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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킨스의 황금사슬에 대한 한국 교회의 근거없는 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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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킨스의 황금사슬에 대한 한국 교회의 근거없는 찬송
  • 정이철
  • 승인 2020.08.2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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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1년에 출판된 퍼킨스는 대표작 <황금사슬>에 대한 환상이 한국 교회에 팽배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읽어보니 기독교 신앙의 기둥을 타격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아담이 율법을 지켜서 영생을 얻었어야 했고, 율법 준수에 실패한 아담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가 율법준수에 성공하여 자신과 우리의 구원의 자격을 얻었다는 그릇된 청교도 신학이 퍼킨스에게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었다. 거짓된 청교도 신학과 퍼킨스가 1591년에 저술한 책 <황금사슬>의 가르침 사이에 어떤 유사성이 있는지 살펴보자.

“아담의 타락의 방식과 근거는 다음과 같다. 먼저 타락한 마귀는 첫 조상들에게 금지된 열매에 대한 율법을 어겼을 때 받을 징벌이 확실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실하지 않으시다고 참소하였다.”(퍼킨스, <황금사슬> (김지훈 역)(킹덤북스, 2016), 75)

퍼킨스는 아담의 원죄를 성경이 가르치고 또한 종교개혁자 칼빈이 가르친 대로 이해하지 않았다. 아담이 하나님이 주신 영생과 모든 은혜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 섬김을 사명으로 삼고 살아야 할 피조물과 하나님 백성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반역을 실행하기 위해 선악과를 범했다고 해설하지 않았다. 퍼킨스는 아담이 단지 하나님이 지키라고 명하신 율법에 불순종하였다고 했다. 율법에 불순종했다는 것과 하나님께 반역했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의 차이를 내포한다.

“첫 조상들의 그 상태로 말미암아 후손들이 불순종한 상태가 되었다. 이로써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완악함에 가두어 두셨는데, 특정한 자들을 구원하심으로 긍휼을, 다른 자들을 정죄하심으로 의를 드러내시기 위한 것이다.”(퍼킨스 77)

퍼킨스는 여전히 우리에게 전가된 아담의 원죄를 단지 율법에 대한 불순종으로 말한다. 비록 그가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 말하기는 했으나, 하나님 백성인 아담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파악하지 못했으므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해결되어야 할 아담의 원죄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었다면 하나님이 친히 죄 없는 사람으로 오시어 아담의 죗값을 대신 지불함으로 우리의 구원이 일어난다. 그러나 아담의 원죄가 하나님이 지키라 명하신 율법에 대한 불순종이었다면,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 아담을 대신하여 완전한 율법 순종을 이루어야 우리가 구원받는다.

아담의 원죄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아니고 하나님이 명하신 율법에 대한 불순종이었다면, 청교도들의 칭의론 대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율법순종(능동순종)이 곧 우리의 구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전가된 아담의 원죄가 하나님 섬김을 거부한 반역죄였다면,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목적은 아담의 반역죄에 대한 대리적 배상이다. 과연 무엇이 성경의 가르침인가?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영생을 간절히 원한다면, 먼저 율법의 계명을 가지고 당신 자신과 당신이 행하는 길을 살펴봐야 한다. 또한 율법의 계명을 가지고 당신 자신과 당신이 행하는 길을 살펴봐야 한다. 또한 당신이 죄를 알 때에 죄인들이 당해야 하는 저주를 눈으로 보아야 하는데, 당신의 비참을 슬퍼하고 구원과 관련된 것에서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 않고 전심으로 자신을 포기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를 찾으며 갈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퍼킨스 275-76)

퍼킨스의 영생을 얻기 위해 먼저 율법의 계명들에 우리의 삶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성경에 없는 주장이다. 과연 어느 사도가 구원을 받기 위해 먼저 우리의 삶을 율법을 계명들에 비추어 보라고 하였는가?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오직 믿음이 구원을 준다고 말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 6:47)

