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중요한 신앙고백서들은 대부분 영국의 청교도 운동과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곧 청교도들의 신학이 깊이 반영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웨민고백을 비롯한 신앙고백서들은 청교도들의 신앙과 신학의 관점에서 성경과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고 설명한 문서들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등장한 모든 저명한 신학자들 가운데 성경처럼 완벽하게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고 가르친 경우는 없었다. 모든 저명한 인물들의 신학 속에는 그 본인의 지성과 시대의 한계가 존재하였다. 루터는 복음보다 율법을 먼저 선포함으로 구원의 은혜가 준비된다고 가르치는 심한 오류를 범했고, 칼빈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영생의 의를 얻을 수 있는 것 같은 오해가 들게 만드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박윤선 박사가 지적한것처럼, 율법에게는 사람을 점진적으로 구원으로 이끄는 기능이나 능력은 전무하다. 단지 인간을 죄 아래 가두어서 사람에게 구원과 자유를 주는 그리스도를 믿게 만들 뿐이다.
 

(고) 박윤선 박사
(고) 박윤선 박사

“후대에 들어온 율법은 성질상 은혜 언약과 고체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다만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다. 여기서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함은 인생들로 하여금 그 범죄한 것이 많음을 알도록 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다는 뜻이다(롬 4:15, 5:20). 그러면 율법의 목적은 새로운 구원 방법을 제시함이 아니고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함에만 있다.”(박윤선, <계시의존 사색>에서)

“율법을 몽학선생이라고 하는 것은 율법이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과 자유에 점차 진행하도록 도와준다는 의미가 아니고, 다만 율법이 인간을 결박하듯, 가두듯하여 으로 구원과 자유를 갈망하고 사모하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뿐이다. 율법은 이런 역할을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과 자유에 이르게하는 그리스도를 사모하여 믿도록 만들어 준다.”(박윤선 박사, <계시의존 사색>에서)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이미 신학교에서, 또는 저명한 청교도 신학자들의 책에서, 또는 개혁신학의 대가로 존경받는 학자들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교육받았다.

1)만일 율법을 완전하게 지킴이 가능하다면 그것으로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

2)아담은 구원을 주는 율법이 마음에 기록된 상태로 출생하였다.

3)아담이 못한 율법의 선행을 대신하기 위해 하나님이 성육신하시어 율법준수로 자신과 우리의 영생의 자격을 취득했다.

4)그냥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람은 자신의 신념에 빠진 상태이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반드시 율법의 저주와 함께 시작된다. 먼저 율법의 저주를 선포 받고 자기 영혼의 비참한 운명에 대해 크게 절망하여야 하고, 이후 영적으로 각성된 상태 속에서 구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 기도, 회개, 율법준수에 힘쓰면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한 이신칭의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다.

5)원래 율법을 지키는 것이 구원과 하나님 백성 됨의 길이었으므로 그리스도를 믿음과 함께 육신적 율법 준수가 참 신앙의 길이다.

이런 가르침들은 이단사상이다. 그런데 지난 수 십 년 동안 이런 이단 사상들이 조용히 한국 교회의 영혼을 접수해 버렸다. 청교도 목회하는 사람들로 인해 한국 교회는 이만희의 신천지보다 더 위력있는 이단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청교도 목회는 전혀 비판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최고의 신앙을 한국 교회에 소개하는 선각자들로 대접 받았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청교도 신학속에 기독교를 허물고 사도들과 칼빈의 가르침에서 한국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심각한 요소가 많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 시작은 웨민고백 7, 19장의 행위언약 개념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보자! 전 세계의 선량한 그리스도인들이 태초의 아담에 대해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이 아담을 자기의 형상을 따라 존귀한 자기 백성으로 창조했다고 믿고 있다. 영생과 모든 복과 은혜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었고, 다만 아담이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살기를 요구하고 하나님은 영원히 아담의 하나님으로 남기로 약속하는 언약을 주셨다고 믿고 있다. 생명나무와 선악과로 그 언약이 담보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 백성으로 사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였고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죄악된 욕망을 품었다. 아담은 그 욕망을 현실화하려고 작심했다. 차분한 마음으로 선악과를 범함으로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반역을 치밀하게 실행했다. 아담의 원죄는 그의 율법순종으로 영생을 획득하는데 실패한 것이 아니고, 영생과 모든 은혜를 주신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회개해도 소용없는 영구한 저주를 아담에게 내리신 것이다.

