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적 치유수양회 분석(2회)

인터콥, 신사도 등의 문제들을 다루느라 한국 교회는 많은 시간과 힘을 소모했다. 오순절 운동, 은사운동, 신사도 운동의 거짓 성령운동을 기본기로 깔고 소그룹(셀 운동)을 표방하는 두 날개, G12-셀목회 등의 거짓부흥 프로그램들이 그 동안 너무 오래 방치되었다. 두날개를 만든 김성곤 목사는 두날개에 관해 어떤 시비가 일어나면 재빨리 고친다. 이전에는 신사도 운동의 중보기도가 두날개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나 이제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불순한 내용이 많았던 ‘전인적 치유수양회’도 ‘회복캠프’라는 이름의 새 옷으로 바꾸어 입었다. 새 옷으로 바꾸어 입고 진행되는 회복캠프에서는 다음과 같은 네 번의 강의가 진행된다. 괄호 속에 있는 전인적 치유수양회 당시의 강의 제목과 비교해 보자.

1과 - 기회를 붙잡으라(운명을 바꾸는 기회)
2과 - 십자가를 바라보라(죄와 십자가)
3과 - 회복을 경험하라(견고한 진을 파하라)
4과 - 성령충만을 받으라(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받으라)

김성곤 목사는 제목을 살짝 바꾸었고 문제가 될 내용들을 일부 변경한 모양이다. 김성곤 목사가 두날개의 내용을 슬그머니 바꾼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이단성 시비를 초래하는 내용이 있음을 이미 인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슬그머니 고치고 오리발 내밀면 다 끝나는 일일까? 담장을 기어 넘어가는 구렁이 같이 표시나지 않게 슬쩍 바꾸는 김성곤 목사의 태도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여전히 비판을 받아야만 한다.

첫째로 김성곤 목사는 자신이 저지른 그흣된 일들을 끝까지 숨기려고 하는 태도이다. 한국 교회에 거짓 복음과 미혹의 영을 전파하는 사탄을 위해 자신이 크게 쓰여졌다는 사실을 끝까지 감추고 좋은 평가만 안고 가려는 자세이다. 하나님의 교회들의 신자들과 목사들의 신앙을 더럽혀 놓고 그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비겁한 행동이다.

두날개를 도입하면 부흥한다는 풍문을 듣고 김성곤 목사에게 찾아가서 배우고 사람들을 모으는데 도움이 될 사이비 능력을 전수받기 위해 김성곤 목사에게 안수기도까지 받은 목사들이 매우 많았다. 두날개 세미나에 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김성곤 목사는 두날개 세미나를 거쳐간 모든 목사들과 그들이 담임하는 교회의 이름을 공개해야 한다. 구제역과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세상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김성곤 목사는 알 것이다. 구제역에 걸렸다는 의심 때문에 자식처럼 키운 소를 생매장하는 농부가 흘리는 눈물을 보고 김성곤 목사는 자신의 죄악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퍼뜨린 거짓 영의 바이러스가 얼마나 넓게 퍼지고 있는지 파악하고서 지금이라도 사람들이 돌이키게 만들어야 한다.

김성곤 목사가 이 엄청난 책임을 외면한다면 자신의 죄악에 대해 깨닫고 회개했다고 볼 수 없다. 단지 자신의 이력과 명예를 보존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런 자기보존의 노력은 한낱 미물들에게도 있다. 단지 살고자 노력하는 것을 보고서 '다른 복음'과 '거짓 영'을 전파하는데 크게 일조한 가증한 죄악을 거져 용서하고 쉽게 덮어준다면 하나님나라 꼴이 뭐가 되겠는가? 김성곤 목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진정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또한 그것에 합당한 행동을 보여야 한다. 

둘째로 김성곤 목사는 자신을 도구로 삼은 숭악한 거짓 영의 정체를 아직도 철저하게 깨닫지 못했다. 김성곤 목사에게서 괴이한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두날개의 모든 것이 단지 이론이고 김성곤 목사를 통해 어떤 신기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두날개를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면서 열열하게 좇아갔을 이유가 없다. 김성곤 목사는 신사도 운동가들에게 있는 괴이한 임파테이션 사상을 가르쳤고, 김성곤 목사 자신이 사람들에게 임파테이션을 시행했고, 그에게 임파테이션을 받은 목사들이 자기 교인들을 대상으로 임파테이션을 실습하자 동일하게 거짓 영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례를 보았다.

