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8 04:54 (토)
웨민고백(WCF)과 함께 하니 너무 행복하고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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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민고백(WCF)과 함께 하니 너무 행복하고 아름다워요!
  • 정이철
  • 승인 2020.08.01 0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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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회의 신학의 출발점은 존 칼빈이다. 장로교회의 신학은 칼빈주의(Calvinism)이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청교도들의 신학은 장로교회의 조상 칼빈의 신학과 처음부터 길을 달리했다. 청교도 교회의 신학의 출발점 칼빈이 아니고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이다. 그들의 신학은 칼빈주의가 아니고 퍼킨스주의(Perkinsnism)이다.

국교회 목회자였던 퍼킨스는 대략 1580년대까지 장로교주의자였다. 잉글랜드 국교회 속에 칼빈의 장로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목표하였던 청교도 개혁운동 그룹에 속하였던 인물이다. 1580년대 들어 엘리자베스 여왕과 국교회 감독들의 결사적인 반대로 인해 국교회를 장로교로 바꾸려는 청교도 개혁 운동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때부터 퍼킨스는 청교도 개혁운동의 방향을 바꾸었다. 국가와 권력이 싫어하지 않는 일들을 소리없이 조용히 수행하기 시작했다. 정권과 국교회 주교들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방식으로 서서히 국교회의 뿌리를 흔들어 버리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겉으로 드러나는 요란한 제도의 개혁을 포기하고 그 대신 각 개인들이 자기의 구원을 위해 노심초사하면서 노력하고 헌신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청교도 개혁운동의 방향을 새로이 설정하였다.

퍼킨스는 개혁운동의 동력원이 될 새로운 신학도 수립하였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시하였던 청교도 언약 신학이다.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한 자격으로서의 선행을 완전하게 수행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 영생을 주신다는 쌍무적 언약 개념을 수립했다. 선행의 기준으로서 율법을 아담과 함께 등장시켰다. 율법을 준수하는 선행을 조건으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영생을 주기로 언약했다는 행위언약 사상을 출범시켰다. 퍼킨스의 청교도 신학에서 인간 창조의 키워드는 율법이다.

“인간은 율법 안에서, 율법과 함께, 율법이 마음에 기록된 상태로 창조되었다!”

이것이 퍼킨스주의의 인간 창조론이다. 인간이 율법적 선행에 성공하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구원과 하나님 백성 됨을 주시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릇된 율법적 인간 창조론에서 다음과 같은 청교도들의 비성경적인 주장들이 따라서 일어났다.

1) 아담이 선행에 실패했으므로 그리스도가 오시어 대신 선행에 성공하여 그 자신과 우리 모두의 구원의 자격(의)을 마련했다는 청교도 신학의 능동적 순동의 교리가 나타났다.

2) 인간이 아무 공로도 없이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지금도 모든 사람이 첫 사람 아담처럼 하나님이 부여하신 율법의 요구과 맞닥뜨려야 하고 율법의 정죄 아래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깨닫고 슬퍼하면서 그리스도의 공로를 적용하여 이신칭의 은혜를 입혀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신칭의 은혜를 입혀 구원을 주실 때까지 사람이 영적으로 각성되어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율법을 지키면서 간절하게 구원을 사모하며 기다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나, 사람이 그것을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는 청교도 신학의 회심준비론 이단사상이다.

3) 그리스도가 대신 율법적 선행을 실천하여 구원의 자격(의)을 얻으시고 전가하심으로 구원을 얻기는 했으나(행위언약에서 은혜언약으로 넘어왔음), 구원 이후 신자들이 율법을 준수함으로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충실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청교도 율법주의가 나타났다.

신약 성경이 심각한 이단 사상으로 규정하는 이런 거짓된 신학이 청교도들의 신앙에서 나타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이 율법 안에서, 율법과 함께, 마음에 율법이 기록된 상태로 창조되었다는 퍼킨스의 인간 창조론과 언약 사상이다. 청교도 신학은 태초에 아담과 함께 아담의 마음에 기록된 상태로 등장한 율법이 나중에 시내산에서 돌판에 기록되어 주어졌다고 한다. 많은 곶감들을 한 꼬챙이로 꿰는 것같이 청교도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율법으로 꿰어지는 종교이다.

