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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수가 아직도 능동순종이 정통교회의 신앙(교리)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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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수가 아직도 능동순종이 정통교회의 신앙(교리)라고 해요?
  • 정이철
  • 승인 2020.11.24 0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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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리 교수님은 정통교회가 수 백년 동안 가르친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의 교리를 영구진리로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답변>
영구진리는 오직 성경이고, 우리를 살리고 죽이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눅 20:17,18)

정통 교회란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지키고 실천하고 교육하는 범위 안에 있는 교회입니다. 정통 교회라 부를 수 있는 근거와 기준이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세우고 다스리고 양육하는 성경의 말씀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벗어나는 순간 여전히 정통 교회일 수 있는 교회는 없습니다. 교회가 오래 동안 가르친 것이면 계속 순복해야 하고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로마교회의 이단 사상입니다. 로마 교회는 바로 그 이단사상으로 성경의 완성(계시의 완성) 후 교회가 새로이 만들어 내는 교리들이 성경과 동등한 진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믿음이 영구한 진리라는 이단 사상 때문입니다.

우리는 칼빈의 말이라도 성경에서 벗어나면 간단하게 날려버리는 자세를 가져야 마땅합니다. 칼빈의 말들 가운데에도 의구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들이 종종 있습니다. 다음의 칼빈의 말을 보십시오.

“그가 무흠하게 머물렀더라면 첫 사람은 더 낳은 생명으로 넘어갔을 것이다.”(고린도주석 23:77)

아담이 하나님께 반역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순정의 상태에 머물렀다면, 언젠가 더 고상하고 수준 높은 생명(영생)으로 도약하고 상승하였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사실 칼빈의 그 말의 앞뒤를 자세하게 봐야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오해하지 않고 바르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이 한 문장으로만 보면, 칼빈이 자유주의 신학의 대가 칼 바르트와 유사한 신학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르트는 하나님이 처음에 인간을 부실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존재의 상승(완성)이 필요했다고 했습니다.

칼빈도 정말 그런 사상을 가졌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개혁신학은 다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나 신학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성경에 근거하여 믿음으로 신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신학함 (doing theology, theologisieren)에 있어서 전적으로 계시에 의존해서 하기로 정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 곧 자연이성과 계시를 합쳐서 신학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만으로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신학함에 있어서 이성과 믿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믿음만으로 신학함이 바른 법이다.”(하나님론, 38-45)

성경 어디에도 아담이 범죄하지 않고 그대로 더 살았다면 생명의 도약과 상승을 맛보았을 것이라는 칼빈의 저 말(?)의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아담은 하나님을 즐거이 섬기는 한, 처음의 창조된 상태로 영원한 생명을 영원히 누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언약을 보증하는 것이 바로 에덴동산에 있었던 생명나무입니다.

“신학자의 말과 성경이 맞지 않으면 신학자의 말을 간단하게 날려버리고 성경만 붙들어야 한다!” (정이철)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영원히 붙들어야 할 진리입니다. 유명한 목사들이나 학자들의 말을 따르면 순식간에 망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유명한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이 WEA를 지지하고 천주교를 경계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여 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참으로 교만이 모든 악의 처음이었다는 어거스틴의 단정은 옳다. 사람이 자기의 처지에 만족하고 바른 한계를 넘으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태초의 상태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2.1.4)

“그러나 그 후로 야심과 교만이 배은망덕과 함께 생겨났으니, 아담은 받은 것 이상을 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신 그 위대하고 풍성한 은혜를 파렴치하게 경멸했기 때문이다. 흙의 아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도 또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지 않는 것을 사소한 일로 보았으니 이 얼마나 해괴하고 흉악한 태도였는가!” (기독교강요, 2.1.4)

“아담이 그의 창조주와 연결되어 있던 것이 그에게 영적 생명이 되었던 것과 같이, 창조주에게서 멀어진 것은 곧 영혼의 죽음을 말한다. 아담이 하늘과 땅의 전체적인 자연 질서에 위배했을 때, 그 반역으로 인해서 인류를 파멸에 다다르게 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기독교강요, 2.1.5)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받았을 때에 그 은혜를 감사하지 못했으며, 받은 축복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을 잃어버린 지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하나님을 인정하며 적어도 자기의 부족함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2.2.1)

“성례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더 강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주께서는 어떤 때에는 성례로 약속하신 일을 우리가 믿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성례 자체를 우리에게서 빼앗으신다.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셨다(창 3:22).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이 말씀을 다른 말로 옮긴다면, ‘나의 약속의 상징에 집착해서 헛된 확신을 즐기지 못하도록 불멸에 대한 소망을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그에게서 빼앗으리라’는 말이 될 것이다.” (기독교강요, 4.14.12)

칼빈이 했던 다른 많은 말들을 보면, 칼빈에게 아담이 처음부터 부실하고 잠정적이고 임시적인 생명 안에서 창조되었고, 이후 살면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생명의 도약을 이루었어야 했다는 이상한 사상은 칼빈과 거리가 멀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혹시 태초의 인간의 생명에 관하여 성경이 말하지 않는 사변이 칼빈에게 있었다면, 그냥 간단하게 칼빈의 그런 말들을 무시하고 성경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그것이 개혁신학의 근본입니다. 개혁신학의 원리에 대한 서철원 박사님의 가르침을 보겠습니다. 

