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청교도 준비론의 율법 사상과 칼빈의 율법의 제3용도가 같은 것인가요? 청교도 준비론과 청교도 회심준비론은 다른 것인가요? 그 동안 청교도 목회를 했던 사람들이 이제 비성경적인 내용들이 드러나고 엄중한 이단시비를 받게되니 자신들은 단지 칼빈의 율법의 제3용도를 가르치는 목회했을뿐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다른지 설명 해 주십시오.

답변>
청교도 준비론이나 청교도 회심준비론이나 핵심은 동일합니다. 둘다 율법의 기능에서 기독교를 심각하게 왜곡합니다. 그러나 칼빈의 율법의 제3용도는 그것들과 전적으로 다릅니다. 칼빈이 말하는 율법의 제3용도는 이미 구원 받고 성령을 모시고 사는 성도의 신앙과 율법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청교도 준비론의 율법의 기능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여전히 영적으로 죽은 상태의 영혼과 율법의 관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청교도 회심준비론의 율법

최근 우리 나라에 청교도 준비론을 소개하는데 크게 기여한 사람들은 <마르투스 선교회>에 연루된 사람들입니다. 이 선교회는 예수안에 하나교회(정성우 목사)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이 선교회의 설립 목적과 취지를 실천하기 위해 <마르투스 출판사>(대표 이동훈)가 설립되었는데, 이곳에서 출판된 조엘 비키의 청교도 회심준비론 서적 <은혜로 말미암는 준비>의 일부 내용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음은 마르투스 선교회의 실질적 설립자 정성우 목사가 번역되어 출판된 조엘 비키의 책 서문의 일부내용입니다.  
 

 

“청교도들은 중생 전에 성령께서 자연인들에게 그들의 영혼을 준비시키시는 원리로 준비론을 말한다.”(26 페이지)

청교도들의 준비론(회심준비론)은 사람의 영혼이 구원 받기 전에 구원을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구원 받지 못한 영혼을 준비시킨다고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성령이 구원 받도록 택하여진 사람의 여건과 환경을 섭리 가운데 준비하는 것, 즉 그 사람이 복음을 접하기 좋은 상황을 만나게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성령이 택자의 영혼이 구원 받도록 준비시킨다고 하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청교도 회심준비론주의자들은 성령이 그런 정도가 아닌 더욱 구체적인 회심준비를 하신다고 합니다. 청교도주의자들이 성령께서 구원 받을 사람의 영혼을 어떻게 준비를 시킨다고 주장하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준비론은 성도들이 죄를 미워하며 죄를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가르치며 인도할 수 있다.”(28 페이지)

이들은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죽은 영혼이 자기의 죄를 미워하게 만드는 것이 성령의 회심준비라고 주장합니다. 성령이 무슨 원리로 죽은 상태의 영혼이 자기의 죄를 미워하는 회심준비를 하게 하신다는 것일까요? 놀랍게도 율법이 선포됨으로 성령이 죽은 상태의 영혼을 회심 준비되게 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율법적 원리는 통해 죄의 각성으로 인도하여 자신의 비참함을 볼 수 있게 하고, 중생의 역사 안에서 복음적 겸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아름다움을 보면서 죄의 수치를 더욱 알게 되기 때문이다.”(28페이지)

죄를 지적하는 율법을 선포함으로 성령이 구원 받지 못한 상태의 사람의 영혼을 각성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복음 앞에서 스스로 겸비해지게 만들고, 또한 구원을 주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공로를 사모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이것이 청교도주의자들이 말하는 죽은 영혼의 회심준비입니다. 그래서 청교도주의자들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먼저 전하지 말고 죄에 대한 율법의 저주를 먼저 선포해야 한다는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구원을 위해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가르침이 전혀 없습니다. 성경은 택하심 받은 죄인에게 성령이 복음이 전하여 주시고, 또한 성령이 택하신 죄인이 복음을 믿도록 조명하시고 설득하시어 기어이 그리스도를 믿게 하십니다. 이것을 불가항력적 은혜, 또는 효과적인 부르심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은혜로 죄인이 그리스도는 믿는 순간 비로소 그 영혼이 중생되고, 또한 동시에 믿음, 죄에 대한 자각, 회개, 성화의 여정이 시작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중생되기 전에 성령의 역사이건 악령의 역사이건 간에 사람이 자기의 죄를 미워하고 지옥을 두려워하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공로(능동-수종순종)을 사모하게 된다는 것은 사람이 만든 고상한 이론일 뿐입니다.  

