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교수의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한 소감 2

김재성 교스 국제신학교 부총장, 은퇴)
김재성 교수, 전 국제신학교 부총장

 

(이 글은 김재성 교수의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이라는 제목의 논문에 대한 두 번째 소감이다. 이 글에 잘못된 내용이 있어 김재성 교수의 고결한 명예에 해가 된 점들이 있다면, 김 교수께서 지적하여 필자가 남은 인생을 조신하게 참회하며 살도록 이끌어 주시기 바란다. 인용된 김 교수의 말은 모두 위에서 언급한 김 교수의 논문에 있는 내용이다)

 

“그리스도는 참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자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였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께 대항하여, 순종하는 사람이 견뎌내야 할 인내와 신의를 배반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순종했다.”(김재성)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모두를 이루심으로써, 율법 앞에서 완전한 의로움을 성취하셨고, 그를 신뢰하는 자들에게도 동일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만드셨다.”(김재성)

김 교수에게 율법에 대한 매우 그릇된 신학이 뿌리 깊이 심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구원을 위해서는 아담이 실패한 율법의 의가 필요한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기에 합당한 의로움을 얻기 위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고 실천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구세주가 되기 위한 의로움을 얻기 위해 율법을 완전하게 실천했다는 김 교수의 주장은 다음과 면에서 심각하게 성경을 대적하는 이단 사상이다.
 

1) 성경 어디에도 아담의 원죄가 구원의 자격을 주는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하는 내용이 없다.
 

2) 성경 어디에도 아담이 율법과 함께, 율법의 경륜 안에서 창조되었다는 내용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하게 율법이 기원전 1500년 경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고 말했다. 칼빈도 같은 내용을 말했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요 7:19)

“아브라함이 죽은 후 약 400년이 지난 후에 율법이 첨가되었다”(칼빈, 기독교강요, 1.7.1.)

성경과 우리의 성경적 신앙의 선조들은 율법이 아담의 창조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율법이 아담의 구원의 수단(기준)으로 처음부터 세상에 도입되었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아무도 율법을 지켜 얻어진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하나님의 처음의 법이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3) 성경 어디에도 우리 죄인들, 또는 하나님의 성육신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구원에 필요한 의로움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 없다. 성경을 단지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만 믿게 하시려는 목적으로 율법이 주어졌다고 말한다. 또한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실 하나님의 성육신자가 어떤 방식으로 죄에 빠진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실지 계시하는 수단으로 율법이 주어졌다고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해서는 율법을 아는 것이 다른 효과를 나타낸다. 참으로, 율법이 우리 모든 사람을 심판하며 정죄하는 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 3:19)고 사도는 단언한다 ... 이 말씀의 뜻은 그들이 자기의 힘에 대한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그들이 다만 하나님의 손이 받들어 주시기 때문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벗은 몸과 빈손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피난해서 완전히 그 안에서 쉬며, 그 안에 깊이 숨으며, 의와 공로를 얻기 위해서 그 자비에만 전적으로 매달린다는 것이다. 진정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 자비는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된다.”(칼빈, 기독교강요, 2.7.6.)

칼빈은 율법이 타락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날 하나님의 자비를 고배하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했다.

“후대에 들어온 율법은 성질상 은혜 언약과 고체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다만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다. 여기서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함은 인생들로 하여금 그 범죄한 것이 많음을 알도록 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다는 뜻이다(롬 4:15, 5:20). 그러면 율법의 목적은 새로운 구원 방법을 제시함이 아니고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함에만 있다.”(박윤선 박사)

박윤선 박사도 율법이 태초에 아담과 함께 등장한 것이 아니라 아담의 타락 후 도입되었다고 했다. 또한 율법의 기능은 타락한 인간에게 죄가 많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고, 결코 율법 자체에 구원을 주는 기능이 없다고 가르쳤다. 박윤선 박사에 의하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구원자가 되기 위해 율법을 지켜서 의로움을 구비했다는 김 교수의 주장은 전혀 성경적으로 성립되지 못한다.
 

율법의 기능은 죄를 알게 해주는 것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 준다. 율법은 이러이러한 것을 행하면 범죄하고 지적하고 교훈한다. 그러므로 내 죄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것인지를 율법이 알려준다. 내 양심에 가책을 일으켜서 죄를 알도록 하고,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게 한다 ... 율법은 살리고 구원하는 기능은 없고 정죄하고 죽이는 기능을 갖는다. 사람은 그 죄성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와 명령을 지킬 수가 없다. 그련데 율법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고 저주한다. 이 정죄와 저주가 어떠한 것임을 율법은 밝힌다.”(서철원, 하교리해설, 48-49)

서철원 박사도 율법의 기능은 단지 죄를 알게 해는 것이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움을 얻게하는 기능은 없다고 한다.
 

