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박사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소감 1

 

주문한 김재성 박사의 신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존경하는 교수님의 따끈따끈한 작품을 열었다. 먼저 1장을 단숨에 읽었다.

“칭의교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이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우리의 것으로 전가 받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순종에 근거한다.”(45 페이지)

김 교수님의 참으로 정확한 말씀에 경의를 표한다. 성육신으로부터 십자가의 죽으심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하셨다. 성부의 뜻대로 창조주이신 성자가 피조물이 되신 순종, 지상에서 사람으로 사시는 동안 내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갚으셨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부터 죽으심에 이르는 모든 과정의 순종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아직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에 자기에게 찾아온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이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눅 7:48)

그리스도의 평생의 순종은 우리의 죗값을 하나님께 배상하시는 구속사역이었다. 항간에 그리스도가 천국에 들어갈 가격, 의로움을 얻기 위해서 순종했다고 하는 설이 있다. 혹시 존경하는 김재성 박사께서도 그런 낭설을 앞장서 주장하시는 분일까? 아닐 것이다.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죗값을 배상하는 제물은 여러 모양으로 보이나,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드리신 순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자기의 피와 생명을 우리 죗값으로 드리심이 최고의 순종이었고 순종의 완성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죗값으로 받으신 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순종, 그리스도가 자기의 흠 없는 몸과 영혼과 피를 제물로 바치기까지 하신 순종에 완전히 만족하셨다.

그리스도의 순종의 사역을 받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여기시기로 작정하셨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죄가 없었던 것으로 간주하시니, 우리와 그리스도가 연합되었다. 죄용서 받은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로 연합시키셨다. 그리스도와 연합되니 죄과 무관하게 의로운 분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본래의 의가 우리의 의로움으로 간주되었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얻은 칭의이다. 우리는 실질적 칭의 개념을 단호히 거부한다. 우리는 전혀 의롭다함을 얻을 자격이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시종일관 순종하심이 우리에게 의로움을 주었다. 그리스도의 순종에 만족하신 하나님이 우리 죄인들에 대한 진노를 푸셨다.

김재성 박사의 여기까지의 그리스도의 순종을 강조하는 칭의론은 너무도 성경적이다. 세상 어디에서 이와 같이 아름다운 신학을 또 볼 수 있을까? 한국에 이런 교수님이 계시다는 것은 한국의 모든 교회들에게 복이로다! 한국민은 참으로 복을 받은 민족이로다!

“그리스도의 의로움이란 그의 온전하신 순종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스도 온전한 순종을 언급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성취하신 의로움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김재성 박사)

헉! 이건 머선 사운드이지?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순종하심이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의 근거라고 김재성 박사는 말했다. 이런 괴이한 사운드는 어디서 유래하였까? 하나님의 성육신의 목적을 흔드는 괴이한 사운드이다.

지상에 누구도 하나님께 만족이 될 의로움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사람의 죗값을 대신 지불한 의로움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회복시키려고 큰 일을 작정하셨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의로움이 되시려고 성육신을 작정하셨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의가 되시려고 일어난 사건이 성육신이다.

성경의 핵심을 해치는 괴이한 소리를 김재성 박사가 말했다. 김재성 박사“그리스도의 의로움이란 그의 온전하신 순종에서 나오는 것이다”라는 주장은 기독교의 기둥을 무너뜨리는 도끼질이다. 하나님의 성육신의 이유와 목적을 부정하는 이단사상이다. 아하! 이를 어쩌면 좋을까?

김재성 박사의 주장은 그리스도가 순종하지 않았으면 의로운 분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학에서 순종의 척도는 율법이다. 그리스도가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실천하시어 의로운 분으로 인정되었다는 것이 김재성 박사의 주장이다. 김재성 박사가 단호히 지지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하게 실천하시어 천국에 들어갈 ‘자격’, 의로움을 얻었다는 주장이다.

그리스도의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나왔다는 김재성 박사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석가 그리스도’로 변하게 한다. 석가가 선을 행함으로 구원의 진리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갔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으로 천국에 들어갈 자격, 의로움을 얻었다는 것이 김재성 박사의 핵심 사상이다.

