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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하고 위험스러운 CCM 운동제3의 물결의 찬양사역(1)
정이철  |  cantoncrc@gma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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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11  17: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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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물결 시대의 교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찬양사역이다. 음악을 활용하는 찬양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방법이므로 항상 있었다. 그러나 피터 와그너가 제 3의 물결 시대라고 말하는 현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 찬양운동이 뜨겁게 펼쳐진다. 제 3의 물결의 선두주자인 존 윔버가 원래 세상의 재즈 음악과 락음악에 정통했던 음악가였기 때문이다. 존 윔버는 빈야드 운동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찬양운동을 전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왕하 3:15)

성경에는 엘리사 선지자가 악기를 연주하며 찬양드리고 기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냥 기도해도 될 것이나 음악을 활용하면서 기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더 풍성하게 누렸다고 기록되었다. 음악과 노래를 잘 활용하면 건강한 신앙을 발전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음악을 이용하는 찬양사역은 어떤 면에서 우리의 신앙에 많은 유익을 줄 수 있을까?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과 하나님을 향한 적합한 감정을 개발하는 데에 음악을 활용하는 찬양이 큰 도움이 된다. 건강한 신앙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중요하다.
 

기독교 신앙의 3요소

첫째,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다.
성경을 알아야 한다. 믿음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에 대해,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 ... 등에 관하여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의미를 확실하게 이해해야 한다. 모르면서 믿는 것은 미신생활이지 신앙생활이 아니다. 중세의 천주교회에 미신으로 가득했던 것은 라틴어로 된 성경을 대부분의 지도자들과 일반 사람들이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둘째, 하나님을 향한 의지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고자 결단해야 한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는 의지의 연속인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오래 보존될 수 있겠는가? 무조건 성령이 다 알아서 하시도록 기도만 한다는 것은 무지하다. 욥을 보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더욱 큰 복을 주시기 위해 마귀에게 시험하라고 허락하셨다. 사탄이 그에게 온갖 가혹한 고난을 주었다.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모두 사라졌고, 그 많았던 재산이 일순간에 사라졌고, 건강까지도 잃게 되었다. 아무 소망이 없었고 괴로움만 가득했다. 그러나 욥은 강력한 믿음의 의지를 발휘하였고, 끝내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지 않았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2)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굳건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건강한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욥처럼 환난을 당해도 하나님에 대한 마음과 자세가 변함이 없는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의지가 약하여 상황에 따라서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믿음이 변덕부리고 요통하면 건강한 신앙을 키울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향하여 견고한 의지를 가지라고 말씀한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사람을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 26:32)

셋째, 하나님에 대한 감정이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의지가 있을지라도 감정이 실리지 않으면 죽은 믿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식과 의지에 마음이 실려야 건강한 믿음이 된다. 성경지식에 근거하지 않고 감정과 느낌으로만 움직이는 주관주의, 신비주의는 항상 위험하다. 하나님을 향한 고래 힘줄 같은 의지력을 가졌어도 사랑이 없으면 큰 역사를 일으키지 못한다.

어떤 일에 대해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소수를 당하지 못한다. 소련에서 시작된 공산주의 이론이 중국의 소수의 사람들에게 전파되었다. 그들의 수는 비록 작았으나 중국에 공산주의를 정착시키겠다는 열정을 불태웠다. 1934년 장개석의 국민당 70만 대군에 포위되어 전멸의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훗날을 기약하면서 먼 길을 걸어서 후퇴하였다. 368일 동안 9,600km를 걸었다. 만년설로 뒤덮인 18개의 산맥을 넘었고, 24개의 깊은 강을 건넜다. 후퇴하는 동안에도 수시로 미군의 후원을 받는 국민당의 장개석 군대의 공중폭격을 당하였다. 후퇴를 시작할 때 그들의 수는 약 2만 명이었나, 추위와 굶주림으로 인하여 대부분이 죽고 안전한 곳에 도착한 사람의 수는 7,000명에 불과했다.