4) 만일 김 교수의 주장처럼, 그리스도가 율법준수에 성공하고, 또는 다른 어떤 무엇을 하여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자격인 의로움을 얻었다면, 기독교의 그리스도와 불교의 석가모니의 근본적 차이는 무엇인가? 성경 어디에서 그런 행위에서 비롯되는 구원의 의에 대한 발상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성경은 구원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죄인들의 죗값으로 자신을 드리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높은 죄의 장벽을 허무셨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자기의 피로 죄의 장벽을 허무신 그리스도께서 믿음과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자신에게로 받아주셨다. 그리하여 김 교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낯설은 의로움이 아니라, 본래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죄 없는 사람으로 성육신하신 그 자신의 의로움이 우리의 의로움으로 인정받게 하셨다. 성경은 죄 없으신 그리스도가 자신을 우리의 죗값으로 드리심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죄의 담을 허무심으로 죄인에게 의로움이 주어졌다고 말한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칼빈은 하나님의 성육신자이신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어떤 행동을 하여 구원이나, 구원자의 자격 요건이 갖추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맹렬하게 질타하였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반대하여 생명과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그리스도께로 주입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구원받은 분이 아니라 바로 구원 자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존 칼빈, 기독교강요, 1.13.11)

“롬바드(Lombard)와 스콜라학자들(the Schoolmen)처럼 그리스도가 자신을 위해 어떤 공적을 쌓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 대체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자신을 위해 자신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지상에 내려오셔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입니까?”(존 칼빈, 기독교강요, 2.17.6)

그리고 성경은 김 교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가 율법 조항들을 완벽하게 지키시어 의로움을 얻었다고 전혀 말하지 않는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죄 없으신 그리스도가 자신을 우리의 죗값으로 드리심으로 우리 죄인들을 향한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만족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와 정죄가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엡 2:15)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키시기 위해 지상에 사람이 되시어 오셨다는 이론은 망령된 주장이다. 또한 그리스도가 합법적이고 효력있는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 모세의 율법을 성실하게 준수했다는 이론은 보통의 이단들도 거의 말하지 않는 악독한 주장이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전적으로 거부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평생 동안 하나님께 완전하게 순종했음을 부정하자는 것이 전혀 아니다. 필자는 효력있는 구원자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의로움을 얻었다는 이단적인 이론을 거부할 뿐이다. 필자는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생 온전히 순종하시는 삶을 사셨음을 감사하며 영원히 찬양한다.  
 

"메첸은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 없다면, 그 어떤 희망도 없다고 토로했다."(김재성)

김 교수는 메이첸이 죽는 순간 그리스도께서 모든 율법을 다 지키셨다는 사실로 인해 큰 위안을 받았다고 고백했다는 항간의 이상한 설을 소개했다. 참 안타깝고 우스운 일이다. 메이첸이 죽을 무렵에 노망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그런 정신나간 말을 했을까?

성경의 사도들을 보라! 대체 어느 사도가 그와 유사한 말을 일점이라도 했었던가? 기독교 신앙의 설립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들은 죽음을 앞두었던 메이첸이 붙들었다는 이상한 복음의 위안을 가르치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사도 베드로의 성경을 다 읽어보았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하여 율법을 완벽하게 준수하여 의로움을 획득했으므로 나는 기쁘다! 이제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유형의 베드로의 감탄을 찾을 수가 없다. 그것과 비슷한 내용도 발견하지 못했다. 

"조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베드로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우리의 죗값으로 드리심으로 우리에게 의로움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죽음 앞에서 섰을 때에 붙들어야 할 확실하고 영원한 위로가 아닌가? 이 세상에 죄 없으신 그리스도가 자기 몸으로 죄인들의 죗값을 지불하셨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하고 귀한 복음이 있는가? 이것 말고 우리가 죽음 앞에 섰을 때 최고의 위로가 될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메이첸이 미쳤었나보다! 어찌 감히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라는 괴상한 거짓을 기독교의 복음 속으로 끼워넣으려고 하는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죽음을 앞에 둔 메이첸이 정말 그렇게 말했다면, 이유는 간단했다. 그에게 정신의 혼미가 왔던 것이다. 노인성 치매라고 하는 것, 즉 '노망'이 왔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그런 거짓을 복음에 끼워 넣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의 말이 성경인가?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고 성경의 말씀이 변하는가? 오직 성경만이 구원의 복음이고, 모든 신학의 표준이다. 메이첸이라는 사람이 죽음 앞에서 느꼈다는 그런 이상한 복음의 위로를 성경이 가르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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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