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교회는 옹알거림과 CCM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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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교회는 옹알거림과 CCM으로 간다
  • 정이철
  • 승인 2015.02.03 13:19
  •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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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알거림과 CCM 운동은 말씀없는 교회의 증상
이 사진은 본 기사의 내용과 직접 관련되지 않는 일반찬양에 관한 참고 사진임

이 시대의 병들어가는 교회들의 큰 특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하나님을 피부와 감각으로 공기와 물처럼 흔하고 쉽게 경험하게 하는 사이비 은사운동이다. 또 다른 하나는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들뜨고 황홀하게 만드는 노래운동이다. 교회에 들어온 현대의 노래운동이 심각하고 더욱 무서운 이유는 자연스럽게 신자들이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고후 11:4)을 맞이하도록 마취시키는 사탄의 달콤한 포도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서구의 모든 나라들에서 기독교가 쇠퇴하고 있으나 아프리카, 싱가폴, 중국, 남미 등지의 제 3세계에서는 기독교의 부흥이 일어난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내막을 알고 보면 정말 심각하다. 하나님(?)을 싸게 체험하는 사이비 은사주의가 판치고 있는 곳들이다. 사람들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하게 맺히도록 몸을 격렬하게 흔들고, 즐거이 손뼉을 치면서 하나님보다는 자기 자신을 흥겹게하는 술과 마약과 같은 노래를 부르는 운동이 그런 싸구려 부흥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이런 모습은 G12, 두 날개, 알파코스 ... 등의 천박한 부흥을 일으키는 더러운 것들을 도입한 한국의 여러 교회들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하신 신자들 안에 성령으로 내주하신다. 그리고 동시에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초월한 곳에 계시면서, 기록된 계시의 말씀을 통해 신자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을 항상 알리신다. 기독교에서 신자들이 하나님을 성경 밖에서 그렇게 피부의 감각적인 방식으로 쉽고 흔하게, 싸고도 천박하게, 일상적으로 만나고 경험하며 황홀하게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부당하다.

그런데 이미 교회들은 공기처럼 싸고 흔하게, 피부의 감각으로 물처럼 느껴지는 하나님을 가볍고 쉽게 체험하는 괴이한 방식들을 도입하였다. 정당한 기독교의 은사의 명칭을 그대로 도용하면서 침투한 사이비 은사주의이다. 그 중의 대표되는 것이 옹알거리는 거짓방언이다. 옹알거림에 중독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할 때마다 시연하는 옹알거리는 현상을 통해 하나님이 직접 자기의 혀와 생각을 만져주시는 방식으로 자신과 깊고 친밀하게 만나주신다고 여긴다.

옹알거림은 사탄의 큰 선물이다. 사탄은 옹알거리는 현상 등으로 사람들을 사이비 은사주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그 결과는 거룩하신 진리의 하나님과 영구하게 멀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나지 못하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지 못한 죄인의 본래의 운명대로 저주스러운 지옥의 불 속으로 마귀와 함께 들어가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이 사탄의 사이비 은사주의 세계로 진입할 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초기 현상의 대표적인 것이 옹알거리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방언을 모조하면서 다가오기 때문에 분간하기 어렵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에 매료되고 계속 집착하기 때문에 사탄은 그것을 수단으로 삼아 그 사람들을 더 깊은 귀신의 세계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지금도 바르게 배우지 못한 어리석은 많은 사람들이 사탄이 풀어놓은 거짓 은사를 더 잘 작동시키기 위해 힘써 연습하고 있다. 따따따 랄랄라 ... 초보적인 옹알거리는 소리 현상을 더 정교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미련하게도 기도한답시고 매일 자주 실행하여 더 많은 귀신의 정교한 역사가 진행되도록 만든다. 결국 그 사람은 속이는 영에게 점점 깊이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가장 불행한 사실은 그런 사람들이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성령의 신령한 세계에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죽은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 이 악한 자야! 나를 떠나라!"(마7:23)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그들은 귀신의 속임수에 빠져 살았다는사실을 모른다. 그런 비극의 길에서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꼭 들어야 할 말이 있다.

“옹알거리는 거짓 방언은 거짓된 영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귀신의 옹알거림을 성경의 방언이라고 여기고 자꾸 연습하면 악한 미혹하는 영들은 쉽게 그 사람을 더 깊은 거짓 세계로 이끌어 간다. 그래서 옹알거림은 거짓 영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그러나 옹알거림에 이미 깊이 미혹된 사람들은 자신이 진리를 증거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있다고 철저하게 속고 있기 때문에 옹알거리는 귀신의 방언을 기본기로 삼고 영성수련을 길로 매진하면 더 깊은 성령의 세계로 들어가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순진한 착각일 뿐이다.


