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 신학이 주장하는 능동순종 교리가 성경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는 2021년 합동 106회 총회의 결의에 대해 김효남 교수는 자신의 개인 언론에서 다음과 같이 이의를 제기했다.

“나는 약 10년간 미국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와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역사신학을 공부했다. 당연히 역사적 개혁주의 문서와 탁월했던 16,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 글을 주로 공부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개혁파 안에서 소수의 무리들이 이를 부정하려 했으나 여러 방편으로 그들의 주장이 인정받지 못하고 능동적 순종은 개혁파 신학의 한 부분으로 오늘까지 전해진다.”

“우리 교단 신학의 기초를 놓으셨던 박형용 박사님도 당연히 이 교리를 받아들이신다. 내가 알기로 총신의 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의 교수님들도 대부분 당연히 이 교리를 받아들이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도대체 어떤 개혁주의 신학에 입각하여 성경적인 근거가 없단 말인가? 그 개혁주의는 누구의 개혁주의인가?” (김효남 교수의 페이스 북, “우리 교단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2021.10.01.17:56)

김효남 교수는 자신이 미국의 칼빈과 청교도 신학교에서 전공한 역사신학에 의하면 능동순종 교리는 당연한 기독교 신학이라고 주장했다. 능동순종을 왜 합동 이대위와 총회가 성경적 근거가 없는 신학으로 규정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김효남 교수는 (고)박형용 박사가 능동순종을 수용했다고 강조했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필자도 한마디 하고자 한다. 필자의 다음의 말이 틀렸으면 틀렸다고 빨리 말해 보기 바란다.

“만일 (고)박형용 박사가 율법준수로 영생의 자격(의)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으면 율법주의 이단사상을 주장한 것이다!”

김효남 교수는 필자의 이 말에 대해 빨리 대답해 보기 바란다. 박형룡 박사라도 율법준수를 통한 영생의 의(자격) 획득이 가능하다고 가르쳤으면 이단이거나 이단적이었다. 틀린 내용인가 맞는 내용인가?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는 핵심은 일반인들이 하지 못하는 율법준수를 완전하게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으로 성육신하셨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후 완전한 율법준수를 시행하여 영생의 의(자격)을 쟁취하셨고, 그리고 그 의를 일반들의 것으로 전가하여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율법에게 영생의 의를 주는 기능은 없다. 능동순종 신학을 수용했던 박윤선 박사도 율법준수함으로 영생의 의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가르쳤다.

“후대에 들어온 율법은 성질상 은혜 언약과 고체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다만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다. 여기서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함은 인생들로 하여금 그 범죄한 것이 많음을 알도록 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다는 뜻이다(롬 4:15, 5:20). 그러면 율법의 목적은 새로운 구원 방법을 제시함이 아니고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함에만 있다.” (박윤선 2015, 126)

율법 그 자체로서 구원의 방법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를 제기하는 인간의 죄악됨을 알게 하기 위해 율법이 왔다고 박윤선 박사는 가르쳤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율법이 인류의 범죄의 원인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율법이 구원을 줄 수 있다고 오해하는 유대인들의 사상을 반대하는 말씀이요, 율법은 인간의 죄를 없이 하지도 못하며, 인간에게 영생을 주시도 못한다는 것을 역설함이다. 즉, 이 말씀은 사람이 율법을 받고 그것을 알고 보니, 자기의 부패와 자기의 연약과 자기의 많은 죄들을 발견하게 될 뿐이라는 뜻이다.”(박윤선 2015, 178.)

박윤선 박사는 율법은 인간에게 영생의 의를 주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직 죄를 발견하게만 한다고 가르쳤다. 그렇다면 박윤선 박사는 실질적으로 능동순종 교리를 부정하신 것이다. 전통 신학의 관례대로 능동순종 교리를 인정했으나, 능동순종 교리의 핵심 주장을 이단시하셨으니 능동순종 교리와 박윤선 박사님은 실제로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김효남 교수는 (고)박형용 박사님의 신학에서 율법적 칭의, 즉 율법준수를 통해 칭의를 얻는 길이 있다고 가르치셨는지에 대해 알아보기 바란다. 필자는 알아보지 않았으나, 박형용 박사님이 그런 주장을 했을리 없다고 확신하다. 만일 박형용 박사님께서 율법준수로 영생의 자격(의) 획득이 가능하다고 가르쳤다면, 그 부분에서 이단적이었다. 

필자가 김효남 교수에게 하고 싶은 또 다른 말은 역사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역사신학의 목적은 현재의 교회가 과거의 교회가 믿었던 것을 무조건 따르게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현재 교회의 신앙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역사신학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필자는 대단한 신학적 식견을 가지지 못했으나, 기독교 신학들의 특징과 목적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은 성령의 영감 하에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기록했던 성경의 저자들이 전달하고자 했던 원래를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성경 저자들 시대의 역사, 문화, 사회, 정치, 언어를 연구하여 성령의 감동을 받은 상태에서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진정한 의도를 찾아내는 것을 목표한다.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은 성경이 말하는 구체적인 내용들을 주제 별로 분류하고 통합하고 조직화한다. 특히 성경신학이 찾아낸 결과들을 통일성있게 분류하고 조직화하여 성경적 교리를 만들어 교회에 제공함으로 교회가 성경을 따라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한다.

실천신학(Practical Theology)은 오늘의 교회가 현대의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 속에서 성경의 원래의 말씀들에서 벗어나지 않고 성경의 가르침 안에서, 특히 조직신학이 제공하는 성경적 교리들과 신학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신앙을 실천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한다.

선교학(Missiology)은 교회가 복음을 전파해야 할 사회의 특징을 연구하여 성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효과적인 복음 전달의 방법을 교회에 제공하는 것을 목표한다.

