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는 불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지키시는 목자이신 하나님 나아가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의 깊게 생각하면서 다루어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중 첫째가 도덕상의 문제 즉 선악의 문제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의와 불의, 즉 당위인가 아닌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이다.

성경 말씀에서 가르치는 여러 가지 도덕적인 교훈을 따라 살아감에 있어서 우리는 자기의 차원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 열심을 품어 주를 섬기라고 가르치고 있기에 자기가 마음 가운데 열심히 해 보려고 시도는 할지언정 바로 그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더라도 그것이 그냥 평범한 도덕적 교훈에 그치지 않고 내게 생명의 양식이 되려면 절대적으로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하여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도의 젖을 사모한다는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함을 받았으면 벌써 믿음이 생긴 것인데, 그렇다면 다음에는 그리스도인답게 덕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이유인즉 믿음에는 덕이 공급되어야 하고 덕에는 지식이 공급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믿음에 덕이 있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도리 가운데로 자꾸 더 들어가므로 우리 각자에게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허비하여서는 안 된다. 그 후에는 인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들을 순차적인 차서(次序)로 가지라는 게 아니라 다 함께 정상적 공급을 하며 그 은사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신약성경 베드로후서 1:5-7절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서 본다면 정상적인 장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정상적으로 장성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도의 젖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젖이라는 말을 사용함에 있어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언제까지나 계속 젖만 먹고 단단한 음식을 못 먹으면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아이라는 사실이다.

“거룩한 도의 가운데 초보 단계로 뱅뱅 돌고 깊은 것을 모르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사람의 한 징표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기본적으로 그에게 주는 것들을 먼저 받아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성령을 의지하고 사는 도리를 알고 처음부터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더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을 반성하되 자기에게 잘못된 것이 있음을 모르고 어둠 속에서 사는 현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 1절에서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을 하지 말라. 너희가 남을 비판하는 그 판단으로 하나님께 판단을 받을 것이다. 또 남을 헤아리는 그 헤아림을 너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에 있는 들보는 못 보느냐”고 가르치심 주셨다.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기본적으로 이러한 부분부터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도리들을 가지고 볼 때 소위 ‘은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더 깊은 의미로는 겸손인 것이다. 겸손이라는 것은 자기를 바로 볼 줄 아는 데서 시작되어진다. 자기에게 잘못된 것, 비웃음 받을 만한 큰 결핍들이 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든지 오히려 자랑한다면 그것이 겸손과는 반대인 교만과 더 나아가서는 오만함이며 비도덕적인 패덕을 드러내고 만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내 길의 빛이 되고 내 발의 등불이 되려면 우리는 먼저 자기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이르러야 한다. 이 말씀을 자기 자신의 위치를 확정하지도 않은 사람에게도 덮어놓고 빛을 비추어 주겠다고 하신 것으로 보는 것은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의 가치가 어떤지, 자기가 서 있는 위치의 잘잘못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에게 덮어놓고 등불이 된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씀의 전제적인 석의(釋義)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인생에 빛이며 칠흑과 같은 어둡고 죄악된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광명을 주신다는 것과 더불어 주님이 바로 그 빛과 어둠 가운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우리네 인생에 길을 앞서 온전히 인도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나를 어디로 인도하시겠는가 할 때는 먼저 나라는 존재가 대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라는 것이다. 내가 대체 얼마만한 능력을 가진 자로 내 스스로 판단하는가? 어느 정도의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냐? 얼마만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고 결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냐? 능력이 있는데 능력 이상의 것을 항상 바라고 있는 일이 많지는 않은가? 하는 것들을 말이다. 그리고 능력 이상의 것을 하려고 하는 경향이 이 세상 사람에게 다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야고보서 1:5-8절의 말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이 말씀을 살피게 되면 우리 각자자 구할 때 필요한 두 가지의 자격이 아주 쉽게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바로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라’ 로서 그 첫째가 “지혜를 하나님 앞에 구할 만한 믿음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구할 만한 믿음’이란 “구하면 반드시 주신다는 것을 믿고 안심하는 심정”의 상태를 뜻한다. 그것 믿느냐? 아니면 없으면서 구하느냐? 이다.

또 한 가지 자격은 뭐냐 하면 “나는 의지할 다른 것이 없이 완전히 배수진을 치고 서 있는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작으로 구하여 보다가 안 되면 다른 방도라도 해야겠다 하는 것이 없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방도라고 함은? 마지막 수단이라는 것을 은밀히 감추어 두고 그것이 그다지 대수롭지 못하니까 현재의 상태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 앞에 달리 구해 봤다가 아무리 구해도 주시지 않아 일을 그르치게 이르는 상태에서 이렇게 라도 해보야 하겠다는 그것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것이 없이 완전히 배수진을 치고 서 있는 사람보다 요령을 가지고 지혜를 구하면 그것은 자격이 되지 않는다. 그러고도 무엇을 얻으려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 주님의 물으심이다.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인데 그렇다면 얻기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한편으로 하나님께 구하면서 안 되면 내가 생각한 쪽으로 가겠다는 식으로 어떤 것이 좀 더 유리하냐를 따지며 사는 것은 안 된다.

주님의 말씀이 내 길의 빛이요 내 발의 등불로서 현실상 효과 있게 역사하려면 먼저 그러한 위치, 그런 자리에 분명히 내가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 높이 올라서 있거든 내려와서, 우리 각자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서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혹시 자기를 자기 이상으로 생각했을 때에는, 나는 그것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 어떤 길을 보이시려고 할 때는, 그 길이 무엇이다, 왜 그렇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그가 사람인 까닭에, 하나님의 자녀인 까닭에 자녀답게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지, 눈 딱 감고 있더라도 이리 가자 저리 가자하고 개개인들을 끌고 가시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면 이해할만한 기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무슨 일에든 기본도 이해하지 못하고서 무엇을 하겠다고 달려들면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 그리고 그분의 섭리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당연지사 주님의 피조물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피조물인 우리를 기계적으로 사용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대접한다. 자녀함은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다운 의식 활동이 있는 것을 요건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의 자녀가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정당한 위치에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들을 말씀에 의해서 깨닫고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바른 요건을 통해 온전한 효과를 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약속과 말씀이 우리에게 알기를 원하시는 것들을 부지런히 알려고 하지 않고 자꾸 엉뚱하게 덮어놓고 자기의 길만 인도해 주십시오 라고 억측을 부려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잘되지 않으므로 주님 앞에 맡기고 유리한 것을 택하겠다는 그런 이기적 욕심과 탐욕을 가지고는 도저히 주님의 거룩하신 순결한 빛을 보지 못할 것이며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빛을 비추시고 인도하시려고 할 때 인도를 받을 수 있는 바른 마음자리에 서야 할 것이며 겸손한 자리에 늘 있어야 하고, 단단한 음식을 먹고도 소화하는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숙한 자들로 성장 되어서 오직 성령을 의지함으로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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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일 목사는 중앙대학교 법학 수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B.A) 호서신학대학원 & 개신원(M.Div) 총회신학연구원 (Th.M) 에서 공부를 하였고 경북 영주 현대중앙교회(예장 백석 ) (1993~현재)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성경 중심적 칼빈주의 개혁주의 교회를 지향하여 바른신학, 바른믿음, 바른생활의 공동체를 세워 가고자 정진하고 있고, 늦은감은 있지만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해설집 공동 집필 및 기타 칼빈주의 정론에 관한 서적 집필에도 신학자들과 동역하며 연구하는 사역에도 주력하고자 뜻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