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8 06:59 (목)
능동순종 비판을 백스터,웨슬리,새관점과 엮는 것은 신학 양심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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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순종 비판을 백스터,웨슬리,새관점과 엮는 것은 신학 양심의 문제
  • 정이철
  • 승인 2021.04.2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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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능동순종 사상은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거짓 신학이다. 그러나 한국과 세계의 개혁신학자들 다수가 이 신학을 당연시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능동순종 개념의 비성경적인 내용을 쉬지 않고 주장하고 외쳤다.

필자의 외침으로 한국의 장로교회 신학자들이 능동순종을 지지하는 다수와 능동순종을 거부하는 소수로 분열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제 기뻐하시고 또 기뻐하시게 되었다. 왜냐하면 진리가 회복되기 위해 필연적으로 먼저 논쟁과 파당이 생겨야 하기 때문이다.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고전 11:19)

필자는 그 동안 능동순종 개념이 왜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났는지 설명하는 일에 주력했다. 그런데 능동순종 개념을 물리치기 위해 해야 할 또 한 가지 일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그것은 능동순종 거짓 신학을 지지하지 학자들이 동원하는 그릇된 논리에 대응하는 것이다.

“능동순종 신학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개혁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행위구원자에 가깝다. 엄격한 개혁신학자들 대부분이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개념을 지지한다!”

최근에도 신학자 두 사람이 이런 논리를 동원하였다. 한 사람은 필자의 신대원 동기인 유창형 교수(칼빈대, 교회사)이고 또 한 사람은 이승구 교수(합신, 조직신학)이다.

이승구 교수는 “최근에는 그리스도의 적극적 순종을 부인하는 것이 대세인가?”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신칭의를 부정하고 행위구원론 요소를 견지하는 새관점 학파 등이 능동순종 신학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성경적 신학을 가지는 것과 능동순종 사상을 수용 자세는 서로 일치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유창형 교수는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의 전가에 대한 논쟁”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능동순종을 부정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을 나열하여 비교했는데, 행위구원론자인 리차드 백스터와 존 웨슬리와 함께 철저한 개혁신학자인 서철원 박사님과 필자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였다. 
 

유창형 교수의 논문 목차
유창형 교수의 논문 목차

 

필자는 유창형 교수의 이러한 전개에 대해 매우 불만이다. 리차드 백스는 대표적이 청교도 이단이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한 구원이 즉시 확정된다는 성경의 진리를 부정한 심각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존 웨슬리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매우 다양한데, 다수의 신학자들이 웨슬리에게 확고부동한 이신칭의 개념이 없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청교도 백스터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를 얻는다는 사실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구원이 확정된다고 보지 않았단 것이 문제이다.

백스터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는 '1차 칭의'이고 이후 그 사람의 회개와 순종의 정도에 의해 완전한 구원이 확정되기도 하고 구원이 소실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이 이후 어느 정도 순종하고 회개했는지를 보고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칭의를 심판하시는 것을 '2차 칭의'라고 했다. 

종교개혁자들이 선포한 이신칭의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순간 완전한 구원이 확정된다는 것이다. 이신칭의는 ‘개 같은 사람이나 소 같은 사람’이나 오직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영원한 구원이 확정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삶과 아무 상관이 없다. 이신칭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단지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구원이 영원히 결정된다는 것은 너무 비합리적입니다.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불신자보다 못한 사람들인데, 예수 믿었다는 이유로 그들이 천국에 간다면, 천국이 시궁창되었겠네요!”

이런 질문은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 그리고 역시 말미암는 신자의 삶의 변화, 즉 성화의 원리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누구를 구원하실 때에 그때까지 그 사람의 삶과 성품과 업적은 보지 않으신다. 그것에 대해 성경을 이렇게 선포한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5)

왜 이신칭의가 절대적 진리인가? 모든 사람은 아담의 죄에 법적으로 실질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사람에게 스스로 자격을 준비하여 구원을 얻으라 하면 단 한 사람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죄 없으신 그리스도에게 지우시고 대신 저주받게 하셨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였다.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 성령으로 잉태되신 죄 없으신 의로운 한 사람과 성자 하나님의 위격(인격)이 연합되신 것이 성육신이다.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가 받을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구원 주시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하시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구원을 주신다. 모든 것이 은혜이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순간 죄의 전가와 의의 전가가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에게 전가하셨고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우리에게 전가하심으로 구원이 일어났다.