두날개 문제는 결코 어떤 이론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적용하는 교회나 목회자의 스타일의 문제도 아니다. 거짓 영의 미혹하는 능력이 나타났다는 것이 두날개 문제의 핵심이다. 김성곤 목사 자신이 거짓 영에게 미혹되었고, 두날개를 통해 거짓 영이 교회들에게 전파되었다. 강의 제목, 프로그램 명칭, 교육 내용의 일부를 수정한다고 두날개가 좋아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난 총신대 출신이다. 개혁주의 신학을 해 온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하는 두 날개 운동은 초교파운동이다. 모든 사역자들이 몰려와서 두 날개 운동을 배우고 자신들의 환경에 맞게 적용시킨다. 때문에 오해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분들의 신학에 맞게 적용하는 것에 있어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김성곤)

김성곤 목사

김성곤 목사는 자신이 총신대 출신이고 개혁주의 신학을 한 목사인데, 다양한 사람들이 두 날개를 배워서 적용하는 과정에서 신학적인 문제가 야기되었다고 했다. 정말 김성곤 목사는 과연 개혁주의 신학으로 무장된 목사일까? 약 5년간 풍성한교회에 출석하면서 두날개의 모든 과정을 경험한 분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인적 치유수양회에 가면 결국 방언을 받으라고 합니다. 성령의 임하심의 증거가 방언이라고 합니다. 이미 방언을 받은 사람도 새방언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김성곤 목사가 사람들에게 안수를 합니다. 그 전에는 굉장히 빠른 박자의 찬양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쓰러지거나 특이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도 나옵니다”

개혁주의 신학으로 신앙을 했다는 김성곤 목사에게서 실제로 배운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증언하였다. 김성곤 목사가 ‘오랄랄라 릴리리리 오요세 센 노리세 히잇빠빠’ ...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것이 성령의 임하심의 증거라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오늘날 ‘방언’이라고 불리워지는 이 따위 옹알대는 소리현상은 성경의 방언과는 전혀 다르고 기독교의 정당한 은사도 아니다. 어째서 김성곤 목사의 생각이 저 모양일까? 어째서 개혁주의 신학을 배워 목사가 된 사람의 사역에서 저런 괴이한 사이비 은사가 매우 중시되는 것일까? 그런 현상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십자가로 탄생한 교회에 오신지 2,000년이 넘자 연로해진 성령에게 치매가 생겨 김성곤 목사의 사역을 통해 저 따위로 멋대로 풀려나오기 때문일까? 성령을 모조하는 거짓 영들의 영혼을 사냥하는 정교한 장난질일까? 

 

3)제4과: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받으라(1회)

김성곤 목사의 전인적 치유수양회의 네번째 강의 내용을 살표보자. 먼저 이 강의의 제목에서부터 김성곤 목사의 신학적 무개념과 불건전성이 드러난다. '성령'이라는 말과 '기름부으심'이라는 말은 같은 말이다. 구약 시대에는 물리적인 기름부음을 행하였고, 기름부음을 받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신이 임하였다.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왕이 될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임하였고, 사울은 ‘변하여 새 사람’(삼상 10:1)이 되었고 또한 ‘새 마음’(삼상10:9)이 임하였고, 또한 선지자의 무리들과 함께 예언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삼상 10:10).

기름부음을 받은 후 사울에게서 나타난 이러한 성령(하나님의 신)이 기름부음 받은 사울에게 임했기 때문이다. 훗날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또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기름부음 받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다윗은 더욱 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다(삼상 16:13). 구약의 물리적 기름부음의 핵심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신의 임재하심이었다.