그렇다면 성경과 칼빈주의 신학에서 인간 창조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기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다고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에 대해 지금까지 신학자들의 논의의 결론은 (비록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인격’이 하나님의 형상에 가장 가까운 개념이라는 것이다. 장로교와 개혁신학은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의 본질로 본다.

청교도 신학, 즉 퍼킨스주의는 인간이 율법 안에서 창조되었고 한다. 그러나 성경과 칼빈주의 신학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창조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율법 안에서 창조되었다면, 인간은 자기의 구원을 위하여 율법을 기준과 수단으로 삼고 노력해야 한다. 구원은 필연적으로 사람과 하나님과 협력으로 나오게 된다. 그리고 구원 받은 후에도 율법을 따라 삶으로 구원을 지켜야 하고, 율법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 인간은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율법에 메여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이 율법인 셈이다.

그러나 성경과 칼빈의 가르침대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창조되었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흙으로 만들어진 초라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과분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명은 하나님께 항상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창조되어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다스리고 관리하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태어난 인간이 자기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고 선행에 힘써야 한다는 청교도 신학의 가르침은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 하나님께서 생명나무를 담보하여 언약하신 대로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함으로 영원히 살 수 있는 은혜와 복락을 처음부터 부여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 반역하여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보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그 상태가 이어졌을 것이다.

다음의 두 창조론 가운데 무엇이 성경의 가르침인가?

청교도 신학과 퍼킨스주의>
“인간은 율법 안에서 율법과 함께 율법이 마음에 기록된 상태로 창조되었다!”

성경과 칼빈주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율법이라는 말이 구약 성경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 쓰여지기도 한다. 그래서 복잡해지기는 하지만, 청교도들이 말하는 율법은 모세의 계명, 즉 훗날 시내산에서 돌판에 기록되어 주어진 율법들이다. 아담이 그 율법 안에서 그 율법과 함께 그 율법이 마음에 기록된 상태로 창조되었다는 청교도 신학의 가르침은 출생 당시 아담에게는 구원이 없었고, 아담은 자기의 율법대로 사는 자기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어야 할 미완성의 사람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성경과 칼빈주의 신학의 가르침은 아담이 구원된 존재로 태어났고, 동시에 지금 타락한 우리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지고의 선과 능력과 권능과 지혜를 가진 하나님 백성으로 태어났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아름답고 고귀하게 지으신 자기 백성이 타락하여 없어지자 하나님은 스스로 사람이 되어 아담의 죗값을 치르시고 다시 그를 자기 백성으로 회복하여 내신 것이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4장 인간 창조에 대한 내용 속에 이상한 사상이 들어있다. 웨민고백 4장이 인간의 창조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살펴보자.

“ ...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되어 이고 그것을 이룰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범죄할 가능성 아래 있었던 것은 변하게 되어 있는 그들의 자유 의지에 맡기셨다. 저희 ‘마음에 기록된 율법’ 위에 그들은 명령을 받았으니...”

“... having ‘the law of God written in their hearts’, and power to fulfil it; and yet under a possibility of transgressing, being left to the liberty of their own will, which was subject unto change. Beside ‘this law written in their hearts’, they received a command ...”

앞부분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고 표현하면서 바로 뒤에서는 이와 같이 영생의 자격이 되는 선행의 기준이 하나님의 율법이 아담의 마음에 기록된 상태로 아담이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창조되었다는 것 하나만 가르친다. 타락했음에도 여전히 의와 거룩을 추구하는 불완전한 인간의 특성, 그리고 모양과 형태는 다르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양심은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이다.

