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필자의 '전통적 복음주의와 1950년에 출현한 신복음주의(WEA)'(크릭)와 연결된 글입니다. 함께 읽기를 권장합니다.)

합동과 총신에서 종교다원주의, 포용주의를 조장하는 WEA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고 동시에 ‘신복음주의’라는 용어가 함께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신복음주의에 대한 영어 표현의 혼선이 있다. 신복음주의를 'New-Evangelism'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올바른 용어 사용이 아니다. Evangelism은 전도, 복음전파를 의미하고, Evangelists는 전도자들을 뜻한다.

Neo-Evangelical(신복음주의)
Neo-Evangelical(신복음주의자들)

이와 같이 표현해야 한다. 용어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 질 수 있으므로 New-Evangelism을 ‘새로운 방식의 복음전파’라는 뜻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비슷한 문제가 또 있다. 한국 교회가 고집하는 ‘개혁주의’라는 말을 영어로 하면 Reformationism인데, 이런 단어는 영어에서 볼 수가 없다. 영어의 Reformed Theology, Reformation Theology을 개혁신학이라고 하지 않고 한국 교회가 ‘개혁주의’로 고집하고 있으므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관련된 용어들을 다시 정리해 보자. 

개혁신학, 개혁주의 - Reformed Theology
개혁교회 - Reformed Church
복음주의 - Evangelical
복음주의자들 - Evangelicals
신복음주의 - Neo-Evangelical
신복음주의자들 - Neo-Evangelicals
 
ex)WEA에 빠진 신복음주의자 - Neo-Evangelicals in love with WEA
복음전파 - Evangelism
복음전도자들 - Evangelists

그런데 인터넷 사전이나 어떤 영어 문헌들에서 이와 같이 표기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표기되지 않는 사례들을 볼 때 우리는 이 용어들에 대한 혼선이 심하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칼빈의 개혁신학과 전통적 복음주의 신학

개혁신학(개혁주의)과 복음주의에 대해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필자는 복음을 삼켜버린 음녀 로마교회로부터 피 흘리는 싸움을 통해 다시 복음을 구출하여 회복시킨 루터의 종교개혁을 복음주의의 시작이라고 본다. 복음주의는 로마교회와 싸우기 위해 먼저 깃발을 들었던 종교개혁자 루터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면 종교개혁 신학을 완성한 칼빈에 대한 다음과 질문이 생긴다.

“칼빈이 완성한 종교개혁 신학(개혁신학)은 복음주의가 아닌가요”

칼빈은 루터와 다른 종교개혁자들이 세운 많은 올바른 신학들을 그대로 수용했다. 그래서 칼빈에 의해 뼈대가 완성된 종교개혁신학(개혁신학)은 루터와 다른 개혁자들의 신학과 많은 공통점들을 가진다. 그런 면에서 칼빈도 복음주의자(종교개혁 신앙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로마교회의 사제였던 루터는 기독교 신앙을 성경에 맞게 온전하게 회복시키는데 한계를 보였다. 루터는 이신칭의를 확실하게 믿었으나, 사람이 이신칭의되기 전에 먼저 구약의 율법을 잘 배우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청교도들의 회심준비론이 루터에게서 먼저 나타났던 것이다. 그래서 청교도 회심준비론자들은 루터의 신학을 매우 좋아한다.

루터는 단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고 이후 자신의 행위(선행과 회개)로 구원을 완성하라고 가르치는 로마교회의 사제였다. 사제가 되어 회개와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완성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하다가 어느 날 “이래서 되는 게 아니구나!”라고 회의하면서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하게 얻어지는 구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으로 회귀했다.

그러나 문제는 루터가 로마교회 사제로서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구원을 알기 전까지 열성적으로 붙들었던 자신의 경험을 완전하게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루터는 행위로 구원을 완성하려고 노력하였고 그 과정 속에서 처절하게 절망했던 자신이 경험과 과정이 그리스도를 통한 이신칭의로 구원을 얻어야 할 모든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루터는 율법의 요구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냥 예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바르지 않는 신앙이해라고 가르쳤다. 자신이 행위로 구원을 완성하려고 몸 부림치는 과정을 가졌던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한 이신칭의 전에 먼저 그런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율법으로 더 죽여 놓은 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루터를 보면 우리가 성장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칼빈은 루터의 그런 부분을 수용하지 않았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성령이 택자에게 은혜를 주시어 믿게 하심으로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이 단번에 이루어진다고 가르쳤다. 칼빈에 의해 성경적 이신칭의가 온전하게 교회에 들어선 것이다.