기독교를 변질시키는 그릇된 찬양운동

귀신들의 사이비 은사에 유린되고 있는 현대 교회들이 더 심각한 사탄의 놀이터로 전락되게 하는 또 다른 심각한 것이 있다. CCM이라고 불리우는 현대의 찬양운동이다. 마귀의 사이비 은사주의가 성경의 정당한 은사들의 명칭을 도용하면서 교회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다루기 어려웠던 것과 같다. 기독교에서 찬양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고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다. 마귀는 이렇게 중요한 찬양을 표방하면서 교회를 공략하였으므로 우리가 알아채기 어려웠고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CCM 운동이 나쁘다고 하면 문제가 조금 협소해지고 CCM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으로 여겨지질 수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 사람들이 쉽게 빠져드는 음악, 그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좋은 수단이기도 한 음악을 사탄이 왜곡하여 이용하였다고 말해야 한다. 사탄은 너무나도 필요하고 당연한 기독교의 찬양을 왜곡하여 교회를 더럽히는 전략을 구사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순결한 모임이어야 할 교회를 사탄은 자기에게 미혹된 사람들이 모여 부담없이 노래부르면서 자기를 즐겁게 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시도했고,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는 찬양도 마음대로 못하게 시비거는 구나!”

유치하게 이렇게 말하면서 비겁하게 물타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모든 찬양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찬양이 교회를 병들게 한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높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리는 정당한 찬양들과 올바르게 찬송하는 모든 노래들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다.

CCM에 대한 나의 속 마음을 이야기하겠다. 나는 CCM이 전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교회에서도 마땅한 인도자가 있으면 CCM 곡들 중에서 적합한 곡을 선별하여서 부른다. 지금은 음악을 전공한 아내가 엄선한 CCM 곡으로 주일 예배 시작 전에 두 곡씩 아내가 피아노를 치면서 나와 함께 경건하게 인도한다. 매주 금요일 밤 청년들과 ‘웨스터민스터 대교리문답’ 공부 시간을 가질 때에도 적합한 CCM 곡을 적당하게 부르고 있다. 

우리가 조심하고 거부해야 할 노래는 하나님의 은혜를 높이지도 않으면서 부르는 사람을 흥분시키고 즐겁게하는 노래들이다. 술이나 마약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를 만들어 내는 그런 사악한 노래들이다. 경배를 받으셔야 할 하나님보다는 집회를 인도하는 강사가 집회를 장악하는 수단이 되는 불건전한 열광주의를 조장하는 노래들을 거부하자는 것이다.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보다는 예배 분위기 그 자체를 고조시키는 결과를 일으키는 노래들이 나쁘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무관하게 근거없이 마치 뭔가 곧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노래들이 사악하다는 것이다. 그런 노래들의 명칭이 CCM이건, 민요이건, 재즈이건, 뽕짝이건, 찬송가이건 ... 그런 것들을 예배 속으로 도입하지 말자는 것이다.

현대의 CCM 곡만 나쁘고 찬송가는 다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같은 노래도 어떤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연주하고 부르는가?에 따라서 귀신의 푸닥거리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 아름다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찬송가 '마귀들과 싸울지라'라는 노래가 어떤 사이비 집단의 집단 귀신체험 시간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실제 장면을 보자! 인도하는 자들은 여러 종류의 악기를 요란하게 동원하지 않고 단지 사람들이 박수만치게 한다. 그러나 박자와 리듬을 비정상적으로 빨리 이끌어가고, 가사의 단순한 특정한 부분을 반복하여 부르게 하며 사람들의 맑은 정신을 와해시킨다. 그리고 곧 이어서 귀신들의 영혼사냥이 시작된다. 아주 단순하고 촌스러운 이 영상은 어떤 종류의 음악이든지 사탄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면 귀신의 인간사냥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현대의 대형교회들은 결코 이런 촌스러운 방식으로 음악을 이용하지 않는다. 언젠가 한국의 문화방송의 'PD수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비기독교적인 초대형 호화건물을 짓는 등의 사회적 논란거리를 일으키는 사랑의 교회 문제를 보도하는 내용을 보았다. 오정현 목사가 특별새벽기도회라는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인도하여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는 내용과 함께 특별새벽기도회 시간에 오정현 목사가 직접 강단에 서서 활기차고 아주 흥겹게 찬양을 직접 인도하는 장면도 스쳐지나갔다.  

