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교회사 속에 나타난 능동적 순종 교리’(우병훈)을 읽고

우병훈 교수(고신, 신학과)
우병훈 교수(고신, 신학과)

 

우병훈(고신, 조직신학)은 ‘교회사 속에 나타난 능동적 순종 교리’라는 제목의 자신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성경적 근거가 분명하고,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을 비롯한 교회사의 유수한 신학자들이 인정했으며, 현대 개혁신학자들 대다수에 의해서지지 받는 소중한 교리이다."(우병훈)

사실 우병훈은 자신의 논문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의 성경적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그것은 불가능하므로 아무도 그러한 일을 할 수 없다. 능동순종 교리의 성경적 근거가 분명하다는 우병훈의 주장은 사기이다. 그것은 다음에 살펴보기로 하자.

오늘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칭의를 얻은 아담 타락 이후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고,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칭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우병훈의 주장이 근본적으로 신학적 거짓임을 설명하는데 주력하기로 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는 단순히 그리스도가 순종을 했으니 안 했으니를 논의하는 내용이 아니다. 능동순종 교리를 반대하는 나 자신을 비롯하여 누구도 그리스도가 율법의 정신이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 것으로 논쟁을 삼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아담의 타락 이후 최초로 율법적 칭의를 얻은 사람이 되었고, 그것이 믿는 사람들에게 전가되어 천국 영생을 누릴 자격이 주어져 천국에 가게 되었다는 것이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논쟁의 본질이다. 즉, 우리의 영생의 의가 율법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죄없고 의로운 사람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본래의 의로부터 비롯되었는가 하는 것이 논쟁의 본질이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얻은 율법적 칭의로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었다고 하면, 창조주 하나님의 성육신의 목적이 이상해진다. 결국 율법지키는 인간이 필요하여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율법을 지키신 것으로 귀결된다. 그런 내용의 신학은 이단적인 신학이다. 성육신은 하나님 자신이 친히 우리의 의가 되시려고 일어난 일이지, 율법을 잘 지킬 특수한 인간이 필요하여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성경은 하나님의 성육신자 그리스도는 친히 우리의 의로움이 되시려고 성육신하신 하나님이라고 한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눅 2:28-30)

선지자 시므온은 아직 걷지도 못하신 어린 아기 그리스도를 보았을 때 성령의 감동으로 그 분이 우리의 구원, 즉 우리의 의로움이 되시려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사람이심을 알고 찬송했다. 혹시 시므온이 그때 장차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표하여 모세의 계명을 모두 완전하게 지키실 것을 전제하고 한 말이겠는가?

성경에서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시어 아담 이후 천국 생활에 합당한 율법적 칭의를 얻는 최초의 사람이 되신다는 가르침을 찾을 수 있을까? 블가능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든 이론은 성경에 있지 않고, 지난 시대의 신학의 트랜드에 근거한다. 그러나 신학은 단지 성경의 시녀이다. 성경이 신학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신학을 다스리는 최종 권세자이다. 그러므로 이제 신학으로 성경을 이기려는 부질없는 짓을 그만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능동순종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는 무슨 의미일까?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는 죄인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은 것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그리스도의 대리적 고난과 십자자를 지심으로 죄용서를 받고 그리스도의 대리적 율법준수로 천국에 갈수 있는 적극적 칭의를 얻었다는 것이 저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 둘은 장작이 쪼개지듯이 갈라지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함께 붙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이론이 때로는 '그리스도의 적극적 순종'과 '소극적 순종'이라고도 불리운다. 이승구는 자신의 능동순종 지지 논문에서 그리스도의 적극적 순종이라는 말만 사용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표하여 칭의를 얻으시기 위해 적극적으로 율법에 순종했다고 하여 그리스도의 적극적 순종이라고 한다. 반대로 우리의 죄용서를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당하셨다고 하여 십자가의 죽으심을 소극적 순종이라고 한다. 이런 용어 그 자체부터 사변적이다. 