이것이 바로 9,600km의 거리를 걸어서 탈출한 중국 공산당 군대의 ‘대장정’이다. 그런데 이들이 다시 일어서서 훗날 기어이 중국을 공산화시켜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모택동과 소수의 지도자들의 공산주의를 위한 강철보다 강한 열정 때문이었다.

성공적이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서도 신앙에 바람직한 감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목회는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쳐서 하나님을 향한 의지와 감정이 형성되게 만드는 일이다. 이것을 비성경적인 방법으로 하면 이단적인 길로 접어들고 만다. 오직 말씀과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야 한다.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면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서 사람들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말씀으로 무장시키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위해 뜨거운 감정을 품도록 만들 수 있을까? 모든 목회자들이 일평생 고민하는 무거운 숙제이다.

   
  경배와 찬양 리더 하스데반 선교사가 찬양을 인도하는 모습

없어서는 안 될 찬양사역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감정을 품도록 촉진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찬양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가사에 리듬을 실어 노래를 지어 부르면 하나님에 대한 감정과 느낌이 생겨난다. 많은 지식으로 무장된 현대인들에게는 지식을 넘어서는 느낌을 더욱 중시하고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므로 찬양은 현대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데 유용한 수단이다. 그래서 충분한 시설과 재력을 가진 대형교회들은 새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 수시로 예배당의 데코레이션을 변화시킨다. 사람들의 마음을 터치하는 찬양사역에도 많이 투자한다. 설교를 많이 들어도 일으킬 수 없는 성도들의 마음의 변화가 찬양사역을 통하여 일어날 수 있다. 음악이 사람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의 사실에 대해서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음악은 인간의 정신과 사고를 변형시키고 조작하는 유용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한 목적으로 음악을 이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 군대이다. 군대에서도 음악은 매우 중요하다. 병사들에게 군가를 가르쳐서 부르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군인의 정신과 자세를 고취시키기 위해서이다. 위험한 일을 수행하는 특수부대 요원들은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주어진 임무를 위해 힘을 다하라는 내용의 군가를 더욱 힘차게 열창한다.

어떤 특수부대에서는 ‘국가가 지급한 군복이 우리의 수의가 되고 ...’라는 문구를 자주 복창하고, 그런 내용의 노래를 자주 부른다. 끔찍한 자살특공대를 양성할 때에도 노래가 이용되었다. 과거 일제는 미군의 함정에 폭탄을 가득 실은 비행기를 몰고 돌진하는 ‘가미가제’ 부대의 대원들을 훈련시킬 때 천황을 위해 기꺼이 육신의 생명을 버린 후 야스쿠니 신사에서 영생할 것이라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게 했다. 인간은 그런 노래를 듣고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정신과 사고가 세뇌당하는 존재이다.

노래는 우상숭배를 위해서도 동원되었다. 인간이 미혹하는 귀신들과 접촉하도록 돕는 기능을 음악이 수행할 수 있다. 조선왕조는 왕실의 영혼들을 숭배하기 위해 ‘종묘제례악’이라는 음악을 발전시켰다. 무당들은 귀신을 부르는 굿을 벌일 때 징, 장고, 꽹과리 등의 악기를 이용하였다. 아프리카, 아마존, 북아메리카 ... 세상의 모든 지역의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신을 섬길 때 음악을 동원하였다. 음악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에만 쓰여지는 것이 아니다.