오정현 목사는 현대의 찬양운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예배를 다이나믹하게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목회자이다. 대략 14년 전 남가주 사랑의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였을 때, 사탄을 칭송하는 내용이 많은 아주 감미롭고 익사이팅한 복음송을 예배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오정현 목사가 앞장서 이끌어가면서 온 교회가 하나되어 부르는 장면을 경험했다. 그때는 나도 몰랐고 일어서서 크게 따라부르며, "이 교회는 정말 찬양이 좋은 교회이구나!"라고 감탄했다.

다양한 악기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팀을 이루어 노래를 부르고, 세련된 외모와 탁월한 노래 실력을 가진 담임목사가 더 앞장서서 자신있게 그 노래를 이끌어가면 누구인들 그 예배에 대해 "조-옷습니다!"라고 감탄하지 않겠는가? 노래를 탁월하게 잘하는 목사가 앞장서 부르면서 음악 재능이 뛰어난 찬양리더들의 화음과 여러 현대의 악기들의 웅장한 연주를 배경으로 예배에 참여한 수천명의 사람들이 일어서서 손을 들고 함께 따라 부르게하면 감동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누구인들 그런 교회에 나가는 일이 즐겁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문제는 그 정도가 아니고 그 이상이다. 그런 종류의 찬양을 경험하면서 마음의 흥분을 느끼는 신자들이 어떻게 서서히 변화되어가는가? 이것을 생각해 보자! 그 교회와 목회자가 추진하는 일들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병사들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사람은 자기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는 존재이다. 마음에 불을 질러 놓으면 누구도 못 말리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런 인간들에게 좋은 목소리로 선창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러 악기소리를 배경으로 하여 여럿이 함께 모여 손을 들고 몸을 흔들면서, 심지어 요란스러운 조명까지 돌려대면서 불러대는 요즘 CCM 곡들은 묘약이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종하는 신묘한 비결이고, 그 결과 교회가 더욱 활기차게 돌아가게 된다. 이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CCM은 사람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뭉치게 만들고, 그 교회를 사랑하는 감정을 품게 만드는 엄청난 능력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모으고 단합시켜 교회를 키우는 것이 나쁜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무엇일까?

"기독교가 그렇게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요리하는 종교인가요?"

바로 이 질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이 땅에 뿌린 기독교의 복음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사도들이 시작한 기독교 운동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전개되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노래를 통해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여 교회를 키우고 성장시키는 방식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사역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 방식으로 성령의 역사와 부흥이 나타난다는 증거를 성경과 사도들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역사에서 찾을 수가 없다.

왜 무당의 굿에서도 음악이 중요할까?

오히려 노래운동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조작하는 것은 그곳에 사탄의 임재를 부르는 사악한 방법이다. 무당들이 신을 사람들 앞에 소개하고 대나무를 잡기 전에 어떤 일을 하는지 본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알 것이다. 귀신을 부르는 무당들이 왜 먼저 자기의 감정을 고조시키는지 생각해 보라! 그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고조시키면서 귀신의 임재를 준비라는 가장 좋은 수단은 음악이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면서 무당들을 초대하여 굿하는 집들을 보았다. 조용히 그 집 주인의 괴로운 사정을 알아보고 상담하다가 귀신을 부르는 무당은 없다. 반드시 먼저 징, 꽹과리, 장구, 피리 등의 악기로 귀신이 임하는 굿판이 무르익도록 요란하게 효과를 만들어 낸다. 돌아다니면서 굿하는 무당 일행 속에는 음악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팀을 이루고 있다. 그들의 특이한 음악이 없이 홀로 조용하게 귀신을 불러오는 무당의 굿을 나는 보지 못했다. 음악과 노래가 부족하면 무당들은 소주를 겸하여 마시면서 귀신의 임재를 준비한다.

왜 그럴까? 인간의 정신이 맑고 고요하면 귀신이 인간 속으로 임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으로 위장하는 귀신의 행동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대나무가 확실하게 떨려야 넉넉하게 돈을 받을 수 있으므로 무당은 귀신을 충만하게 접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한다. 요란하게 징, 꽹과리, 장고, 소고, 피리 등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그것으로도 모자라면 소주를 마신다. 그래야만 자기의 본래의 정신에서 벗어나 귀신이 좋아하는 정신 모드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못하면 그들의 굿판은 망하다.

