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30 12:01 (화)
방언으로 걸어 정이철 목사도 이대위 조사 받아보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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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으로 걸어 정이철 목사도 이대위 조사 받아보게 합시다.
  • 정이철
  • 승인 2021.08.11 05: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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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방언을 부정한다. 지금 방언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방언을 부정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정이철 목사를 방언으로 걸어 이단 시비를 해 보자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Good try!"

좋은 시도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진리가 무엇인지, 하나님 섬김을 위해 믿고 실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더 바르게 연구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정이철의 주장이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히 해야 한다. 정이철 목사는 방언만 믿지 방언 기도는 믿지 않는다. 우리에게 아들을 보내어 죄사함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가 방언 기도를 만드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이철 목사가 믿는 것은 오직 방언의 은사이다. 줄여서 방언이다. 방언은 신약의 초기에 하나님이 교회에 직접 말하시는 특별한 방법들 가운데 하나였다. 특별계시가 아직 종결되기 전에 있었던 은사였다. 신약 초기의 어떤 성도들이 전혀 배운적이 없는 그 시대의 이방인들의 실제 언어를 잠시간 구사하게 만드신 특별한 성령의 역사였다. 신약의 초기에 나타났던 그 방언은 결코 은밀하게 개인적으로 시연되지 않았다. 성령께서 교회나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특히 불신앙적 유대인들이 있는 곳에서 시연하셨다.
 

사도행전에서 불과 3회 나타나는 방언의 첫번째 사례를 보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최초로 나타난 방언에 대한 기록이다. 이스라엘 땅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고 살았던 주로 갈릴리 출신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실제 이방인들의 언어로 말하셨다. 무엇에 대해 누구에게 말하셨을까? 그리스도를 우습게 여기고 거부하는 무수히 많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말하셨다. 여러 외국에서 살다가 일시적으로 명절을 지키고자 귀국하여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인 불신앙자들에게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을 하나님이 친히 방언으로 설명했다. 그랬더니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 하더라”(행 2:41)

최초의 방언을 목격한 사람들은 16개 이방인 국가들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 불신앙자들이었는데, 그날 자그마치 3천명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한다. 기독교 역사의 최초의 방언이 기도의 언어(하늘의 언어)가 아니라 당시 이방인 국가들에서 실제로 통용되었던 외국어였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자.

하나님께서 먼저 믿어 구원 받은 사람들이 불신자들에게 이방인들의 실제 언어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게 하신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는 길을 크게 여섰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신앙적 유대인들에게 영적 사형선고와 같았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실제 언어로 그리스도를 소개한다는 것은 선민이었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하니 이제 버려지고 그 자리를 믿는 이방인들이 차지하게 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일단 그 자체로서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표적이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불신앙적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이방인들의 말로 복음을 설명하는 방언으로 인해 기겁하였다. 동시에 성령의 역사를 따라 일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놀라운 일도 일어났다. 최초의 방언을 목격한 유대인들 가운데 택하심을 받은 3천명 정도가 그날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는 복된 일이 일어났다.
 

사도행전의 두 번째 방언 사례를 보자. 이방인으로서 최초로 기독교인이 된 고넬료 가정에서 일어났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 10:44-4)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통해 “성령이 임하면 방언이 나온다”는 이상한 공식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본문을 기록하신 성령은 하나님이 이방인들의 실제 언어로 복음을 말하시는 방언으로 인해 베드로와 함께 동행한 정통 유대인 신자들이 충격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그때는 유대인이 이방인과 만나는 것 그 자체가 심각한 일이었다. 크게 부정타는 일로 여겼으므로 유대인들은 이방인과의 접촉을 피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자기 환상을 통해 베드로에게 이방인 집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촉구하셨다. 하나님의 강권으로 말미암아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했다. 놀랍게도 그때 사도행전 2장에서 먼저 나타난 성령의 외국어 방언이 나타났다. 아마도 성령이 할례 받은 정통 유대인 베드로 또는 함께 동행하였던 다른 유대인들의 입으로 고넬료와 함께 있는 이방인들의 실제 언어로 복음을 설명하는 역사를 일으키신 것 같다. 

‘엘렐렐에 우알라스데 오이요시 센노리세’ ... 이런 우스꽝스럽고 재미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방인들의 실제 언어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하나님이 직접 설명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을 듣는 자들과 그 말을 하도록 성령의 도구가 된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의 역사를 경배하게 되는 신비한 일이었다.

그리스도인이 된 고넬료와 그 권속들에게 나타난 방언은 엄청난 일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에게 더 이상 메이지 않으시고 대신 믿는 이방인들에게로 하나님 나라의 지경을 확대하신다는 진리가 교회에 정착되었다. 그 진리를 깨달은 베드로와 할례 받은 유대인 신자들은 즉시 복음을 믿고 구원 받은 고넬료와 그 권속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베드로의 신학에서 유대주의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사건이었다. 

