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의 이승구 교수(이하 이승구)는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이라는 거짓 신학을 주장하고 힘써 옹호한다. 그래서 현재 예장 합동 이대위의 신학 조사 대상이 되었다. 이승구는 금년 초에 “최근에는 그리스도의 적극적 순종을 부인하는 것이 대세인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논문에서 이승구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이 짧은 논의를 통해서 우리들은 근자에 정통파 기독교의 가르침을 벗어나려고 하는 분들이나 정통파 개혁신학의 가르침을 벗어난 분들이 그리스도의 적극적 순종을 부인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적 입장을 견지하는 정통 개혁신학자들은 과거와 같이 그리스도의 적극적 순종을 강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승구 박사)

“정통파 기독교의 가르침을 벗어나려고 하는 분들이나 정통파 개혁신학의 가르침을 벗어난 분들이 그리스도의 적극적 순종을 부인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적 입장을 견지하는 정통 개혁신학자들은 과거와 같이 그리스도의 적극적 순종을 강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승구 박사)

적극적 순종이라는 말은 능동순종에 대한 이승구의 표현이다. 이승구는 기독교 정통 신앙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를 부정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고, 성경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능동순종을 강조한다고 했다. 적극적 순종이거 온전한 순종이건 간에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리스도께서 모세 율법 중심의 적극적 순종을 통해 영생의 의를 획득하셨는가이다. 이승구와 능동순종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순종을 세부적으로 십자가 순종을 통한 죄의 용서, 그리고 완전한 율법준수를 통한 의의 획득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가 완전한 율법 순종으로 천국 영생의 자격(의)을 획득하고 전가했다고 하므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거짓된 이론이 과거의 어두웠던 시절에는 의심 받지 않고 통했을지라도 이제는 그만 두어야 마땅하다. 성경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지난 2년 동안의 논쟁을 통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승구는 여전히 이것을 주장하고, 더 나아가 ‘모세의 율법에 대한 순종’이라는 능동순종의 핵심 개념에서 슬그머니 벗어나서 ‘순종’, ‘적극적 순종’이라고 강조함으로 율법으로부터는 의가 나오지 못한다는 비중있는 비판을 피하여 가려고 한다. 

최근 이승구는 약 5분 정도 분량의 영상을 제작하여 능동순종 개념이 옳다고 적극적으로 선동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능동순종 개념이 기독교의 정상적 교리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부득히 바로 잡을 필요성을 느꼈다. 이승구가 발표한 영상의 주요 부분을 세 파트로 나누어 분석하고 설명하고자 한다. 오늘은 첫 번째 파트이다.
 


“그리스도가 온전한 순종을 하셨다는 것은 다 인정을 합니다. 웨신서에서도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온전한 순종. 성경을 따르는 순종입니다. 과거의 선배들이 이것을 좀 더 자세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이 이것을 잘못 표현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건 아닙니다! 하다가 보니까 더 복잡해지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냐 하면, 예수님의 순종은 하나의 순종인데, 완전한 순종인데, 그 순종을 두 측면에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는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다 받으신 측면에서 그것은 본 거예요. 그것을 수동적 순종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에 대한 형벌을 다 받으신 것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어요.

똑 같은 순종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율법의 요구를 다 행하신 순종이라는 측면에서 보기 시작했어요. 그때 그것을 능동적 순종, 또는 저는 그것을 적극적 순종이라고 표현합니다. 똑 같은 순종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승구 박사)

그리스도께서 온전하게 순종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것인데, 과거의 선배들이 그것을 좀 더 자세하게 보았다고 한다. ‘과거의 선배들’은 과연 누구일까? 영국의 청교도들이다. 1580년대 말, 국교회 청교도 윌리엄 퍼킨스에 의해 본격적인 청교도 신학이 시작되었다. 이후 청교도주의는 급속하게 잉글랜드에 확산되었고 1640년대에는 청교도들이 국교회를 제거하기 위한 전쟁에 돌입했다. 전쟁의 와중에서 국교회를 제거한 후 청교도 신앙을 따르는 하나의 교회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 정착시기 위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도 탄생(1647년)되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웨신서를 작성할 무렵의 영국의 개신교 신학자들의 신학의 방법이다. 루터와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의 방법은 믿음과 성경이었다. 칼빈은 신학에 이성이 개입해서는 안되고 오직 계시(성경)에 근거하여 믿음으로 신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로마교회의 신학 방법이 종교개혁 교회로부터 배척되었다.