그러나 청교도 회심준비론주의자들은 중생되기 전의 죽은 영혼에게 율법을 선포하면 성령이 영혼을 각성시켜서 자기의 죄를 미워하고, 지옥을 두려워하고, 구원받기 위해 꼭 필요한 그리스도의 공로를 사모하게 만들어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가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결국 사람이 성령의 도움 하에 자기의 구원을 사모하여야 하나님이 구원을 주신다는 이론입니다. 구원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나 구원의 키를 작동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라는 이론입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원래 인간의 전적타락을 부정하는 펠라기우스 신학에 기반하는 로마교회의 구원론입니다. 그리고 동일한 신학에 기반하는 알미니안들과 웨슬리안들의 신앙입니다. 단지 용어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로마교회는 하나님이 모든 죽은 영혼에게 공히 '초기 도움의 은총'을 주시면 그 중의 일부가 반응하여 구원의 길을 택한다고 합니다. 웨슬리안들도 하나님이 죽은 영혼들에게 '선행은혜'를 주시면 일부가 반응하여 스스로 자기 구원의 길을 찾아간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신학들은 모두 전적타락을 부정하는 비성경적인 신학들입니다. 이런 신학의 구원론이 이단사상으로 규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런 구원론이 정통 칼빈주의-개혁신학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고 이견이 없습니다. 그런데 청교도주의 목회자들은 이런 신학을 최고의 개혁신학이라고 속이고 있습니다. "청교도 개혁주의"라는 그들의 슬로건이 바로 이런 속임수입니다.
 

 

칼빈의 율법의 제3용도

그러면 칼빈의 율법의 제3용도는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칼빈은 율법의 제3용도 개념을 기독교강요 2권 7장 12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12. 믿는 자라 할지라도 율법이 필요하다(소제목). 셋째 용도는 가장 중요한 것이며, 율법의 본래의 목적에 더욱 가까운 것이다. 이 용도는 하나님의 영이 이미 그 영혼 속에 사시며 주관하시는 신자들 사이에서 발견된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율법이 기록되고 새겨져 있지만 (렘 31:33; 히 10:16), 다시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영의 감동과 격려로 하나님께 복종하겠다는 열심이 있지만, 역시 두 가지 방면에서 율법의 혜택을 입는다.”(기독교강요 2.7.12)

칼빈의 율법의 제3용도 개념은 이미 구원 받고 성령을 받아 모시고 사는 신자와 율법에 대한 내용입니다. 청교도주의자들의 구원 받지 못한 영혼의 회심준비를 만들어 내는 그릇된 율법사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칼빈이 말하는 율법의 제3용도는 구원 받은 신자가 얼마나 잘 성화의 길을 가고 있는지, 또는 얼마나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여전히 율법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칼빈의 이 부분에 대해서 개혁신학자들 사이에 굉장한 논란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칼빈의 신학에 약점이 하나가 있었다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구원 받은 신약 성도의 율법준수 삶은 구약 성도들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를 적용하는 성령의 사역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됨으로 신약의 성도가 율법의 겉과 속의 정신을 성취하는 성화의 삶이 이루어집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권세를 동반하는 성령의 지배하심과 인도하심으로 그리스도들이 죄를 즐거워하는 '옛사람'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의와 거룩을 사모하는 '새사람'으로 살게됨니다. 그래서 육신과 이성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속으로부터 변화되어 나타는 삶의 변화로 인해 율법의 요구과 정신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8: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2)

칼빈이 뭐라고 가르쳤는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어찌보면 칼빈이 신약 성도의 성화와 율법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찌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만일 구원 받은 신약 백성이 여전히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율법을 지켜 성화를 이루어가야 한다고 가르쳤다면, 그런 구약 성도의 방식으로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면, 그것은 칼빈의 종교개혁 완성자 답지 못한 모습입니다. 그것은 신약 성도의 믿음의 원리와 법을 왜곡한 것입니다.
 
 

 

그래서 서철원 박사님이 그 부분을 칼빈의 부족한 부분이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칼빈의 약점을 지적한다는 것은 사실 여부를 떠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에게 들어서 있는 칼빈에 대한 확고부동한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청교도들과 바빙크 같은 저명한 신학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칼빈이 구원 받은 성도와 율법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했던지 간에 청교도 회심준비론자들이 그의 율법의 제3용도 개념을 악용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회심준비론의 율법은 죽은 영혼의 회심을 준비시키는 율법이고, 칼빈의 제3용도로서의 율법은 중생하여 성령을 모시고 사는 성도의 성화와 관련된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전혀 다른 차원의 내용입니다. 

혹시 칼빈이 다른 곳에서 구원 받기 이전의 죽은 영혼들에게 율법을 전하여 죄를 미워하는 회심준비를 추구해야 마땅하다고 가르쳤다면, 혹시 칼빈이 율법이 그런 용도로 주어졌다고 가르쳤다면, 그것은 신약의 사도들의 복음을 정면으로 대적한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지 않으나, 만일 칼빈이라도 신약의 사도들의 복음을 훼손하고 대적했다면 이단입니다. 신약의 사도들의 복음은 오직 성령을 의지하여 죽은 영혼에게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하는 복음입니다. 신약의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보다 율법의 저주를 먼저 전하는 것을 중시했다는 증거를 성경에서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행 8:4)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행 8:2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행 8:35)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행 8:40)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행 10:36)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행 14:7)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행 14:21)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 16:10)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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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