모든 사도들도 동일하게 가르쳤다. 구약의 율법이 구원의 자격을 위해 가져야 할 모든 완전성이 실현된 분으로 오신 그리스도(율법의 실체)가 죗값을 갚으라는 율법의 정죄와 의로운 요구에 묶여있는 우리를 위해 대신 죄 값을 배상하시었다. 사도들은 성육신으로부터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전 생애의 순종의 삶으로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가르쳤다. 사도들의 가르침 어디에도 퍼킨스 같이 먼저 우리의 삶을 율법의 계명들로 비추어 보아야 한다는 내용이 없다. 칼빈은 율법의 목적이 단지 사람의 죄를 드러내어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해서는 율법을 아는 것이 다른 효과를 나타낸다. 참으로, 율법이 우리 모든 사람을 심판하며 정죄하는 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 3:19)고 사도는 단언한다 ... 이 말씀의 뜻은 그들이 자기의 힘에 대한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그들이 다만 하나님의 손이 받들어 주시기 때문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벗은 몸과 빈손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피난해서 완전히 그 안에서 쉬며, 그 안에 깊이 숨으며, 의와 공로를 얻기 위해서 그 자비에만 전적으로 매달린다는 것이다. 진정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 자비는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된다.”(기독교강요, 2.7.6)

칼빈의 말은 지금도 먼저 율법을 붙들고 난 후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역사 속에서 나타나시기 전에 율법이 먼저 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도입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의미이다. 박윤선 박사도 율법에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기능이 전혀 없다고 했다. 율법에게는 단지 죄를 드러내고 구원을 갈망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게 만드는 기능만 있다고 가르쳤다.

“후대에 들어온 율법은 성질상 은혜 언약과 고체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다만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다. 여기서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함은 인생들로 하여금 그 범죄한 것이 많음을 알도록 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다는 뜻이다(롬 4:15, 5:20). 그러면 율법의 목적은 새로운 구원 방법을 제시함이 아니고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함에만 있다.”(박윤선, <계시의존 사색>에서)

“율법을 몽학선생이라고 하는 것은 율법이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과 자유에 점차 진행하도록 도와준다는 의미가 아니고, 다만 율법이 인간을 결박하듯, 가두듯하여 으로 구원과 자유를 갈망하고 사모하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뿐이다. 율법은 이런 역할을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과 자유에 이르게하는 그리스도를 사모하여 믿도록 만들어 준다.(박윤선, <계시의존 사색>에서)

서철원 박사도 율법의 기능은 단지 죄를 알게 해 주는 것이고 인간의 노력으로 영생의 의를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를 갈망하게 하는 만드는 것이 율법의 역할이라고 가르친다.

“율법의 기능은 죄를 알게 해주는 것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 준다. 율법은 이러이러한 것을 행하면 범죄하고 지적하고 교훈한다. 그러므로 내 죄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것인지를 율법이 알려준다. 내 양심에 가책을 일으켜서 죄를 알도록 하고,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게 한다 ... 율법은 살리고 구원하는 기능은 없고 정죄하고 죽이는 기능을 갖는다. 사람은 그 죄성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와 명령을 지킬 수가 없다. 그런데 율법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고 저주한다. 이 정죄와 저주가 어떠한 것임을 율법은 밝힌다.”(서철원, 하교리해설, 48-49)

퍼킨스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해는 매우 부족했다. 율법이 개인의 구원 여정에서 먼저 작용하여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구원의 길로 나아가게 한다는 퍼킨스의 주장은 거짓이다. 성령의 조명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죄를 드러내는 율법을 선포하면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만 한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아니고 단지 율법으로 자기의 죄를 진심으로 깨닫고 자복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성령의 임재를 누리는 성도이다. 율법의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도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만 가능하다.

그리고 구원 받은 자에게는 율법의 육체적, 문자적, 직접적 요구가 더 이상 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구원 받은 사람에게는 죄인을 향한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대신 완성해 주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의 요구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영, 성령의 임재로 인해 그리스도의 속죄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율법의 요구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감으로서 이루어지게 된다. 구약의 성도들처럼 육체적, 문자적 억압으로 신약 성도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롬 8:4)

예수께서는 우리가 죄를 범해도 상관없다는 무율법주의를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고 육신적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율법주의를 가르치시지도 않았다. 신약의 성도가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가는 원리는 성령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사도 바울에게서도 율법주의와 무율법주의는 거짓 신학이었다. 바울도 죄를 지적하는 율법의 요구가 신약 성도의 삶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구약의 신자들처럼 육신의 힘과 결단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를 적용하시는 성령의 법(능력)으로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는 성도에게 더 이상 육신적, 문자적 결심과 고생으로 율법을 지키라는 요구가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믿음으로 율법의 겉모양과 정신까지 이루어지게 하나님이 정하셨다.

