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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남 교수, "분명히 나는 또 이들의 타겟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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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남 교수, "분명히 나는 또 이들의 타겟이 될 것이다!"
  • 정이철
  • 승인 2021.10.02 11:03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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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타교단 신학교에서 교수 사역하고 있는 합동 소속 목회자 김효남 교수가자신의 개인 언론(20.10.1)에 올린 글이다. 김효남 교수는 현재 합동 교단이 심각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합동이 1)유아세례 인정하고, 2)능동순종 교리를 부정하고, 3)로마교회 세례의 효력을 불인정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매우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능동순종 교리의 이단성은 최근에 드러나고 있으므로 무비판적으로 배우고 수용했던 김효남 교수의 불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유아세례를 시행하는 것을 문제 삼고, 또한 1960년대를 기점으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이방 종교로 변신한 로마교회의 세례의 효력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지극히 당연한 것을 문제 삼으며 합동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김효남 교수의 신학 정체성이 상당히 우려된다. 특히 유아세례를 부정하는 자세는 향후 더 심각한 신학적 시비를 불어일으킬 킬 수 있는 내용이다.

무엇보다 김효남 교수에게서 성경 절대주의, 즉 모든 신학과 신앙의 절대적 심판자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 66권이라는 기본적인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우려스럽다. 그저 자신이 미국의 칼빈과 청교도 신학교에서 배운 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기고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기독교 신앙이 미국의 칼빈신학원과 청교도신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내용과 동일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독자들이 김효남 교수의 글을 직접 읽고 판단하기를 바란다.)
 

김효남 교수(합동, 천호교회, 계약신대 교수)
김효남 교수(합동, 천호교회, 계약신대 교수)


우리 교단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김효남, 2021.10.01.17:56)

1. 일전에 나는 내가 속한 합동측 교단이 우려스럽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우려는 지금까지 늘 제기되어 왔던 윤리적인 우려가 아니라 신학적인 우려였다. 합동측이 자랑해왔던 개혁 신학에서 작금의 현실은 매우 우려스럽다.

2. 신학적인 우려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성경적인 근거를 찾기 힘들고 개혁신학적 입장에서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어린이 세례의 허용이다.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한 것은 우리가 믿고 가르치는 참된 교회의 세 가지 표지 중에 하나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3. 둘째는 로마 카톨릭에서 세례를 받은 이들의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그들에게 재세례를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지금까지 개혁파 신학과 교단에서 견지해온 전통과는 다르다. 물론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교회의 표지 중에 하나인 성례 문제를 논의할 때에는 더욱 신중할 뿐만 아니라 형제 개혁 교단들이나 외국 개혁교회와 협력과 조언 속에서 결정했어야 한다.

4. 셋째는 능동적 순종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형제 개혁 교단의 신학자들을 이단조사하기로 결정한 일이었다.

5. 지금까지 전 세계 정통 개혁주의 교회에서 확고하게 인정되고 있는 능동적 순종 교리를 이단 조사위로 넘긴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최근 교단 총회에서 내린 결정은 더욱더 실망스럽다.

6. 능동적 순종 교리에 관한 두 분의 건은 “개혁주의 신학에 입각한 분명한 성경적인 근거는 잘못되었”으므로 “합신 교단에 맡겨 처리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것이 무려 총회의 결정이란다. 이를 어찌할꼬.

7. 물론 나도 능동적 순종 교리를 받아들인다. 아니, 그 교리로 인하여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러니 합동 총회 이 보고서에 따르면 나도 역시 “개혁주의 신학에 입각한 분명한 성경적 근거가 잘못”된 교리를 믿고 주장하는 셈이다. 그런데 나는 다른 교단이 아니니 우리 교단에서 나를 치리할지도 모르겠다.

8. 도대체 어떤 개혁주의 신학에서 능동적 순종을 거짓된 교리라고 하는가? 이들이 말하는 개혁주의는 도대체 어떤 개혁주의인가?

9. 나는 약 10 년 간 미국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와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역사신학을 공부했다. 당연히 역사적 개혁주의 문서와 탁월했던 16,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 글을 주로 공부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개혁파 안에서 소수의 무리들이 이를 부정하려 했으나 여러 방편으로 그들의 주장이 인정받지 못하고 능동적 순종은 개혁파 신학의 한 부분으로 오늘까지 전해진다.

10. 우리 교단 신학의 기초를 놓으셨던 박형용 박사님도 당연히 이 교리를 받아들이신다. 내가 알기로 총신의 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의 교수님들도 대부분 당연히 이 교리를 받아들이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도대체 어떤 개혁주의 신학에 입각하여 성경적인 근거가 없단 말인가? 그 개혁주의는 누구의 개혁주의인가?

