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 신학위 보고서 5항 앞부분에 대한 정이철 목사의 사실에 근거한 반박

 

이 글은 합신 신학위 보고서 5항 앞 부분에 대한 정이철 목사의 사실에 근거한 참되고 온유한 반박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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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 신학위 주장>

“정이철 목사는 칼럼의 자극적인 제목들을 통해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목사나 신학자들은 중상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제목들이 그러합니다. “능동순종 주장하고 집착하는 목사, 교수들은 개종교육 대상”, “Calvin의 리차드 멀러는 바울이 저주했던 바로 그 이단 스타일”, “윌리엄 퍼킨스(청교도 아버지)의 신인합일 이단사상”, “청교도하다 구원확신에 도달하면 하나님보다 뛰어난 고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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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 신학위의 이 보고서의 내용을 보면, 마치 착하고 선량하기 그지없는 정이철 목사가 사실적 근거없이 합신 교수들을 비난하는 무례한 사람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신학교 교수들이 참된 신앙을 왜곡하는 나쁜 책들을 저술하여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혼동에 빠지게 하였으니, 정이철 목사의 이런 글들을 꼭 필요했다. 정이철 목사가 <바른믿음>에 올린 그 기사들을 다시 보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1>

“능동순종 주장하고 집착하는 목사, 교수들은 개종교육 대상”(크릭)

이 글은 고신의 신호섭 교수의 심각한 주장들이 수록된 책 <개혁주의 전가교리>를 독자들이 주의하게 만들기 위한 기사였다. 이 책에서 신호섭 교수는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가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몇 가지만 소개한다면, 신호섭 교수는 이 책에서
1)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죄 용서만으로는 칭의를 얻을 수 없다는 존 오웬의 거짓 사상을 옹호하면서 소개했고(86 페이지),
2)십자가는 단지 지옥 형벌을 사면해 주고 그리스도의 율법준수가 우리에게 천국의 상급을 주었다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거짓 신학을 소개하며 옹호했고(122 페이지),
3)칭의와 죄용서를 분리하는 로이드 존스의 그릇된 주장을 소개하면서 옹호했다(130 페이지).

신호섭 교수는 우리가 십자가의 효력으로 죄용서를 받을지라도 반드시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의 의'를 전가받아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놀랍게도 신호섭 교수는 구원에 필요한 '율법 순종의 의'가 그리스도 그분에게도 필요했으므로 먼저 그리스도 자신에게 적용되었다고 했다. 신호섭 교수는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해 영생을 얻으시고자 율법을 지켰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는 죄의 용서를 확보하기 위하여 전체 율법에 소극적(수동적)으로 순종하셨을 뿐 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전체 율법에 적극적(능동적)으로 순종하셨다.”(187 페이지)

그래서 정이철 목사는 이 글을 썼다. 그러면 합신 신학위 교수님들에게 질문을 드리겠다. 이와 같이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인가? 이와 같이 믿는 자들이 개종하여 성경적 신앙으로 돌아서야 한다는 정이철 목사의 외침이 틀렸는가? 대체 정이철 목사가 어떻게 말하면 합신의 교수님들이 심각성을 알고 성경적 신앙을 지키는 일에 동참할 것인가? 정말 궁금하다.

 

2>
“Calvin의 리차드 멀러는 바울이 저주했던 바로 그 이단 스타일”(크릭)

이 글에서 정이철 목사가 비판했던 리차드 멀러 박사의 주장은 바로 이 내용이었다.

“구속의 성취는 율법과 은혜의 관점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약속과 율법의 방식으로 구성된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지음을 받았다는 것, 아담의 타락은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사실, 타락 이후에 인간이 무능해졌다고 그것이 율법의 표준 혹은 요구를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만족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구원의 선물을 믿는 자들은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동시에 그 구원은 율법의 요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등은 여전히 동일하게 남아 있다.”(리차드 멀러, <칼빈 이후 개혁신학>, 463 페이지)

멀러 박사의 이 주장이 성경적 신앙을 왜곡한다는 사실을 합신 신학위 교수들이 모르는 것 같다. 멀러 박사가 주장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아담의 타락은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것”
2) “타락 이후에 인간이 무능해졌다고 그것이 율법의 표준 혹은 요구를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3)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만족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구원의 선물을 믿는 자들은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동시에 그 구원은 율법의 요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대체 아담이 무슨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하였고, 왜 그것이 기독교의 인간의 타락(원죄)인가? 멀러 박사의 사상을 종합하면, 아담이 영생을 주는 율법에 순종할 것을 요구받았으나, 하나님의 그 요구에 위반한 것이 아담의 원죄라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원죄인가?

