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완전주의 교회관의 발로인가?

신사참배거부운동을 주도한 한상동 목사는 동지들에게 이 운동을 ‘종교운동’만으로 전개하면 목적 달성이 어려워지므로 조속히 ‘정치운동’으로 전환하자고 했다. 말세가 이미 도래하여 악마의 지배 아래에 있는 현 사회는 조만간에 멸망하고 지상신국(地上神國)이 건설될 것이므로, 동지들이 견고한 신념을 가지고 다수 동지를 획득하여 목적을 달성하자고 했다.

신사참배거부운동 동지들은 한상동의 이 제안에 찬성하면서 다음 사항을 다짐했다. 

첫째, 신사참배를 긍정적으로 보는 노회원들로 하여금 노회의 각종 집회에 출석하지 못하도록 초치(招致)하고, 각 교회로 하여금 각 노회 부담금을 바치지 못하게 하여 결국 기존의 노회가 파괴되도록 만든다. 
둘째, 신사불참배주의 신도들로 새로운 노회를 조직한다. 
셋째, 신사참배를 긍정하는 목사에게 세례를 받지 못하게 한다. 
넷째, 신사불참배 동지의 상호원조를 도모한다. 
다섯째, 가정예배와 가정 기도회의 개최를 장려하고 시행하는 동시에 개인 전도로 신사불참배주의 신도를 동지로 먼저 획득하고 그 다음에는 기회주의 태도를 지닌 신도를 동지로 삼는다.

신사참배를 긍정하는 목사에게 세례를 받지 못하게 한 것은 우상숭배를 행하는 ‘교회’가 참교회의 요건을 갖추지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이상 순수한 교회가 아니라고 하는 확신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사참배거부운동이 기성교회를 파괴시키려고 하고 새로운 교회를 조직하려고 한 것은 고대 노바투스주의와 도나투스주의의 완전주의 교회관의 발로인가? 경남의 한상동, 평북의 이기선, 채정민 등 신사참배거부운동 지도자들은 완전주의 교회관을 가지고 독자적인 노회를 만들려고 한 것은 ‘3세기 이후에 있었던 교회론 논쟁’을 재현한 것인가? 이러한 역사해석의 바탕에는 교회가 완전할 수 없으며,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가 배교하는 교회가 아니라고 보는 전제가 깔려 있다.

칼빈이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의 현장을 목격한다면 이러한 역사해석을 무어떻게 볼까? 우상숭배를 하고 여호와 하나님과 벨리알(천조대신)을 동시에 섬기는 교회, 천조대신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높다고 고백하고, 그리스도가 왕 중 왕임을 부정하여 성경을 편집하여 구약성경과 요한계시록을 제거한 교회는 참교회인가? 주한 장로교 외국 선교부들을 그러한 ‘교회’를 진정한 교회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선교관계를 끊었다.

배교(背敎: apostasy), 배도(背道)는 신앙을 거스르는 죄이다. 이 용어는 신앙을 배반한 자의 관점이 아니라 그가 배반한 종교의 관점에서 사용된다. 믿음의 형태를 달리한다고 하여 배교자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배교의 정의는 시대마다 달랐다.

(1)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버리는 것,
(2) 신앙의 중추적인 교리를 포기하는 것,

(3) 기독교의 행습을 포기하는 것 등을 일컫는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수도 생활 또는 성직 생활을 포기하는 것을 배교행위에 포함시켰다. (4) 마음속으로는 그리스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겉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행동을 하는 것도 배교로 간주된다.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대박해 시기에 로마가톨릭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성화에 침을 뱉고 그것을 발로 밟는 것을 배교로 여겼다. 수많은 사람들이 배교를 거부하여 순교했다.24

봉천노회는 광복 후에 공적 참회고백을 하면서 작성한 ‘우리의 과거의 연약함’이라는 제목의 고백문서는 “우리는 지금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여러분을 향해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 다만 우리를 그리스도의 교회의 배교자 집단(an apostated branch of the Church)이라고 하여 거부하지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고 말한다.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가 저지른 우상숭배와 여러 가지 이교적인 행위가 변절, 훼절을 한 정도가 아니라 배교였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한다.