 

“종교개혁의 원리들에 의해 성경과 교회의 관계를 보면 교회는 성경에 종속해야 한다. 교회는 말씀에 의해 발생하였고 창조되었으므로 구원진리에 대한 모든 권위는 성경에 있고 성경에서만 유래한다. 교회가 권위를 갖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파하고 성경대로 가르칠 때이다.” (신학서론, 290)

“교회의 권위는 성경에서 나온 이차적 권위이다. 교회가 성경의 권위를 넘어갈 수 없고 언제나 말씀에 종속해야한다. 그때에만 교회는 권위를 갖는다. 또 진리를 가르쳐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교회가 하나님 말씀대로 선포할 때 교회는 말씀 선포자로서 권위와 권세를 갖는다. 성경은 하나님이 저자이시므로 신적 권위를 갖는다. 교회는 이 신적 권위에서 도출된 부차적인 권위를 갖는다. 그 부차적 권위도 성경에 매일 때만 허락되고 정당화된다.” (신학서론, 290)

어떠한 경우에도 교회에게 성경을 능가하는 권위가 없습니다. 능동순종 교리를 수 백 년 동안 정통 교회들이 믿었다고 해도 성경의 근거가 없으면 이제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어떤 공의회에서 믿어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해도 성경의 근거가 없으면 이제 버려야 합니다. 물론 어떤 공의회에서 능동순종을 믿어야 한다고 결정한 적도 없습니다. 성경과 공의회의 관계에 대한 서철원 박사님의 가르침을 보겠습니다. 

“공회의가 항상 바른 교리를 세우는 것이 아니고 성경에 없는 것들을 교리화한 경우가 많다. 가령 연옥 교리, 성도의 중보기도, 입으로 죄를 고백하는 일 등은 공회의에서 정해졌어도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공회의는 성경에 없는 새 교리들을 만들 권세를 받지 않았다." (신학서론, 282)

“칼빈에 의하면 공회의의 성경 해석이 항상 바르고 확실한 것은 아니다 (Institutio, IV, 9, 13-14). 성경에 매여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만 공회의가 바른 해석을 하는 것이고, 공회의로 모였다고 해서 바른 교리를 산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덕에 하나님의 말씀을 종속시키는 것이다. 교회만이 성경의 해석권을 가진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전문가들의 의견에 성경을 종속시킴을 뜻한다.” (신학서론, 282)

만일에 어떤 유명한 학자가 또는 어떤 교단이 능동순종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해도 성경의 근거가 없으면,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그것을 늦게 버릴 수록 하나님의 은혜와 멀어질 뿐입니다. 제가 다시 한 번 청교도 능동순종 사상이 수용될 수 없는 성경적 이유를 설명하고 마치겠습니다.

1)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자신의 영생의 권리를 취득하였고 그것이 믿는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능동순종 교리의 출발은 웨민고백 19장에도 나와 있는 행위언약 신학입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한 영생이 없는 부실한 생명으로 창조한 아담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생명의 도약을 얻을 자격(율법의 선행)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못하여 영원히 죽게 되었다는 것이 청교도들의 원죄론을 내포하는 행위언약 개념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자기의 형상을 따라 영생 안에서 자기 백성으로 창조하시고, 선악과와 생명나무를 담보하여 영원히 아담의 하나님 되고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되기로 언약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스스로 하나님 자리에 앉고자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과 인격을 배반하고 훼손하였으므로 영원한 형벌을 받고 죽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이 자기를 찬송하게 하려고 지은 백성이 사라졌습니다. 인간의 원죄를 이렇게 이해해야 성경적 기독교가 세워집니다.

2)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 율법을 지켜서 영생을 취득했다는 능동순종 교리는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영생의 자격에 동참한다는 청교도들의 은혜언약의 사상으로 연결됩니다. 맞는 말 같으나 심각한 거짓 사상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은 이유는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그 분이 우리의 구원, 우리의 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성경의 이 진리와 아담 대신 율법을 다 지키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 우리의 의라는 청교도 신학의 주장은 전적으로 다릅니다. 우리의 의가 되시고자 하나님(성자 예수 그리스도)이 친히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흠 없는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 분이 우리의 죗값을 하나님께 지불하여 죄인과 하나님 사이의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성령 안에서 믿는 자들을 자신에게로 받아주시어 자기 자신(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사람)의 의를 전가받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결코 그리스도가 지키신 율법으로부터 우리의 의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학자들과 유명한 목사들의 말을 무조건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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