요즘 어떤 찬양사역자들을 꼭 그런 방식으로 예배의 성공을 경험하려는 하는 것 같다. 무당들처럼 잔양을 인도하면서 예배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찬양 인도자들이 많다. 기독교의 찬양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찬양 인도를 하는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좀 심하게 말해 신세대 무당들에게 양복을 입히고, 마이크 들려주고, 교회의 용어들과 분위기를 미리 가르쳐 연출하게 하는 것 같다.

요즘의 신세대 무당들은 어떤 악기와 어떤 노래를 부르면서 신내림을 준비할까? 여전히 옛날의 장고, 소고, 피리, 징, 꽹과리만을 고집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요즘 귀신들은 드럼, 키보드, 신즈싸이즈, 전자 기타, 베이스 기타 등에서 나오는 소리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신세대 무당들은 악기도 바꾸었을 것이다. 서너 명의 보조 무당들이 여러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과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귀신의 임재를 준비하면 귀신들이 어색하다고 할까?

교회에서 연주되는 노래가 전부 하나님이 받으시는 좋은 찬양이라고 우리가 믿는다면, 사탄은 엄청 좋아할 것이다.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노래가 찬양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높이는 노래가 찬양이다.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을 명확하게 드러내면서 부르는 노래가 찬양이다. 분명한 기독교적인 의미가없는 노래 말에 굉장한 고음과 격렬한 비트, 또는 감정을 자아내는 음률을 붙였을 뿐인데, 어찌 그런 노래들이 기독교의 찬송이라는 것인가? 그것들은 사람을 흥분키시고, 사람의 마음을 조작하고, 모임의 분위기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술과 마약의 또 다른 형태이다.

어떤 사람은 생맥주를 마시고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기도를 해 보았더니 잘되더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담배를 피우면서 큐티를 하니 더 잘되었다고 말했다. 마음의 흥분과 분위기를 조장하여 기독교와 비슷한 특징이 얼마든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기독교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다.

기독교는 흥분과 감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죽었던 나를 살리기 위해 행하신 일들을 알고, 믿고, 그리고 남은 인생을 그 사실에 기초하여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이다. 그것은 오직 계시된 말씀과 말씀을 우리 삶속에서 이루어지도록 역사시는 성령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그런데 오늘 날의 찬양운동은 이러한 기독교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불건전하고 위험한 노래운동을 도입하지 않는 교회는 더 이상 사람들이 찾아갈 수준이 되지 못하는 뒤처진 교회가 되어버리는 시대이다. 

지금은 몸 사리지 않고 싸워야 할 때

이제 이런 찬양운동의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완고하게 굳어져 버린 줄 알았다. 현대의 교회는 더 이상 그릇된 찬양의 문제에 관해 돌이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여겼다. 찬양의 문제를 다루는 내용의 글을 바른믿음에 올리고서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중요하고 위험스러운 CCM 운동”이라는 글이 처음 한 동안 잠잠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폭팔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그 동안 드러나게 표현되지 않았을 뿐이지 관심과 염려가 많았다는 것이다. 아무 댓들이 없는 것은 독자들 대부분이 스마트 폰과 테블릿으로 Face Book을 통해 그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스마트 폰과 테블릿으로 바른믿음의 모바일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댓글을 남기를 공간 자체가 뜨지를 않는다. 미국의 위스콘신에 있는 어떤 음악대학의 교수님께서도 CCM 운동의 문제점에 대해 정확하고 담대하게 글을 써준 것이 고맙다고 메일을 보내오셨는데, 그 분도 역시 스마트 폰의 Face Book을 통해 읽으셨다고 했다.

