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그 동안 목사님이 연구하여 바른믿음에 올리신 그들을 보니, 누군가는 이미 지적했어야 했을 내용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지난 수 백 년 동안 청교도 운동에 대해 모두가 칭송만하고 아무도 목사님과 같은 비판을 하지 않았을까요? 바로 그 점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보십시오. 청교도 신앙으로 하나님 믿으면 구원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답변>
저는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구원을 얻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설명하겠습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아담과 언약을 맺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분명히 언약이 있었고, 그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자기 백성으로 창조하신 아담이 영원히 하나님 백성으로 남고,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도 영원히 아담의 하나님으로 계시겠다는 언약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의 두 가지를 통해 하나님과 아담 사이의 그 언약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호세아 6:7절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호 6:7)

성경은 이처럼 아담과 하나님 사이에 분명히 언약이 있었고, 아담이 그 언약을 배반하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반역’이라는 말은 아담이 하나님이 베푸신 호의, 은혜, 사랑을 배신하였음을 뜻합니다. 단지 아담이 하나님의 바램이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5)

위 말씀을 통해 아담이 하나님 백성으로 남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같이’되려는 욕망을 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고귀한 하나님 형상으로 지어 백성 삼으시고, 영생과 모든 은혜를 부족함 없이 주신 하나님을 섬기기를 거부하고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반역을 저지른 것입니다. 백성으로 지어진 피조물이 창조주의 호의와 은혜를 배신하고 반역하였으므로 당연히 창조주의 저주와 심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존귀하게 지어진 아담이 하나님께 반역죄를 범함으로 하나님 백성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9:15)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이유가 첫 언약, 즉 처음의 사람 아담이 하나님과 맺었으나 파기한 그 언약 때문에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아담과의 첫 언약이 아담의 반역 죄로 인해 망가지고 말았으나 하나님 자신이 사람이 되시어 그 죗값을 지불하심으로 그 처음의 언약을 복구하고 다시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가지셨다고 말씀합니다.
 

2) 하나님의 구속경륜
:언약을 파기한 아담의 죗값을 하나님이 대신 치르시고 언약을 복원하여 하나님 백성을 가지심

비록 아담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였으나 하나님과 아담의 첫 언약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격을 담보하여 아담과 언약을 맺었으므로 하나님 자신이 그 언약을 반드시 이루어야할 책임을 지시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언약을 파기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인격과 신실성을 걸고 맺은 언약이므로 하나님이 그 언약을 다시 복원하고 반드시 성취해야 할 책임을 가지신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서철원 박사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과 언약의 당사자로 서시사 언약을 맺으실 때는, 당사자의 언약 파기로 그 언약이 파기되게 용납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언약 법적 조건들에 자신을 매시므로 그 언약 이행의 책임을 자신도 지시게 되었다. 하나님은 아담과 언약을 맺으실 때 거기에 자신의 인격을 걸으셨고 자기의 신실성을 두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을 걸어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담과 그의 후손과 맺은 언약을 지키시기로 작정하셨다.”(하나님의 구속경륜, 89)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지키시려고 언약을 맺으셨다. 아담과 맺은 언약이 그에 의해 파가되므로 끝나게 하실려고 그는 언약을 맺으신 것이 아니다. 인간은 파기하였어도 하나님은 자기의 인격과 신실성을 걸어 맺으신 언약을 성취하시려고 작정하신 것이다.”(하나님의 구속경륜, 90)

칼빈도 하나님과 사람의 언약에 대해 동일하게 이해하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맺은 모든 언약은 비록 서로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쌍방의 동의하여 맺은 언약일지라도 그것의 성취는 모두 하나님의 자비에 달렸다고 가르쳤습니다.
 

“모든 족장들과 맺어진 언약과 우리와의 언약은 그 실질과 실상이 매우 동일하기 때문에, 사실상 이 둘이 하나다. 다만 처리 방법이 다르다 ... 그들을 주에게 묶어 놓은 언약은 그들 자신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 유지되었다.”(기독교강요, 2.10.2)