신사참배거부운동 지도자들은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조직체로부터 제명되거나 쫓겨난 신자들이다. 그들은 우상숭배를 하고 배교하는 교회에 항거했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배교하지 않는 새로운 교회조직을 만들려고 했다. 기성 교회에서 떠나는 것이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일이며, 떠나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신사참배거부운동교회가 우상숭배를 하고 그것을 강요하는 기성 교회에 항거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한 고백적 행동이었다. 그 교회에 사소한 그릇된 교리가 있거나, 도덕적으로 타락했거나, 교회의 의무를 게을리 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일부 신자들이 우상숭배를 했거나, 불경건하고 방종한 생활이 널리 퍼져 있었거나, 교회 구성원 다수가 죄를 범했다는 것 때문도 아니다.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는 교회조직을 갖고 있었다. 총회, 노회, 당회가 있었다. 의식(儀式), 설교, 성례를 집전하는 목사(사제)가 있었다. 교회당(성전), 신학교, 신학자도 있었다. 예배의식과 형식과 절차가 있었다. 그러나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요건을 잃은 상태였다. 교회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일제 말기 한국교회에 교회의 흔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조직 안에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있었다. 우상숭배하지 않은 일부 목회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베푸는 세례가 있었다. 시골지역에는 변질되지 않은 신앙을 가진 상당수 교회들이 있었다.

칼빈은 “교회 안에 약간의 건전한 부분이 약간 있었다고 하여 그것이 부패한 교회를 참교회로 만들 수는 없다”(IV.2.12.)고 말한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매 주일 신사참배라고 하는 이교예배를 올렸다. 총회, 노회, 연회가 모일 때마다 대표자들은 행렬(行列)을 지어 신사에 찾아가 참배했다. 이러한 우상숭배 행위는 6-7년 동안 계속되었다.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는 칼빈이 거짓교회로 본 종교개혁시대의 로마가톨릭교회보다 신앙고백적으로나 교리적으로 훨씬 더 이단적이었다. 이러한 ‘교회’를 그리스도의 교회로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이다(IV.2.10.).

칼빈의 교회관에 비추어보면 신사참배거부운동이 우상숭배와 미신과 불경건한 교리로 점철된 교회를 거부하고 새로운 교회조직을 갖추려 한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한 행동이었다. 장로 요한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요이9-11)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6:14-17)고 한다. 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라고 한다. 이 말은 우상숭배를 하고 배교하는 교회와 더불어 기구적인 단일성을 유지하라는 뜻이 아니다.

일제 말기의 한국교회와 종교개혁시대의 로마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이탈하고 보편적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분리하고 우상숭배를 하는 교회였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 교회는 신사참배거부운동 항쟁자들이 교회의 우상숭배 명령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제명하고 면직하고 축출했다.

피동적으로 쫓겨난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교회조직을 가지려고 했다. 제1계명과 제2계명을 범하지 않는 참교회를 세우고자 했다.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항하여 독자적인 교회조직을 만든 종교개혁자들과 궤를 같이 한다. 사도성·보편성·통일성·거룩성을 가진 그리스도의 교회를 능동적으로 세우고자 했다.

(이글의 원본이 최덕성 교수님의 '리포르만다'(크릭)에 있습니다. )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덕성 교수는 고신대학교, 리폼드신학교(M.Div, M.C.ED), 예일대학교(STM), 에모리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고, 고려신학대학원의 교수였고 하버드대학교의 객원교수였으며, 현재는 브니엘신학교의 총장이다. ‘신학자대상작’으로 선정된「한국교회 친일파 전통」과 「개혁주의 신학의 활력」,「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을 비롯한 약 20여권의 귀중한 신학 작품들을 저술하였다. 신학-복음전문방송 <빵티비>(BREADTV)의 대표이며, 온라인 신학저널 <리포르만다>(REFORMANDA)를 운영하며 한국 교회에 개혁신학을 공급하기 위해 정열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