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가 크게 촉망되는 김효남 교수께서 합동 교단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우려하는 내용의 글(크릭)을 자신의 개인 언론에 올리시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였다. 장래가 크게 촉망되는 젊고 유능한 학자가 합동이 1)유아세례를 시행하고, 2)1960년대 이후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이교로 변신한 로마교회의 영세를 인정하지 않고, 3)2021년 총회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교리가 성경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고 판정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우려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글에서 김효남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추가로, 행위언약이 윌리엄 퍼킨스에 의해서 최초로 조직화되었다고 하신다. 이것도 역시 타겟을 청교도에 두고 있다는 반증이다. 퍼킨스 목사님께서도 깜짝 놀라실 일이다.”(김효남 교수)

웨신서에 기술되어 있는 행위언약 개념을 최초로 조직화하여 도입한 사람이 잉글랜드 청교도 윌리엄 퍼킨스라고 말한 사람은 필자이다. 다른 누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김효남 교수가 필자를 거명하지 않았으나, 최근의 청교도 신학 논쟁을 지켜 본 사람들은 필자에 대한 말이라는 것을 다 안다.

그래서 부득이 웨신서의 행위언약 개념이 퍼킨스가 <황금사슬> 1592년도 라틴어 판에서 주장한 내용에서 기원되었음을 다시 설명하려고 한다. 퍼킨스가 주장한 행위언약과 웨신서의 행위언약이 얼마나 유사한지 다시 살펴보자.

“행위언약은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만들어진 언약이고 ... 그 조건은 율법을 완성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이고,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죽음이다. 십계명은 율법의 축소판이요 행위언약이다” (Perkins 1592, 32; 원종천 2018, 48).

“2. 행위 언약: 사람과 맺으신 첫 언약은 행위 언약이었는데, 거기에서 완전한 개인적 순종을 조건으로 아담과 그 안에서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2).

퍼킨스가 최초로 조직화하여 도입한 행위언약 개념이 웨신서에 수록되었다는 것을 분명한 사실이다. 퍼킨스로부터 지금의 행위언약 개념이 등장하기 전에 비슷한 내용의 언약 개념이 이미 있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Heidelberger Katechismus, 1563)을 작성한 독일의 개혁자 자카리우스 울시누스(Zcharias Ursinus, 1534-1583)에 의해 비슷한 언약사상이 먼저 등장했다.

울시누스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완성하기 1년 전인 1562년에 또 다른 요리문답 <숨마 이데올로기에>(Summa Theologia)를 완성하였다. 그 속에 ‘창조언약’(또는 ‘자연언약’이라고도 함) 개념이 등장했는데 퍼킨스의 행위언약 개념과 매우 유사한 내용이었다 (Lillback 1981, 247-288; 릴백 2009, 424).

울시누스는 창조 때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창조언약)을 맺었고, 그 내용이 자연을 통해 인간에게 알려졌다고 하였다. 율법이 자연언약(창조언약)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하나님이 인간에게 완전한 순종을 요구했고 인간이 완전하게 순종하면 영생을 주고 그렇지 못하면 영벌을 내리신다고 경고했다고 울시누스는 말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은 은혜언약이라고 하였다. 울리스누의 말을 직접 읽어보자.

“율법은 자연언약을 담고 있다. 그것은 창조 시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것이고 자연을 통해 인간에 의해 알려진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순종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을 행할 경우 영생을 약속한다.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영원한 영벌로 위협한다. 그러나 실로 복음은 은혜언약을 담고 있다.” (Lang 1907, 156; 릴백 2009, 424)

아담이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생을 주시고 아담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영원히 벌하신다고 태초에 경고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전혀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이런 내용을 울시누스 같은 탁월한 종교개혁자가 어디서 배워서 자신의 신학으로 발전시켰는지 궁금하다. 

종교개혁자들이 로마교회의 행위구원론에서 벗어나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단박에 영생을 얻는 신앙의 원리, 이신칭의를 발견하고 선포한 것은 매우 귀한 일이었다. 그러나 왜 인간이 불행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바르게 신학을 구성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로마교회의 거짓된 교리에서 많이 벗어났음에도 그 부분에서 로마교회의 어둠의 흔적이 조금 남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대체 울시누스는 누구로부터 자연언약 개념을 배웠을까? 다수의 학자들은 울시누스가 독일의 개혁자 필리프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 1497-1560)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멜란히톤도 유사한 내용의 ‘자연법’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울시누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친 종교개혁자 칼빈에게서는 성경적 근거가 없는 모호한 내용의 ‘자연법’ 또는 ‘자연언약’ 개념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울시누스가 말한 자연언약 개념은 멜란히톤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릴백 2009, 425-426).

