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전쟁 (1099-1291)은 지난 천년동안 유럽의 수많은 전쟁 중의 하나이다. 이미 700년 전에 끝나버린 십자군 전쟁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새삼스럽게 거론해야 할까? 절대적으로 거론할 필요가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대부분의 회교도들이 그들의 잔인한 그리스도인 학살과, 미국을 포함한 서방 세계의 구석구석에서 발생하고 있는 테러활동의 정당성의 상당한 부분을 십자군 전쟁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십자군 전쟁을 그리스도인들의 성전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역사학자들은 십자군 발생의 배경을 경제적인 이유, 영적인 이유, 셀죽 터키의 소아세아 점령, 카스틸 왕조의 페르디난드 1세에 의한 11세기 스페인의 무슬림으로부터 재탈환 등의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 밖의 다른 요소들도 많다. 윌리스턴 워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험에 대한 사랑, 약탈의 소망, 영토의 취득, 종교적 혐오감 등, 땅의 충동들이 십자군들을 움직이는 분명한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그들이 자신들의 영혼과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을 가장 높은 중요 가치로 보았다는 분명한 사실도 묵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과연 그랬을까? 성경의 분명한 기록을 손에 가진 우리는 다시 한 번 어떤 사람의 뜨거운 열정이나 헌신이 하나님의 말씀과 부합하지 아니할 때, 그 열정과 헌신이 얼마나 위험하고 악한 것임을 역사를 통해서 확증하게된다. 약탈과 방화와 살육의 방법이 예수님께서 명하신 천국을 선포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낭만적인(?) 모험가들과, 탐욕의 군주들을 충동한 자들은 누구였는가? 로마 교황 어반 2세의 웅변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러나 그의 설교의 배후에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의 호소에 호응하려는 목표가 있었다. (부르스 L. 쉘리)

먼저 십자군 전쟁이 “기독교인의 전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성경 말씀을 근거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은 원수와의 대결에서 칼을 사용하지 않는다.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마 26:52).

성서적 그리스도인의 씨름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다(엡 6:12).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진리”이고 “의의 흉패”이고, “평안의 복음”이고,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 등이다. 그리스도인이 원수를 만나서 원수가 주리면 먹이고, 목마르면 마시는 물을 제공해야 한다 (롬 12:20). 성서적 그리스도인은 그들을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않아야 한다(롬 12:14). 바울은 자기를 본받는 자되라고 권면하고, 바울 자신은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였다(고전 4:12).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38-43)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테러나, 약탈이나, 살육이나, 겁탈이나, 침략이 가능하지 않다. 만약 어떤 자가 테러나, 약탈이나, 살육이나, 겁탈이나, 침략을 자행하면서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말 하는 자이고, 모든 거짓말하는 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는 자들이다(계 21:8).

그러면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십자군들이 자행한 일들의 기록을 보자.

“그들이 통과한 지역의 주민들 가슴 속에 공포로 채웠다. 그들은 약탈과, 탈취, 강탈과 강간을 자행했다. 일단 전투에 임하면, 자비가 잔인보다 이익이 보장되기 전에는 철저히 무자비했다. 십자군의 칼날에 희생된 첫 번째의 희생자들은 그리스의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고문과 대량학살을 당하였다. 이것이 십자군이 콘스탄틴노풀에서 니게아에 이르는 노정의 지역 주민들이 당한 운명이었다. 십자군에 의해서 처음 점령당한 회교도의 성이 니케아 성 근방에 있던 세리골든 성이었다.

얼마 후 터키군에 의해서 빼앗겼다가 십자군이 다시 탈환하였을 때, 성내 주민들 중 기독교로 개종을 거부한 모든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 끝없는 고난과 희생을 지불하고, 1099년 7월 15일, 십자군의 목표였던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 ... 보수의 날이 드디어 이르렀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격파한 불신자들보다 더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루살렘 주민 중, 무슬림 수비대장과 그의 심복들만이 도피에 성공했고, 그 나머지의 사람들(남여노유, 무슬림, 유대인)들은 무자비하게 도살당했다. 얼마 후 유럽은 예루살렘 성의 함락과 함께 이 학살의 소식을 들었다. 아퀼러스의 레이몬드는 기록하기를 다음 날 아침 성전 지역을 향해서 갈 때, 쌓인 시체들을 피해서 무릎까지 이른 피를 휘젓고 건너가야 했다고 한다. 이 패전의 소식이 전해졌을 때, 무슬림들에게는 프랑크 족에 대한 영원한 혐오와 예루살렘 성을 다시 탈환 할 때까지는 휴식을 취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슴에 심게 되었다.”(윌리엄 R. 이스텝, 문예부흥과 종교개혁, p. 9).

하나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독교 정신과는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이 잔악한 전쟁이 어찌 그리스도인들의 전쟁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세계 역사의 백과사전”(6판, Peter Stearns, gen. ed.)의 “십자군 전쟁의 정의”를 보면, “11세기, 12세기의 십자군전쟁은 교황청이 주관한 군사 원정이며, 무슬림 아랍인과 셀죽 터키로부터 기독교 성지회복을 위한 전쟁이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당시 군주들에게는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영지(領地)내에 준동하고 있는 충성심이 약한 기사들과 군벌제거,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탈취물의 획득, 사회적으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의 충족 등이 동반했다.