기름부으심과 예수 그리스도 

또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실 때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오셨다고 말씀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 ”(눅 4:18)

오순절 운동가들과 오순절 신학에 기초를 두고 더 심각한 짓들을 일삼는 신사도 운동가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요단강에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그때 이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3년의 공생애 동안 하늘의 이적을 베푸시며 능력있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것은 요단강에서 기름부음을 받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충천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 웃기는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제1의 하나님이신 성부와 동등하신 제2의 하나님이 성자이시고, 성부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을 집행하여 모든 만물이 있게 하신 창조의 중보자이시고, 성부의 뜻을 따라 인간이 되시었으나 여전히 완전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이 되셨다고는 하나 예수 그리스도는 여느 인간과 같이 죄인으로 출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님게서 여느 죄인들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받아 거듭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화되어가는 과정을 거치실 이유가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 언제나 더불어 계셨고 언제나 완전하게 일치하셨고 언제가 상호내주하시어 한분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전부터, 그리고 친히 인간이 되시어 세상에 오실 때까지 한 번도 성령과 분리되지 않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시었고,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를 초래하는 실제 기름부음을 받으실 아무 이유가 없는 분이었다.

그런데 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영혼이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려고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으심을 받으셨다고 표현하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첫째는 기름부음을 받고 세워졌던 왕, 선지자, 제사장의 직분과 사명을 완성하시는 메시야(그리스도)로 오셨다는 의미이다. 기름부음을 받아 세워진 구약의 3대 직분의 목적을 완성하시는 구세주로 세상에 오셨다는 뜻이다. 

둘째로 구약 시대에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신(성령)이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 담지되어 오였다는 의미이다. 세상에 존재했던 그 이전의 인간들 중에서 성령을 몸 안에 담지한 사람은 없었다. 오직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그 이전의 모든 신자들은 죄가 해결되지 않고 시퍼렇게 남아있었으므로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시는 성전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없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성전이었다. 죄가 들어오기 이전 에덴동산이 아담과 하나님이 친밀하게 대면하는 지성소였던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친히 임하시어 처음부터 새로운 성전을 구현하셨다.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기름부음을 받고 세상에 왔다는 성경의 표현은 바로 이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기름부음(성령세례)를 받아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가르치는 모든 사상은 허위이고 날조이다. 그리고 모든 신자들이 성령을 또 받아야 한다면서 그 모델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벌이는 성령세례-기름부음 개념을 가르치는 오순절 운동, 은사 운동, 신사도 운동 등의 성령론도 사꾸라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와 같은 죄인 중의 한 사람으로 취습하며 모욕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 ”(눅 4:18)

이 말씀을 조금만 자세하게 보면 그 의미가 뚜렷하게 보인다.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라는 내용은 그 앞에 있는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라는 부분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이다. 별도의 사건이 아니고, 또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능력을 추가하시기 위해 특별한 성령의 역사를 추가하였다는 내용도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까지도 자기들의 거짓된 성령 이론을 위해 마음대로 왜곡하면서, 이미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에게 이후 또 다시 권능을 주시기 위해 성령이 오고 그 다음에도 또 얼마든지 자주 찾아온다는 신사도 운동의 성령의 기름부음 사상이나 오순절 운동의 성령세례 주장은 당장 거부되어야 한다. 


성령세례, 기름부음 주장은 영적배교로 가는 첩경

그들은 성령이 지속적, 반복적으로 신자에게 임하시므로 성령이 신자의 몸 안에서 시루떡처럼 쌓이고, 기왓장처럼 포개어진다고 본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물동이에 물을 붓고 더 부어 물이 많아지고 넘치듯이 성령이 자꾸 자구 신자에게 임하여 많아지고 흘러 넘치는 것을 성령충만이라고 한다. 그리고 ‘옹알거림’, ‘진동’, ‘쓰러짐’, ‘이상한 노래’, ‘이상한 춤’, ‘헤롱거리기’ ... 등은 성령이 신자에게 자꾸 자구 방정맞게 찾아올 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가르친다. 이따위 성령론(성령운동)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귀신을 성령으로 환영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탈을 쓰고 교회로 잠입하는 사탄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히는 영적인 배교운동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신약의 기름부음은 중생케하는 성령의 임재

