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진실시리즈(3)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아론에게 맡겨두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일을 지내며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는다. 그 사이 백성들은 산 밑에서 아론을 협박(?)하여 금송아지를 만든다. 백성들이 아론에게 요구한 것은 이것이다.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해 만들라(출 32:1)

아론은 백성들에게 금귀고리를 가져오게 해서 그것으로 금송아지를 만든다. 이때의 금귀고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다.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찌라 너희가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출 3:21)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출 12:35, 36)

이렇게 얻은 금이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그것을 가지고 우상을 만든다. 인간은 그런 존재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언제나 배반한다. 배은망덕한 인간은 인간세상에서도 살아가기 힘들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인간은 언제나 배은망덕으로 갚는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민 21:5)

이 원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출애굽 2세대들이다. 거의 40여년을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의 물을 먹은 사람들이다. 출애굽 1세대들은 배은망덕으로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2세대들도 다를 바 없다.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예의바른 척, 신사 숙녀인 척, 겉 모습을 아무리 잘 꾸며도 그 안에는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그것이 타락한 인간 본성인 것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금으로 송아지를 만든 후 백성들은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출 32:4)라고 선포한다. 그리고 다음 날이 여호와의 절일이었으므로 그들은 금송아지를 앞에 놓고 제사를 드린다. 여호와가 금송아지가 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왜 하필 송아지 형상이었을까?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익숙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약 사백 여년 종노릇 했던 애굽의 신 중에 아피스(Apis)가 있다. 황소의 신이다. 애굽 사람들은 새해 첫 날에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제사를 했다고 한다.

인간은 ‘시대정신’의 영향을 받는다. 최근 「목사의 딸」(박혜란, 아가페)이라는 책이 한국 기독교계를 흔들고 있다. 한국 신학의 대들보로 ‘숭상’되어 오던 박윤선 목사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책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적절한 서평(뉴스앤조이 참조)이 나와 있기에 필자는 여기서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는 않겠다. 다만 그 서평에서 결국 “박윤선도 시대의 아들이었다”라는 말이 너무도 적확했다는 것만 말하고 싶다.

그런데 크리스찬은 ‘시대의 아들’이라는 말 뒤에 숨어서는 안된다. 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롬 12:2) 가르친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애굽이었다. 그곳에서 4대를 산다. 기간으로 430년이다. 그곳에서 태어나서 그곳의 문화와 정신에 영향을 받는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 개념에 의하면 일반적인 사람은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시대의 아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크리스찬은 다르다. 크리스찬은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절대적인 삶의 원리가 있다. 결코 시대에 갇혀서는 안된다. 크리스찬은 문화, 전통, 이데올로기 등 그 어떤 것에도 갇혀 있어서는 안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4대를 애굽에서 살았다 해도 애굽의 종교와 문화에 갇혀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금송아지 사건은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의 종교와 문화에 굴복한 사건이다. 문제는 애굽에서 430년을 지낸 사람들만이 아니고 출애굽 이후 최소한 516년이 지난 시대의 사람들도 금송아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 나에게 숭배함이더라(왕상 12:28-30)

사실 금송아지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 나중에 쓸 글에서 밝히겠지만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는 자기가 조종할 수 있는 우상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이 된 인간은 자기 삶을 당신의 주권대로 끌고 갈 신은 필요없다. 자신의 결정을 지지하고 도우며 이루어 줄 능력있는 어떤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우상의 본질이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만든 ‘이 세상 풍속’은 반드시 우상을 만든다. 하나님의 대적자인 그가 만드는 모든 것이 우상이다.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은 대적이 만든 우상에 절하게 된다. 그들을 ‘시대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시대의 아들’이란 신앙의 싸움에서 철저하게 패배한 사람을 묘사하는 말이다.

타락한 인간은 어떠한 시대, 어떠한 문화에서도 ‘금송아지’를 만든다. 그런데 적어도 그것을 ‘은혜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크리스찬은 절대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시대의 아들’은 반드시 금송아지를 만든다. 그것도 ‘은혜로’!!!!!!!!!!!!!!!

하나님은 끊임없이 은혜를 베푸신다. 인간은 그 은혜로 끊임없이 ‘금송아지’를 만들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크리스찬은 ‘시대의 아들’이다. 이들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원리를 모른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끊임없이 ‘금송아지’를 만들 것이다. 오늘날 크리스찬이라고 불리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은 ‘금송아지’이다. 이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끔찍한 진실 세 번째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