루터는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가르쳤다. 로마교회의 사제였던 루터에게는 로마교회의 신학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태생적으로 어려웠던 것이다. 칼빈은 루터의 그런 신학이 종교개혁 교회에 들어서지 못하도록 거부했고, 그리스도께서 성찬에 영적으로 임재하신다고 가르쳤다.

칼빈이 루터와 다른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세워진 많은 성경적인 신학들을 그대로 받았으므로 그 면에서 칼빈도 복음주의자(종교개혁 계승자)이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부분들에서 칼빈은 루터의 신학을 따르지 않고 성경대로 교회와 신앙을 바로 세우는 작업을 독자적으로 수행했다. 그러므로 칼빈의 신학을 복음주의 신학의 범주에 넣지 않고 칼빈에게 종교개혁 완성자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그리고 그가 체계화시킨 종교개혁 신학을 개혁신학(Reformed Theology)한다. 

개혁신학은 1564년에 죽은 칼빈이 작업했던 그 선에서 멈추어진 신학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칼빈이 죽고 수 백년 후 미국에서 이단 오순절 회복 운동과 그 연장선상에서 신사도 운동이 일어났다. 칼빈 생존시에는 성령재세례와 그 징조인 방언기도라는 것은 전혀 대두되지 않았다. 칼빈 시대에는 방언은 오직 다른 민족의 실제 언어였다. 

그러므로 칼빈의 저작 어디에도 방언기도와 성령재세례가 비성경적이라는 직접적인 지적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방언기도와 성령재세례 사상에 대한 개혁신학적 비판을 충분히 가능하다. 그 이유는 개혁신학의 근본이 칼빈의 신학이 아니고 성경이기 때문이다. 개혁신학은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나온 신학이 아니다. 개혁신학은 성경의 가르침을 가장 바르게 구성하고 교회에 적용하는 신학이다. 개혁신학의 바탕과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개혁신학은 성경을 절대 기준으로 삼는다. 교회의 전통이나 사람의 학설을 감히 성경 앞에서 할 말이 없다. 성경이 가라고 하는 곳까지 가고 멈추라고 하는 곳에서 멈춘다. 교회의 신앙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하고, 교회는 성경과 신앙을 조작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오직 성경이 교회와 신앙을 지배하고 다스린다 (서철원, 신학서론, 131-32).

 

2. 성경의 가르침들에 대한 해석과 적용의 어려움들이 일어나 교회가 혼란에 빠지기도 했었다. 개혁신학은 그런 문제들에 대해 칼빈이 했던 것처럼 공교회(보편교회)가 세운 중요한 교리들, 즉 삼위일체 교리, 그리스도의 신인성의 교리들 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또한 공교회가 작성했던 ‘칼케돈 신경’(Chalcedonian Creed, 451) 등의 가르침을 그대로 수용한다. 그러나 개혁신학의 절대적 원칙(권위)은 오직 성경이고, 공교회가 세운 교리들과 신경들은 신학의 절대적 원칙인 성경에 대해 이해, 해석, 적용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3. 칼빈 이전의 루터와 다른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확립되어 칼빈이 수용하였던 성경적 신학들도 개혁신학의 중요한 자산들이다. 복음주의와 개혁신학(개혁주의)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들이 있다.

4. 루터와 다른 종교개혁자들이 바르게 구성하지 못했으므로 칼빈이 다시 작업하여 성경에 맞게 구성한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이 개혁신학의 중요한 내용이다.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이 가장 잘 기술된 책은 그가 평생 동안 연구하고 보완하였던 책 <기독교강요>이다. 칼빈의 성경 주석들도 개혁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들이나 그가 평생 동안 연구하고 보완했던 <기독교강요>가 더욱 더 중요하다.

5.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유럽의 교회들에게 정착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던 하이델, 도르트, 벨직, 웨스트민스터 등의 신앙고백서들도 개혁신학의 중요한 자신들이다. 유럽의 개혁교회들의 신앙고백서들의 탄생의 1차 목적은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유럽의 교회들 속으로 안착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칼빈의 신학과 다른 내용이 기술되어 있으면 가차없이 그 부분을 버려야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웨신서에 기술되어  있는 ‘행위언약’ 개념이다.

종교개혁을 통해 개혁된 교회는 이와 같은 개혁신학의 원리들을 따라 계속 비성경적인 문제들을 다루어서 성경에 합당한 교회로 개혁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미 크게 개혁된 교회는 성경에 합당하게 계속 개혁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