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3 07:19 (금)
유창형 교수 능동순종 논하다 스스로 이단시비 만드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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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형 교수 능동순종 논하다 스스로 이단시비 만드는 상황
  • 정이철
  • 승인 2020.09.24 04: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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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형 교수(한국 칼빈대)
유창형 교수(한국 칼빈대)

 

부탁>
유창형 교수가 쓴 논문을 알려드립니다. 서 박사님과 정이철 목사님에 대한 왜곡이 들어있다고 보입니다. 목사님이 그냥 있으면 안 되고, 문제점들을 교정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답변>
네 ... 보고 그냥 넘어갔었는데, 이렇게 염려하시고 당부하시니 진리를 위해 부득이 다시 나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백스터, 웨슬리, 서철원, 정이철을 함께 묶는 묘함

리차드 백스터와 존 웨슬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완전한 의를 부정하고, 이후 사람의 행위에 의해 구원이 완성되기도 하고 다시 와해되기도 한다는 주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이건 십자가이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한 의를 얻는 것을 부정했던 고약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백스터는 청교도 구원론 이단으로 거론되는 사람입니다. 

서 박사님과 정이철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이 영원히 완성된다는 주장을 강하게 합니다. 다만 우리의 구원의 의가 그리스도의 율법의 선행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의로우신 그리스도의 평생의 순종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한 죄 용서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서 박사님과 저를 백스터와 웨슬리에게 묶어 두는 것은 상당한 꼼수입니다. 개혁주의자가 아니라는 인상을 주려는 것 같습니다. 마치 여성안수에 대해 연구할 때, 여성안수를 지지하는 일반 목회자들을 여성안수를 지지하는 동성애지자들, 차별금지법 찬성자들과 섞어서 나열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성안수를 지지하는 유창형 교수를 그들과 함께 나열하면, 독자들은 유창형 교수와 동성애자들과 차별금지법 지지자들이 유사하다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능동순종에 관한 논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영원한 칭의를 기본적으로 확신하는 개혁신학자들끼리의 비교하는 선에서 논의해야 정당합니다. 개혁주의자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서 박사님과 저를 비교해야 마땅합니다. 그래야만 정당한 학문의 방식인데, 정도에서 벗어났습니다. 
 

서 박사님의 책 <복음과 율법의 관계> 인용 

서 박사님의 이 책은 초기의 저술입니다. 저도 이 책을 읽을 때, 서 교수님이 아직 능동순종 교리에 대한 문제 의식이 분명하지 않으실 때 쓴 책이라는 사실을 감안했습니다. 서 박사님의 능동순종의 비성경적인면들을 지적하는 내용을 논의할 때에는 서 박사님의 후기의 작품들을 주로 참조해야 합니다. 박형용, 박윤선 박사님에게 배우셨으므로 초기에는 그대로 따라갔었으나, 나중에 그 부분에 대한 신학이 달라지셨습니다.
 

유 교수의 정이철 목사에 대한 오해

유창형 박사님의 글에서 저에 대한 사실과 다른 많은 왜곡이 나타났습니다. 382 페이지로 표기된 부분을 보면, (기독교강요의 내용을 인용하는 부분에서) 유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정이철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함으로 의의 전가가 가능했다는 뜻으로 해석함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얼핏보면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함이 그리스도가 율법에 능동적으로 순종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이철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나누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복종하는 모든 과정이 의의 전가되었다구 한 것이다.”(유창형)

유 교수는 논쟁의 근본 핵심을 간과한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에 순종하신 것을 능동순종이라고 말하느냐 마느냐가 핵심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의를 주신 방법이 율법준수였는가? 우리의 죄를 대신 짋어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평생의 순종과 의로운 삶과 그리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이루신 죄용서인가? 이것이 이 논쟁의 본질입니다.