11. 노승수, 김병훈 교수님이 능동적 순종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이단대책위원회 조사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분들을 고발한 이들은 이분들의 다른 교리가 아니라 이 능동적 순종 교리만으로 이단 조사 대상이 되셨다. 그렇다면 헤르만 바빙크도, 루이스 벌코프도, 그리고 박형용 박사님도 살아계셨으면 이대위에 고발되어 이단 조사 대상이 되셨어야 했다는 말이다. 이런 코미디가 어디에 있는가?

12. 분명히 나는 또 이들의 타겟이 될 것이다. 이 두 분을 능동적 순종으로 고발했던 이들은 청교도들이 가르쳤던 준비론(doctrine of preparation)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도 위협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불행히도(?) 석사(Th.M) 논문을 조엘 비키 교수님과 함께 청교도들의 준비론에 대해서 썼다. 리처드 멀러 교수님과 함께 쓴 박사 학위 논문에도 청교도들의 준비론이 소개되고 있다. 당연히 청교도들의 준비론이 이들의 주장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감소시키고 인간의 공로를 내세운다는 주장을 논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13. 나는 이들을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청교도들을 타겟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능동적 순종에 대해서도 청교도 존 오웬이 처음으로 주장을 했다고 하면서 공격한다. 이 얼마나 무지의 소치인가! 세상에 존 오웬이 능동적 순종 교리의 시조라니…!

14. 그렇게 청교도를 공격하고 이제 청교도의 대표적 교리인 준비론을 이단적 사상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이미 수 십 년 전에 현대적 논의가 끝났고, 그 수 백 년 전에 있었던 이 논쟁이 마치 새로운 것인 양, 자신들이 새롭게 발견했다는 듯이 가져와서 독침을 쏘아 댄다.

15. 내가 깨달은 것은 이들의 목표는 어떤 신학자가 아니라 청교도 신학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도 명색이 ‘Puritan’ 신학교를 나온 내가 조용히 있어서야 되겠는가? 나에게 귀한 생명의 진리를 알려주었던 그들과 그들의 성경적인 진리가 더럽혀지도록 그냥 있을 수 없기에 작은 목소리라도 내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아, 추가로, 행위언약이 윌리엄 퍼킨스에 의해서 최초로 조직화되었다고 하신다. 이것도 역시 타겟을 청교도에 두고 있다는 반증이다. 퍼킨스 목사님께서도 깜짝 놀라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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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정립 2021-11-10 01:02:39
아담은 영생을 누리는 상태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선악과 계명을 통해 선악과 계명을 지키는 조건 하에서 영생을 누리는 상태로 변경되었습니다.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변경하시었습니다.
인간의 창조 - 타락 - 회복의 구도로 보면
그 이후 회복단계에서 믿음 안에 있는 자들은 영생을 얻습니다.

개념 정립 2021-10-07 19:02:30
4/4
성경에 근거하여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이 선물을 “내가 받아들였고” 선물 뚜껑을 열어 그 내용을 보고 실감하며 기뻐하며 감사를 찬양을 계속 드리게 된 것은 참으로 은혜라는 것인 점입니다.
카이퍼는 예정은 우리의 지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불가촉의 영역이라고 말했고 박형용 박사님께서도 이에 동의하셨습니다.

어떤 이는 칼빈의 예정론을 무시무시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을 무시무시하신 분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물론 성경은 창세 전에 영원한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 선택을 말할 뿐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은 누구나 죄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동아줄과 같은 굵은 파뿌리를 내려 보내주셔서 단 한사람만 구원해주신다고 하셔도 항변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실제 이렇게 하신다면 사랑도 모르겠고 거룩하심도 잘 모르겠고 무시무시하신 분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오직 성경’은 셩경말씀 어디에도 위배되지 않는 올바른 해석을 따르지만,
우리지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부분은 허락지 않으시면 모르는 것이 맞습니다.
종교개혁기에 시대의 한계로 모르던 것이, 알아야 할 시대가 되어 알게 하시는데 이것은
이시대에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하기에 허락하신 것으로 겸손히 감사함으로 검증하며 알아가야 합니다.