아하! 참으로 큰일났다. 김재성 박사에게 앞으로 밀어닥칠 이단시비 고난을 어찌할 것인가? 창조주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의로움이 되시기 위해 일어난 성육신을 어쩌자고 건드린단 말인가? 김재성 박사가 성육신의 목적을 훼방했으니, 살길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인생이 무너지는 충격을 왜 말년에 자초하시는가? 그리스도의 (율법에 대한) 순종하심이 그리스도의 의로움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김재성 박사의 주장은 성경을 향한 곡괭이 질이다.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 자체가 우리의 의로움이 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6)

죄에 빠져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된 원인이 하나님이 친히 죄악된 백성들의 의가 되시었기 때문이라고, 그것을 위해 하나님의 성육신이 일어난다고 구약 성경은 예언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눅 2:28-30)

시므온은 아직 그리스도가 걷지도 못하였을 때, 율법에 대해 그 어떤 순종도 하지 않았을 때, 단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처음 보았을 때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라며 찬송했다.

김재성 박사의 논리와 주장에 관하여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성경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신학의 근본은 성경이다. 하나님 연구의 근본 원리는 성경이다. 모든 하나님 지식의 원천은 성경이다. 구원에 관한 모든 지식과 근거는 성경이다. 무슨 신학이건 성경의 뒷받침이 없으면 쓰레기이다.

그리스도가 율법에 순종하여 의로움을 얻었다는 김재성 박사의 주장에 성경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주야장창 사람의 이름들만 나온다.

리챠드 멀러 교수가 신학사전에서 간략하게 정리한 것을 인용한다”(46 페이지)

개혁신학자들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전 생애 동안에 율법을 지켜낸 순종의 내용들을 두 가지 차원으로 구별했다.”(47 페이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칭의론에 근거하여, 워필드 박사는 이런 ‘능동적 순종’을 통해서 성취된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47 페이지)

“필자는 이런 신학적인 용어들은 칭의론을 확고히 정립한 루터가 처음 사용했음을 제시하고자 한다.”(49 페이지)

데오도르 베자를 필두로 하여 올라누스를 거쳐서 볼레이우스, 제네바의 하이덱거와 프랑스의 뛰르땡 등은 두 가지 순종개냄을 적극 옹호하였다.”(50 페이지)

“스위스 바젤의 개혁주의 정통신학자 볼레비우스가 정교한 논지로 두 가지 순종을 강조하였다.”(50 페이지)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 토마스 굿윈, 스테판 차르녹, 아이작 암브로스, 존 번역, 빈헬무스 브라켈, 그리고 웨스스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동일한 내용을 강조했다.”(51 페이지)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일부가 능동순종을 주장했으나 전체 의견으로 수용되지 못했다.

“뉴잉글랜드 청교도들과 18세기 초반에 미국에 세워진 하버드와 예일 대학교에서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프린스턴 신학교에서는 아치발드 알렉산더 등이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두 가지 순종을 가르쳤다.”(51 페이지)

“네덜란드 개혁주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와 그의 신학을 영어로 집약시킨 루이스 벌코프가 상세하게 설명했으며, 벌카워도 역시 두 가지 순종을 가르쳤다.”(51 페이지)

생각해 보자! 혹 성경과 다른 구원론을 가르친 사람들이 지금까지 10억이 넘었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가 변하는가? 그러면 유럽의 인구 99%가 믿었던 로마교회 이단사상으로부터 돌아서게 만드는 종교개혁이 어찌 일어났을까? 성경은 한 줄도 인용하지 않고 왜 사람들의 이름들을 이리도 난잡하게 열거하는 것인가? 참으로 난잡한 신학이다. 그런다고 성경을 이기는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심과 자기 피와 목숨으로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심으로 일어난 죄용서 때문에 칭의와 구원이 일어났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가 율법에 순종하심에서 우리의 의로움이 유래했다고 성경을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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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