역사신학(Historical Theology)은 과거의 교회가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했는지 연구함으로 현재의 교회의 바른 신앙 이해와 실천을 돕고, 성경을 요약하는 중요한 교리들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연구함으로 교회의 믿음이 성경 위에 서게 하는 것을 목표한다.

필자가 탁월한 식견을 가지지는 못했으나, 중요한 신학들의 목표가 대략 이러하다는 필자의 말에 대해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할 것이다. 모든 신학들은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 위에 바로 서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역사신학도 교회의 신앙이 성경을 따르게 만드는 것을 목표하지 단지 과거 교회의 신앙을 현재 교회가 무조건 따르게 만드는 것을 목표하지 않는다.  

김효남 교수는 자신이 칼빈의 리차드 멀러, 청교도 신학교의 조엘 비키 교수의 지도를 받으면서 역사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김효남 교수는 그런 교수들의 지도를 받았다는 사실을 자랑하지 말고 자신이 역사신학를 바르게 배우고 익혔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능동순종에 대한 합동의 106회 총회의 결정에 대한 반발하는 김효남 교수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능동순종 교리의 형성에 관한 역사적 연구를 해 보아야 할 것로 보인다. 과연 어느 시대의 교회가 능동순종을 처음으로 주장하고 교리화하였는지 연구해야 한다.

필자는 역사신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나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개념이 언제부터 등장했는지 정확하게 안다. 1600년대 영국과 유럽의 개신교 속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1600년대 이전에 능동순종 개념이 교회에 등장하여 뿌리내리지 않았다.  1500년대에 시작된 종교개혁의 핵심 사상을 유럽의 개신교회들 속에 뿌리 내리게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었던 1600년대에 능동순종이 등장했다. 1600년대 이전에 유럽이나 다른 곳의 교회에서 능동순종 교리가 등장했다면, 제시해 보기를 바란다.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James I, 1566-1625) 시대에 패트러스 몰리나이우스(Petrus Molinaeus, 1568–1658)와 틸레누스(Tilenus)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개념이 성경적이라고 하고 또 한 사람은 비성경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아마 이 두 사람의 논쟁이 1600년대에 등장한 능동순종 교리에 대한 거의 최초의 공개적 논쟁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국왕 제임스 1세가 직접 나서서 그들의 논쟁을 정리하였다. 제임스 1세는 자신이 다스리는 영토 안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개념을 다시 말하지 말도록 칙령을 선포하였다. 능동순종 개념이 성경적 근거를 가지지 못하고, 공교회의 어떤 종교회의도 그것을 다루지 않았고, 어떤 교부도 그것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Lobert Letham, The Westminster Assembly, 39).

김효남 교수는 역사신학을 전공했으니 이것을 잘 알것이다. 능동순종 교리의 근거가 되는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는가? 구원론은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방법에 대한 설명으로서 성경의 핵심이다. 그런 중요한 것이 성경에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공교회의 종교회의에서 율법준수로 칭의를 얻고 십자가의 피로 죄용서를 받는다고 가르치는 능동순종 신학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는가? 그리스도가 율법준수하여 영생의 의를 얻었다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요소라면 어째서 공교회의 종교회의에서 한번도 다루어지지 않았을까?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 그리스도가 율법준수를 통해 칭의의 근거를 장만했다는 가르침이 있는가? 종교개혁의 핵심은 구원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교회의 변질된 이해(믿음)을 다시 성경의 이신칭의로 회복하는 것이었다. 능동순종이 구원에 대한 성경의 진리라면 종교개혁자들에게서 적어도 한번은 언급되었을 것인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능동순종 교리를 처음으로 전파한 신학자들은 모두 1600년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청교도 신학자들이었다. 능동순종 개념을 연구하여 국내에 소개한 신호섭 교수의 학위논문에 등장하는 능동순종 교리 형성에 기여한 청교도 신학자들의 이름들은 다음과 같다.
 

데이비드 클락슨(David Clarkson, 1622-1686) (94-95 페이지)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 1620-1686) (97-98 페이지)

리처드 십스(Richard Sibbs, 1577-1635) (110 페이지)

토마스 브룩스(Thomas Brooks, 1608-1680) (103 페이지)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 (105 페이지)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 1600-1676) (111 페이지)

오바댜 그류(Obadiah Grew, 1607-1689) (114 페이지)

로버트 트레일(Robert Trail, 1642-1716) (115 페이지)

랄프 로빈슨(Ralph Robinson, 1614-1655) (116 페이지)

존 오웬(John Owen, 1616-1683) (86 페이지)

윌리엄 브릿지(William Bridge, 1600-1671) (40 페이지)


신호섭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능동순종을 도입하는데 공헌한 초기의 인물들은 모두 1600년대에 출생했거나, 혹 1500년대에 출생했을지라도 1600년대에 신학 활동했던 청교도들이다. 김효남 교수는 외국의 유명한 교수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역사신학을 전공하였으나 능동순종 교리에 대해 역사신학적 연구를 해 보지 못한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 구원론은 기독교 신학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그런데 왜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개념은 성경에 나오지 않을까? 능동순종 개념은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1500년 동안 교회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1500년대의 그 어떤 종교개혁자도 주장하지 않았다. 능동순종이 진리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김효남 교수가 능동순종이 기독교의 진리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역사신학을 전공한 사람 답지 못하다. 

 

Works cited

박윤선. 2015. 계시의존사색. 영음사: 서울

Letham Robert. 2016. The Westminster Assembly.  P&R Publising: New Jersey

신호섭. 2016. 개혁주의 전가교리. 지평서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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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