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교수의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한 소감 3

김재성 교수(국제신학교 부총장)
김재성 교수(국제신학교 부총장)

(이 글은 김재성 교수의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이라는 제목의 논문에 대한 세 번째 소감이다. 이 글에 잘못된 내용이 있어 김재성 교수의 고명하신 생애와 명성에 근거없는 해를 미친 점들이 있다면, 김 교수께서 친히 설명하심으로 필자가 남은 인생을 조신하게 참회하며 살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바란다. 인용된 김 교수의 말은 모두 위에서 언급한 김 교수의 논문에 있는 내용이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칭의(justification)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은 우리에게 죄의 용서를 가져다주고,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정적으로 의인이라고 선언하는 근거가 된다고 보았다.”(김재성)

김 교수는 개혁신학이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십자가)이 우리에게 죄용서를, 그리고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율법준수)가 우리에게 의로움을 준 것으로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이 말은 (이론상으로)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지 않고 곧 바로 십자가를 지셨으면, 우리의 영혼에게 죄용서가 주어지기는 했을지라도 천국에 들어가지는 못하였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이론상으로) 우리가 천국에 가려면 죄용서 이외의 다른 무엇, 즉 천국에서 살기에 합당한 적극적 자격(의로움)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를 주장하는 존 오웬 등의 과거의 거의 모든 청교도 신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했던 괴상한 이론이다. 존 오웬은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를 주장했다.

“완전히 의로운 그리스도는 그의 (율법에 대한) 적극적인 순종이 없어도 죄를 위한 희생 제물과 화목 제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므로 그가 적극적인 순종의 삶을 산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그 (율법에 대한 적극적)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면,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모든 법에 순종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훨씬 일찍 죽었어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데 충분했다.” (John Owen, 성도와 하나님과의 교제, 151)

존 오웬은 죄용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수동순종)에서, 천국에 들어가 살기에 합당한 의로움은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능동순종)에서 비롯되었다는 비성경적인 사변을 신봉했다. 그래서 어이없게도 그리스도가 어느 때에라도 죄용서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실 수 있으나,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율법준수를 통해 의로움을 획득하기 위해 지상에서 더 오래 살면서 율법준수에 힘을 다하셨다고 주장하였다. 참으로 어리석은 괴변이고 사변이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는지 보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사도 바울은 죄가 없고 의로우신 그리스도가 자신을 우리의 죗값으로 드리심으로 우리에게 의로움이 주어졌다고 가르쳤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사도 바울은 죄와 무관하게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의로운 사람으로 출생하신 그리스도가 자신을 우리의 죗값으로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우리가 깨끗해졌다고 가르쳤다.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흠없는 피가 우리를 의롭게 했다고 말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죄인에게 의로움을 주었다고 가르쳤다.

존 오웬 등의 과거의 거의 모든 청교도 신학자들의 우스꽝스러운 칭의 신학(능동순종)을 그대로 답습하는 김재성 교수의 칭의 신학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만일 김 교수가 계속 그리스도가 율법준수로 의로움을 얻어 우리에게 전가했다는 주장을 그치지 않는다면, 성경을 대적하는 더욱 위험스러운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존 오웬이나 그 어떤 청교도 신학자들의 허탄한 사변은 성경 앞에서 단 1초도 서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순종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결코 의로움을 얻기 위한 순종이 아니었다. 우리를 위해 완전한 속죄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순종이었다. 비천한 인간이 되시어 세상에 나신 순간부터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과 모욕이 그 분에게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경험하신 모든 고난과 조롱과 핍박이 우리의 죄를 속하시는 사역이었다. 단지 십자가에서만 우리의 죄가 속하여진 것이 아니다.

청교도 신학은 바로 이 진리를 훼손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포함하는 전 생애의 순종으로 인해 죄용서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대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죄용서가, 그리고 이전 생애의 율법순종에서 천국에 들어가게 만드는 의로움이 형성되었다고 가르친다. 성경과 기독교를 파괴하는 사변적인 주장이다.

청교도들의 이런 엉뚱한 사변 신학의 원인은 무엇일까? 청교도신학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가 1590년대 초에 본격적으로 도입하였고, 1647년에 채택된 웨민고백(WCF) 속에도 들어간 행위언약(The Covenant of Work) 신학으로 인해 이러한 심각한 복음왜곡이 발생되었다. 이것을 필자는 그 동안 여러 번 설명했다. 비성경적인 능동순종 교리의 원인은 바로 행위언약이다. 김재성 교수의 그릇된 칭의신학의 원인도 바로 행위언약이다.

“특히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전가받는다는 것은 아담과 맺은 행위언약의 개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행위언약’이라는 신학용어 역시 논쟁을 낳고 있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정확하게 규정해 놓았으므로,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에서 받아들이고 있다.”(김재성)

언약이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자기를 찬송하는 백성을 확실하게 가지시기 위해 자기의 인격을 걸어 자기 백성에게 주셨던 ‘약속’과 ‘맹세’이다. 청교도들은 성경의 언약을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으로 설정하였다. 그런데 청교도들의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속에는 성경의 핵심을 파괴하는 심각한 요소들이 많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행위언약>

하나님이 자기 백성도 아니고 영생과도 무관한 아담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영생을 위한 율법준수를 명하셨고, 아담이 율법준수에 성공하면 그 대가로 영생을 주기로 약속했다는 내용의 언약설정이다. 그러나 아담이 율법준수를 거부했으므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한다. 