이것 외에 인간의 마음에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것을 성경이 말하지 않는다. 칼빈도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만일 칼빈이 하나님께서 아담의 마음에 기록하여 주신 율법들에 대해 들었다면 어떠했을까? 아담이 훗날 시내산에서 돌판에 기록되어진 모세의 계명들을 준수하는 선행으로 영생의 자격을 스스로 마련했어야 했다는 청교도들의 신학을 들었다면 아마도 기절하여 뒤로 넘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3일 동안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 2:15)

청교도주의자들은 바울이 말한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가 인간이 율법과 함께 율법 안에서 창조되었다는 청교도 신학의 타당성을 증거한다고 한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과 무관한 세계에서 태어나고 죽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불신앙의 정당성을 주장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이 말을 했다. 자신들의 양심이 죄악되게 살았음을 스스로 증거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 양심은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이지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기록한 율법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 얻을 방도인 특별계시가 주어졌다는 것이니, 말이 되지 않는다.

왜 이런 그릇된 내용이 웨민고백서에 들어있는 것인가? 웨민고백서가 유럽의 종교개혁의 여파로 나타난 영국의 청교도 개혁운동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은 국왕과 국교회를 상대로 청교도 세력이 목숨을 걸고 전쟁하던 내전의 시기였다. 전쟁에서 지면 남는 것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어 죽는 것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패배한 국왕의 목이 단두대에서 잘려나갔으나, 웨민고백서가 준비될 때에는 누구의 목이 잘려나갈지 결정되지 않았을 때였다.

잉글랜드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이었는데, 그들이 국교회를 물리치고 그 자리를 대신할 하나의 청교도 연합교회를 조직하기 위하여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소집하였다. 가장 우선적인 목적은 엘리자베스 여왕 때 작성되어 그 때까지 국교회의 신앙고백 역할을 하고 있는 39개 신조를 대체할 청교도 연합교회의 신앙고백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잉글랜드의 장로교회파 청교도들과 회중교회파 청교도들만의 힘으로는 국왕의 군대를 이길 수 없었다. 국왕과 국교회와 대립하고 있는 모든 종교개혁 세력들이 하나로 뭉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잉글랜드 장로교회파 청교도들과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이 시작하였으나, 세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동일하게 국교회를 대적하고 있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파 청교도들과도 동맹을 맺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엄숙동맹'을 맺음으로 스코틀랜드 장로교 청교도 교회도 웨민총회에 합류했고, 웨민고백서 작성에 참여하였다.

모두 국교회를 물리치고 살아남고자 뭉쳤으나, 장차 누구의 신앙을 중심으로 하나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합의를 보지 못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장로교를 잉글랜드가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의 생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국왕의 군대를 물리침으로 국교회 세력이 거의 궤멸되었다(1차 내전 종결). 그러나 곧 바로 웨민총회를 주도했던 잉글랜드의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의회의 의원들)과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크롬웰이 지휘하는 군대의 병사들이 회중교회파 청교도 신자들이었으므로 크롬웨이 자기를 제거하려는 의회를 장악하는 것은 식은 죽먹기나 마찬가지였고, 장로교회파 의원들이 그를 당할 수는 없었다. 웨민총회를 처음 주도하였던 잉글랜드 의회는 회중교회파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얼마 후 잉글랜드 회중교회파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파 간의 전쟁도 시작되었다.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군대도 크롬웰과 그의 회중교회파 청교도들로 구성된 군대를 이기지 못했다. 스코틀랜드는 회중교회의 지배를 받아야만 했다. 

