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17년 동안 종말론을 연구해 왔다. 대부분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부활'이라는 의미를 모르는 것 같다. 필자는 약 2개월 전 이 지역에 있는 목회자들과 함께 '다니엘서와 70이레'라는 제목을 가지고 다니엘서를 1장 부터 12장 까지 6시간에 걸쳐 함께 공부한 한적이 있었다.

단 12장은 주로 종말론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필자가 부활, 특히 '영의 부활'과 '영의 사망'에 관해 강의 하던 중, 어느 목사와 토론을 했다. 그 목사는 "우리는 영혼불멸을 믿는데 어떻게 영이 살고 영이 죽을 수 있는가 ?"라고 말했다.

 
또한 얼마 전 바른믿의 논객 이창모 목사님이 '죽은자들(마 8:22)은 영적으로 죽은자들을 의미하는가 ?'에 대한 주제로 글을 올렸다. 필자는 '죽은자들'을 유산상속의 관계로 연결시킨 이창모 목사님의 견해를 반대하지만, 이창모 목사님의 글은 매우 심오하다. 특히 그의 글에서, ‘영적으로 죽은 자’의 의미가 유대인들에게는 육체적으로 죽은자를 가리킨다는 말은 내게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우선 '부활'과 '사망에 대해 토론하면서 여기에 대해 필자는 답하고자 한다.

성경에서 부활을 말할때, 첫째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을 의미한다. 이것은 '부활'이라는 단어가 '사망'이라는 단어와 대조적으로 쓰이지 않고 단독으로 쓰일 경우이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8-29).

‭‭위의 말씀은, ‘예수님이 우주적으로 재림할 때, 무덤속에 있는 의인의 육체는 부활하여(다시 살아나) 영생을 얻고, 반면 악인의 육체는 부활하여(다시 살아나) 심판을 받고 결국은 영벌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위와 같이 '부활'이라는 단어가 단독으로 쓰일 경우, '부활'의 의미는 단순히 '육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을 의미한다.

부활을 말할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육신의 부활'이라고 믿으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사로의 사건(요 11:1-44)에서 죽은 나사로를 예수님이 살리신 사건이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나사로가 ‘부활‘했다고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사로는 그 이후 다시 죽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성경에서의 부활(영생)이 사망(영벌)과 대조하여 쓰일 때, ‘부활’은 종말의 구원’을 의미하고 ‘영생’을 의미한다. 요 11:24-27에 예수님과 마르다의 대화에서도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말함으로써 마르다는 부활의 의미를 정확히 알았다.

즉 부활은 종말의 때(마지막 날)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말라기 이후부터 예수님의 성육신 까지의 400년의 기간을 ‘암흑기’ 혹은 ‘포로 귀환기’라고 하는데, 그 기간동안 유대민족 사이에서 메시아 대망사상이 싹트기 시작했다. '메시아(그리스도)'는 일반적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왕, 제사장, 선지자를 의미하는데, 그리스도(메시아)가 ‘예수’라고 하는 고유명사에 쓰일 때, 그것의 의미는 ‘종말의 구원자’를 의미하고 환원하면 부활시키는 ‘부활자’를 의미한다.

요 11:25에 예수님께서도 자기 자신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하셨다.  환원하면 나는 ‘부활자’ 즉 ‘종말의 구원자’, ‘영생을 주는 자’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종말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만이 ‘유일한 구원자’요, ‘참 구원자’ 이시다. 그러기에 적그리스도는 예수가 그리스도 이심을 부인하는 것 아닌가?(요일 2:22). 

종말에는 '개인적 종말'과 '우주적 종말'이  있다. 개인적 종말시 택자의 영혼은 살고 비택자(유기된 자)의 영혼은 죽는다. 여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는다. 우리는 ‘영혼불멸’을 믿는데 '어떻게 영혼이 죽을 수 있는가 ?'라고 말이다. 제 강의를 들었던 어느 목사님도 위와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여기에 대한 답변으로 마 10:28의 말씀을 제안한다.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 하라”.