케네스 헤겐(Kenneth E, Hagin, 1917-2003)이라는 대표적인 신사도 운동가가 있었다. 그는 집회를 열면 사람들이 웃게 만드는 괴이한 웃음 부흥사였다. 그가 인도했던 집회를 촬영한 실제 영상을 보았다. 과연 소문난 웃음 부흥사라는 그의 명성을 답게 사람들은 이유없이 웃고 있었다. 그에게서 참으로 괴이한 능력이 흘러 나왔다. 그런데 나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또 다른 부분이었다. 그가 한 바탕 사람들을 미치도록 웃게 만들고 난 후, 매우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로 구성된 전문적인 찬양팀이 등장하였다. 그들의 인도를 따라서 추잡한 웃음파티를 연출하였던 그 모든 사람들이 뜨겁게 찬양을 부륵 시작했다.

“thank you Lord! thank you Lord! thank you Lord!
I got joy! joy! joy! in the Lord!
I got joy! joy! joy! with the Holy Ghost!”

귀신의 능력으로 사람들이 이상한 웃음에 취하게 만드는 케네스 헤겐의 굿이 끝나자 찬양팀이 등장하여 찬양을 인도하면서 모두가 이렇게 찬양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한심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 안에서 기쁨을 넘치도록 얻었습니다.
성령으로 더불어서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찬양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을 수 있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찬양이라는 노래가 사탄에게도 심각하게 악용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주’, ‘성령’, ‘하나님’, ‘은혜’, ‘기쁨’ ... 이러한 좋은 단어와 가사가 불리워진다고 하여 다 찬양이라고 여기면 큰일이다. 불건전한 자들의 요상한 집회의 분위기가 무르익도록 요긴하게 쓰여지는 수단이 찬양이다. 그곳에 뜨거운 찬양이 있어 귀신들의 장난이 더 멋있게 미화되고 있다.

음악은 사람들의 정신을 마취시키고 흥분시키는 좋은 수단이다. 마약, 알코올 등으로 나타내는 효과를 다양한 악기와 음악으로도 일으킬 수 있다. 전문적인 음악 재능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뛰어난 찬양팀과 각종의 악기들이 어우러져 노래를 부르면 집단 최면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하나님’, ‘예수님’, ‘은혜’, ‘성령’, ‘선교’, ‘치유의 성령’ ... 등의 지극히 기독교적인 단어들이 그 중심에 있으므로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변화가 일어나는 것과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알코올과 마약으로 행복감을 느껴 본 두뇌는 계속 다른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알코올과 마약을 추구하게 된다. 그것이 없이는 행복이 없고, 오직 그것이 있어야만 즐겁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이 지으신 정신세계의 바른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결국 정신적인 병증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끝에 가서는 폐인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탄의 미혹과 속임이 더욱 빈번하고도 쉽게 나타나는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음악을 통하여서도 이러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마귀가 실제로 그런 종류의 음악을 통해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공격하고 교회를 병들게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더 많이 연구해야 한다. 그릇된 찬양을 앞장서 부르며 인도하는 찬양 인도자들이 더 먼저 미혹의 물결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불건전한 신앙세계에 빠진 사람들을 좀 자세하게 관찰해 보라! 대부분이 감정적으로 찬양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빠르고 격렬한 리듬의 찬양을 손뼉을 치고 춤을 추면서 더 깊이 몰입하는 성향이 있다. 깊은 감정을 자아내는 가사와 선율이 풍부한 찬양을 따라서 부르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깊이 감정에 젖어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서 연구하고 주의하자는 말에 대해서 무조건 반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따지기만 하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찬양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말씀을 밀쳐내는 찬양사역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이 찔리고, 회개하고, 결단하고, 삶이 변하는 것이 기독교이다. 노래를 부르면서 감정의 흥분, 황홀경, 무아지경, 기쁨 ... 등을 경험하는 것이 신앙의 중심이 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우리 집 근처에 호수를 주변으로 산책하기 좋게 꾸며진 공원이 있다. 호수 안에 얼마나 많은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물고기들이 많이 보이는 한 장소가 있다. 산책 나온 사람들이 물고기를 보려고 식빵을 던져주는 곳이다. 호수가 넓어도 한 곳에만 물고기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미끼를 쏟아 부으면 넓은 호수의 물고기들이 그곳으로만 몰려드는 것이다.

