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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을 바르트주의 이단스타일로 왜곡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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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을 바르트주의 이단스타일로 왜곡하지 마세요
  • 정이철
  • 승인 2020.08.21 0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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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와 한국청교도사상가들의 논쟁 3

한국청교도사상가들(한청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단체이다. 정이철 목사가 주장하는 청교도 신학의 문제점들, 특히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의 허구성에 대해 반대하는 청교도주의자들과의 가상적인 토론을 위한 명칭이다. 오늘은 칼빈에게 청교도 능동순종 사상이 없었으므로 청교도 신학이 칼빈의 신학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정이철 목사의 주장에 대해 한청사가 반박하는 주요 논리를 살펴보기로 한다.

정 목사 주장 3>
“성경이 부정하는 행위언약 사상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사상이 칼빈에게는 없다”
 

한청사 반박>
“칼빈이 행위언약 사상을 부정하거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의한 의 교리를 부정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칼빈의 다음과 같은 말을 볼 때, 아담이 율법을 지키지 못해 자력으로 영생 획득에 실패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았고, 그리스도가 아담을 대신하여 율법을 순종하여 자역으로 자신의 영생의 의를 획득하여 우리에게 전가한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의 의를 배제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아담의 최초의) 순전한 상태에서 사람은 원하기만 하면 자유의지로서 영생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기독교강요 1.15.8).”

‘그가 무흠하게 머물렀더라면 첫 사람은 더 낳은 생명으로 넘어갔을 것이다.’(고린도주석 23:77).”
 

사실 정이철 목사가 청교도 신학의 능동순종 교리의 거짓됨을 증명할 때 가장 빈번하게, 사실상 거의 모든 글에서 제시했던 반박의 증거는 언제나 성경이었다. 처음부터 율법에게 영생의 의를 줄 수 있는 자격이나 기능이 있다는 가르침이 성경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율법은 사람에게 죄가 넘치고 있고, 사람의 방법으로는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충족하여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알게하였을 뿐이다. 완전하고 흠이 없는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성육신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십자가에서 지불하여 죄인들을 향한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충족됨으로써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하는 것이 율법의 목적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 3:19)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갈 3:11)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갈 3:21)

정이철 목사는 완전히 의로운 분으로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이 발생한다고 계속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에서 칭의가 비롯된 것이 아니고,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인한 하나님의 죄 용서가 곧 칭의라고 주장하였다. 정이철 목사의 주장의 근거는 언제나 다음과 같은 수 많은 성경 구절이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1)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6)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가 거짓 신학이 아니고 성경적인 신학이라고 주장되려면 단 하나의 성경 구절만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족하다. 그러나 한청사 측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주장을 돕는 단 하나의 성경 구절도 제시하지 못했다. 칼빈이 했던 말 가운데 모호하거나 비성경적인 말 한 두 마디를 찾아 고래심줄 같이 여기면서 믿고 의지한다. 또는 청교도 운동 시대에 나타난 신앙고백서들의 한두 문장들을 큰 우군으로 삼는다. 

행위언약 사상이나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는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인간의 사변의 산물이다. 미국의 칼빈신학교에서 청교도 신학을 전파하였던 리차드 멀러는 행위언약 사상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교리들과 교리들의 관계를 유추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 추정의 산물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리고 1800년대의 장로교 신학자 윌리엄 커닝햄도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가 칼빈의 저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칭의 교리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 사색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성경에서 직접 근거를 찾지 않고 철학적 사변을 통해 교리를 세우는 것은 중세 천주교의 스콜라 신학의 특징이다.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다시 등장한 개신교 스쿨라주의(개신교 정통주의, 청교도 신학)의 특징이기도 하다. 행위언약 사상과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는 개신교 스콜라주의의 산물이지 신약 성경(사도들)과 칼빈의 가르침에서 유래한 신학이 아니다.