개념 정립 2021-10-07 19:01:08
3/4
이미 예정에 관하여 영원 전에 동시성을 언급하신 목사님도 계시며 하나님나라와 그 구성원을 언급하신 목사님도 계십니다.
여러 견해들을 보면서 ‘오직 성경’을 실천에 옮기시는 목사님이시라면 개신교 타교파의 신학구성과 성경해석도 살펴보시고 검증 후에 ‘오직 성경’에 더욱 합당한 해석이라면 수용하여 적용하실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유기에 관련하여 조금 언급하려고 합니다.
아담의 타락 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해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을 보내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분명 은혜지만 믿음에 의해 이 희망의 소식은 아담에 의해 가인과 아벨에게로 그리고 아담의 후손에게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자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심지어 자기의 후손들에게 이 희망의 소식을 전하지도 않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아담에게 전하신 선물인 희망의 소식을 믿고 믿음으로 후손들에게도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데 사람들은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이 선물을 취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이 불신앙에 의해 희망의 소식을 전하지도 않고 끊어버린 행위의 결과로 이 소식을 들어볼 기회도 가지지 못하고 자기 죄 가운데서 죽는 이들이 실제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불신앙과 악함으로 후손들이 스스로 선택할 기회조차도 박탈해버린 것입니다. 이 일이 점점 많아질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희망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줄어들었습니다. 불신앙의 악한 사람들이 땅에 편만해지고 종국에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을 때는 노아의 가족 여덟 명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홍수심판 이후에도 믿음 안에서 전해져야 될 희망의 소식은 말씀하신 여자의 후손이 오실 때까지 홍수심판 이전과 같은 현상을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의 후손이신 메시아께서 오셨습니다.
오실 메시아께서 드시어 오셔서 참사람으로서 우리 대신 세상 죄를 지고 가셔서 십자가에서 대속하심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오신 메시아의 대속하심을 통해 완성된 복된 소식인 복음을(요3:16) 듣고 영접한 자는 회복되며, 대속하심이 완성된 굿뉴스를 듣게 되기 전에 믿음 안에서 죽음을 맞은 신약시대 이전의 믿음을 인정받은 사람들은 메시아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아브라함 품에 있던 나사로가 머물던 곳에서 대속을 소급하여 적용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고 있습니다.
홍수심판 이전과 그 후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와는 다르게 복음이 땅 끝까지 퍼져가고 있습니다.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복음이 땅 끝까지 퍼져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신앙과 악함의 실제적인 결과로 유기되는 일이 지금도 있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의 불신앙과 악한 행위의 실제적인 결과로 복음을 들을 기회조차도 가지지 못한 채 자기의 악한 죄 가운데서 죽는 이들이 있으며
복음을 들을 기회를 가졌어도 세상 신이 마음을 혼미케 하여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복음을 전해 듣게 되는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여 믿음을 거부한 경우도 있습니다.
낙태된 아기와 죽은 영유아는 지옥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그 외의 불신자들은 모두 자기 죄로 인해 항변할 수 없이 지옥에 갑니다.

개념 정립 2021-10-07 18:58:36
2/4
이글은 1/4 아래쪽에 있는 개념정립을 위한 며칠 전에 쓴 첫 댓글 안에 있는 예정에 관한 내용입니다. 창세 전 아담의 타락을 허용하시기 전에 택자를 선택하셨다는 ‘전선택설’과 아담의 타락을 허용하신 후에 택자를 택하셨다는 ‘후선택설’ 어느 쪽이어도 상관이 없이 아담은 영생을 누리고 있는 상태로 창조되었다는 댓글내용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해, 비록 아담이 범죄하고 타락한 피조물로 전락했을지라도 포기하시기 않으시기로 정하셨고 구원하셔서 회복시키시기로 정하셨으면 서박사님께서도 말씀하셨던 다음과 같은 직선적인 도식이 성립됩니다.
“아담이 유혹에 넘어가 범죄함으로 타락했어도 -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 신실하심에 의해 공의와 사랑을 모두 증명하시는 방식으로 타락한 인류를 회복시키시는 길을 완성하시고 – 온전한 상태의 피조물로 회복시키신다”
이러한 도식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했던 사탄이 유혹하여 하나님과 같이 될 거라고 속여 타락한 아담이 최종적으로는 신화 또는 앙양된다는, 사탄이 선악과 유혹 때부터 지금까지도 제시하는 차원상승 사상 종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바르트와 달리 온전한 피조물로 회복됨을 결말로 삼습니다.
이 구도 아래에서는 죄 없던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해 영생을 누리는 상태로 창조되었음이 추론에 의해서 도식화됩니다.