그러나 아직도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얻으나 구원 이후에는 율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율법주의자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그것은 성도를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이탈하여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이단사상이다. 퍼킨스가 바로 그러한 이단 사상을 전파하였다. 퍼킨스는 율법과 구원 받은 성도의 관계를 잘 몰랐던 퍼킨스는 어리석게도 이렇게 가르쳤다.

“중생된 자들에게 율법의 용도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들이 전 생애에서 새로운 순종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것인데, 이 순종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받은 것이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시 119:24,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 105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퍼킨스, 276)

불신자 상태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율법의 계명을 지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제 기능을 발후하게 된다는 것이다. 거짓 복음이다. 신약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먼저 구약의 율법의 저주를 가르치라는 말씀이 없다. 신약의 사도들은 그런 거짓 복음을 가르치고 실천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청교도 신학의 이단적인 가르침인 회심준비론이 퍼킨스의 율법주의에서 탄생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퍼킨스는 율법의 계명을 지키는 노력으로부터 구원의 여정이 시작되고, 구원 받은 후에도 온전한 성도가 되어 하나님과 관계가 충실한 온전한 성도가 되기 위해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것이 청교도 신학의 율법주의이다. 율법주의란 구원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과 공로를 준비하여야 하고, 구원 후 구원의 유지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율법적 선행에 힘을 다해야 한다는 거짓된 주장이다.

퍼킨스는 첫 사람이 아담이 율법을 지키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 영생을 얻었어야 했으나 불행히도 실패했다고 보았으니, 율법주의 구원관이다. 실패한 아담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가 모든 율법을 지켜서 그 자신과 우리의 영생을 위한 자격을 획득했다고 보았다. 그리스도가 등장하므로 율법주의가 아닌 은혜주의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 지키신 율법에게서 영생의 자격이 나왔으니 여전히 율법주의이다.

퍼킨스는 아담 대신 그리스도가 율법의 선행으로 구원의 자격을 얻으시어 우리에게 전가하셨다는 사실을 “이 순종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받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표하여 아담의 자리에서 율법준수에 성공함으로 의를 얻으셨고 그것이 믿는 자들에게 전가되었다는 청교도들의 능동순종 교리가 퍼킨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종교개혁 이후 지난 수 백 년 동안 정통 신학으로 군림한 청교도 신학이 어리석은 퍼킨스의 부족한 사고로부터 시작되었다.

“율법의 계명을 가지고 당신 자신과 당신이 행하는 길을 살펴봐야 한다. 또한 당신이 죄를 알 때에 죄인들이 당해야 하는 저주를 눈으로 보아야 하는데, 당신의 비참을 슬퍼하고 구원과 관련된 것에서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 않고 전심으로 자신을 포기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를 찾으며 갈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퍼킨스, 275-76)

퍼킨스의 이 말은 청교도 회심준비론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청교도들은 곧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구원에 이르는 것을 부정하였다. 지금도 청교도 신학을 추종하는 목회자들은 신자들에게 보통의 교회들이 가르치는 것과 다른 구원의 과정을 제시한다. 먼저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와 영혼의 비참함을 깨달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자신에게 아무 소망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절망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소망 없는 자신을 대신하여 모든 율법의 순종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당한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는 과정을 거침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주어진다고 한다. 청교도 회심준비론을 수용하느냐 수용하지 않느냐에 의하여 “참된 목사가 되느냐 아니면 삯군이 되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청교도 회심준비론의 심각한 이단성이 1591년에 출판된 퍼킨스의 대표작 <황금 사슬>에서부터 나타났다. 퍼킨의 말을 다시 읽어보자.

“율법의 계명을 가지고 당신 자신과 당신이 행하는 길을 살펴봐야 한다. 또한 당신이 죄를 알 때에 죄인들이 당해야 하는 저주를 눈으로 보아야 하는데, 당신의 비참을 슬퍼하고 구원과 관련된 것에서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 않고 전심으로 자신을 포기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를 찾으며 갈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퍼킨스, 275-76)

퍼킨스의 새로운 신학 작업으로 인해 사도들과 칼빈이 강조한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 중심의 언약 사상은 심각하게 타격받았다. 퍼킨스는 아담과 하나님 사이에 쌍방간의 역할에 근거하는 행위언약이 있었다고 보았다. 아담이 율법에 완전하게 순종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영생을 주기로 언약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아담은 실패했고 그리스도가 오시어 아담을 대신하여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구원의 자격을 만드신 후 행위언약을 회복하는 은혜언약을 만드셨다고 보았다. 퍼킨스는 다음과 같이 은혜언약을 설명하였다.