사도들에게 행위언약 사상과 능동순종 교리의 개념이 없었으므로 한청사는 자신들을 돕는 사도들의 말(신약 성경)을 전혀 동원하지 못한다. 대신 뜻이 모호한 칼빈의 한 두 마디의 말을 찾아서 그것에 올인(all in)하고 있다. 과연 칼빈은 행위언약 사상과 능동순종 교리의 근거가 되는 신학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다음의 칼빈의 말들을 보면, 칼빈에게 그런 사상이 있었다고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아담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여 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참으로 교만이 모든 악의 처음이었다는 어거스틴의 단정은 옳다. 사람이 자기의 처지에 만족하고 바른 한계를 넘으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태초의 상태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기독교강요, 2.1.4)

칼빈은 아담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만족하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기를 즐거워하였다면, 지금까지 처음의 영생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을 것이라고 가르쳤다. 영생도 은혜도 없었던 아담이 노력(율법의 선행)하여 영생을 획득했어야 했다는 이해는 칼빈에게 없었다.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셨다(창 3:22).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이 말씀을 다른 말로 옮긴다면, ‘나의 약속의 상징에 집착해서 헛된 확신을 즐기지 못하도록 불멸에 대한 소망을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그에게서 빼앗으리라’는 말이 될 것이다.”(기독교강요, 4.14.12)

칼빈은 영생을 소유했던 아담이 하나님께 반역했으므로 영생을 박탈당하였다고 했다. 임시적이고 불완전하게 창조된 아담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영생을 얻어 완전에 도달했어야 했다는 행위언약 사상은 칼빈에게 없었다.

그렇다면 칼빈에게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 율법순종하여 영생의 자격(의)를 획득했다는 능동순종 개념은 있었을까? 다음과 같은 말들을 보면, 칼빈도 율법에게 영생의 의를 주는 자격이나 기능이 없었다고 보았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대신 죗값을 지불하심으로 주어진 죄 용서가 곧 우리의 칭의라고 칼빈은 가르쳤다.

“율법은 거울과 같다.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무력함과, 무력에서 생기는 죄악을, 그리고 결국은 그 두 가지에서 오는 저주를 본다. 거울이 우리 얼굴에 있는 오점들을 보여 주는 것과 똑같다. 왜냐하면 의를 따라가는 능력이 없을 때에, 인간은 죄의 수렁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죄악의 뒤를 곧 따라오는 것이 저주다. 그러므로 율법이 우리를 유죄로 인정하는 범행이 중대한 것일수록 우리의 책임을 묻는 심판도 더욱 엄중하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고 한 사도의 발언은 여기 해당한다.”(기독교강요, 2.7.7.)

율법의 기능은 오직 인간이 자신의 죄악된 상태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라고 칼빈은 가르쳤던 것이다.

“율법은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 논하게 될 때 더 명백하게 볼 수 있겠지만 그 유용성이 다양할지라도 특별히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의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에게 맡겨진 것이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율법의 마침’(롬 10:4)이라고 부른 것은 여기서 기인된 것이다.”(기독교강요, 1.6.2.)

칼빈은 율법이 주어진 목적은 오직 죄인이 하나님과 화해해야 할 필요성과 그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나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영생의 의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은 칼빈에게서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성경과 칼빈의 신학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아담의 타락과 칭의를 얻는 방법에 관한 성경과 칼빈의 가르침은 동일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칼빈의 많은 말들 가운데 그 뜻과 의미가 모호하여 청교도주의자들이 좋게 써먹을 만한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다음의 것들이다.

‘이러한(아담의 최초의) 순전한 상태에서 사람은 원하기만 하면 자유의지로서 영생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기독교강요 1.15.8).”

이 내용을 얼피 보면 칼빈이 하나님의 아담 창조의 완전성을 부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이 아담을 불완전하게 창조하였고 아담이 노력하여 스스로 영생을 얻음으로 완전해 지기를 요구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칼빈의 이 말 다음의 내용을 보면, 칼빈의 의도는 아담이 반역하기로 결단하지 않았으면 처음의 그 영생의 상태가 이후 계속 지속되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한청사는 칼빈의 말을 오용하고 있다. 바로 다음에서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아담은 자기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넘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다만 자신의 의지로 타락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 질 수 있었으며 따라서 항구적인 인내성을 받지 못했던 까닭으로, 그는 아주 쉽게 타락하였던 것이다.”(기독교강요 1.15.8)

그런데 한청사가 제시하는 칼빈의 이 말은 더욱 더 심각해 보인다. 칼빈이 바르트처럼 인간이 불완전하고 임시적으로 창조되었으므로 필연적으로 존재의 완성이 요구되는 존재였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무흠하게 머물렀더라면 첫 사람은 더 낳은 생명으로 넘어갔을 것이다.’(고린도주석 23:77).”