점선 안쪽의 글은 성경말씀에 근거한 한 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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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너무도 사랑하시는 존재를 창조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동시에
너무도 사랑하시기에 설령 그 존재가 타락하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사랑하시는 존재를 창조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동시에
너무도 사랑하시기에 그래서 타락하더라도 타락에서 구원하심 받는 존재를 창조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 받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며 하나님을 너무도 사랑하게 되는 존재를 창조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엄위하심과 공의로우심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도 하나님을 너무도 사랑하게 되는 존재를 창조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존재 창조보다 조금 더 시야를 확장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나라와 그 구성원을 창조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시기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율의지를 가진 인간의 타락 선택도 허용하시기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기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타락한 인류 가운데서 어떤 자들은 영생복락을 주시기 위해 택하시기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류 가운데서 어떤 자들은 심지어 어떤 이는 복음을 전해 듣게 되는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결과 스스로의 죄와 악함을 항변할 수 없는 방식으로 유기되도록 정하셨습니다.
조금 더 시야를 확장하면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나라와 그 구성원을 창조하시기로 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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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 안쪽의 글은 동시적인 관점에 비중을 두게 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동시에 원하시는 대로 예정하신 창조 전에 계획하실 때에 "타락 전 택함을 예정"이라고 볼 수도 있고,
예정하신 순서에 비중을 두게 되면 창조 전에 계획하실 때에 "타락 후 택함을 예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와 중보와 공의가 모두 구성되고 있습니다.
점선 안쪽의 글이 전선택설인가요, 후선택설인가요.
우선, 성경은 창세 전에 영원한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 선택을 말할 뿐입니다.
물론 점선 안쪽의 글은 둘 중 어느 한쪽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개념정립 2021-10-07 18:56:39
1/4
능동적 순종을 받아들인 화란의 바빙크는 현대 개혁신학의 주류를 만들었습니다.
이전시대의 에드워즈는 회심준비론을 주장했습니다.
이전시대의 존 오웬은 능동적 순종을 주장했습니다.
이런 기라성 같은 분들의 주장의 근거가 되는 틈이 종교개혁기에도 있었습니다.
종교개혁기 당시의 시대적 한계였을 수 있지만 그 틈을 막지 못했습니다.
루터파와 개혁파가 당시에 합의한 율법의 용도 중 몽학선생의 용도입니다.
이 몽학선생의 용도는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로는 몽학선생인 율법을 전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대속하심으로 완성된 복음을 먼저 직접 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지금은 율법의 용도 중 몽학선생의 용도는 제한됩니다.
먼저 복음을 선포해야만 합니다.
종교개혁기는 이점이 간과 되었습니다.
칼빈도 인증한 볼링거의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 일부입니다.

제 2 스위스 신앙고백서
12장. 하나님의 율법에 관하여
... 율법이 주어진 이유
우리는 이 율법이 주어진 목적이 우리가(여기서 말하고 있는 ‘우리’는 유대인이 아닌 유럽인을 말하고 있다, 글쓴이가 첨가) 그것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율법이 가르치는 바로부터 우리의 연약성과 죄와 정죄를 알며, 우리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절망한 후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회심케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가르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도 바울이 "(롬4:15)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롬3: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말했기 때문이요, "(갈3:21)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갈3:22)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갈3:24)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도 말한 까닭이다.

확실히 몽학선생의 용도 설명이며 회심준비론을 지지하는 무척이나 좋은 근거로 쓸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기에는 시대적 한계에 의해서도 이 용도를 제한하고 막아놓지 못했습니다.
루터와 칼빈도 모두 인증했고 제한하지 못하고 막아놓지 못했습니다.
이 틈을 그대로 계승하여 회심준비론의 토양이 준비되었습니다. 능동적 순종으로 획득한 '의(義)'도요.
틈인 것을 알면 이제라도 막아놓아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능동적 순종은 반대하였지만 행위언약은 인준한 분들이 모두 선악과 계명을 받기 이전의 아담은 순전하지만 임시적 상태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임시적 상태로 창조되었다는 합의는,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며 행위언약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행위언약이 완전히 다르게 설명이 됩니다.
이들의 행위언약은 선악과 계명을 율법으로 치환시켜버립니다.
윌리엄 퍼킨스가 말하는 행위언약은 명백한 율법을 얘기합니다. 심지어 능동적 순종을 따르며 행위언약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아담에게 십계명이 새겨져 있다고까지 말합니다.
루터파에서 나왔다는 능동적 순종 개념과 퍼킨스의 행위언약은, 율법을 매개로 하며 짝을 맞춘 한 쌍의 신발처럼 움직입니다.
능동적 순종도 폐기해야 하며 웨신서 11장 3항과도 연관이 없으므로 3항에서도 퇴출해야 됩니다.
능동적 순종 지지자들의 행위언약 사상도 이들이 치환시킨 율법을 행위언약 사상에서 제거해야 되며,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며 동시해 행위언약을 주장하는 이들이 율법을 매개로 연관시킨 웨신서 7장 2항과 11장 3항과의 연관을 끊어야 됩니다.

.능동적 순종을 반대하며 행위언약을 인준하신 분들의 아담은 임시적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주장은 영생을 누리는 상태로 창조된 아담이 영생을 누리는 온전한 상태로 회복되었다는 주장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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