“은혜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그 분의 값없는 은총을 약속하시며, 또한 언약을 맺은 사람들에게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고, 회개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다.”(퍼킨스, 277)

퍼킨스가 말한 은혜 언약이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영원한 속죄의 피를 제물로 삼고 하나님과 우리의 대표들인 12제자들 사이에서 체결하여 내신 새 언약을 뜻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렘 31:31)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성경에 의하면 아담의 타락이후 하나님의 구속사는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질 새 언약을 목표하여 진행되었다. 새 언약은 그 이전의 언약, 즉 처음의 언약 또는 옛 언약이 있었음을 전제한다. 아담과 하나님 사이에 체결되었던 처음의 언약이 아담의 반역죄로 인해 파기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이 아담의 언약 파기의 죄 값을 죄인 대신 지불하시고자 아담의 죄와 무관한 사람이 되시기를 작정하셨다. 하나님은 다시 자기 백성을 가지시고, 또한 처음의 창조의 목적을 성취하시고자 성육신하시어 아담 대신 죽으실 것을 계획하였다. 다음의 성경 말씀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아담의 반역으로 파기된 첫 언약을 복구하여 다시 자기를 찬송하는 백성과 나라를 가지시고자 망가진 첫 언약을 복구하는 새로운 언약을 만드시기 위함이었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9:15)

퍼킨스와 청교도들이 행위언약-은혜언약 개념은 바르지 않다. 성경에는 오직 하나의 목적을 위한 단 한 종류의 언약만 나온다. 하나님이 영원히 자기 백성을 가지시고자 아담과 체결했던 첫 언약과 아담의 반역으로 파기된 첫 언약을 다시 그리스도께서 복구하시어 영원한 하나님 백성을 만들어 내시는 새 언약이다. 새 언약이 첫 언약을 다시 복구하였으므로 두 언약이 아니고 하나의 언약인 것이다. 첫 언약과 새 언약 사이의 여러 언약들은 단지 새 언약을 도입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성경의 언약은 하나의 언약이다.

퍼킨스가 성경의 언약을 행위언약-은혜언약으로 구분하였던 것도 문제이지만, 더욱 더 심각한 문제는 시종일관 하나님의 언약을 사람과 하나님 쌍방간의 역할과 의무에 기반하는 언약으로 기술했다는 것이다. <황금사슬>에서 퍼킨스가 말한 은혜언약에 대한 설명을 다시 보자.

“은혜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그 분의 값없는 은총을 약속하시며, 또한 언약을 맺은 사람들에게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고, 회개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다.”(퍼킨스, 277)

퍼킨스는 은혜언약이 성립되기 위해 사람에게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구주와 믿어야 하는 것과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고 사람이 죄를 회개해야 은혜 언약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구원을 준비하신 분은 하나님이지만,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것은 사람의 몫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람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은혜 언약이 성립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즉 구원이 사람이 언약의 조건을 이행함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퍼킨스의 이런 주장은 사도들의 신앙과 종교개혁 신학에서 용인되지 않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하나님과 사람의 협력으로 구원이 발생한다는 펠라기우스 사상이다. 그리고 종교 개혁이전에 천주교가 가르쳤던 사상이다.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에 등장한 알미니안 신학이 가르치는 내용이다.

사도들과 칼빈이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모든 설명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에 기초해야 한다. 왜냐하면 언약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들을 영원히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고, 또한 하나님께서도 영원히 그 백성의 하나님 되시기로 약속하는 언약이기 때문이다. 성경 어디에도 언약이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불신자들에게 구원의 조건을 제시하는 수단과 과정이라는 가르침이 없다. 퍼킨스의 언약 신학은 거짓이다. 성경의 언약은 이미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들을 영원히 하나님 백성으로 남게 하시려고 주신 언약이다. 성경의 언약은 결코 구원의 조건을 제시하는 언약이 아니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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