똑 같은 현상이 교회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세상의 음악 콘서트와 같은 느낌을 제공하는 찬양사역을 전개하면 그 교회들에 젊은이들이 몰려들게 되어 있다. 그렇게 하여 성공하면 부흥했다고 널리 알려진다. 지금 이 시대 속에서 교회를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찬양이다.

그러나 정신에 변형을 일으키는 위험성이 있는 요소들을 내포한 찬양을 많이 부르면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건강하지 못한 흥분상태에서 신앙생활하게 된다. 이것이 사탄이 현대의 교회들을 공격하는 방법이다. 지금 사탄의 전략은 교회의 문을 닫도록 핍박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바른 믿음과 건강한 기독교 경건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노래, 즉 찬양사역이다. 하나님 찾고, 예수님 찾고, 성령님 찾으면서 노래를 부르고 열성을 내니 과연 누가 이 문제를 쉽게 분간해 내겠는가? 그러나 언제 하나님께서 음악으로 영혼이 구원받고, 삶이 변화될 수 있다고 하셨는가?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은 사도들을 노래 잘하는 사람들로 구성하셨고, 악기 하나씩 다룰 수 있는 사람들로만 제자를 삼으셨을 것이다. 찬양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움으로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후 감사와 경배를 올려드리는 수단이다. 하나님과 관련된 음악을 즐기면서 교회를 부흥시키고, 우리 자신들이 즐겁고 흥분되는 것을 찬양사역의 목적이라고 할 수 없다. 교회를 교묘하게 흥분되게 하면서 쾌락을 추구하게 하는 우상숭배가 찬양사역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아버린 것이다.

“우리 아들은 성경공부나 설교에서는 은혜를 못 받습니다. 찬양을 부르면서 은혜를 받고 신앙이 성장합니다!”

10대 아들을 가진 어떤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찬양을 부르면서 크게 영적으로 변하고 성장하고 있다고 좋아하였다. 믿음의 본질과 신앙의 성장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에 관하여 알지 못하면 믿음 자체가 성립되지 못한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시 119: 5)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 15:16)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의 가장 소중한 영혼의 양식이다. 말씀으로부터 성도의 행복과 기쁨이 나온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말씀을 깨달아 알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성장의 길이다. 찬양이 믿음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 찬양은 죄인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값없는 은혜의 크심을 알고 난 후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이다. 그런데 마귀에게 찬양을 신앙의 중심으로 만들어 간다. 말씀에는 반응하지 않으나 찬양에는 빨리 반응하는 기독교를 만들어 간다. 이것이 미혹된 현대의 교회들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가장 중요한 말씀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찬양의 가사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전달될 수 있다. 그러나 찬양의 가사를 통하여 배우게 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양이 얼마나 될까? 찬양의 가사를 통하여 신앙과 삶을 하나님 안에서 건강하게 가꾸어줄 수 있을 정도로 풍족한 말씀의 지식을 얻을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이 즐거이 부르는 인기있는 찬양 곡들의 가사는 아주 단순하다. 요즘의 대부분의 인기있는 찬양 곡들은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감정과 느낌을 자극할 뿐이다. 최근에 참여한 어떤 집회에서 다 함께 뜨겁게 불렀던 찬양을 예로 들어보겠다.

“보라! 너희는 두려워 말고! 보라! 너희를 인도한 나를! 보라! 너희는 지치지 말고!
보라! 너희를 구원한 나를! 너희를 치던 적은 어디 있느냐? 너희를 억누르던 원수는 어디 있느냐?
보라! 하나님 구원을! 보라! 하나님 능력을! 너희를 위해 싸우시는 주의 손을 보라!”