저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가신 순전하고 의로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로 이루신 죄용서가 우리의 칭의라고 믿습니다.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율법준수(능동순종) 그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유대인으로 합당한 문화와 율법과 규례들을 따르셨고 파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의 의를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실패한 부분을 답습하지 않고, 모든 지상 생애의 모든 악 조건들 속에서 언제나 순종하셨고 의로우신 삶을 사시었고 최종적으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아무렇게나 사시다가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사하셨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그리스도가 능동순종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연히 능동순종했으나, 그것이 그리스도에게 구원의 의를 주었다는 이단적인 의미로서의 능동순종 교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383 페이지를 보면, 유 교수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정이철의 처음 주장에서 성경에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전가라는 용어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되어서’라고 말하는 성경 구절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교리를 지지하는 구절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유창형)

여기서도 유 교수는 엉뚱한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이라는 용어가 성경에 있는가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 같이 말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히 무시하셨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평생의 순종과 의로우신 삶 속에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이 다 있다고 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생애 동안 언제나 하나님께 순종하셨고, 율법을 파괴하는 행위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가 구세주의 자격을 획득하는 과정이었거나, 그리스도 자신의 구원의 자격을 획득하는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속죄의 길을 가시는 과정이었습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그 순종의 공로로 우리가 죄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의 공로가 우리에게 전가된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 자신의 구원의 자격이 되었거나, 구세주로서의 자격을 보충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제가 거부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키심으로 자신의 영생의 의를 얻으시고 우리에게 전가하셨다는 이단사상으로서의 청교도 능동순종 교리입니다. 그리스도가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파괴하지 않으셨고, 평생의 순종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 안에 율법준수도 당연히 있습니다. 유 교수님께서 아직 핵심 개념을 못 잡으신 것 같습니다.
 

384 페이지에서 유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약 신호섭과 정이철의 주장처럼, 그리스도께 본질로 속한 의가 우리에게 전달된다면, 그리스도가 평생한 순종은 별로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의롭게 태어났고 살아있는 동안에 항상 의로웠기 때문에 아무 때라도 그의 본질적인 의로 속죄 제물을 드려서 우리를 무죄하게 만들고 의롭다고 선언 받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많은 생애 동안 순종하신 후에 장성한 상태에서 속죄 제사를 드렸는가 하는 의문이 따른다.”(유창형 교수)

유창형 교수의 이 말은 자칫 그리스도가 율법의 선행으로 구세주로서의 적극적 자격을 획득하지 않고 일찍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면, 우리가 천국에 못 간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 용서는 가능하지만, 천국에 입성하게 할 적극적인 의가 없으므로 죽은 후 우리 영혼이 우주를 떠돌게 된다는 말과 같으므로 심각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본질로서 존재한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칼빈과 신호섭 교수와 정이철의 설명을 부정하는 유 교수의 자세는 심각한 이단 시비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후 구세주의 충분한 자격을 위해 무엇을 보충하고 획득해야 한다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석가모니보다 더 위대한 분으로 전락합니다. 이것은 이단시비 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1)

성경은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노력하시어 우리의 의와 거룩함이 되시었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의가 되시고자 죄와 무관한 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성자께서 자기의 인격을 마리아의 태중에 성령으로 잉태된 그 무죄하고 의로운 사람에게로 연합시키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성육신자는 우리와 같은 혈육이나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완전한 자격, 즉 처음부터 완전히 의로우셨던 분입니다. 

유 교수의 주장은 그리스도가 만일 25살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면 우리의 구원이 일어났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구세주께서 석가모니처럼 이 땅에 충분하게 오래 사시면서 구세주의 자격과 공덕을 쌓기에 필요한 시간과 삶의 양을 확보하셨다는 주장이므로 이단 시비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러면 제가 유창형 교수에게 에게 물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3년 일찍 죽으셨으면, 또는 더 오래 사시면서 더 많은 율법의 순종을 이루시고 십자가를 지셨으면, 그것이 우리의 구원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다음의 성경 말씀들이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구세주로서의 공덕을 쌓기 위해 이미 충분한 시간과 삶의 길이를 가지셨음을 전제하고 하시는 말씀들일까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리스도께서 아무렇게나 사셨을지라도 십자가만 지셨으면 우리의 죄용서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서 박사님과 저도 그렇게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일정 기간 충분하게 율법을 지키면서 잘 살았으므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진 그리스도의 목숨과 피가 충분한 효력을 발휘했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 오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순종하시었고 언제나 거룩하고 의로우셨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대속의 죽으심을 만족하게 받으신 것이라고만 설명해야 합니다. 어떤 모양이건,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키는 순종의 삶으로 영생의 의를 만들었다는 주장을 하면 안 됩니다.  