하나님과 사람의 언약을 하나님의 자비, 은혜, 사랑에 근거하는 언약으로 가르치지 않고 쌍방간의 의무, 조건에 기반하는 언약으로 가르치는 내용들은 성경적이지 않고 개혁신학도 아닙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아담이 반역죄를 범하여 하나님 백성의 신분을 영구히 상실하고 죽게되었을 때, 곧 바로 자신의 희생으로 아담과의 언약을 복원하고 다시 아담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을 것을 계시하였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아담의 언약 파기 죗값을 대신 지불하고 다시 언약을 복원하여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자 하시는 구속 경륜을 밝히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죄와 무관한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오시어 사람의 죗값을 대신 치르고 사람을 유혹하여 반역하게 한 사탄을 심판하실 것을 밝히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 제사로 언약이 복구될 것임을 밝히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렘 31:31)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그리스도가 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심으로 아담이 반역하고 파기해 버린 옛날의 언약(처음의 언약)이 복구되었습니다. 기독교에는 수 십 종류의 하나님이 언약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 하나의 언약만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백성으로 창조하시고 영원히 백성되고 영원히 하나님이 되시고자 맺으신 언약입니다. 노아와의 언약, 아브라함과의 언약,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시내산의 언약 ... 모든 언약은 아담이 반역하여 파기한 첫 언약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복원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 그리스도가 자기의 속죄의 피로 더 이상의 언약 갱신이 필요없는 영원하고 완전한 새 언약, 아담이 파기한 언약을 완전하게 복원시키는 최후의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피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담의 반역죄로 인해 하나님 백성이 사라졌고 하나님의 창조경륜도 망가졌었는데, 하나님이 친히 죄와 무관한 사람으로 오시어 아담의 반역의 죗값을 지불하심으로 다시 언약을 복구하고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자기 백성으로 되찾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청교도 신앙의 출발과 구조는 다릅니다. 청교도 신앙의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과 은혜 가운데서 자기를 경배할 자기 백성을 창조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냥 흙으로 사람 하나를 만들고 그 사람에게 영생을 얻고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율법을 기록하여 주면서 율법 실천의 선행을 잘 하면 그 대가로 영생과 하나님 백성 자격을 주기로 계약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행위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마음에 기록된 율법을 실천하는 선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선행을 잘 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는데, 그 사람이 그것을 게을리하고 불순종했습니다. 청교도 신학은 그것이 사람의 원죄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하시어 그 사람이 회개해도 소용이 없는 영원한 저주와 죽음을 내리셨다고 합니다. 하나님 백성이 반역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하나님 백성 되라는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저주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여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사람(그리스도)이 되시어 아담이 못한 율법의 선행을 기똥차게 잘 감당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선행을 잘 감당하시어 자기의 구원의 자격과 우리의 구원의 자격을 얻으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청교도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속죄의 제사를 드리심으로 아담이 파기한 첫 언약을 복원한 새 언약으로 우리가 구원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청교도는 은혜언약으로 우리가 구원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아무런 선행을 하지 못했으나 그리스도가 대신 구원의 자격을 위한 율법준수의 선행을 하셨으므로,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의 공로가 없을지라도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은혜언약의 핵심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죗값을 지불하셨으므로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를 얻고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의 선행에 우리 대신 성공했으므로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은혜언약이라는 말은 좋으나, 그 내용이 이처럼 성경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사람 대신 율법의 선행에 성공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얻고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성경은 오직 죄가 없는 분으로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얻고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구원의 자격이 율법의 선행인데, 아담이 그것에 실패했으므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어 대신 율법의 선행을 이루어 자신과 우리의 구원의 자격을 만들었다는 주장은 기독교와는 무관한 사변입니다. 기독교는 오직 하나님께 반역하여 언약을 파기한 아담을 대신하여 죗값을 치르신 영원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피로 구원 받는 종교입니다.

다시 요약해 보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1)하나님이 사랑과 은혜로 자기 백성을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영원히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이 되자고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언약했습니다.

2)하나님 백성(아담)이 하나님의 과분한 은혜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반역함으로 언약이 파기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해 진노하시고 저주셨습니다.

3)하나님께서 자기의 인격의 신실성을 걸고 언약했으므로 언약을 성취해야 할 책임을 스스로 지셨습니다. 자신이 사람이 되어 자기의 생명과 피로 언약 파기의 죗값을 치르심으로 언약을 복구하시고 아담과 그 후손들을 다시 백성으로 되찾으시오 처음의 창조의 목적과 경륜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그러나 청교도 신앙에는 이와 같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없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이 은혜 가운데 자기 백성을 가지신 적도 없고, 죄로 인해 사라진 그 백성을 되찾으시기 위해 스스로 사람이 되시어 언약 파기의 죗값을 자기의 생명과 피로 지불하심으로 사람과의 첫 언약의 복구하시고 다시 자기의 백성을 되찾으셨다는 내용의 성경적인 신앙이 없습니다. 아담의 구원이 율법에서 나와야 했고, 그리스도와 우리의 구원도 결국 그리스도가 지킨 율법에서 나옵니다. 신약 성경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이 성령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곧 바로 새언약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율법의 저주를 선포받고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고, 구원이 필요함을 알고 스스로 예배, 기도, 회개, 성경공부 등에 힘쓰면서 그리스도를 통해 새언약 백성이 되게 해주시는 은혜가 오기(성령의 회심체험)를 기다리라고 합니다.  참으로 생소한 기독교입니다. 

청교도도 우리의 구원에 관련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말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죄용서와 관련된 것이고 구원에 필요한 의가 되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구원에 필요한 의는 그리스도의 율법의 선행이라고 하니, 청교도의 신앙은 성경과 매우 다릅니다. 십자가를 말하기는 해도 언제나 그리스도의 율법의 완전한 선행을 했다는데 강조를 둡니다. 그러므로 청교도 신앙이 건강하고 성경적인 신앙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청교도 신앙은 영리한 사람들의 매우 정교한 학문이고 철학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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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