지금은 진리를 위해 몸 사리지 말고 싸워야 할 때이다. 온 세상 교회를 장악하고 있는 옹알거리는 거짓 방언의 정체를 드러내는 싸움을 공개적으로 시작할 때에는 마치 집채보다 더 크고 견고한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작은 정과 망치 하나로 두드리는 심정이었다. 바위가 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튀어나오는 파편이 나의 얼굴과 눈에 파고들어 내가 장애를 입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크고 견고한 거짓의 바위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으면 작은 아이의 진리의 정과 망치로 인해 언젠가는 반드시 금이 벌어지고 결국에는 수박처럼 쩍 벌어지고 말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밀어부쳤다. 지금도 그 확신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감사하게도 이전에 비해 상황이 달라지고 있는 현실을 느끼고 있다. 진리의 하나님은 분명이 살아계신다. 만일 우리가 이 싸움의 결과를 살아서 보지 못할지라도 낙심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죽은 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을 칭찬과 상급을 크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높이지 않고 교묘하게 사탄을 칭송하고, 부르는 사람을 흥분시켜 귀신의 임재를 준비하게 만드는 그릇된 찬양운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할 말을 하며 싸워야한다. 이대로 용납하지 않고 거부하고 싸우는 자세가 우리의 신앙의 살아있음과 진실성의 증거이다. 얼마나 큰 성과를 보느냐?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하나님 앞에서 합당치 못한 것이면 마땅히 치우고, 쪼개고,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마땅한 자세이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그릇된 찬양 운동에 대해서 관심가지고 마음과 힘을 합하는 많은 분들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정이철 / 앤아버 반석교회 담임
         앤아버 유학생 바른믿음 학교 대표
         신학싸이트 '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에서 수학했고, 현재 미시간의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와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계속 연구한다.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를 출판하였고,「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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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st 2019-02-17 14:02:57
제가 청년이던 90년대부터 교회와 교계에서의 찬양사역을 보면서 이게 과연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인가 늘 의문이 들었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스타 목회자들도 기독교 청년들의 분위기에 단 한마디도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무조건 수용만 하고 전부 다 따라가는걸 보면서도 저 목사님들의 목사로서의 솔직한 속마음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 하기도 했었습니다. 목사님의 시리즈글을 읽으면서 이런 분석을 하고 이런 말을 하는 목사님도 있긴 있구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말씀을 하는 목사님은 처음 봅니다. 감사합니다.

shinyslow 2018-12-10 00:38:31
주일아침 속회 찬양 준비중 올리신 글을 접하면서 많은것을 고민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단체 그룹의 진정성과 방향성에 대해서 정말 판단하기 힘든 세대인듯 합니다. 나 자신만 주님과의 관계를 고민해야 할 때인가 봅니다... 그래도 글 쓰신 목사님처럼 여러 깨어있는 분들의 글이 올라와서 저같이 작은 믿음자들이 보고 한번쯤은 멈춰 고민하고 점검할수 있는 기회를 주시니 감사할 따름 입니다.

지나가던이 2015-06-28 12:15:34
포스팅에 예배 음악에 대한 음악미학적 고찰이 있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생길 것 같습니다.

김태용 2015-05-07 13:14:11
제 말씀은 CCM을 장르로 보면 안된다고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CCM은 크리스챤들의 음악이고 그것이 락이던 메탈이던 재즈이건 상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곡의 가사에 하나님과 예수님이라는 가사가 있다하더라도
만들고 부르고 사용하는 사람이 자신의 유익과 희락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들은 크리스챤이 아니고 또한 그 음악은 CCM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다시말해 나쁜 CCM, 또는 좋은 CCM 이라는 용어에는 모순이 있는것 같아 글을 써 보았습니다. ^^ 하나님을 믿고 또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써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신성민 2015-04-16 22:45:38
4,3일에 쓴 제글이 삭제 되었네요. 언론의 자유가 있듯 타인의 의견 또한 경청할 수 있는 자세가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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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렷을 적에 다이던 교회에서 예배 시간에 드럼과 전자 오르간 전자 기타로 찬양하며 뜨겁게 통성기도를 한다하여 좀 유별난 교회라고 심지어는 이단이라고 까지 비아냥거림을 당했다. 감정적인 흥분에 치우친 찬양 내 기분에 도취한 들뜬 기도는 지양해야한다.
그러나 이미 수천년전 고대 근동지방의 다윗도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 했고 심징어는 춤을 추기까지 했으며 시와 신령한 노래까지 불렀다.
거룩 거룩 거룩을 강조한 한시간짜리 예배, 찬송 몇곡 부르고 대표기도 한번하고 나의
신앙적 필요와 거리먼 신학적 철학적 교양있는 말씀 20분 듣고 돌아가는 예배 그것이야말로 마귀적인 거짓 예배가 아닌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 하나님 앞에 가난한 마음, 긍훌에 마음으로 예배할때 어찌 춤추지 안으리? 어찌 감격의 노래하지 안으리? 어릴적 그 작은 예배당 그러나 뜨거웠던 성렬의 열기가 늘 나를 깨웠던 그 예배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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