유 교수는 왜 이런 논란이 나오는지 속히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충분하신 의로우심이 그리스도 안에 처음부터 이미 그 분의 본질로서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죄인들처럼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음욕, 간음, 살인, 도둑질 등의 율법이 금하는 죄들과의 내면적인 투쟁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 죄인들과 같이 점진적으로 거룩해지는 성화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안에 그 분의 본질로서의 의가 충만하셨고, 그래서 그의 죽음이 우리의 죄를 속하는 죽음이 되었고, 그래서 그를 믿는 우리가 그의 의에 힘입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효력을 가지게 된 근본 원인은 그리스도가 처음부터 본질적으로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지상에 사시면서 행하는 율법 순종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효력이 비례관계를 가진다면, 대체 그리스도가 얼마나 많이 율법 조문들에게 순종해야 십자가의 효력이 나타나는 것인가요? 리스도가 석가모니처럼 지상에서 살면서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거룩을 이루어가야 했다는 것인가요?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비교적 오래 사시면서 모든 일에 하나님께 순종하신 것은 아담과 우리의 죄를 자기의 몸과 피로 배상하신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또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가는 속죄의 언린양으로 마땅한 길을 가신 것입니다. 그 이상으로 말하면 안됩니다.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우리가 칭의를 얻었다는 짧은 성경적 진리 속에 또 다른 중요한 진리가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처음부터 본질로서 존재한 의가 십자가로 죄의 담이 무너짐과 함께 우리의 의로 인정됨으로 칭의가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충분한 행위를 실천하여 얻으신 자격으로 얻으신 의가 우리의 것이 되어 칭의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받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그리스도 안에 그 분의 본질로서 거하던 의가 우리의 것으로 인정된 것입니다.

통상 여기까지 길게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피로 얻어진 죄용서가 우리의 칭의라고 말하는데, 정확하게 거기까지 말하면 더 좋습니다. 십자가로 죄의 담이 허물어지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에게 그리스도가 살면서 쌓은 공덕이 전가된다면, 그리스도와 석가모니가 매우 유사해집니다. 그리스도가 속죄의 어린양으로 오시어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처음의 아담과 달리 언제나 순종하고 언제나 의롭게 하시다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하심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죄의 담을 허무셨습니다. 동시에 저절로 그리스도의 자신의 의가 우리의 의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친히 자신이 우리의 의가 되시려고 성유신하셨습니다.  무슨 행동으로 의를 구비하신 후 우리에게 의가 되시려고 성육신한 것이 아닙니다.  

 

396 페이지에서 유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정이철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 교리를 말하는 성경 구절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통상적으로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교리를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구절은, 로마서 5장 18, 19절이다 ... 이 구절은 예수의 모든 순종이 우리의 순종으로 전가됨으로 우리가 의인이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유창형)

지금 유 교수는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 자신과 우리의 영생의 자격을 얻었다는 이단 사상을 지지하는 것인가요? 유 교수 자신의 입장이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5장 18, 19절이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 얻으신 영생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말씀이 맞습니까?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8.19)

이 구절은 하나님 백성으로 살기로 언약했던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 반역하여 영원한 저주를 받았으나, 둘째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려 참인간이 되신 후 인간으로서도 여전히 평생을 언제나 거룩하고 의로우시게 사시다가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심으로 우리가 의로움을 얻었다는 말씀일 뿐입니다.

 

403 페이지에서 유 교수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정이철이 <기독교강요>에서 몇 단락을 놓치고 있다. 그런 부분은 다음과 같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이 참 사람으로 오셔서 아담의 인격과 이름을 취하여 아담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순종을 이루시며, 우리의 육체를 대표하여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만족시키는 값으로 내놓으시고, 그 육체로서 우리가 치러야 할 형벌의 값을 치르셨다.’(기강요, 2.13.3).