이 가사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과연 무엇인가? 다분히 추상적이고 우리의 현실의 신앙생활과는 구체적인 상관이 없다.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실질적이고 성경적인 지식과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는 사탄을 물리치신 하나님의 승리를 주제로 하고 있으나, 그 내용이 매우 추상적이다. 그런데 여기에 드럼, 전자 기타, 키보드 등의 현란한 악기들이 동원되고 가창력이 뛰어난 싱어들의 목소리가 결합되기 때문에 느낌과 분위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청중들이 함께 부르면서 그 집회의 분위기를 살리는 거대한 시너지가 형성되는 것이다.

요즘의 찬양은 이처럼 분위기를 달구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감정을 자극한다. 하나님을 향하여 경배를 올려드리는 찬양이 아니다. 그러므로 결국 영적인 쾌락주의가 형성되고 발산되는 쪽으로 가는 것이다. 집회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람들의 밋밋한 감정에 영적인 여흥을 불어넣는 수단으로 변질되어간다. 중독성이 강한 세상 음악에 길들여진 두되를 가진 현대인들, 특히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교회에 흥미를 느끼도록 제공하는 서비스일 뿐이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면했던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종교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가장 중요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해야 함으로 인간의 맑고 건전한 이성적 사고도 중요했다. 하나님의 명료한 말씀을 듣고 자신의 삶에 분명하게 적용하는 것이 구약의 이스라엘 종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결코 종교적인 감성이나 특별한 분위기 체험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생명과 복을 누리게 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언제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뚜렷하고 명료한 이성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적용하기를 힘써야 했다. 그것이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의 종교였다.

“이스라엘아 들으라”(신 6:4)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들으라”(사 44:1)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렘 7:23)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겔13:2)

그러나 사탄은 이스라엘 주변에 쉽게 빠지기 쉬운 미혹을 두었다.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이 일찍부터 섬겼던 바알종교였다. 바알 종교의 예배는 느낌과 감성을 제공하였다. 바알종교의 예배에서는 사람들의 영적인 행복감, 주관적인 체험, 신과 예배자가 즉각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래서 바알숭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예배를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 이러한 신비한 느낌과 경험을 강하게 체험했다!”
“오늘 바알 신이 이렇게 내 몸을 터치하였다!”
“바알 신이 내 속으로 와서 꿈틀거렸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런 당장의 즐거움을 주시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셨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정적인 흥분과 황홀경을 주지 않으셨다. 대신 맑고 또렷한 이성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읽고 배우라고 하셨다. 이것이 사탄숭배와 하나님 예배의 궁극적인 차이다.

오늘 날의 찬양사역은 교회를 바알숭배와 비슷하게 몰아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영적인 거짓과 진리를 분별하는 안목이 없다. 육신의 감각과 느낌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대부분의 죄인들의 속성이다. 찬양을 뜨겁게 부르면서 하나님에 대한 감성이 형성되면 은혜스럽다고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보다는 바알종교의 예배에 더 쉽게 미혹되었다. 진리의 하나님을 예배할 때와는 달리 짜릿하고 강렬한 영적인 느낌과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아이들 앞에 콜라와 생수를 두고서 갈등하게 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므로 교회를 무너뜨리기 원하는 마귀에게는 오늘 날의 찬양운동이 매우 좋은 수단이 되는 것이다. 사탄은 기독교의 DNA를 변질시켜 하나님의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쉬지 않고 일한다. 지금 그의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사람들이 교회로 모이되, 진리의 말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느낌과 주관적인 감정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종교적 황홀경이 예배의 성공의 척도가 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찬양사역이다.