위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영혼을 죽이거나(멸하거나) 살릴 수 있다. 위에서 ‘영이 산다’는 말은 개인 종말시 그의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가하시는 곳, 낙원에 간다는 말이다. 이것을 '영의 부활' 즉 '첫째 부활'이라고 한다. ‘첫째 부활’이라고 하는 단어는 계시록 20:4-6에 나오는데 그 의미는 ‘의인들(순교자들과 성도들)이 사후에 그들의 영혼들이 살아남’을 의미한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자의 영혼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계 20:4-6). 

그러므로 필자는 의인이 죽은 후, 그 영혼이 낙원에 가는 것을 ‘영의 부활’ 또는 '첫째 부활'로 본다. (의인이 죽은 후 그의 영이 산다는 의미와 같다). 첫째(영의)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고,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고 하였으니(계 20:6), 주님을 믿어 순교를 당하고,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주님을 믿어 별세한 성도들의 영혼은 얼마나 행복하고 귀한 것인가 ?

벧전 1:9에,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은 우리가 영혼의 구원을 받기 위해서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기독교는 한 사람의 영혼 구원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이 구원되어야 영생을 얻고 영이 구원되지 않으면 영벌을 받기 때문이다.

계 14:12-23,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켜…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신, 구약을 포함한 모든 성도들의 영혼들이, 사후에 천상에서 주님과 함께 천상행복을 누릴 것을 명백히 증거하고 있다. 그들은 연옥이나 고성소 같은 중간지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계 6:11을 보면,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쉼을 받다는 내용을 보더라도, 이 ‘첫째 부활’은 ‘영의 구원’ 혹은 ‘영의 부활’ 임을 알 수 있다. “둘째 사망이 그들(첫째 부활 즉 영의 부활을 맞은 자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계 20:6)고 하였으니, 그들은 예수의 우주적 재림 때, 즉 최종 심판 때 생명(영생)의 부활만 받고, 죄와 사망의 심판은 없을 것이다. 

요 5:27-29을 보면,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였다. 요 5:24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밝혔다.

위의 성경 구절은 그동안 오역되어,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심판받지 않는다’고 믿어왔다. 위의 말씀은 예수를 믿고 ‘사후에 영혼이 구원된’ 즉 ‘영의 부활을 맞은’ 자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재림 시에 있을 ‘육신의 부활 (둘째 부활)’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구원을 좌우하는 부활이 아니다. 그것은 영의 부활을 받은 자에게 필연적으로 임하는 것이다.

‘영이 죽는다’는 말은 불택자가 개인 종말시 그의 영혼이 하나님과 분리된 ‘음부’로 간다는 말이다. 이것을 '영의 사망' 즉 '첫째 사망'이라고 한다. 이창모 목사님의 글에서 '죽은자들로'를 '영적으로 죽은자들로' 해석할 때, 현재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종말론적 관점, 즉 '그들이 사후에 그들의 영혼이 음부에 떨어진다'로 해석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영의 사망', '첫째 사망', '영이 죽는다'가 악인의 사후에 일어나는 일이다. 즉 악인들이 사후에 그의 영혼들이 음부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첫째 부활(영의 부활)에 참여한 자들은 예수님의 우주적 종말시 심판을 받지않고 둘째 부활인 육신의 부활에 참여해 새하늘과 새땅, 새예루살렘 성에서 영원복락(영생)을 누린다. 반면 첫째 사망(영의 사망)에 참여한 자들은 예수님 재림시 심판받아 그의 육신이 둘째 사망 즉 불못에 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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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훈 장로는 Nevada주의 Las Vegas에 거주하며, 갈보리장로교회(협동장로)에 출석한다. 직업은 치과의사이고, 라스베가스의 '김리훈 보철치과'의 원장이다. 남가주대학(USC), 캘리포니아대학(UCLA, 치의학박사), 미시간대학(U of M, 보철전문의 석사)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또한 미주 총신(M.Div)에서 개혁신학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