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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없는 세족식하면 발 냄새만 풀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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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없는 세족식하면 발 냄새만 풀풀
  • 정대운
  • 승인 2015.04.11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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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족식이 감동을 주는 수단인가?
병영문화 개선의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세족식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여러 단체에서 세족식을 거행하였습니다. 백석대(총장 최갑종) 교수들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행사를 하며 제자를 섬기는 마음과 사랑을 전하는 마음으로 세족식을 거행했습니다. 명지대(총장 유병진)또한 세족식의 행사는 지난 31일 거행하였습니다. 명지대의 세족식은 15년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4월 2일에 로마 레비비아 교도소로 찾아가 재소자의 발을 씻기고 그들의 발등에 입맞춤을 하였습니다. 한 여성 재소자는 여기에 감동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위에 있는 자가 낮은 자를 향해 낮아지는 섬김의 모습을 보여주는 세족식의 의미를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그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세족식의 의미일까요? 요한복음 12장은 예수님의 공생애가 끝나고, 13장은 예수님의 사적인 시간, 즉 제자들과만 시간을 갖습니다. 1절에 유월절 전 잡히시기 전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만찬을 가졌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종의 모습으로 낮아져서(4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이때 베드로가 말하길 “...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니아까...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요13:6,8)

그런데 여기에서 이해할 수 없는 두 가지 일이 발생합니다. 첫째, 베드로가 발 씻기를 거부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라고 하였던 것과, 둘째, 예수께서 대답하시길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명지대학교 유병진 총장과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세족식하고 있다

이게 이상한 이유는 지금의 세족식의 의미 즉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향해 낮아져서 섬기겠다고 한다는 매우 쉽고 간간한 의미를 시몬 베드로가 왜 몰랐느냐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 의미를 간단히 설명해 주면 될 것을 우리 주님께서는 굳이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라고 하였을까요? 지금의 대학생이나, 이탈리아의 재소자들조차 쉽게 알 수 있는 이 행위를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지금은 알 수 없다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라고 했을까요.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어 주겠다고 했을 때 부담되고 부끄러워 그 이을 사양했을 법도 한데, 이 거부 행위가 무엇이라고 발을 씻겨주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상관없다고 하는 것 일까요? 세족식에서 바로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외적인 행위만을 따라 하므로 세족식의 의미를 모두 왜곡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세족식 하면 단지 예수님은 낮아진 자리에서 그들을 섬기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섬김’을 보여 주는 것이긴 한데 그 ‘섬김의 의미’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목욕했다는 의미는 구원 받은 자라는 것을 의미하고, 모두가 목욕한 자가 아니라고 하신 이유는 그곳에 가룟 유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발을 씻는다는 것은 구원받은 자들도 매일 매일 발에 붙은 먼지와 같이 죄가 붙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털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는 것은, 너희들이 예수를 주로 삼지만 너희들이 그 죄를 털어내지 않으면 나와 상관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죄가 쌓이므로 그 죄를 매일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회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회개에서 오해가 되는 부분이 우리가 일기를 쓰듯 하루를 되돌아보며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를 스스로 깨닫고 그것을 털어 내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의지로 하는 회개이지 성령께서 해 주시는 회개일리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는 말씀을 배우고 묵상함으로 성령의 내 속에서 역사하심으로 회개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를 씻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표현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뜻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 119:10)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뜻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 5:26)

말씀은 물로 표현되고, 물은 말씀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세례시 물로 깨끗하게 함은 말씀으로 깨끗하게 함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족식의 의미는, 너희가 비록 구원 받은 백성일지라도 매일 매일 하나님 말씀으로 죄를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과 상관없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뜻이 있었기에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지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목사나 말씀 사역자가 성도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섬김은, 말씀으로 성도들의 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 간에는 말씀으로 서로 간에 권면하여, 상호간에 죄에 빠져 있지 않도록 권면하는 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

사실 이와 같은 말씀은 이미 공생애 기간 동안에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형제를 얻을 것이요"(마 18:15)

말씀 맡은 자는 성도에게 있는 죄를 말씀으로 드러내고, 성도간에는 말씀으로 교제하므로 서로 죄에 빠져 있지 못하도록 하라는 의미가 세족식의 의미입니다. 세족식을 거행하는 곳에서 참다운 세족식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며, 학생 상호간에 어떤 교제를 할 것인지를 충분히 설명한 이후에 시행했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높은 자가 아래 사람의 발을 씻어주어 그 따뜻함과 감동만을 주었다면 것은 세족식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시행한 것이며, 더욱이 그것은 결정적인 부분에서 왜곡하고 만것입니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스승은 하나님 말씀으로 사람들의 내면 은밀한 곳에 있는 죄악을 드러내서 그들을 회개시키고 심령을 낮추는 자입니다. 그러나 왜곡된 세족식에서의 스승의 의미는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자라는 것으로 착각하게 합니다. 그 결과 참된 스승은 ‘아주 고약하고 편협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어떠한 죄를 지어도 그것에 상관하지 않고 인자한 미소를 지어주는 사람이 참된 스승으로 알게 하는 완벽히 왜곡의 현상이 드러납니다. 즉 참된 스승은 버림 받고, 거짓된 스승은 높임 받은 결과를 나타납니다.

천주교의 교황은 다른 종교인에게도 세족식을 하여 감동(?)을 주었다



세족식의 왜곡을 통해 현대 교회가 참된 스승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참된 스승에 대비되는 거짓된 스승의 특징은 이와 같습니다.

첫째, 거짓 스승은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에 대해 침묵합니다. 언제나 이들의 입에서는 “평안하다 평안하다”라는 말을 할 것입니다.

둘째, 거짓 스승은 심판과 지옥에 대해 침묵합니다. 언제나 이 땅에서의 선한 삶에 대해서, 낮아진 모습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입니다.

셋째, 거짓 스승은 죄의 끈질김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죄에 대한 언급은 단지 피상적으로 ‘죄’라는 단어만을 사용할 뿐이지 죄의 사악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넷째, 거짓 스승은 회개의 필수성에 대해서 입을 닫습니다. 이들은 회개의 필수성도 모르고, 말씀으로 회개의 자리로 이끌지도 못합니다.

다섯째, 거짓 스승은 거룩한 삶의 필수성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내 모습 이대로 받으소서’라고 말하며 거룩함을 강조하지도 않고, 타락함에 책망을 하지도 않습니다.

여섯째, 거짓 스승은 헛된 안정감의 위험성에 대해 침묵합니다. 이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구원의 확증’을 남발하고 다닙니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세족식은, 단지 오해의 산물이 아니라, 이 나라의 기독교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대운 목사는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을 중심으로 탁월하게 가르치는 뛰어난 교육목회 전문가이다. 정대운 목사는 “객관화(진리)의 주관화(신앙)를 추구합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교육목회 철학을 표현하기 좋아한다. 세종대, 개신대학원대학교(M.Div),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에서 공부했고, 현재 계속해서 국제신학대학원대학(석,박사 통합과정)에서 연구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원 교수(교회사)로 사역하고 있고, 고양시의 삼송제일교회의 담임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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