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음주의 풀러신학교가 개교한 지 2년 정도 지날 때 1949년 30대의 빌리그래엄이 복음 전도 집회를 캘리포나아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1950년 1월 16일 오켄카의 초대로 빌리그래이엄이 보스턴에서 집회를 열었다. 1950년 오켄카는 빌리그래이엄의 전도협회 설립의 도움을 주었다. 이때 오켄카는 빌리그래엄 전도협의 이사가 되었고, 빌리는 플러신학교의 이사가 되었다.

빌리그래엄은 사실 처음부터 자유주의 신학과 협력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빌리그래엄이 전도집회를 하면서부터 돈과 조직이 필요한 것을 알고 자유주의와 기타 비복음주의 단체들과 협력을 하기 시작하였다. 1957년 뉴욕 전도집회 때 자유주의자들과 협력을 하였다. 그들의 후원, 즉 돈을 받기 시작하였고 결국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빌리그래엄이 자유주의자와 협력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었다. 빌리그래엄은 오켄카와 항상 상의하고 논의하였다. 빌리는 ”오켄카는 신복음주의 신학과 이상에 대변자“라고 불렀다.

1957년 이래로 빌리는 항상 이런 말을 하고 다녔다. ”참다운 제자도는 정통신학이 아니라 사랑“이다. 이 말은 ‘예수님은 진정한 제자의 증거로 신학 내용보다는 사랑을 말씀하셨다’ 라고 하는 카넬의 어법을 따라 한 것이다. 빌리그래엄의 신학 좌경화에 또 다른 영향은 바로 사람들이다. 집회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하기 때문에 빌리는 다른 신학과 자유주의 그리고 이단들(유니테리안,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등)과도 연합을 하게 된 것이다. 성공 때문에 현대신학에 대한 조심성을 버렸다.
 

 

풀러신학교의 신학의 좌경화는 ”성경무오“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되었다. 성경무오가 구속론과 관련된 일부 성경 구절에만 적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이런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카넬은 성경의 무오를 주장하였다. 카넬이 사망할 때쯤에도 카넬은 성경 무오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한다. 카넬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하여 아주 비판적이었다. 그는 ”자유주의는 시대에 변하지 않는 진리를 믿지 않고, 진보와 현대적 필요에 맞는 부분을 쫓아다닌다“고 언급하였다.

빌리그래엄이 미국에서 전도집회를 통해 부흥의 성공을 이끌자 영국복음주의 안에서는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빌리의 부흥집회에 참석하였던 영국 복음주의자들이 빌리그래엄을 존경하고 그와 함께 사역하는 것을 원하였기 때문이다. 빌리그래엄의 놀라운 친화력으로 인해 영국 복음주의자들은 빌리그래엄의 전도 집회 방식을 받아들였고, 결국 영국복음주의는 타락의 길로 가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 성공회가 복음주의 에큐메니칼 참여 운동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대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1967년 4월 키엘 대회였다. (제1회 전국 성공회 복음주의 대회)

이 모임의 초대 대회장이었던 존 스토트는 과거 복음주의자들이 가진 공식적인 태도에 반대 의사를 보이며 (구복음주의자들)을 향해 편협적이고, 파당적이며 반지성주의자들이라고 몰아붙였다. 개회사를 맡았던 성교회 대주교 램지는 아주 노골적으로 슐라이어마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신학이 우선이며 복음주의자들이 제 몫을 하기 위해서는 배타적인 성향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자리였다. 1966년에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 대회를 통해 복음주의가 분열된 시작이라고 언급하였다. 존 스트트와 로이드 존스의 갈등은 개인적인 갈등이 아니라 신학적인 갈등이었지만 이들은 개인적으로 계속 교제를 하고 있었다.

결국, 키엘 대회는 복음주의 교리의 훼손을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고 로이드 존스가 본 것이다. 로이드 존스의 입장은 에큐메니칼 교회 연합운동이 아니라 성경적 연합운동이 우선이며 중요한 것이라고 보았다. 로마교회까지 연합운동을 지지하는 빌리그래엄의 사상은 성경적 교회관을 파괴하는 것으로 보았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죄 용서는 어떻게 받는가?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인가? 이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본 것이다.
 

존 스토트(좌)와 빌리그레이엄(우)
존 스토트(좌)와 빌리그레이엄(우)

 

존 스토트는 이 점에 있어 성경의 무오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다른 비복음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과 연합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성경의 무오를 인정하지 않게 된 것이다. 1974년 빌리그래엄의 주도로 이루어진 로잔대회 때 성경의 축자영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회정의와 일치의 필요에 의해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것을 채택하였다.

이런 모습을 종합으로 볼 때 신복음주의자들이 가진 특징은 성공주의, 물량주의, 실용주의 이성과 경험주의와 포용주의를 전부 받아들이고 있으며, 연합을 위해 타 종파들과 이단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독교 근본 교리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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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