중요한 사실은 1562년에 울시누스가 말한 창조언약 개념에 대해 주목하였던 다른 개혁자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울시누스의 요리문답 <숨마 이데올로기에>에 말한 자연언약 개념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이후 20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장 2항의 비성경적인 행위언약과 울시누스가 직접 관련되었다고 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울시누스가 말한 언약의 명칭은 자연언약(창조언약)이었고 웨신서에 나오는 언약의 명칭은 행위언약이다. 

1580년대 들어 잉글랜드의 청교도 가운데 행위언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사람이 처음으로 나타났다. 더들리 패너가(Dudley Fenner. 1558-1587)라는 잉글랜드의 청교도가 행위언약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Beeke & Jones 2012, 218). 페너는 행위언약이라는 용어를 누구에게서 배웠을까? 1569년부터 잉글랜드 국교회를 칼빈의 장로교회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토마스 카트라이트(Thomas Cartwright, 1535-1603)에게서 배웠다. 국교회의 핍박으로 인해 잉글랜드를 떠나 20년 이상 유럽에서 살면서 많은 개혁자들을 접한 카트라이트를 통해 페너가 유럽에서 먼저 나타난 언약 개념을 배웠다 (218).

그러나 페너의 행위언약은 명칭에서 퍼킨스의 행위언약과 동일했으나 내용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당연히 웨신서 7.2항에 수록된 행위언약의 내용과도 달랐다. 페너는 퍼킨스와 웨신서처럼 태초의 아담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을 행위언약이라고 규정하지 않았다. 페너는 훗날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언약을 행위언약이라고 하였다 (원종천 2018, 33). 그러므로 웨신서 7.2항에 기술되어 있는 비성경적인 행위언약과 페너 사이에 어무런 연관성이 없다. 

웨신서의 행위언약은 그 명칭과 내용의 동일성을 볼 때 퍼킨스에게서 유래한 것이 분명하다. 한국에 번역되어 소개된 퍼킨스의 책 <황금사슬>은 1591년도 라틴어 판 영역본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인데, 필자가 유심히 보았으나 행위언약 개념을 찾을 수 없었다. 필자는 퍼킨스의 행위언약 개념을 원종천 박사의 책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에서 처음 접했다. 원종천 박사의 사용한 원자료는 퍼킨스 <황금사슬> 1592년 라틴어판 영역본이다. 

퍼킨스가 행위언약을 말하기 전에 유사한 내용의 언약 개념을 말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으나 웨신서에 삽입되어 있는 행위언약 개념과 동일한 내용을 말한 사람은 없었다. 웨신서의 행위언약과 일치하는 내용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은 칼빈주의와는 조금 다른 청교도주의를 개척한 윌리엄 퍼킨스이다.

1580년대 말, 퍼킨스는 더 이상 장로교회 제도를 추구하는 개혁을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을 직시하고 국교회의 제도와 체제에 대한 개혁을 포기하였다. 대신에 국교회 감독들의 저항과 미움을 사지 않는 일들, 즉 신자들 개인의 신앙 자세를 개혁하는 새로운 전략의 개혁운동으로 전환하였다 (원종천 2018, 34). 퍼킨스는 각 사람이 자기의 구원을 위해 고민하면서 하나님께 헌신하고,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제시하신 조건과 의무 사항들을 이행하는 적극적 신앙 자세를 가지게 만드는 새로운 청교도 개혁운동을 시작했다.

그것을 위한 신학적 패러다임으로 도입한 행위언약은 새로운 방향의 청교도들의 개혁운동을 위한 충분한 추진력을 제공했다. 퍼킨스에 의해 도입된 청교도 개혁운동의 언약 개념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기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협력하고 헌신하고 순종하는 신앙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사상으로 무장되었다. 개인들의 신앙의 자세가 달라지니 서서히 전체 사회의 분위기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퍼킨스가 최초로 도입한 청교도 신학의 언약사상은 극심한 핍박을 불러온 국교회를 장로교회로 바꾸려는 체제 개혁운동보다 더 큰 효과를 불러왔다 (원종천 2018, 11). 잉글랜드의 청교도 시민들이 국교회를 타도하고 국교회의 최대 후원자 국왕 찰스 1세를 처형하게된 잉글랜드 내전(청교도혁명)을 불러오게 되었다. 잉글랜드 내전이 진행되고 있을 때 범 청교도 연합교회 설립을 위해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퍼킨스의 행위언약 개념이 삽입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Works Cited

릴백 피터 A. 칼빈의 언약사상. 원종천 역. CLC, 2009: 서울

원종천, 청교도 언약사상: 개혁운동의 힘. 대한기독교서회, 2018: 서울

Perkins William, A Golden Chain: or, the Description of Theologie: Containing the Order of Cause of Saluation and Damnation, according to Gods Word. The Works, Vol 1.

Lang August. Der Heidelbelberger Katechismus. 1907: Leipzid

Lillback Oeter A. "Ursinus' Development of the Covenant of Creation." Westerminster Theological Journal 43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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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