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내전(청교도혁명)의 결과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왕당파의 국교회 군대와 의회파 청교도 연합 군대의 싸움이었던 1차 내전(1642-1646)은 국교회 군대가 궤멸되고 찰스 1세가 포로 됨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예상치 않게 잉글랜드의 회중교회파 신자인 크롬웰 장군과 주로 회중교회파 청교도들로 구성된 그의 군대가 가장 큰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2차 내전(1648-1649)은 포로가 된 찰스 1세의 처리 문제 등으로 인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장로교도들과 잉글랜드의 회중교회파 청교도 군대 사이의 불화로 인해 시작되었다. 크롬웰의 군대가 잉글랜드의 장로교회주의 청교도 세력을 실질적으로 궤멸시켰다. 두 번이나 의회를 무력으로 점령하여 모든 장로교주의자을 추방하고 회중파들만으로 의회를 구성했다. 이후 잉글랜드에서 다시는 장로교 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회중교회 신자 크롬웨와 그의 회중교회  군대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까지 군사적으로 장악하여 실질적으로 회중교회 신자 크롬웰 장군의 1인 지배 구조가 형성되었다.

3차 내전(1649-1651)은 크롬웰의 군대가 아일랜드의 천주교도들의 봉기를 진압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스코틀랜드의 장로교도들이 찰스 2세를 왕으로 옹립하려고 하여 크롬웰 군대가 스코틀랜드를 두 번째로 정복하고 장로교회를 억압하고 회중교회 제도를 강요하게 되는 결과를 야기했다.  

결국 가장 소수였던 잉글랜드 회중교회파 청교도만 살아남고, 그 이전에는 다수였고 튼튼했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는 말살되었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의 결론이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1차 내전(1642-1646년)과 함께 시작되었고 2차 내전 중에 목표하였던 모든 작업을 완성하고 폐회했다. 1643년 왕당파의 국교회 군대와 전쟁을 시작한 잉글랜드 의회가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소집한 이유는 아일랜드, 웨일즈,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 세력을 하나로 연합시켜 하나의 개혁된 교회를 국교회를 함께 대적하고 동시에 국교회를 대체할 하나의 개혁된 교회, 즉 하나의 청교도 연합교회를 세우고자 함이었다. 그 일을 시작한 사람들은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이었으므로 장로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인데, 엉뚱하게도 수적으로 가장 열세였던 회중교회가 전체 영국을 지배하게 되었다.

프랑스 개혁교회의 회중교회주의 이단 규정

그런데 프랑스의 칼빈의 후예들은 이미 1571년에 회중교회 사상을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세운 교회는 장로교회이지 회중교회가 아니다. 프랑스의 개혁교회와 칼빈주의자들이 모렐리라는 인물이 주장한 회중교회 사상을 이단 사상으로 판정하고 관련된 서적을 모두 불태우고 관련자들을 모두 추방하였다. 그런데 청교도 운동은 영국에서 장로교회는 말살하고 장로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회중교회를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웨일즈), 아일랜드에 전파하는 결과를 낳았다.

개혁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무리들이 개혁교회(장로교회) 말살하는 사탄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인데, 청교도 운동이 최고의 기독교 신앙 운동이라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넘친다. 대체 왜 이렇게 이상해졌을까?

청교도 운동이 이단으로 규정된 교회 정치만 전체 영국에 전파했다면, 그래도 심각성이 덜하였을 것이다. 청교도 운동이 단지 회중교회주의만 영국과 신대륙에 전파하고 끝난 것이 아니다. 잉글랜드에서 회중교회주의과 언약신학은 함께 출생했다. 아담이 자기의 영생을 위해 스스로 하나님이 마음에 기록하여 주신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면, 하나님이 그 대가로 그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약속했다는 ‘행위언약’ 사상이 회중교회주의 청교도들의 신앙의 노른자이고 출발점이다. 그 신학으로 사람이 자기의 구원을 위해 자기의 조건과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청교도들의 경건, 즉 종교개혁을 다시 개혁하는 위대한 청교도 운동을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행위언약 개념이 산발적으로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청교도주의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가 1590년대 초에 행위언약을 공식적으로 도입하여 새로운 방향의 청교도 운동을 시작했다. 퍼킨스의 언약 사상이 서서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 청교도들에게도 전파되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 청교도들에게서도 행위언약 사상이 수용되었으므로 훗날 웨민고백에도 그것이 어려움 없이 삽입될 수 있었다.