이날의 사건이 기독교에 더 큰 일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 땅에 완성될 종말의 하나님 나라가 유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들과 이방인들에게로 확대되었다는 사실이 기독교의 진리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최초의 기독교 회의의 주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믿음의 길의 동일성 여부였다. 난상토론이 이어졌다. 결국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서 경험한 일을 보고하자 다른 사도들과 야고보 등의 지도자들이 유대인이라도 그리스도를 거부하면 영원히 저주받고 이방인이라도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원히 하나님 백성된다는 진리 앞에서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었다.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행 15:11)

이방인들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완전한 백성이 된다는 사실이 진리로 확립되었다. 그것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한 사람은 베드로였다. 베드로에게 그 사실을 알게 한 사건을 무엇인가? 이방인 고넬료 가정에서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친히 이방인들의 실제 언어로 복음을 설명하신 방언의 나타남이었다.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 10:44,45)

고넬료 가정에서 나타난 방언도 렐렐렐레 ...하는 방기(방언기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베드로와 그 자리에 동행한 정통 유대인들의 고정 관념을 깨뜨리는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났던 것이다. 한 번도 배운적이 없는 이방인들의 언어로 그리스도를 설명하게 하는 성령의 이적이었다. 고넬료 가정의 복음 증거 현장에 있었던 누군가가 이상한 하늘의 언어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볼 내용이 전혀 없다.
 

사도행전의 방언의 마지막 세 번째 사례를 보자. 회당을 중심으로 반기독교 진지를 구축하고 살던 사탄적 유대인들이 많았던 에베소(행 19장)에서 또 방언이 나타났다. 에베소의 불신앙적 유대인들이 얼마나 악독했던지 사도 바울은 선교의 큰 성과를 보았으나 그들에게 맞아 죽기 직전에 도망쳐야만 했다. 전승에 의하면 나중에 그곳으로 가서 계속 목회한 바울의 제자 디모데는 결국 에베소의 유대인들의 몽둥이에 맞자 죽었다고 한다.

에베소 선교는 먼저 아볼로에 의해 이루어졌다. 아볼로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단지 세례 요한의 사상만 배우고 전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처음부터 다시 전하고 가르쳤다. 복음을 다 가르친 후,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방언이 나왔다고 한다 (행 19: 6).

다른 선교지에서는 바울이 안수하는 일이 없었는데 왜 에베소에서는 안수하였는지에 대한 신학적 해석은 난제이다. 아볼로에게서 배운 세례 요한의 사상, 즉 에베소의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지 못하는 요한의 가르침과 단절하고 온전한 복음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행동이었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칼빈도 다른 복음을 추종하다가 돌이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아온 사람에게 같은 의미의 안수를 행하였다. 칼빈만 그런 것이 아니고 그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그리하였다.

에베소에서 왜 방언이 나타났을까? 이미 행 2장의 예루살렘의 방언과 10장의 고넬료 가정의 방언으로 불신 유대인들이 버려지고 복음을 믿는 이방인들이 하나님 백성된다는 진리가 강하게 전파되었다. 그러면 행 19장의 에베소의 방언은 무슨 효과를 일으켰을까? 성경은 단지 에베소에서도 많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고만 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 19: 10)

적어도 불신앙적 유대인들이 많은 곳에서 방언이 나타났다는 사실과 에베소의 상황이 일치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신약 초기의 방언은 바벨탑 저주와 대비되는 종말론적 표적

신약 초기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방언 그 자체가 불신 유대인들이 영원히 버려진다는 심판으로 표적이었고, 반대로 복음을 믿는 이방인들이 영원히 하나님 백성된다는 새로운 진리를 선포하는 표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행 10장의 고넬료 가정에서 나타난 방언으로 베드로의 신학에 일어난 변화, 그리고 베드로가 그 사실을 최초의 기독교 회의(행 15장)에 보고함으로 혈통, 피부색과 무관하게 오직 믿음을 통해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시대가 개막되었다는 진리가 확증되었다는 사실이 그 증거이다.

동시에 신약의 초기의 방언은 하나님을 대적하였던 인류에게 하나님이 내리신 저주가 해결될 것임을 보여주는 표적이었다. 바벨탑을 건축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였던 우리 조상들이 더 죄악을 범하지 못하게 서로의 언어 소통이 불가능해지게 만들었던 하나님의 심판이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해소될 것임을 보여주는 표적이었다. 그 일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통해 이미 그 일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신약 초기의 방언은 종말론적 표적이다.

신약의 초기의 방언은 사람이 계획하거나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반드시 교회 앞에서 통역되어 모두가 함께 들어야 했다. 방언은 지금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사사로이 말하고 듣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방언을 풀고 또 스스로 해석하여 상담자에게 신탁을 주는 예언기도는 기독교 신앙과 아무 연관이 없다. 방언으로 개인 예언을 만들어 내는 행위는 성경이 말하는 방언과 전혀 맞지 않는 이단적인 일이다.