무슨 말로 설명하고 주장할지라도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표하여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칭의를 얻었다는 거짓 교리를 지지하고 옹호하면 이단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불행을 피할 수 없다. 이전의 많은 저명한 신학자들이 그것을 주장했을지라도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신 방식, 즉 성경과 기독교의 핵심을 건드리고 변경하면 누구든지 이단이다.

성경이 다음과 같이 율법을 지켜서 영생에 필요한 의로움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명확하게 가르친다. 성경은 율법이 단지 죄를 지적하고 그리스도를 믿게 하려고 왔다고 가르친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롬 5:20)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갈 3:21)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갈 3:11)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히 7:19)

성경은 이처럼 분명하게 율법을 통해 영생의 자격, 즉 율법적 칭의를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병훈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칭의를 얻었다고 한다. 성경은 율법의 기능과 목적이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죄인들이 자기의 죄를 알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하려는 것일 뿐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우병훈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영생을 위해 필요한 칭의를 얻었다는 성경적 근거가 명확하다고 주장한다.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7)』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죄인들을 구원하신 방식을 보이는 특별계시로서 율법을 보냈다고 한다. 성경은 율법이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실 방식을 미리 계시하는 그림자였을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병훈은 구원의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자기의 전령이며 그림자에 불과한 율법에 완전하게 순종하여 영생을 위한 칭의를 얻었다고 한다. 성경을 믿어야 하나? 우병훈의 지시 사항을 믿어야 하나?

대체 우병훈의 이런 신학적 망발이 또 있을까? 실상이 이러하므로 능동순종 주장은 이단사상이 아닐 수 없다. 필자의 이런 주장을 혹시라도 그리스도가 율법을 무시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왜곡하고 오도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지키셨는데,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키신 방식은 결코 우리 죄인들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모든 정신과 지시 사항들이 실현된 인격으로 오셨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그리스도는 단 1초도 간음하지 않으셨는데, 우리처럼 간음의 욕구와 투쟁하여 이기심으로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신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간음 죄와 전혀 연관없는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무죄하고 의로우신 사람으로 오셨으므로 죄인으로 태어난 우리처럼 간음금지 율법을 지키시기 위해 전심으로 간음의 욕구와 투쟁하여 이기신 것이 아니다. 굳이 간음 금지 율법을 그리스도와 연관시킨다면, 처음부터 간음과 무관하게 창조된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무죄하고 의로운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간음 금지 율법의 정죄를 받는 우리 죄인들을 대신하여 저주받고 죽으심으로 여전히 간음 금지 율법의 정죄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해방시켰다고 설명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율법적 칭의를 얻었고, 그것이 전가되어 믿는 자들에게 영생이 허락되었다는 이단 사상은 용납될 수 없다. 그래서 칼빈, 박윤선, 서철원 박사 등의 개혁신학자들은 율법을 지켜서 영생을 위한 칭의를 얻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분명하게 못 박았다.
 

"율법은 거울과 같다.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무력함과, 무력에서 생기는 죄악을, 그리고 결국은 그 두 가지에서 오는 저주를 본다. 거울이 우리 얼굴에 있는 오점들을 보여 주는 것과 똑같다. 왜냐하면 의를 따라가는 능력이 없을 때에, 인간은 죄의 수렁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죄악의 뒤를 곧 따라오는 것이 저주다. 그러므로 율법이 우리를 유죄로 인정하는 범행이 중대한 것일수록 우리의 책임을 묻는 심판도 더욱 엄중하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고 한 사도의 발언은 여기 해당한다"(기독교강요 2.7.7)

 

율법은 본래 인간에게 의를 주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 아님(소제목). 갈 3장 10-12절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율법이 제정된 것이 인간에게 의를 주기 위함이 아님을 잘 밝혀준다. 구약 자체가 인간이 율법으로 의를 얻을 소망이 없음에 대하여 역설하는 동시에, 믿음으로만 영생을 얻는 사실을 고조한다. 바울은 여기서도 합 2:4절을 인용하였으니, 곧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한 말씀이다. ”(박윤선, <계시의존사색> (영음사, 2015), 124)
 