그러나 로마 교회는 더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수십 년 전 분리되어 나간 (1054) 동방교회를 다시 로마 통치 아래로 끌어드릴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교황 그레고리 7세(1073-1085) 는 그의 유명한 성명서 “딕타투스 파페”를 발표하여 “로마 교회는 오직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이고, 오직 로마 교황만이 우주적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교황만이 황제의 휘장을 사용할 수 있으며, 군왕들은 오직 교황의 발에만 입마추어야 하며, 교황만이 황제들을 폐위시킬 수 있고, 교황은 어떠한 인간에게도 심판을 받을 수 없다; 로마 교회는 오류를 범한 적이 없으며, 영원히 오류를 범할 수 없다.” (빌 오스틴, Austin's Topical History of Christianity, p. 165). 이 유명한 교황은 다니엘서를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세상 권력은 뇌물과 같고,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한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설교 중 하나는 교황 어반 2세 (1088-1099)의 십자군 ‘출사표’ 설교라 할 수 있다. 수백 년 동안 유럽인들의 가슴 속에 모닥불처럼 타고 있는 소위 “성지순례”의 꿈에 불을 붙이고, “영생의 면류관”을 약속하고, 세금의 면제를 약속한 어반의 설교가 끝나자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함성을 올렸다. 이러한 성지 탈환의 꿈은 실상은 그레고리 교황 때 심겨진 것이다. 다음 내용은 어반 2세가 교황으로 선출되고 얼마 되지 않아 독일의 교회 관리들에게 보내어진 편지의 일부이다

“나는 그(그레고리 7세)가 부인하는 것을 부인하고, 그가 정죄했던 것을 정죄하고, 그가 사랑했던 것을 수용한다. 그가 공의롭게 여기고 가톨릭이라고 생각한 것을 나도 공의롭게 여기고 가톨릭으로 여기며, 나는 그가 생각했던 것을 생각하며, 나는 그의 사상과 완전 일치한다.”(클로디오 렌디나, ‘교황들: 역사와 비밀들’; 번역, 폴 D. 멕커스터).

로버트 갓프리 (W. Robert Godfrey)는 “십자군”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은 만약 잘못 이용되고 오용되면 대단히 위험한 책이 될 수 있다. 교회사에 있어서, 성경에 대한 오해는 수많은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해 왔다; 거짓 교리들, 율법적 습관, 잘못된 방향으로 향한 삶 등이다. 수많은 오류 중 가장 뚜렷한 예는 십자군 전쟁이다: 십자군 전쟁이란 중세 때 근동지방의 회교 국가들에 대한 유럽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행한 일련의 전쟁들을 의미한다.”(테이블 토크, 2011 년 5 월 호)

그는 제 1차 십자군을 이끌고 출발했던 “은자(隱者) 피터”의 환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성에서 불신자들(무스림들)을 제거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성묘교회에서 보았다”는 내용이다. 환상은 중세의 수많은 미신들 가운데 주종을 이룬다. 중세의 일부를 역사가들은 “암흑시대”라고 부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로버트 갓프리는 교황 어반 2세의 연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 일에 대하여, 내가 아니라,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기사들과 보병들, 당신들에게, 호소합니다 ... 더 늦기 전에 기독교의 땅에서 악한 종자들을 축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를 인하여 본인은 여러분께, 육지와 바다를 건너 불신자들을 향한 투쟁에 참예하여 목숨을 잃으면, 그분들에게, 면죄를 선포합니다 ... 지금까지 서로들 간에 약탈을 일삼던 여러분, 이제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시오. 몇 잎 은전을 위하여 일하는 여러분, 이제는 영원한 보상을 위해 일하시오.”

교황 어반 2세는 기독교의 땅을 위하여 칼을 들라고하였다. 어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는 요한복음 말씀을 읽어본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로버트 갓프리의 십자군 전쟁에 대한 다음의 말들을 읽어보자. 

“어반은, 영적 의무와 영적 보상을 위해서 칼을 들어 그리스도의 원수들을 죽이자고 호소하였다. 이 설교는 아마 교회사에 있어서 그리스도 교회 일을 위한 수단으로 전쟁을 선포한 첫 번째의 예가 될 것이다. 어반은 십자군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만 완전히 죄 사함을 받는다고 주장했지만, 이후 교황들은 전쟁에 참가만 해도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고 가르쳤다. 이제 기독교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물질주의 교회가 되어버렸다.”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와 서방에 대한 영원한 혐오감을 회교도들 마음속에 심어놓았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는 기독교와 국가가 지금도 하나로 보이는 결과를 낳았다.”

“십자군 역사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이 전쟁이 엄청난 피해를 그리스도께 끼쳤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큰 그리스도에 대한 배신인가! 그 분은 십자가에서 당신의 생명을 쏟아 부으셨고, 그를 처형한 정치적 원수들과 함께 그들의 죄를 지기 위하여 불의를 참고, 화평을 이루신 분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언제든지 사랑과 희생을 동반한 진리로 만 그리스도의 대의(大義)를 실행할 것이다. 결단코, 폭력에 의존치 않는다.”

십자군 전쟁은 결코 성서적 그리스도인들이 시작한 전쟁이 아니다. 그러면 그 당시 무엇이 문제였는가? 성서적 구원론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 때나 지금이나 성서적 구원 교리를 소유한 적이 없다. 성서적 구원 교리만이 영적 분별력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정태윤 목사 / 복음주의 형제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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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윤 목사는 정태윤 목사는 미국 달라스에 있는 서남침례교회의 목사이다. 정태윤 목사는 현대의 교회들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에서 멀리 벗어났음을 안타까워는 목회자들과 함께 ‘복음주의 형제회’를 조직하여 매년 복음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천주교의 심각한 배도를 설명하는 데이비드 헌트의 책「짐승위에 탄 여자」을 번역하여 국내에 보급하였고, 그 외에도 「진정한 복음」,「참 복음과 거짓복음」, 「로버트 채프만: 사랑의 사도」를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