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종교개혁 503년 기념 주일이었다고 합니다. 아무 생각 못하고 지나쳤는데,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풍파로 인해 1517년에 일어난 종교개혁을 기념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특별한 교회의 행사들이 현저하게 줄었던 것 같습니다. 종교개혁 주일을 모른체 스쳐 보내고 난 후, 문득 생각나는 중요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데, 어떤 교회나 목회자를 생각하고 쓰는 글이 결코 아닙니다. 어제 어느 교회가 종교개혁 기념 설교나 행사를 했는지 전혀 모릅니다. 진정으로 종교개혁의 의미와 정신을 되살리기를 원하면, 가장 먼저 다시 돌아보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청교도 신앙(신학, 사상)입니다. 종교개혁의 핵심이 무엇인가요? 사람이 자신의 노력과 행위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구원을 위한 사람의 노력과 행위의 중심에 무엇이 있었습니가? 구약의 율법입니다.

초대교회 시대를 지나면서 세상의 잡다한 철학과 사상들과 종교들이 기독교 속으로 밀려들어 왔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는 세상의 주류 종교가 되었고, 출세하기 위해서 기독교인이 되어야 유리해지는 ‘기독교 사회’가 건설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생전에 참된 기독교인이 언제나 세상의 소수일 것이고, 박해받고 미움받는 작은 그룹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좁은 문, 적은 무리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예상(?)과 달리 기독교는 온 세상(유럽)을 아우르는 큰 종교(천주교)로 번성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천주교는 성경과 다른 구원의 길을 가르쳤습니다. 사람이 구원 받기에 합당한 노력과 행위를 해야만 그 대가로 구원이 주어진다고 가르쳤습니다. 구원의 기준이 되는 것이 '율법의 선행'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원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고자 율법의 선행에 주력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도 율법의 선행으로 믿음을 준비해야 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이 시작되고 난 후에 여전히 율법의 선행으로 자신의 구원을 유지하고 완성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났음을 지적하는 것이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어쩌면 아주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하여 주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이 주어진다는 성경의 핵심을 회복한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5-8)

이 말씀을 따라 사람이 구원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죄 용서를 받아 의롭다하심을 얻음으로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고 선포한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율법의 선행은 구원을 받는데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하고, 율법에게는 애시당초 구원의 의를 얻게하는 기능이 없으니 구원을 얻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선포였습니다. 참된 종교개혁자들은 다음의 성경 말씀대로 율법은 오직 사람이 자기의 한계를 알고 그리스도를 고대하게 만들고자 왔다고 가르쳤습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롬 5:13)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롬 5:20)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이 종교개혁의 진리선포를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아 허물어 버린 사람들이 청교도들입니다.

1>
청교도들은 원래 사람(아담)이 구원받기 위해 율법을 완전하게 지켰어야 했는데, 그리하지 못하여 영벌(원죄)에 처해졌다고 가르쳤습니다. 처음부터 기독교의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길은 율법준수라고 가르쳤습니다.

2>
청교도들은 아담이 지키지 못한 그 율법이 이후에도 여전히 인류의 삶과 죽음의 법칙이었고,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율법을 지켜 의를 얻어야 할 것이 요구되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이 그리 못하자, 하나님이 성육신하시어 우리 대신 친히 율법을 다 지킴으로 영생의 의를 얻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얻으신 영생의 의(자격, 권리)를 우리에게 물려주어 우리도 천국에 가게되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구원과 율법이 하등의 상관이 없다고 했는데, 청교도들은 그리스도가 사람 대신 율법을 지켜서 얻은 영생의 권리로 우리를 구원했다고 가르치니,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청교도들의 신앙이 같은 신앙이 아닙니다.

3>
청교도들은 그리스도 자신도 율법을 지켜서 자신의 구원을 이루었다고 믿고 가르쳤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율법에게 구원을 주는 기능이 전혀 없다고 가르쳤는데, 종교개혁 신앙을 물려받은 청교도들은 율법에게 구원의 자격을 주는 능력이 있다고 가르쳤고, 그리스도 자신도 율법을 지켜서 자신의 영생의 권리를 얻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청교도들의 신앙은 같은 신앙이 아닙니다.

4>
종교개혁자들은 사람이 자기의 구원을 위해 준비하고 자격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사람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을지라도(못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믿는 자를 의롭다 여겨지게 만드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구원을 얻기 전에 사람이 (천주교와 알미니안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선재적 은혜의 도움으로) 스스로 죄인됨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를 적용하여 자신이 이신칭의되게 해 달라고 소망하고 갈망하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청교도들의 신앙과 가르침은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의 핵심을 허무는 내용들입니다. 설령 칼빈이나 루터에게서 청교도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빌미가 되는 작은 것들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칼빈이나 루터의 약점과 오류였을 뿐입니다. 루터와 칼빈의 중심 사상으로 인해 교회가 다시 구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으로 회복되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청교도들의 핵심 사상이 종교개혁과 성경으로부터 이탈되었음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금 청교도 신앙을 숭배하면서 종교개혁 503년 기념 행사를 하거나 설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저는 누구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청교도 신앙의 핵심이 성경과 종교개혁의 핵심으로부터 벗어났고, 오히려 성경과 종교개혁을 허무는 사상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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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