그렇다면 신약 성경이 신자들에게 말씀하는 기름부으심에 대한 말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설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 사함받고 하나님의 자녀된 신자들에게 또 다시 나타나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해야 한다는 가르침일까? 오순절 운동가들과 신사도 운동가들은 당연히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고후 1:21)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요일 2:27)

먼저 간단한 것 하나를 보자! 신약 성경이 신자들에 기름부음에 대해 언급할 때 사용하는 문장의 시제를 보라! 신약 성경은 완료형으로 신자들에 임한 기름부음을 이야기한다. 그 당시 이 성경의 말씀을 받는 신자들에게 이미 기름부음이 임했다고 말한다. 앞으로 받을 것이라고, 또는 이미 받았고 앞으로 반복적으로 기름부음을 받으라고 표현하지도 않는다.

구약 시대에 물리적 기름부음을 받는 사람들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신(성령),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담지되어 오신 성령이 십자가로 정결해진 신약 신자들의 몸에 이미 임재했음을 의미하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 오순절 운동가들과 신사도 운동가들은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권능을 체험하는 차원에서 계속 반복되는 성령의 임재를 체험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오순절 운동과 은사주의 운동에서는 그것을 성령세례라고 하였고 같은 내용이나 조금 다르게 나타난 신사도 운동에서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이것들을 다 싸잡으면 '성령운동'이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불건전한 자들이 많이 성공하여 이제 세계 교회는 마귀의 조롱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성경은 신자의 일생에서 기름부음은 진실로 중생하는 순간에 한번 일어나는 사건, 즉 성령이 십자가로 정결해진 신자에게 임하여 신자의 몸이 성전으로 변하게 되는 단 한 번의 사건이라고 말씀한다. 처음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자녀가되는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중생)이 기름부음이다. 그런데 왜 오순절 운동, 은사운동, 신사도 운동에 물든 사람들은 우리가 기름부음을 받았고 앞으로 또 받고 또 받아서 물이 바께스에서 넘쳐 흘르듯이 성령을 넘치게받으라고 하는 것일까?

그들이 그런 영적인 현상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즉, 성령으로 가장하는 귀신을 체험했고, 그 방식으로 교회를 더럽히려고 작전을 꾸민 마귀에게 미혹되었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믿어 성령을 받아 거듭난 신자에게 또 다시 껄떡대면서 찾아오는 거짓 성령의 세례를 그들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기 저기를 찾아다니면서 자신에게 대단한 도력이라도 있는 듯이 안수해 대는 유명한 날날이들에게 임파테이션을 받은 사람들이다. 귀신과 하나되는 더로운 체험하고서 도리어 '성령의 기름부음'이라고 설레발치는 거짓 성령운동에 빠진 사람들이다. 그들을 접수한 귀신들이 놀때 옹알거림, 웃음, 쓰러짐, 이상한 음으로 흥얼거림, 진동 ... 이런 추잡한 것들이 나타난다. 이런 더러운 일들의 정체를 바로 보지 못하고 '성령세례', '기름부음' ... 이딴 소리를 하고 있으니 교회가 언제 제대로 설 수 있을까?

 

김성곤 목사는 개혁주의자 아니야

신자들을 상대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라고 강의하고, 또 안수하면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밀어넣어 주었던 김성곤 목사의 그 괴이한 힘이 두날개를 뛰우는 원동력이었다. 강의 제목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으라'였다는 것은 김성곤 목사의 사상의 요약판이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라는 사상과 그런 현상을 드러내는 김성곤 목사는 개혁주의 신학을 공부한 목사라고 할 수 없다. 

대체 어느 나라의 개혁주의 신학이 이미 성령을 받아 거듭난 성도가 또 다시 성령이 임하기를 위해 용쓰는 성령운동 같은 것에 동참하라고 가르치는가? 이 말을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김성곤 목사는 자신이 이미 신자된 사람들이 또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도록 집회를 열고, 옹알거리는 소리가 성령의 임하심의 증거라면서 이미 옹알거리는 소리현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성령의 임하심의 증거인 새 방언(?)을 사모하라고 가르인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전인적 치유수양회에 첨석하였던 사람은 이렇게 증언했다. 