성경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된 아담이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는 ‘반역’(호 6:7)을 결행하였으므로 저주받았다고 한다. 멀러 박사의 ‘타락은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과 하나님을 섬기라고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고 반역한 것이 원죄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같은 내용인가? 이는 성경에서 벗어난 다른 종교를 구성하는 새로운 신학의 시작이 아닌가?

타락 이후 인간이 무능해졌을지라도 율법의 표준(요구)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멀러 박사의 주장은 무슨 의미인가?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이 구원의 영원한 기준이라는 심각한 거짓 신학에 기반하는 말이 아닌가? 그러다면 구약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율법에 대한 완전한 실천이 구원의 기준이라고 가르치셨는가? 그랬던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합신의 교수님들은 여기에 대해 답해 보기 바란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하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닌가? 아브라함이 율법을 준수하여 구원을 받았었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를 통해 구원 받은 신약 성도들이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났으나, 계속해서 율법의 요구가 유지된다는 멀러 박사의 말은 사도 바울이 저주한 율법주의 이단 사상과 어떻게 다른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었어야만 했으나 모든 사람이 그리 못하니, 대신 율법을 지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멀러의 주장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었을지라도 율법의 요구에 맞는 삶을 살아야 의무가 있다는 멀러의 주장이 성경적인 가르침인가? 그와 같은 주장은 그리스도의 구속과 복음을 허무는 이단 사상이다. 합신 교수들은 왜 이것은 보지 못하는가?

합신 교수님들은 구원 받은 신약 성도에게 계속 유지되는 율법의 요구라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설명해 보기 바란다. 물론 율법은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은 신약의 성도에게 여전히 남은 죄를 알게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구약 성도들에게 요구된 방식으로 신약 성도들이 율법의 요구에 부합하라고 촉구하면, 사도 바울이 저주한 그리스도를 믿고 율법을 지키여 한다는 율법주의 이단이 되는 것임을 왜 모를까?

신약 성도가 율법에 합당한 삶을 사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성경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적용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성령의 역사로 신약 성도에 대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롬 8: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멀러 박사가 신약 성도에게 여전히 율법의 요구가 유지된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이루어지는 원리를 바르게 설명했다면 문제는 다르다. 그리스도의 전생애와 복음(성경 66권)과 그리스도의 속죄를 적용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옛사람 죽고 새사람이 살아나므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율법의 겉모양뿐 아니라 그 정신까지 실현되어지는 것이다. 멀러 박사가 이것을 알고 가르쳤는가?

그러나 멀러 박사는
1)원래부터 구원의 기준은 율법이고,
2)사람이 율법을 못 지키니 그리스도가 대신 지켰고,
3)그리스도를 믿는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났으나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 아래 있다
고 가르쳤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저주한 자들, 즉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여 저주 받은 율법주의 이단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이철 목사는 리차드 멀러가 사도 바울이 저주했던 바로 그 이단스타일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3>
“윌리엄 퍼킨스(청교도 아버지)의 신인합일 이단사상”(크릭)

이 글은 합신 신학위 멤버라고 알려져 있는 안상혁 교수의 책 <언약신학: 쟁점으로 읽는다>에서 발견한 다음과 같은 심각한 이단사상을 지적하는 글이었다.

“결국 은혜 언약 안에서 하나님께서 택자들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와 연합’ 안에서 온전히 성취된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모든 신자들은 자기 자신의 선택과 구원에 대한 가장 완벽하고 영원히 변치 않는 든든한 토대를 발견하고 소유하는 것이다.”(128-29 페이지)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룬다고 말할 때, 이것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모두와 더불어 연합을 이루는 것이라고 퍼킨스는 설명한다. 즉 연합의 주체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인 것이다. 따라서 이 연합을 통해 신자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함께 죽고, 함께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그와 더불어 천국에 거하는 것이다.”(128 페이지)

우리는 죄용서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받아 구원 받았다. 그런데 안상혁 교수가 주장한 것처럼,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그리스도의 인성과의 연합이고 그리스도의 신성과의 연합인가? 그것은 신비주의의 극치에 해당하는 이단사상이다.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인격적 연합, 언약적 연합일 뿐이다.

대체 무슨 수로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연합된다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신성에 연합되면 결국 같은 신 존재 방식으로 인간이 격상되는 것이다. 그러면 피조물이 아니고 신화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 동료 교수에게 충고하여야 할 교수들이 이단사상을 말하는 동료에게 방패가 되기 위해 교단의 이름으로 이런 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그것이 교수들이 할 일인가? 교단의 신학교가 그런 일하라고 있는 것인가? 일각에서 안상혁 교수의 이단성을 조사해 달라는 헌의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교단 신학교 교수님들이 이런 짓을 하므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것이 아닐까?