 

세상 음악을 교회에 도입한 오순절 운동

위험스러운 세상 음악을 교회의 찬양 속으로 끌어들여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었다. 오순절 운동가들이다. 1900년대 추부터 세상에서 재즈 음악(Jazz Music)이 유행하면서 사람들의 감성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순절 운동가들은 재즈 음악을 찬송가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 전까지 교회의 찬송가의 곡조는 느리고 차분하였다. 그래서 세상 음악의 즐거움을 맛본 사람들에게 교회의 찬송은 케케묵은 구닥다리였고 매력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순절 운동가들에 의해 재즈 음악이 찬양 속으로 도입되면서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찬송가의 리듬과 템포가 빨라지자 사람들은 흥미를 느끼면서 몰입되기 시작했다. 세상 음악 기법이 교회로 유입되자 사람들은 더 좋아하면서 애창하였다. 세상의 재즈 음악과 찬송을 조합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찬양을 부르는 교회들로 사람들은 더 몰려들었다. 그래서 오순절 운동하는 교회들이 다른 교회들보다 더 많이 부흥한 것이다. 초기 오순절 운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하워드 고스(Howard Goss)는 자신의 책「The Wind of God」(하나님의 바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재즈가 없었다면 오순절 운동은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 속으로 확산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50년 동안 지속적으로 일어난 오순절 운동의 부흥도 맛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재즈풍이 가미된 찬송가는 그 당시의 일반적인 교회의 찬송가와는 달랐다 ... 그런데 그 속에는 그 어떤 것보다 더 효과적인 요소가 있었다. 내가 아는 한 복음송에다 매우 빠른 탬포를 최초로 도입한 사람은 바로 우리 오순절 운동가들이었다.”

1940년대부터 재즈 음악은 급속히 쇠락하였고 사람들을 더욱 사로잡는 새로운 음악의 형태가 떠올랐다. 그것이 바로 ‘락 뮤직’(Rock Music), 흔히 ‘록큰놀’(Rock ‘n’ Roll)이라고 하는 음악이다. 전자 기타, 베이스 기타, 키보드, 보컬리스트 등으로 구성되어 강한 비트를 특징으로 음악이다. 락뮤직은 특히 젊은이들을 강력하게 사로잡았다. 락음악은 심취되는 젊은이들에게서 정신의 변형이 초래되는 무서운 현상도 많이 나타났다. 락음악을 연주하면서 인기를 누린 대부분의 유명한 음악가들이 마약과 연관되면서 인생을 망쳤고, 락 음악에 심취되는 많은 젊은이들이 마약중독이 되거나 히피생활로 빠져 인생을 망쳤다.

오순절 운동가들은 또 다시 이러한 특성을 가진 음악이 교회로 앞장서 끌어들였다. 락음악을 연주하는데 사용되는 세상의 모든 악기들이 교회 속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명칭이 매우 고상하였다. ‘현시대의 크리스찬 음악’, 즉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라고 하는 복음성가이다. CCM이라는 이 시대의 교회들을 지배하고 있는 찬양의 한 장르는 세상에서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락음악이 찬양 속으로 도입되어 있는 형태이다. 이미 TV와 세상의 다양한 곳에서 유행하는 락 음악에 중독되어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 교회가 제송하는 서비스였다고 보아야 한다. 락 음악 기법이 가미된 찬양이 교회에서 울려퍼지자 교회의 젊은이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락 음악을 교회에 도입하는데 가장 앞장선 교회는 미국의 테네시 주의 클리버랜드(Cleveland)에 본부를 두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the Church of God)이라는 오순절 교단이었다. 아틀란타 주에 있는 이 교단의 ‘하나님의 햄필 교회’(the Hemphill Church of God)는 락 음악을 교회에 도입하는데 가장 앞장섰고, 크게 공헌하였다. 이 교회에 사역하였던 마이런 레페브르(Mylon Lefevre)라는 전도목사가 그 중심인물이었다. 그는 원래 ‘록큰놀’의 제왕이라고 알려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Aaron Presley, 1935-1977)와 같은 세상의 유명한 악가들과 함께 활동했던 락 음악가였다. 마이런 레페브르 목사는 예전에 함께 악 음악을 공연하였던 음악가들을 다시 모아 ‘브로큰 하트’(Broken Heart)라는 복음성가 그룹을 조직하였다. 수 천 명을 불러모아 브로큰 하트 그룹이 연주하고 레페브르 목사가 찬양을 인도하는 집회를 자주 열었다.

