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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박사의 '칭의와 하나님 나라'라는 새 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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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박사의 '칭의와 하나님 나라'라는 새 책이 나왔다
  • 바른믿음
  • 승인 2021.02.12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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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박사의 <칭의와 하나님 나라> 라는 새 책이 나왔다. 전에 그가 쓴 <칭의와 성화>와 비교해서 달라진 점들이 엿보인다.

1>
칭의가 종말까지 유보된다는 그의 주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받은 후라서 그런지 유보라는 명시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비판에 대응하여 자신의 입장을 상당히 다듬은 것 같다.

 

2>
<칭의와 성화>에서는 칭의와 성화가 같은 패턴으로 진행될 뿐 아니라 거의 같은 의미라고 보았는데 새 책에서는 칭의와 성화가 함께 병행된다고 보지만 둘을 의미상 동일시하는 것 같지 않다.
 

3>
종말 때의 칭의는 꼭 성화의 열매에 근거하여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보지 않는다. 비록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데 실패했어도 예수님의 중보로만 의롭다함을 얻음을 인정한다(140).
 

4>
김 박사가 주장하는 행위대로 심판받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선한 행위들(공로)을 통해 우리의 칭의를 얻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심판에 대한 말씀은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만의 칭의론에 굳게 서서 죄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경고하며 의로운 삶을 살도록 독려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141).
 

5>
김 박사는 새 관점의 대표주자인 제임스 던과도 거리를 둔다. 바울의 칭의론은 이방인과 유대인 간의 사회문화적인 갈등이 야기되는 선교적인 상황에서 그런 문제의 해결책으로 등장한 교리라는 던의 주장을 배격하고, 칭의론은 바울이 원래 확신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6>
김 박사는 새 관점을 꽃피게 한 톰 라이트와도 선을 긋는다. 제 2성전기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믿었다는 라이트의 주장도 점검해보아야 한다고 했다(175). 

 

더 나아가 톰 라이트가 칭의를 법정적인 의미로만 이해하고 관계적인 측면을 간과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김 박사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점은 톰 라이트가 칭의론을 아브라함과의 언약 성취라는 맥락에서 해석한 나머지 그보다 더 큰 틀인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적인 칭의를 아브라함의 언약 가족의 구성원이 되는 것으로 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그 통치를 받는 백성으로 이해하지 못함으로 칭의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의로운 삶과 긴밀하게 연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174-183).


그럼에도 김박사의 견해가 여전히 전통적인 칭의론과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1>
칭의를 무죄선언이라는 법정적인 의미로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 즉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감이라는 관계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개혁신학에서는 칭의를 법정적인 의미로만 이해한다. 칭의는 무죄선언일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롭다는 선언이라고 본다. 죄만 사해진 윤리적인 중립상태를 의롭다고 볼 수는 없지 않는가. 칭의가 단순히 무죄선언이 아니라 적극적인 의롭다함의 선언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로움의 전가를 전제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성경신학자들처럼 김 박사도 전통적인 전가 개념이 성경적인 근거가 희박한 교리적인 비약으로 보는 것 같다(물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으니 단정할 수는 없다). 

김 박사가 오래 전에 쓴 구원이라는 책에서는 전통적인 전가 개념을 그대로 따라서 하나님이 예수님이 순종하신 것을 마치 우리가 순종한 것으로 여겨주신다고 했는데, 더 이상 그런 입장을 견지하지 않는 것 같다.
 

2>
개혁신학에서는 김 박사가 칭의의 한 요소로 본 것, 즉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예수의 빛의 왕국으로 옮겨짐을 결정적인 성화(근본적인 성화)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갔기에 거룩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성화와 칭의는 동시적이고 하나로 연합되어있다. 다만 그 특성상 논리적으로 구별해서 이해할 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는 법적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동시에 결정적으로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나라로 옮겨졌다. 근본적인 성화라는 개념은 점진적인 성화의 확실한 바탕을 제공하는 동시에 칭의가 거룩한 삶을 부정하는 교리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준다.
 

3>
김 박사의 책에서 논리적으로 해명되어야 할 의문들이 많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그는 “종말 때의 칭의는 세례 때 받은 칭의의 확인”이라고 말한다. 그 점에서는 전통적인 입장과 차이가 없다. 그런데 그는 바로 이어서 그것은 “칭의의 현재 과정의 완성이라”고 한다(141). 김 박사는 이제 유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지만 칭의를 계속 현재적인 과정으로 말한다. 

그가 성화처럼 칭의도 발전 과정을 통해 완성됨을 뜻하는가.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김 박사는 무죄선언과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의 상태를 견지함을 뜻하는 듯 한데 명확한 설명은 없다. 이와 맞물린 의문은 칭의와 성화는 같이 병행된다는데, 서로 어떤 유기적인 관계 속에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없다.
 

4>
김 박사는 칭의론이 그리스도인의 의로운 삶과 분리되는 것을 우려해서 칭의를 무죄선언이라는 법정적인 의미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옮겨짐이라는 관계적인 개념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개혁신학에서도 칭의를 법정적인 의미로 이해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실제적인 갱신을 의미하는 다양한 구원개념을 강조한다. 구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바탕 위에서 중생과 회심, 칭의와 양자됨, 성화, 견인과 영화가 한데 연결된 것으로 본다. 

이렇게 구원의 여러 가지 측면을 구별해서 이해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의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부요하며 풍성한지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구원을 종합적인 관점에서 가르쳐야 하는데, 구원의 다양한 측면에서 칭의만을 달랑 떼어내어 그것이 구원의 모든 것인양 가르치기에 윤리적인 방종을 야기하는 것이다.
 

5>
성경신학과 교리(조직) 신학은 서로 협력하는 관계 속에서 발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참 아쉽다. 조직신학자들은 성경 신학의 연구결과를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그 자료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교리화 작업을 해야 한다. 성경신학자들은 그들의 연구물을 최종 결론으로 고집함보다 교회의 역사적 가르침과 현 교회의 상황적 맥락에서 논리적으로 숙고해야 할 여러 과제가 남아있음을 알고 조직신학이나 목회신학의 역할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6>
앞으로 구원론을 하나님 나라와 교회라는 큰 틀 속에서 구원의 다양한 측면을 한데 아우르며 구원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총괄하는 관점에서 이해하고 가르친다면, 오늘날 칭의론이 남용되는 문제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아름답고 위대한 구원 사역을 더 풍성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김세윤 박사에 대한 이 글의 나의 평가는 단편적이고 주관적이라 많이 미흡함을 양해 바란다.

 

박영돈 박사의 페이스북 글 (20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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