위에서 중요한 표현은, “아담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순종을 이루셨다”이다 ... 아담이 불순종해서 얻지 못한 의를 둘째 아담이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얻으셨다는 칼빈의 직접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유창형)

여기서도 유 교수는 스스로 이단성 시비를 일으키고 있습니다다. “아담이 불순종해서 얻지 못한 의”라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일까요? 영생과 무관하게 창조된 아담이 영생의 의를 얻기 위해 율법을 지켰어야 했다는 것입니까? 아담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여 의를 얻지 못하였음이 하나님의 저주의 원인이라는 뜻입니까? 그렇다면 이것도 이단 사상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 교수는 하나님의 창조의 완전성을 부정하는 이단적인 주장을 정말 하고 있는 것이 맞습니까? 정말 아담은 영생을 위해 율법의 의를 얻어야 하는 불완전한 상태로 창조되었습니까? 그것이 과연 성경의 가르침이고 칼빈의 가르침인가요?

또한 여전히 같은 반복되는 문제가 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평생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셨고 율법을 파괴하셨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정이철이나 서 박사님이 이런 주장을 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반역죄를 해결하시는 죄의 배상물이 되시기 위해 아담과 달리 평생 순종하셨고, 평생 거룩하게 사시다가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이 서 박사님과 정이철의 핵심 주장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모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고 언제나 의로우셨습니다. 잠시도 죄악된 생각이나 반응, 욕구, 충동도 가지시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이미 처음부터 의로우셨으므로 율법에 순종함으로 자신과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의(영생의 자격)를 더 얻으실 필요가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핵심주장입니다. 
 

맺는 말>

이제 다음의 말로 마치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자신과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의를 얻었다는 청교도 신학의 능동순종을 지지하면 반드시 다양한 이단 사상에 연류되게 됩니다. 능동순종을 지지하려는 논문을 쓴 유 교수도 벌써 그렇게 되었습니다. 

2)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누구도 능동순종을 지지했다!"라는 '누구도 신학'을 그만 해야 합니다. 능동순종은 바로 그 ‘누구도 신학’의 산물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이 가라고 하는 곳까지만 하야 합니다. 유 교수의 글에서도 나타나듯이 능동순종의 근거는 성경에 하나도 없습니다. 유 교수가 유일하게 성경의 근거로 제시한 로마서 5:18-19절은 전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능동순종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신학이 칼빈과 더 가깝다는 유 교수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칼빈이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 자신과 우리의 구원의 의를 얻었다고 가르쳤다면, 칼빈도 역시 이단이었습니다. 교수하는 분들이 이렇게 간단한 것을 모르고 혼란을 일으키면 안됩니다. 칼빈과 능동순종이 관련 있다는 것은 낭설입니다. 18세기의 장로교 신학자 윌리엄 커닝햄은 능동순종이 칼빈의 글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사람의 사변의 산물이라고 했습니다. 커닝햄은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누구도 신학'을 맹신하면 언제나 오락가락합니다. 칼빈이나 박형용, 박윤선 등의 선생들을 맹신하고 추종하는 자세를 버리고 성경으로 가야 합니다.  커닝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죄 용서의 근거가 되는 수동적 의 개념과 우리가 하나님께로 받아드려지는 능동적 의 개념은 칼빈의 책들을 통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칭의 교리의 뒤를 따르는 더 섬세하고 구체적인 사변(사색)으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한 구분이 지극히 합당한 신앙적 유추라고 믿었고, 명확하고 분명한 개념 형성을 돕기 위해 유용할 수 있었다.”(William Cunningham, The Reformers and the Theology of the Reformatiom (Carlisle, PA: The Canner of Truth Trust, 1979), 404.)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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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현 2020-09-24 18:05:27
우리가 율법을 적용하여 ♦예수님♦에 대해서 언급 안해도,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전하게 지켰습니다. 우리 인생이 무엇이관대, ♦예수님, 전능자♦를 율법에 적용하여 판답합니까? 그것은, 교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보혈의 공로 하나면 구원은 완성된 것입니다. 다른 것을 언급할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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