또한 레페브르 목사는 전국의 유명한 오순절 교회들을 순회하면서 이러한 찬양집회를 열면서 락 음악 요소가 가미된 새로운 찬양을 세상에 널리 전파하였다. 미국의 오순절 운동을 대변하는 기관지인 <카리스마>의 1985년 2월호는 레페브르 목사의 사진과 함께 “레페브르는 락 음악을 통해 선교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여 이러한 위험한 찬양운동을 미화하면서 홍보하기도 했다.

제 3의 물결 시대, 즉 신사도 운동의 시대가 도래하자 이와 같은 그릇된 찬양운동은 더욱 더 심화되었다. 제 3의 물결을 일으킨 존 윔버는 목사가 이러한 종류의 음악에 큰 재능을 보인 음악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음악 분야에서 많은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존 윔버는 라스베가스에서 락 뮤직과 함께 쇼를 공연하는 극단의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색소폰을 잘 연주하였고, 미국의 여러 도시를 순회하면서 연주하기도 했다. 목회자가 된 존 윔버는 스스로 많은 복음성가를 지어서 보급하였다. 그가 주도하였던 찬양이 ‘Vinyard Music’이라는 장르가 되었을 정도로 크게 성공하였다. 지금도 미국의 Amazon.com이라는 인터넷 매매 싸이트에서는 존 윔버가 지어서 보급한 찬양 CD가 판매되고 있다.

이전에는 오순절 운동 교회들만을 통하여 세상 음악의 기법들이 교회의 찬양 속으로 들어왔었으나 빈야드 운동이 확산되면서 이 현상은 더욱 급속하고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빈야드 운동이 대부분의 건전한 교단들에 속한 교회들 속으로 급속하게 확산되었고, 존 윔버와 다른 빈야드 운동 목회자들의 교회가 급속한 성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교회성장에 목말라 있었던 세계의 모든 교회들이 빈야드 운동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곧 바로 존 윔버의 목회 방식을 배우고 도입하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세상 음악의 기법을 도입하였던 존 윔버의 찬양운동이 전 세계의 교회에 전파된 것이다.
 

온누리교회의 경배와 찬양

존 윔버의 찬양운동은 온누리교회를 통하여 한국 교회 속으로 전파되었다. 80년대 후반부터 온누리 교회와 하용조 목사는 교회를 성장시키는데 큰 효과를 나타내는 빈야드 운동과 다른 것들을 수용하기 시작하였고, 그 대부분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성공하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온누리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하용조 목사와 온누리교회는 바람직한 교회성장을 보여주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여겨지고 있었으므로 다른 많은 교회들이 온누리교회가 하는 일들을 무조건 따라하느라 바빴다. 빈야드 운동으로 인하여 한국 교회가 진통을 겪게 되었을 때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서 서울 노회’는 빈야드 운동에 대한 심도있는 조사를 시행하여 다음과 같이 총회에 보고하였다. 서 서울 노회의 보고서는 한국 교회에 빈야드 운동을 처음 소개한 사람이 온누리교회의 하용조 목사라고 기술되었다.

“빈야드 운동이 처음 한국에 소개된 것은 1980년 후반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의 동생 하스데반이 온누리교회 찬양곡 70여곡을 빈야드 교회 존 윔버에게서 얻어와서 경배와 찬양팀을 결성하여 목요일 저녁 청소년들을 불러 모아 온누리교회에서 찬양을 부르게 한 것이 그 시발이었다.”

한국 교회에 신사도 운동 사상을 소개하는데 많이 공헌한 신사도 운동 신학자 예영수 박사도 존 윔버의 찬양운동이 온누리교회와 하용조 목사에 의해 ‘경배와 찬양’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되었다고 말하였다.