칼빈의 이 말은 하나님이 교제와 사랑의 대상을 가지고자 아담을 불완전하게 창조하시었고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인간의 존재를 하나님의 존재의 완전한 수준, 즉 신인합일의 수준으로 격상시켰다고 주장처럼 보인다. 마치 아담이 더 완전한 생명으로 넘어가기 위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는 것이 요구되었다는 것으로 보이는 칼빈의 말은 꼭 바르트의 이단 사상을 카피한 것 같다. 행위언약을 지지하면 필연적으로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므로 서철원 박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행위언약에 매이면 발트 신학에 귀결하는 것이 필연적인 사항이라고 할 것이다. 발트의 신학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교제의 대상자를 갖기 위해 사람을 지으시고, 그와 교제하신 후, 그를 자기의 존재에까지 끌어올려 자기의 존재에 동참하게 하신다 ... 하나님은 이런 완성된 인간 존재를 가지시기 위해 처음 창조시 그를 파편적이고 임시적으로 지으셨다. 이 임시성의 제거를 위해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이루시고 그 성육신을 통하여 신인합일을 성취하신다.”(서철원, 하나님의 구속경륜, 14)

“개혁 신학자인 헤르만 바빙크도 그의 신학적 논의를 전개할 때 인간이 임시적으로 창조되어 완전한 상태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영생을 주시기 위해 언약을 체결하셨다고 가르치므로 발트 신학에 귀결하도록 개진하였다. 이런 신학적 귀결들은 행위 언약의 잘못된 설정헤 기인한다.”(서철원, 하나님의 구속경륜, 14)

과연 칼빈은 하나님이 아담이 불완전하고 임시적인 존재로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스스로 노력하여 완전한 존재가 되기를 명령하였다고 이해하였을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 부분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1)칼빈이 성경이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이단적인 자들이 가르치는 내용을 조금이라고 말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성경에 근거하여 교정하여야 한다. 칼빈의 말이라도 무조건 모두 수용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제 아무리 유명한 신학자의 말이라도 반드시 성경의 빛에 비추어서 분별해야 한다. 신학은 성경에만 근거해야 하고, 성경에 근거하지 않으면 무저건 성경을 택하고 신학을 버려야 한다.

2)만일 칼빈이 행위언약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필연적으로 행위언약을 완성하는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즉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영생의 의를 취득했다는 주장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고린도 주석과 로마서 주석에서 칼빈은 일관되게 그리스도가 지킨 율법에서 우리의 의가 유래했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오직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의라고 가르쳤다.

“의가 그리스도 안에 본질로서 존재하는데 바로 이 그리스도께 본질로 속한 의가 우리에게로 전가된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칼빈의 로마서 주석/신호섭 교수의 책 <전가교리> 68 페이지)

“믿음의 의는 죄의 사면과 무조건적 받아 주심에 있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두 가지를 모두 받는다.”(칼빈의 고린도전서 1:30절 주석/신호섭 교수의 책 <전가교리> 7 0페이지)
 

맺는 말>

칼빈의 전체적인 가르침, 특히 그의 대표적 신학저작인 <기독교강요>의 가르침들을 보면 칼빈은 행위언약-능동순종 개념과 무관하다. 자신들의 거짓 사상을 옹호하기 위해 칼빈을 바르트주의자로 몰아가려는 한청사의 시도는 너무 옹색하다. 그리고 칼빈의 말이라도 성경과 다르며 무조건 버려야 한다는 신학의 대원칙을 생각하면, 한청사의 주장은 더욱 더 옹색하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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