4>
“청교도하다 구원확신에 도달하면 하나님보다 뛰어난 고수
(크릭)

나는 이  글에서 안상혁 교수의 다음의 말들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설명하여 주의를 촉구했다.  

“여기서 퍼킨스는 성화를 ‘믿음의 문서’(증명서)라고 부르며, 그것을 일종의 선택의 가시적인 지표로 인정한다.”(117 페이지)

“흥미로운 것은, (그린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퍼킨스 역시 선택과 예정에 관한 문제를 두고 고뇌하는 행위와 상태 즉 통회하는 심령, 하나님께 대한 개별적인 범죄로 인한 한탄함, 육과 더불어 투쟁하며 비통해 함,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공로를 진실하게 갈망함 등을 일종의 성화의 효과들 혹은 선택의 지표들 가운데 하나로 포함시킨다는 사실이다.”(118 페이지)

합신 교수들에게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묻고 싶다. 구원 받기 전의 인간에게 성화는 가능한 것인가? 가능하다면, 구원을 받기 전에 나타나는 인간의 성화(?)는 그 자신의 구원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구원 받기 전에 성화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행여 성화가 나타난다고 해도 그것이 구원 받는데 좋은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니다. 구원을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여기에 대해 안상혁 교수의 글은 심각한 혼선을 주었다. 마치 구원 받도록 예정된 사람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화를 보이는 것처럼 혼동을 조장했다.

‘통회하는 심령’
‘하나님께 대한 개별적인 범죄로 인한 한탄함’
‘육과 더불어 투쟁하며 비통해 함’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공로를 진실하게 갈망함’

안상혁 교수는 퍼킨스와 그린햄을 말하면서 바로 이러한 성화의 현상들이 구원 받기 전의 사람에게 나타난다고 했다. 구원 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에게서 이런 성화 현상들이 나타난다고 했다. 퍼킨스와 그린햄이 그렇게 가르쳤다고 하면서 그것이 곧 진리이고 자신의 사상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성경은 구원 받기 전에 이러한 성화의 진전으로 자신의 구원의 전조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구원이 임하기 전에 이런 성화의 모습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성화에 근거하는 구원을 가르치는 성화주의 구원론이다. 아주 위험한 사상이다. 칼빈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리스도를 믿어 죄용서 받고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성화와 아무 관련이 없다.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떠나서는 성화도 없으므로 분명히 그들은 나쁜 나무와 같다. 보기에 아름다운 과실을 맺고, 그 과실은 맛도 좋을는지 모르나 몸에는 조금도 좋지 않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에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은 사람이 생각하거나 계획하거나 실행하는 것이 모두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기독교강요, 3.14.3)

“첫째로, 성령은 우리를 성화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파견되셨다. 그래서 그는 우리의 부정과 불결을 씻어버리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의에 복종시키신다. 이와 같은 순종이 성립되려면, 저 사람들이 고비를 늦추려고 하는 그 육욕을 먼저 누르고 굴복시켜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성령에 의하여 정화되지만,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은 많은 죄와 무기력에 둘러싸여 있다.”(기독교강요, 3.3.14)
 

서철원 박사님도 그리스도의 구속의 말씀과 사역을 적용하시는 성령의 역사로만 성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성화과정에서 선행을 하는 것은 의롭다 함을 받은 결과이다. 의롭다 함을 받았으므로 성령이 역사하셔서 선행을 행하게 하신다. 세미 펠라기안주의와 알미니우스의 가르침처럼 선행으로 거룩하게 되고 깨뜻하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구원론, 181)

“믿는 사람들이 죄의 욕망을 버리고 거룩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말씀의 적용으로만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말씀 적용 외에는 결코 거룩하게 됨이 불가능하다.”(구원론, 181)

대체 합신의 안상혁 교수는 어디서 무슨 신학을 배웠길레 구원 받지 않은 사람에게, 구원 받기로 예정된 사람에게서 성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하는가? 그것은 개혁신학이 아니라 청교도들의 괴상한 회심준비 사상이다. 안상혁 교수가 자주 설명하는그림햄과 퍼킨스에게서 시작된 신학이다. 그래서 나는 안상혁 교수의 주장처럼 신앙생활하다가 구원 받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고수라고 했다.
 

<맺는 말>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합신 교수님들이 상과 표창장을 주어야 할 사람인 것 같다. 결코 합신 교수님들의 조롱과 비아냥을 받을 사람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단으로 기울지고 있는 합신 교수님들의 신학에 경종을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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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