다음에 십계명을 기록하면서 행위언약이 십계명으로 내용이 연결된 것처럼, 그래서 그것이 의를 얻는 방법처럼 느끼게 합니다. 따라서 웨신서를 수정할려면 19:2항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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