로마교회의 신학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수단으로 삼는 신학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의 원리로 신학했던 로마교회의 신학의 특징은 ‘이성’, ‘논리’, ‘추론’, ‘귀결’로 요약될 수 있다. 칼빈이 ‘계시’(성경)와 ‘믿음’으로만 신학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도들과 칼빈의 신학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구원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죄와 무관한 방식으로 출생하신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 평생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께 만족을 드렸고, 마지막에는 자기 생명을 우리의 죗값으로 드리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다.  그것이 곧 칭의이고 구원이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을 설명하면 단순하고 간단하다. 죄 없고 의롭고 늘 순종하신 그리스도가 자기의 생명을 우리의 죗값으로 드리심으로 만족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하였다. 그것이 우리가 얻는 칭의의 내막이고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칼빈 사후 로마교회의 신학의 방법이 종교개혁 교회의 신학 방법으로 되살아났다. 영국의 옥스퍼드와 유럽의 대학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지배되었기 때문이다. 퍼킨스, 에임스를 비롯한 영국의 옥스퍼드 출신 청교도 개혁자들은 모두 아리스토 텔레스의 철학의 원리를 따라 학문을 수행하도록 훈련된 사람들이었다.

그 당시의 개신교 신학을 '개신교 스콜라주의'(Protestant Scholasticism)라고 한다. 칼빈 사후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교회에 정착시키는 일을 수행했던 영국과 유럽의 개신교 신학자들이 어이없게도 로마교회의 신학의 방법을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신학을 수행하기 시작한 당시 개신교 신학자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성에 기반하는 신학적 사고’

‘논리적 합리성’

‘추론에 의거하는 결론’

웨신서를 작성하던 무렵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들의 이와 같은 신학의 자세가 웨신서 속에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 곧 사람의 구원과 신앙과 생활에 관한 그의 모든 뜻은 성경에 명백히 제시되어 있거나 건전하고 필연적인 논리에 의해 성경으로부터 추론될 수 있으며" (웨신서 1장 6항)

그 당시 영국의 개신교 신학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원리를 더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원했다. 그러면서 등장한 이론이 그리스도의 능동-수동순종의 교리였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사고를 발휘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인데, 그리스도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설명해야할까? 성경에 없는 내용이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을 능히 추론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였고, 그리스도께서 평생의 율법준수로 얻은 의로 우리를 의롭게 만들어 천국 영생을 누리게 하셨다!”

그들은 성경이 전혀 가르치지 않는 사변을 발전시켰다. 능동순종을 계속 주장하는 이승구에게서도 똑 같은 내용이 나타난다.

“그리스도가 온전한 순종을 하셨다는 것은 다 인정을 합니다. 웨신서에서도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온전한 순종. 성경을 따르는 순종입니다. 과거의 선배들이 이것을 좀 더 자세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하나의 순종인데, 완전한 순종인데, 그 순종을 두 측면에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는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다 받으신 측면에서 그것은 본 거예요. 그것을 수동적 순종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에 대한 형벌을 다 받으신 것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어요. 똑 같은 순종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율법의 요구를 다 행하신 순종이라는 측면에서 보기 시작했어요. 그때 그것을 능동적 순종, 또는 저는 그것을 적극적 순종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승구 박사)

이승구의 이런 설명은 성경에 근거하는 구원론이 아니다. 과거 특정 시대의 신학자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신학의 방법으로 삼았던 17세기의 영국의 개신교 신학자들이 좋아했던 신학이다. 이승구는 여전히 개신교 스콜라주의 신학에 포로되어 있다.

신학은 성경에만 근거하고 믿음으로만 수행하는 학문이다. 성경에 없는 내용을 논리적 추론으로 세우는 신학은 바른 신학이 아니다. 칼빈이 본을 보이고 뼈대를 완성한 종교개혁 신학이 우리의 신학이다. 개신교 스콜라주의 신학은 패역한 로마교회의 신학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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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