“존 윔버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악단의 단장으로 라스베가스의 2개 로큰롤 쇼 그룹에서 이름을 날렸다. 재즈 음악에 심취하여 악단에서 색소폰을 불었다. 그는 미국 전역을 다니며 연주하기도 했다. 1976년 10월 어느 날 당시 존 윔버 내외는 함께 모인 10여 명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기타를 치며 복음성가(gospel song)를 불렀다. 그들은 몇 개 안되는 복음 송을 여러 번 반복해서 열심히 부르며 울고 있었다. 이 작은 모임은 훗날 5천명에 이르는 빈야드교회의 초대형 찬양단으로 발전했다. 그들은 모여서 복음송을 불렀고 변화를 체험했다. 이 모임을 통해 새로운 찬양의 전통이 만들어졌다. 빈야드 교회에서는 소수의 전문가만이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찬양대원이다. 1982년부터 빈야드의 찬송 음악이 전 세계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온누리교회(하용조 목사)의 ‘경배와 찬양’을 통해 빈야드 찬양이 소개됐다. 한국의 복음성가는 빈야드 찬양으로부터 약 75%의 영향을 받고 있다.”

온누리 교회가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으로부터 도입하여 시작한 “경배와 찬양” 사역은 특히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미 외국에서 이러한 찬양운동을 도입하였던 교회들이 큰 부흥을 경험했던 것처럼, 이때부터 온누리교회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온누리교회가 초대형 교회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이 ‘경배와 찬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의 거의 모든 교회들이 이러한 찬양에 심취하여 있다. (다음에 계속이어집니다.)

 

정이철 / 미국 앤아버 반석장로교회 목사
         앤아버 유학생 바른믿음 학교 대표
         신학싸이트 '바른믿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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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2015-02-04 00:29:43

    1900년 대 차분하고 거룩한 찬송가도 1800년 때 유행가 였다는 사실..
    글쓴이 말대로라면 교회는 화성과 복잡한 리듬 없는 카운터 포인트도 없는 그레고리안 상가만 불러야 되는거 아닌지요..??신고 | 삭제

  • 정이철 2015-02-04 22:11:56

    1800년대 산업혁명이 시작될 때에는 증기기관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특히 최근 수 십년 동안 동력기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여 이제는 수소엔진, 기름과 전기를 먹고가는 하이비르드 엔진, 심지어 원자력 엔지도 나왔습니다. 그 시절에는 음악 자체가 단순했습니다. 지금의 음악과 평행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신고 | 삭제

  • 음악이해 부족 2015-06-11 13:06:06

    재즈풍 이전에 교회에서 불려졌던 찬양은 세상음악이 아니고 재즈풍의 음악은 세상음악이라고 무슨 기준으로 구분이 가능한가요..? 그렇게 따지고 보면 초기 신약시대 그리스도인들이 불렀던 찬양을 불러야지요. 2000년 전에 그리스, 중동 지방의 단선율 음악을 불러야지요. 바흐는 세속음악, 교회음악 모두 작곡했습니다. 하지만 음악적 양식이나 내용의 가치에 있어서 그 둘이 차이는 없습니다. 시대에 따라 음악도 변하고 다양화 되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렀던 찬양, 신약시대 초기 기독교인들이 불렀던 찬양,헨델이나 바흐가 작곡했던 찬양, 재즈 음악가들이 작곡한 찬양. 이것들은 음악이 시대에 따라 다양화 되고 변한거지 어디부터 세속음악이다 라고 구분을 할수 없습니다. 1900년대 부르던 찬양도 2000년전 초기 기독교 시대 찬양과 비교하면 너무 화성이 복잡하고 지나치게 감상적인 음악입니다. 음악적 양식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걸 이용해서 어떤 메세지를 전하느냐 어떤 내용과 사상을 전달하려고 하느냐가 더 중요하고 위험한 것 아닐까요?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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