모든 권력을 수중에 넣은 절대 권력자 크롬웰은 장로교회를 인정하지 않았다. 장로교회파 청교도들이 주도하여 이루어낸 엄숙동맹과 웨민고백서 등이 모두 무시되었다. 영국에 하나의 교회를 세운다는 처음의 목표도 웃기는 소리가 되고 말았다. 크롬웰이 죽을 때까지 영국에서는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의 시대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웨민고백서가 만들어 질 때에는 아직 크롬웰과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의 시대가 아니었다. 그때는 모든 청교도들이 하나로 연합하여 국교국교회를 물리치기 위하여 하나의 청교도 연합교회를 세울 준비를 하던 상황이었다. 어떤 종파도 변심하여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고 서로의 의견을 다 존중하고 종합하여 하나의 신앙고백서를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였다. 그래서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아직까지 웨민고백서에 장로교회의 조상 칼빈의 사상과 전혀 다른 사상이 들어와 있음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성경과 칼빈의 신학으로 볼 때 이단사상으로 간주되어지는 어떤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의 사상이 웨민고백서에 있다는 심각한 사실을 이제라도 보아야 한다. 지금 한국의 청교도 목회자들이 죽기 살기로 웨민고백서에 의존하고 호소하는 이유도 알아 보아야 한다. 그들의 조상들이 목숨 같이 믿고 주장했던 그릇된 교리들의 근거가 웨민고백서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청교도 목회자들이 믿음이 좋아서 웨민고백서에 목을 메는 것이 아니다. 웨민고백서가 복음을 훼손하는 자들에게 매우 요긴하게 쓰여지고 있음을 이제라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웨민고백서를 신앙의 참고 정도로 여기지 않고 성경 이상의 절대적 진리의 규범으로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다음의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1) 프랑스 신앙고백 5장

“성경 안에 있는 말씀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며, 이 책의 권위는 다만 하나님에게서만 받은 것이지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님을 우리는 믿는다. 그리고 성경이 모든 진리의 척도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만큼 사람이나 천사라 할지라도 성경에 더 첨부하거나 혹은 성경에서 삭제하거나 그 책을 고치는 것은 잘못하는 일이다. 따라서 고전, 관습, 다수, 사람의 지혜, 판단, 선포, 칙령, 포고, 회의, 환상, 혹은 이적 등등의 어떠한 것의 권위도 성경의 여러 책들을 반대할 수 없고, 오직 모든 것이 성경에 일치되게 검토되며 규정되며 개혁되어야 한다.”(프랑스 신앙고백서 5장)

프랑스 신앙고백서 5장은 성경의 말씀외 그 어떤 사람의 선포, 칙령, 회의 등을 통하여 발표된 문건을 절대적으로 신봉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웨민고백서는 국교회와의 전쟁의 와중에서 청교도 종파들의 연합을 이루기 위해 이미 1560년대에 프랑스 개혁교회가 이단으로 정죄한 회중교회주의자들까지 참여하여 서로 존중하면서 함께 만들어내 문건이다. 잘못된 부분을 찾아서 계속 연구하고 고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지, 한번 만들어졌다고 하여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심지어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웨민은 내 사랑! 내 사랑 웨민! 웨민 없이는 못살아! 정말 못살아!” ... 라는 찬가를 부르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못되었다.

2) 청교도주의자 로이드 존스의 권면

“우리는 16-17세기에 작성된 신앙고백서에 율법주의적으로 묶일 위험성을 피해야 합니다. 신앙고백서는 부차적인 기준에 불과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로이드 존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고백서를 지침으로 사용해야 하지만, 폭군이 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고백서들이 어떤 항목도 손을 대거나, 바꾸어서는 안 되는 엄격한 규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로이드 존스)

영국의 회중교회(청교도 교회)의 목사였던 로이드 존스처럼 청교도 신학에 열광하였던 사람은 드물다. 로이드 존스는 청교도 신학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들이 되는 소중한 책들을 남긴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청교도 시대에 작성된 신앙고백서에 대해 이와 같이 당부하였다.

3) 목사 안수와 웨민고백에 대한 미국 PCA 교회의 헌번 수정

미국의 PCA 교회는 목사안수 후보생이 웨민고백의 어떤 부분에 대해 양심상 동의할 수 없다는 내용을 피력하면, 노회는 그것이 신앙의 본질에 관한 것이지 아닌지를 판단한 후 수용하는 것으로 헌법을 수정하였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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