<은혜언약>

아담이 율법준수에 실패했으므로 그리스도가 오셔서 대신 율법준수를 통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의로움)과 십자가 속죄(죄용서)로 구원의 요건을 홀로 완성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공로를 전가하여 구원을 얻게 한다는 언약설정이다. 이런 언약 설정에는 다음과 심각한 결함이 있다.

1)하나님이 자기의 형상을 따라 자기의 백성을 완전한 은혜와 영생 안에서 창조했음을 부정한다.
2)구원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인간의 노력의 산물로 제시되었으니, 이는 성경의 하나님의 은혜와 성품과 맞지 않다.
3)태초에 아담과 함께 율법이 있었다는 가르침이 성경에 없다.
4)율법을 지키는 자에게 영생의 자격(의로움)이 주어진다는 가르침이 성경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성경이 기술하는 언약 개념을 살펴보자.

<첫 언약>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9:15)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가 잃어버린 자기 백성을 다시 찾으시기 위해 죄로 인해 파기된 첫 언약을 복구하기 위해 죽으셨다고 한다.

1)아담과 하나님의 언약의 명칭이 다르다.

청교도들은 행위언약이라고 말했으나, 성경은 아담과 하나님의 언약을 ‘첫 언약’이라고 한다.

2)아담과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도 다르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가 첫 언약을 범한 인간의 죄를 속하여 다시 자기 백성을 일으키기 위해 대신 죽었다고 한다. 아담이 이미 영생과 모든 은혜를 다 받은 하나님 백성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창조하신 후 인간에게 자기의 인격을 걸어 영원한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의 관계를 맺기로 언약하셨던 것이다. 언약을 맺어 아담이 영원히 하나님 백성으로 남고, 하나님도 영원히 아담의 백성으로 남기로 서로의 인격을 걸어 맹세하고 약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언약을 파괴함으로 저주를 자초하였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을 아담을 사형시키고 다른 아담을 창조하시지 않았을까? 이미 자기 백성으로 창조한 아담의 영원한 하나님이 되시기로 자기의 인격을 걸고 언약했기 때문이다. 아담의 범죄와 상관없이 자기의 인격을 걸고 언약한 내용을 스스로 책임지고 성취하기 위해 아담 대신 아담의 죗값을 지불하시고자 성육신하였다. 성경의 언약은 청교도들의 행위언약과는 명칭도 내용도 완전히 다르다.

아담의 원죄의 내용도 청교도들의 주장과 성경의 설명은 다르다. 청교도들은 아담이 영생의 자격이 되는 율법준수를 거부한 것으로 설명했다. 영생이 없는 자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율법준수를 명하였으나, 아담이 그것을 거부했다고 하나님이 그를 적극적으로 저주하였다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설명이다. 그러나 성경의 설명을 보면, 하나님이 왜 아담을 영원히 저주하셨는지 이해가 된다.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호 6:7)

성경은 아담의 원죄가 하나님에 대한 반역죄였다고 설명한다. 반역이란 모든 사랑과 은혜를 입은 자가 패역하여 그 이상의 것을 얻기 위해 상대의 인격을 짓밟는 것이다. 아담은 영생을 위한 율법준수를 거부한 죄를 범한 것이 아니었다. 영생과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그 이상을 원하여 하나님의 인격을 짓밟고 배반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영원히 적극적으로 벌하였다.

<새 언약>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렘 31:31)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구약 성경은 아담이 파기한 첫 언약을 복구하여 하나님이 다시 자기 백성을 가지시게 만드는 새 언약을 세울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자기 피로 아담의 죗값을 지불하시고 그 피를 담보하여 첫 언약을 복구하는 새 언약을 수립하였다. 성경이 말하는 신약의 언약, 새언약에는 그리스도가 율법준수했다는 내용이 없다. 

이와 같이 청교도들의 언약 설정(행위언약-은혜언약)과 성경의 언약 설정(첫 언약-새 언약)은 명칭과 내용에서 완전히 다르다. 청교도들이 만들었고 웨민고백에까지 수록된 행위언약 개념은 성경과 기독교를 심각하게 왜곡한다. 가장 심각한 왜곡은 김재성 교수처럼 그리스도가 행위언약을 복구하기 위해 아담이 거부했던 율법준수를 성실하고 완벽하게 이행하여 의로움을 얻었다는 주장이다. 하나님의 성육신의 목적과 의도까지 훼손하는 심각한 죄이다. 김재성 교수의 말을 다시 보자. 

“특히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전가받는다는 것은 아담과 맺은 행위언약의 개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행위언약’이라는 신학용어 역시 논쟁을 낳고 있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정확하게 규정해 놓았으므로,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에서 받아들이고 있다.”(김재성)

청교도들이 주장한 것이라면 똥이라도 그대로 받아먹겠다는 심각한 오류가 전 세계의 개혁교회를 장악하고 있다. 심지어 개혁신학의 아버지라고 칭송받는 바빙크까지도 이와 같은 행위언약을 그대로 답습하여 기독교를 근본부터 훼손하였다. 개혁교회에서는 바빙크보다 위대한 사람이 없으니, 개혁교회가 이 죄악을 스스로 버리고 성경으로 돌아가는 일에 대한 희망이 없다. 그 일은 아무래도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하나님은 타락 전에 맺어진 첫 번째 언약(행위언약) 안에서 인간에게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셨고, 이 명령을 완전하게 성취한 후에 비로소 영생과 하늘의 구원을 주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헤르만 바빙크의 찬송의 제사, 2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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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