이것이 전 세계의 선량하고 착실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다. 이 믿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섬김으로 구원을 얻게하는 유일한 길이다. 반역하여 사형선고 받은 아담을 다시 살려 자기 백성으로 삼고자 하나님 자신이 사람으로 오시어 아담의 죗값을 지불하셨다. 그리하심으로 죄로 인해 훼손된 아담과의 처음의 언약이 복구되었다. 그리고 죄로 인해 사라진 하나님 백성이 회복됨으로 하나님의 처음의 창조의 목적도 다시 회복시키셨다.

이것이 기독교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그러나 청교도 신학과 청교도 운동 시대에 생겨난 신앙고백서에는 이 진리를 교묘하게 훼손하는 가르침들이 독약처럼 스며있다. 그들의 독의 핵심은 율법주의이다. 아담이 율법을 지켜서 영생과 하나님 백성의 자격을 취득했어야 했으나, 아담이 그것을 못하였으니 그리스도가 대신 율법을 지켜 자신과 아담과 우리의 영생의 자격을 취득했다고 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비틀어 버리고 기독교의 중심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호의에서 율법준수로 기울어지게 만들었다.

우리가 그동안 최고의 우상으로 여기면서 살아온 웨민고백서 속에 이런 엉터리 내용이 들어있음을 지금이라도 알고 경계해야 한다.

“1. 아담에게 주신 법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행위 언약으로서 한 법을 주셔서 그것에 의해 그와 그의 모든 후손들을 인격적인, 완전한, 정확한, 그리고 영속적인 순종의 의무 아래 두셨고; 그것의 실행에 근거한 생명을 약속하셨으며, 그것의 위반에 근거하여 죽음을 경고하셨고; 그것을 지킬 힘과 재능을 그에게 부여하셨다.

2. 도덕법(Moral Law)

이 법은 그의 타락 후에도 계속 의(義)의 완전한 규칙이었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에 의해 십계명에 그렇게 선언되었으며 두 돌판들에 기록되었는데; 처음 네 계명들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그리고 그 나머지 여섯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담고 있다.”(웨민고백 19장)

웨민고백의 이 내용은 하나님이 아담을 자기의 형상을 따라 존귀한 자기 백성으로 창조하셨고, 처음부터 영생과 모든 은혜와 복을 부어주셨음을 부정하는 아주 엉터리 내용이다. 이단 바르트처럼 아담이 불완전하고 임시적으로 창조되었으므로 필연적으로 존재의 완성을 얻어야만 살 수 있는 미완성의 인간으로 출생되었다는 내용이다. 아담이 즐거이 하나님을 섬기고 산악과를 범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도록 창조하셨음을 부정하는 내용이다. 전 세계의 선량하고 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아담에 대해 웨민고백이 말하는 것처럼 믿지 않는다.

그리고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 지켰어야 할 그의 마음에 기록된 율법이 훗날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판에 기록되어 주어졌다고 하는 내용은 더욱 더 말이 안되는 내용이다. 이런 엉터리 주장을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으로 우상숭배하면서 살아온 지난 날들을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성경과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허무는 이런 내용을 믿지 않으면, 오히려 이단이라고 조롱받는 현실을 우리는 이제라도 고쳐야 한다.

합신은 좀 심각한 상태이다. 이런 엉터리 신학을 주장하는 자들을 옹호하기 위해 교단 차원의 신학연구위원회가 이용되고 있다. 이런 심각한 사실을 지적하는 올바른 사람의 지적에 대해 공식적으로 대응할 가치가 없고, 반대로 이런 그릇된 신학을 주장하는 자들이 훌륭하다는 내용의 교단 차원의 문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결국 청교도 좀비들을 양산하는 이단 신학교로 기울어질 위험성이 커진다. 

고신과 총신에게는 아직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고신과 총신은 웨민고백이나 청교도 운동 시대에 나온 다른 모든 문서들을 오직 성경의 빛 아래 두고 검증해야 한다. 성경 외에는 완전한 가르침이 없고, 오직 성경 외에는 성령의 영감된 문서가 없음을 선포해야 한다. 합신은 청교도 이단 사상에 포로되어 갈지라도 총신과 고신에게는 아직 하나님의 은혜가 남았다.

나는 웨민고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극히 일부의 엉터리 주장을 교정하자는 것이고, 또한 앞으로 웨민고백서의 사도들과 칼빈의 신학과 일치하는 대부분의 내용을 더 연구하고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우리의 신학을 더 성경적으로 세우자는 것이 나의 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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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