행위언약 사상은 기독교의 근본을 허무는 독이고, 칼빈과 종교개혁 신앙의 무너뜨리는 쥐약이다. 행위언약 사상을 버리지 않으면 올바른 기독교 신앙을 절대로 서지 못한다. 행위언약을 버리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도 따르게 되고, 회심준비론 목회도 반드시 해야 한다. 회중교회주의 청교도들이 기독교를 허무는 사탄의 강한 무기였다는 것은 역사를 돌아보면 분명하게 나타나는 사실이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잉글랜드 회중교회주의 청교도들은 청교도 혁명(잉글랜드 내전)이전까지는 부지런히 책들을 써서 거짓된 언약 사상을 다른 청교도들에게 전파하여 서서히 칼빈의 종교개혁을 허물었다. 그리고 혁명이 일어나자 군대로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더 바르게 계승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을 말살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냉철하게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이러한 실상을 제대로 파악한 신학자가 거의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청교도 운동 연구에 관한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할 수 있는 로이드 존스는 여기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지 보자.

“1650년에 스코틀랜드의 장로교도들은 후에 찰스 2세가 된 찰스 왕자와 결탁하였고, 그를 프랑스에서 데려 왔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전쟁이 있었는데, 그 전쟁은 왕당파와 장로교 지지자들이 우스터(Worcester) 전투에서 참패를 당함으로써 다행히 종식된 전쟁입니다. 장로교도들이 그러한 부류 속에 들어가고,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서 있어서 자기들과 그처럼 완번한 조화를 이루는 사람들과 대항하여 싸웠으니 비극적인 일이 아닙니까?”(로이드 존스)

로이드 존스는 서로 같은 신앙을 가졌던 장로교회파 청교도들과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이 이와 같이 심하게 싸우고 한쪽을 궤멸시켜 버리는 결과가 나올 정도로 심각하게 투쟁했던 이유를 찾지 못하고 다만 슬퍼하였다. 로이드 존스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면 사보이 선언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 차이는 무시해도 좋을 만한 것입니다. 이 둘은 믿음의 대요들과 믿음의 접근 방식 그리고 믿음의 함축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같은 입장입니다.”(로이드 존스)

로이드 존스는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이 장로교회파 청교도들과 함께 작성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이미 있음에도 굳이 따로 자신들만의 ‘사보이 선언’(Savoy Declaration, 1558년)을 작성한 이유를 바르게 보지 못하였다.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의 신학과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의 신학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보지 못한 로이드 존스는 단지 세상 정치에 관한 입장의 차이 때문에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이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을 전쟁으로 말살시키는 일을 자행했다고 보았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같은 신앙을 가졌고 같은 영의 지배를 받는 형제였다면 그 지경으로 심하게 싸우면서 상대를 몰살시켰을까? 지금까지 아무도 이런 부분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회중교회파 청교도들과 장로교회파 청교도들 사이에 어떤 신앙의 차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연구하지를 않았다.

다음의 인물들과  책과 칼로 성경,종교개혁을 공격한 회중교회주의 청교도 신학의 관계를 연구해 보기를 바란다.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 1576-1633)
폴 베인즈(Paul Baynes, 1573-1617)
리처드 십스(Richard sibbes, 1577-1635)
존 코튼(John Cotton, 1585-1652)
존 프레스톤(John Preston, 1587-1628)
존 오웬(John Owen, 1616-1683),
리챠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
토마스 굿윈(Thomas Goodwin, 1600-1680)
존 하우(John Howe,1630-1705)
스티븐 차녹(Stephen Charnok, 1628-1680)
존 번연(John Bunyan, 1628-1699)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 1620-1686)
토마스 브룩스(Thomas Brooks, 1608-1680)
메튜 폴(Matthew Poole, 1624-1679)
토마스 맨톤(Thomas Manton, 1620-1677)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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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