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박사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소감 2

 

지난 번에 김재성 교수의 신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1장의 앞 부분을 보았는데, 오늘 1장의 뒷 부분을 좀 더 보았다.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보고 놀랬다.

“하나님의 의로움은 그의 율법에 대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 기본 바탕에 있다. 그래서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평생 동안 지속해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키고자 살아간 것을 ‘능동적 순종’이라고 따로 구별했고,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고난과 저주를 받고 피 흘려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을 ‘수동적 순종’이라고 규정했다.”(54페이지)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인정받는 다는 것은 곧 구약의 율법을 완전하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의 율법에 완전하게 순종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내용이다.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믿음으로 전가 받는다는 교리를 세우고자 한다면,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에 대해 완벽한 순종을 하였음을 의존하지 않는다면 결코 불가능하다.”(75 페이지)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에 대해 완벽하게 순종하여 먼저 얻으신 칭의를 믿는 우리에게 전가하여 주셨다는 내용이다. 김재성 교수의 이런 주장은 기독교 신앙의 기둥에 도끼질을 가하는 것과 같다.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 자기에게 반역하여 저주받은 죽은 자기 백성을 다시 살리기 위해 필요한 의로움이 되시고자 친히 사람이 되신 성육신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육신 후 무슨 행동을 수행함으로서 우리에게 구원의 의를 주신 것이 아니다. 반역하여 죽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나님 자신이 아담과 우리의 의로움이 되시고 성육신하였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1)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렘 33:16)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눅 2:28-30)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이와 같이 성경은 성육신하신 창조주 하나님 그 자신이 우리의 구원의 의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김재성 교수의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지켜 의로움을 얻었다는 신학은 우리의 구원의 의가 하나님의 성육신 그 자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성육신은 그저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탁월하게 행동하여 의로움을 획득하는 길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으로 축소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심으로 의로움을 얻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심각한 거짓 신학이다. 성육신을 인정하면서도 성육신의 의미와 가치를 현저하게 모욕하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되시고자 하나님이 성육신했다는 신학은 아마도 적그리스도에게 영감받음으로 나오는 신학일 것이다. 이런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김재성 교수는 부득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이단이 될 수밖에 없다.

김재성 교수의 신학은 여러 사람들의 믿음을 교묘하게 성경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내용이다. 성경을 왜곡하는 거짓 이론에 기반하는 믿음을 우리는 뭐라고 부르는가? 이단이라고 한다. 이단들에게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이단들의 믿음이 떠 뜨겁다. 그러나 그들에게 구원이 없다. 구원을 주는 성경적 믿음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찬송하는 백성을 가지고자 흙으로 아담을 창조하셨다. 아담은 처음부터 하나님 백성으로 영생 안에서 창조되었다. 아담을 창조하신 후 하나님은 아담에게 자기의 인격으로 언약을 맺으셨다. 아담의 구원을 위해 아담과 하나님 양측의 조건과 의무 사항들을 규정하는 행위언약이라는 언약이 아니다.

이미 은혜 안에서 자기 백성으로 창조하였고 영생과 모든 은혜를 주신 아담을 영원히 자기 백성으로 삼고자, 그리고 스스로 영원히 아담의 하나님이 되시고자 맺은 언약이다.

그러므로 청교도들과 웨신서가 말하는 행위언약 개념에 우리는 더 이상 매이지 않아야 그리스도를 바로 믿을 수 있다. 이미 들어와서 자리를 잡아버린 행위언약 개념에 사로잡히면, 율법을 지키지 못해 하나님 백성 되지 못하고 영생도 얻지 못하고 죽은 아담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다 지켜서 구원의 자격(의로움)을 얻었다는 거짓된 능동순종 사상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개혁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교리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은 행위언약을 성취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 필자가 분석한 바로는 행위언약의 개념을 거부하는 일부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것을 알 수 있다.”(61 페이지)

김재성 교수는 아담이 하나님 백성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이 그에게 영생과 모든 은혜를 주시면서 영원히 자기를 섬기는 백성이 되기로 언약했음을 모른다. 또한 하나님께서도 아담의 영원한 하나님으로 남고자 자기의 인격을 걸고 아담과 언약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것을 모르면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지 못한다. 죽게 된 아담이 흙으로 돌아가게 두시고 다시 흙으로 다른 아담을 만드시지 않고 기어이 그 아담을 살려서 자기 백성이 되게 하시고자 스스로 대신 죽을 준비를 하셨는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

아담은 처음부터 하나님 백성이었고 영원히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이 되기로 언약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오직 자기의 신실함으로 이루신 것이다. 아담은 자기를 배신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자기의 인격을 걸고 맺은 언약을 성취하실 책임을 스스로 지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래서 성육신하시었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다. 우리를 살린 복음의 내력이 이러하다. 