신약의 초기의 성령이 주시는 방언은 반드시 교회나 여러 사람들이 함께 들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경이롭고 신비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만들었다. 통역됨으로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말씀을 받는 은혜를 누릴 수 있었으므로 듣는 사람이 이해하는 모국으로 주시는 예언과 동일한 효과를 일으켰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방언과 방언통역으로 하나님의 말을 직접 듣게 되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가 알아야 중요한 사실이다. 요즘 이상한 방기(방언기도)들은 그 종류가 너무 다양하다. 마치 보더 콜리, 리트리버, 세퍼드,  시고르자브종 ... 등 여러 개들이 짖는 소리들 같다. 같은 방언을 녹음하여 통역한다는 사람들에게 해석을 부탁하면 천 가지 만 가지로 달라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부터 해석할 가치가 없는 소리현상이기 때문이다.

지금 누가 하나님이 주시는 방언을 말하면 그 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보내시는 의미가 있다. 개인에게 주시는 것이건, 교회에 주시는 것이건 ... 하나님이 주시는 그것은 계시이다. 그런 계시가 얼마나 위험하고 사악한지를 '다미선교회'가 보여주었다. 그들의 재림 계시는 모두 그 사람들의 방언을 통하여 왔었다. 방언은 그 정도로 위험한 것이고 사탄적이다. 

계속 방언기도를 즐기면서 자신의 방언 속에 아무 뜻이 없다고 하면 되는 것인가? 그렇게 주장하면 하나님이 아무 뜻없는 소리를 주절거리게 하시는 분으로 전락하여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어떤 이들은 자기 방언 속에 뜻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성경과 같이 중요하고 권위있는 내용이 아니하고 한다. 자기의 방언 계시는 개인적 참고의 수준이라고 약화시키면 되는 줄로 착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신사도 신학을 추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방언, 예언을 통해 사적이고 개인적인 계시가 오기는 하지만, 그것의 권위는 성경이 미치지 못하고 언제나 성경을 높이고 성경의 권위 아래서 해석하고 동체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심각한 일이다. 그것이 신사도 신학의 상대적 주관적 개인적 계시관이다. 그 이론 하에 신사도 예언자들이 지금 설치고 다닌다.


신앙과 성경

우리의 신앙은 반드시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으면 아무리 전통과 역사가 길어도 이단이고 사이비이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으나 전통과 역사가 길면 로마교회처름 더 골치 아프고 심각해진다.

왜 오직 성경에 근거하는 신앙이 되어야 하는가? 성경만이 우리의 하나님 지식, 하나님 이해, 신앙 실천을 위해 하나님이 기록하여 주신 유일한 책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어진 우리의 신앙을 위한 정확하고 무오한 책이다. 성경만이 우리에게 신앙을 가르치고 통제하는 권위있는 책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고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하나님의 완성된 계시에 단 한 줄, 한 자라도 추가하려는 시도는 결국 그 사람에게 저주를 온다.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서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계 22: 18)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와 상황을 다루시는 가운데 자신의 뜻과 계획과 목적을 계시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어 구약에서 예언하고 준비하였던 모든 일들이 성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목적이 최종적으로 계시되었고 완성되었다. 신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밝히신 뜻과 계획과 목적이 다 이루어졌음을 설명한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 1:1) 

그러므로 성경 66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새로운 말씀은 없다. 그러므로 방언은 오직 성경의 빛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신약 초기의 방언은 기도하는데 사용되는 하늘의 언어가 아니었다. 하나님 나라가 더 이상 유대인들에게 메이지 않고 오직 믿음을 따라 세워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표적이었다. 불신 유대인들은 영원히 버려지고 믿는 이방인들이 하나님 백성되는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하는 표적이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20-22절에도 같은 진리를 선명하게 밝혔다. 고린도교회의 방언은 사도행전의 방언과 달리 하늘의 언어였다는 이론은 거짓이다. 성경에 나오는 고린도교회는 이미 거짓 은사를 가르치는 이단사상에 상당히 지배되는 상태였다. 고리도후서 11:4, 13-15, 20절이 그 증거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다른 영’, ‘다른 예수’, ‘다른 복음’, ‘거짓 사도’, ‘궤휼의 역군’,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 ‘사단’, ‘광명의 천사’, ‘사단의 일군들’을 따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고전 14장의 알쏭달쏭한 내용들은 이단논쟁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방언으로 개인의 덕을 세우고(4절), 마음이 모르는 내용을 영으로 기도하는 것이 방언기도라는 내용(14절)은 바울의 신학이라기 보다 이단들의 주장에 대하여 논쟁하는 내용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바울의 다른 사람들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감사한다는 내용(18절)은 바울이 실제로 5개국어를 구사하였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되는 내용이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최근 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Ph.D)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고,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2021년 5월 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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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현 2021-08-13 18:29:41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전능자의,
구원자의, 뜻대로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세요! 교만하고, 말씀에서 벗어나면,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말씀을 따르는 길만이 살 길입니다.
겸손해지세요!!!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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