“전인적 치유수양회에 가면 결국 방언을 받으라고 합니다. 성령의 임하심의 증거가 방언이라고 합니다. 이미 방언을 받은 사람도 새방언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김성곤 목사가 사람들에게 안수를 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기름부음(중생,)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신자들이 전인적 치유수양회라는 특별집회에 첨석하면 하나님이 기특하게 여기시고 또 다시 성령을 주시는가? 김성곤은 자신이 신자들에게 안수하여 성령 하나님을 신자에게 집어넣으려고 시도하는 그런 짓을 어디서 배웠는가? 한번이라도 성공했으니까 오래동안 그런 짓을 계속했을 것이다.

김성곤 목사가 친히 안수하여 성령 하나님을 안수받는 신자에게로 땡겨오는 어마어마한 일에 성공하였다면 김성곤 목사는 이제 어떤 준재가 되는 것인가? 하나님이 택하여 부르신 자녀들에게 성령을 수여하거나 밀어주는 그리스도의 현존! 김성곤은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과연 김성곤 목사는 특별집회를 열어 안수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성령을 밀어주고 땡겨주는 그리스도가 되려고 작정하였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왜 전인적 치유수양회의 제 4과의 제목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으라'였으며, 왜 성령을 임의로 전이하는 임파테이션을 시도했을까?

김성곤 목사가 당시 이러한 행태를 보인 이유는 간단하다. 성령의 기름부음 사상을 핵심으로 하는 제3의 물결(신사도 운동)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신사도 운동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김성곤 목사에게서 이런 식의 강의나 강의 제목은 나타나지 않았다. 김성곤 목사는 두날개를 만들고 일으킬 때 한창 새롭게 떠오르면서 맹위를 떨치는 신사도 운동에 영향을 크게 받았던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내용이 등장할 수가 없다. 실제로 많은 증거들이 있다.  

김성곤 목사는 자신이 성령으로 위장하는 귀신의 부림을 받으면서 거짓 교회를 성장시키고 사람들을 미혹한 신사도 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왜 끝까지 숨기려고 한다. 아직도 자신의 거짓된 영의 속성을 깨닫지 못했다. 성경으로 설명하지 못할 미혹의 영의 역사를 부리는 사람이 교회의 정죄를 받지 않으려고 하고, 동시에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조직, 충성하는 사람들, 쌓아놓은 명예를 그대로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마귀에 대한 또 다른 충성이다. 깨끗하게 (이전까지) 자신이 귀신 친화적인 인물이었으며, 신사도 운동 방식의 거짓된 성령사상과 운동이 체질과 잘 맞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리하고 싶지 않다고 자세하게 고백하면서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 구원받은 신자들을 대상으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게 하는 운동은 성경에 맞지 않다.  특히 개혁주의 신학에 전혀 맞지 않는다. 신자들을 대상으로 전개하는 성령의 기름부음 타령은 오순절 운동, 은사운동, 신사도 운동의 핵심이다. 그리고 말 자체가 성립하지도 않는다. 성령이라는 단어와 기름부음이라는 단어는 동일어이기 때문이다. '역전 앞에서 만나자!', '우리 함께 축구 차자' ... 이런 말과 같다. 차라리 '성령 또 받기', ' 성령 재 세례' ... 이렇게 부르면 말이 된다.

김성곤 목사는 자신이 그릇된 사상과 거짓 영의 능력으로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들을 더럽혔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자세하게 인정해야 한다. 자신에게서 더러운 것을 배우고, 돌아가서 자기 교인들에게 가르친 두날개 세미나 참석자들이 다 함께 돌이키고 회개하도록 공개적으로 만 천하에 알려야 한다. 강의의 제목을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라고 고친다고 될 일이 전혀 아니다. 전인적 치유수양회의 제 4과의 그릇된 제목 하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느라 이렇게 많은 지면을 소모하였다. 강의 내용을 살펴보면 더욱 더 개탄을 금치 못하게 될 것이다. 계속해서 제 4과(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으라)에서 가르친 내용들과 그리고 리더들을 세우기 위해 진행된 '리더수양회'에서 김성곤 목사가 가르친 내용들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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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