김재성 교수가 여전히 해어 나오지 못하는 거짓 신학(행위언약)에 의하면 기독교는 참 우스운 종교이다. 청교도들이 고안하여 웨신서에도 들어간 행위언약을 믿는 모든 분들은 다음의 질문에 답해 보라!

1. 자기 백성도 아니고 영생도 없는 아담이 영생을 줄 수 있는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고 하나님이 그를 특별히 저주하셨다는 것이 이치에 맞는가? 그냥 버리고 흙으로 다른 아담을 만드셨어야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닌가?

2. 아담이 영생을 얻고 하나님 백성이 되기 위해 율법을 지켰어야 했다고 하는데, 그 율법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성경 어디에 그것이 나오는가?

3. 청교도들은 아담이 지켰어야 할 율법이 아담의 마음에 기록된 상태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나중에 시내산에서 돌판에 기록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고 가르쳤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고 하고,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고 ... 이런 십계명의 내용이 에덴동산의 아담의 상황과 맞다고 생각하는가?

4. 성경은 율법이 있기 전에 이미 인간의 죄가 있었다고 하고 (롬 5:13), 율법이 오기 400년 전에 아브라함은 이미 율법과 무관하게 믿음으로 구원의 의를 얻었다고 한다 (갈 3:17). 구원의 의를 얻는 것과 율법은 관련이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김재성 교수와 청교도주의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영생과 율법을 직결시키는 신학을 주장하는 것인가?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계시를 받았는가?

5. 성경은 오직 죄를 지적하고 죄 문제를 해결하실 그리스도가 오시는 길을 예비하기 위해 율법이 먼저 왔다고 한다. 다음의 말씀들을 보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갈 3:21)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갈 3:11)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히 7:19)

성경은 이와 같이 율법으로 의를 얻는 길이 전무하다고 하는데, 왜 김재성 교수와 청교도주의자들은 우리가 못지키는 율법을 그리스도가 대신 완벽하게 지켜서 구원의 의를 얻었다고 하는가? 우리가 모르는 다른 새로운 계시가 또 있는가?

6.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서 의롭답고 인정을 받았다고 주장하시는데, 모세의 어떤 율법들을 그리스도가 얼마나 많이 지켰습니까? 어디에서 그런 고급 정보들을 알 수 있나요?

7.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움을 얻는 길이 없다고 가르치는 칼빈, 박윤선, 서철원 등은 모두 거짓 신학자들인가?

 

“그래서 사도행전 13장에 있는 바울의 설교에 이런 말이 있다. ‘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 여기에 보면 죄의 용서를 말한 후에, 그에 대한 해석으로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말을 한다.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을 분명히 죄의 사면으로 해석하며, 의롭다함을 율법의 행위에서 분리시키고 있다.”(기독교강요, 3.11.3)

 

“후대에 들어온 율법은 성질상 은혜 언약과 고체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다만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다. 여기서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함은 인생들로 하여금 그 범죄한 것이 많음을 알도록 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다는 뜻이다(롬 4:15, 5:20). 그러면 율법의 목적은 새로운 구원 방법을 제시함이 아니고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함에만 있다.”(계시의존사색, 126)
 

“율법의 기능은 죄를 알게 해주는 것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 준다. 율법은 이러이러한 것을 행하면 범죄하고 지적하고 교훈한다. 그러므로 내 죄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것인지를 율법이 알려준다. 내 양심에 가책을 일으켜서 죄를 알도록 하고,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게 한다 ... 율법은 살리고 구원하는 기능은 없고 정죄하고 죽이는 기능을 갖는다. 사람은 그 죄성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와 명령을 지킬 수가 없다. 그련데 율법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고 저주한다. 이 정죄와 저주가 어떠한 것임을 율법은 밝힌다.”(하교리 해설, 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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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