죄의 전가와 의의 전가는 물리적 개념이 전혀 아니다. 우리의 죄가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에게로 실제로 이동되었다면 그리스도는 죄를 받아 죽은 죄인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죄가 실제로 이동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다만 우리의 죄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지시고, 여전히 완전한 의인으로 죽으셨다.

믿는 자에게 칭의를 주는 의의 전가도 물리적 개념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이 우리에게 물리적으로 이동되었다면, 그 순간 우리는 실질적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랬다면 이후 우리의 삶에서 죄와의 투쟁을 통해 이루어가는 성화도 필요없다. 의의 전가가 물리적 방식으로 일어났다면 나를 비롯하여 모든 구원 받은 사람들이 천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의 본질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신 그리스도가 믿음과 성령으로 우리를 자기에게로 연합시키셨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이 우리의 것으로 인정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를 마치 그리스도처럼 의로운 사람으로 간주하여 주신 것이다. 성경과 정통 신학의 전가와 칭의 개념은 이와 같은 법정적 개념이다. 사람이 실제로 의로워져서 의롭다고 인정되는 실질적 칭의, 또는 그리스도의 의로우신 본질이 우리에게 주입된다고 주장하는 본질적 칭의가 아니다. 

그러면 구원 받은 사람이 실제 의인으로 변해가는 성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구원과 함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적용하고자 임재하신 성령의 역사로 실제로 의로운 사람으로 변해가는 걸음마가 시작한다. 법적으로 의롭다함을 먼저 받아 구원과 성령의 내주가 시작된다. 동시에 일평생의 과정으로서 실제로 의로운 사람으로 다듬어지는 성화가 성령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화가 전혀 없는 사람이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니다. 

이신칭의는 성경의 절대진리이다. 이것을 부정하면 누구나 이단이다. 또한 이신칭의는 반드시 법정적 칭의주의에 근거한다.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거짓 신학을 부정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신칭의-법정적 칭의주이자들이다. 사도 바울과 다른 모든 사도들도 이신칭의-법정적 칭의주의자들이었다. 서철원 박사와 부족한 필자도 이신칭의-법정적 칭의주의자이다.

이신칭의를 믿는다고 하지만 사람이 스스로 실제로 의로워지고 거룩해져야 구원이 영원히 확정된다는 것은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으로서 리차드 백스터와 존 웨슬리, 그리고 바울의 구원론을 재해석하여 주장하는 톰 라이트 같은 새관점 학파이다. 그들은 이신칭의-실질적 칭의주의자들이다. 예수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고, 구원의 완성은 그 개인의 순종과 회개의 정도를 따라 하나님이 역사의 최후의 순간에 다시 최종적으로 결정한다고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경이 저주하는 이단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죄 없는 사람이 되시어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시고, 또한 은혜를 따라 믿게 하심으로 주신 위대한 구원을 폄훼하는 이단이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고, 성화도 역시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의 열매라는 진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리차드 백스터와 존 웨슬리, 그리고 현대의 새관점 학파들이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을 거부하는 근본 이유는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로운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피로 얻어진 구원을 폄훼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서철원 박사와 필자는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시어 우리의 죗값을 완전하게 지불하셨고, 믿음과 성령 안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연합되게 하셨음을 중시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곧 우리의 의로움인 것처럼 여겨주심으로 얻는 칭의와 구원을 확실하게 붙잡는다. 

신대원 동기 유창형 교수가 단지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개념을 거부한다는 표면적인 이유로 리차드 백스터, 존 웨슬리 같은 이신칭의-실질적 칭의주의자들과 사도 바울과 같이 이신칭의-법정적 칭의주의자인 서철원 박사와 필자를 함께 묶었다는 사실에 대해 아직도 화가 난다. 


맺는 말

능동순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이다. 첫째, 백스터, 웨슬리, 새관점주의자들과 같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가 영원하고 확정적인 칭의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믿고 바르게 행해야 완전한 구원을 얻는다는 행위구원론자들이므로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부정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얻은 의로움을 전가하여 영생하게 한다는 능동순종 교리를 부정한다. 

둘째, 영생의 의가 되시는 분은 오직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어 전가했다는 주장은 성육신의 목적과 율법의 용도에도 맞지 않는 거짓 신학이라고 믿는 서철원 박사와 필자 같은 사람들이다. 그리스도 그 자신이 우리의 의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단지 능동순종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백스터, 웨슬리, 새관점주의자들과 서철원 박사님과 필자를 한 그룹으로 묶어서 비교하는 것은 결코 바르지 않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최근 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Ph.D)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고,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2021년 5월 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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