"율법의 기능은 죄를 알게 해주는 것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 준다. 율법은 이러이러한 것을 행하면 범죄하고 지적하고 교훈한다. 그러므로 내 죄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것인지를 율법이 알려준다. 내 양심에 가책을 일으켜서 죄를 알도록 하고,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게 한다 ... 율법은 살리고 구원하는 기능은 없고 정죄하고 죽이는 기능을 갖는다. 사람은 그 죄성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와 명령을 지킬 수가 없다. 그련데 율법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고 저주한다. 이 정죄와 저주가 어떠한 것임을 율법은 밝힌다."(서철원, 하교리 해설, 48-49)

"박형룡 박사님과 박윤선 박사님에게 배웠으므로 처음에는 능동순종 교리를 자연히 수용했습니다. 그때는 그럴 수 밖에 없는 때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성경과 맞지 않은 내용이어서 신학을 바꾸었습니다. 우리의 개혁신학은 언제나 성경이 기준입니다. 성경이 모든 신학의 척도입니다."(서철원 박사와의 대화)

 

이와 같이 성경과 올바른 개혁신학자들이 사람이나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천국 영생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칭의를 얻는다는 것이 율법의 목적에서도 벗어나는 것이므로 전혀 가능한 신학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우병훈의 그리스도가 죄인들이 죄에 대해 절망하여 오직 자기를 믿게 하려고 보내신 자기의 그림자인 율법에게 순종하여 영생을 위한 칭의를 먼저 얻었다는 주장은 심각한 이단 신학이다.

그런데 우병훈의 이단 신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의 영원한 백성으로 삼의시는 원리를 설명하는 언약 신학에서도 우병훈은 다음과 같이 이단 신학을 피력하였다. 다음은 우병훈의 <그리스도의 구원>(SFC, 2014)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성경을 보면, 어떤 곳에서는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인간들이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가르칩니다. 그런데 또 성경에서는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저는 이것을 예정과 언약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예정이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의 구원을 위해서 영원 전에 작정하신 일입니다.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주신 약속으로서, 그 약속에 신실하게 반응할 때 구원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병훈)

성경이 우리에게 구원을 얻기 위해 구원을 얻고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신실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러면 우병훈에게 물어보고 싶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구원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무슨 언약에 대해 어떤 노력과 반응을 보여서 구원을 얻었는가? 우병훈의 이런 주장이 장로교회 목사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정론은 인간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만이 절대적으로 결정하시며, 인간의 노력은 구원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대로, 언약론은 구원이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근거하며, 인간이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고 언약적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우병훈)

예정론에서는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고 언약론에서는 구원이 인간의 반응과 신실함에 달렸다는 우병훈의 주장은 과연 성경적인가? 이것이 천주교-알미니안 계통의 구원신학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고신의 교수인 우병훈이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율법을 지켜서 영생에 필요한 칭의를 아담의 타락 이후 최초로 얻은 사람이 되었고, 그것이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거짓 교리를 지지하는 눈문을 썼다는 것은 우리 순진한 목사들로서는 어안이 벙벙해질 일이다. 그러나 그가 이미 언약론에서 심히 이단적이고 또한 알미니안-천주교 신학과 합치되는 신학을 주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병훈 스스로 능동순종 거짓 교리는 그것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행위언약론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최근의 능동순종을 지지하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다.

“이 교리는 칭의론뿐 아니라 행위언약론, 구속언약론, 성화론, 기독론 등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우병훈)

대체 성경 어디를 근거로 행위언약론이라는 개념을 주장할 수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구원 이후 언약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관한 주장이라면 모를까 구원을 얻기 위한 행위언약론 사상은 성경을 적대시하는 이단사상이 아닐 수 없다. 우병훈에 의하면 칭의는 그리스도의 대리적 율법준수로 이루어지고, 구원은 사람의 노력과 행위와 하나님에 대한 반응으로 얻어진다는 것이다. 어찌하여 고신에서 이런 이단사상 주장자가 교수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 우병훈이 어떤 방식으로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아담의 타락 이후 최초로 율법적 칭의를 얻은 인간이 되었다고 주장하는지, 무슨 성경 구절을 근거로 위험한 이단 사상을 주장하는지 그의 논문을 직접 살펴보면서 비판하도록 하겠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