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정이철 목사님, 인천 그리스도 보혈교회 스데반 황목사님 아시지요? 그 분은 목사님이 청교도 사상에 이단성이 있다는 연구를 개인적인 주장에 불과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공교회의 신앙과 청교도 신앙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보세요.

 

답변>
공교회가 무엇인지 우리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편교회의 의미로 공교회를 말하고, 어떤 사람은 역사적 공의회를 주도했던 초대교회 당시의 보편교회를 공교회로 말하고, 어떤 사람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공적인 차원이라는 의미로 공교회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공교회의 핵심 요소를 1)단일성, 2)거룩성, 3)보편성, 4)사도성으로 지목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사도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교회가 충실하게 따르면 자연스럽게 단일성, 거룩성, 보편성이 생겨나게 됩니다.

보내주신 사진을 보니, 저도 잘 아는 그 목사님이 청교도 신앙과 공교회의 신앙이 같으므로 청교도 신앙에 이단성이 있다고 설명하는 저의 견해가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하다고 했군요. 저 이름을 말하지 않았으나 누가 보아도 저에 대한 말로 보입니다. 그러면 청교도 신앙의 핵심과 사도들의 신앙의 핵심을 비교해 보면 답이 금새 나오겠습니다. 조금 후에 그 부분을 설명하겠습니다.

둘째로 공교회가 가르치고 믿고 주장하는 것이면 무조건 정통신학이라고 우기는 오류에 깊이 빠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정통교회라고 불리우건, 공교회라고 불리우건 간에, 제 아무리 좋은 교회라도 성경과 사도들의 신앙에 반하는 내용을 가르치고 주장하고 확산시키면 이단으로 정죄되어야 합니다. 마땅히 그래야만 합니다. 안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불충이고 배교에 동참하는 것과 같습니다.

천주교의 신앙의 특징은 ‘오직 성경’(사도성)이 아니고 ‘오직 교회’입니다. 천주교에서는 교회를 통해 계시가 증진되고 확정됩니다. 그래서 교회(공의회와 교황)가 절정하는 것이 새로운 교리가 됩니다. 그러나 천주교가 성경에 반하는 교리를 만들거나 결정하면 이미 스스로 이단임을 증거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미 천주교는 마리아, 교황, 성찬 등에 대해 그런 일들을 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공교회의 사도성의 원리에 기초하여 천주교를 이단으로 정죄하였고 사도적인 교회를 회복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정통교회가 청교도 신앙을 믿고 가르쳤으므로 청교도 신앙은 정통신앙이라고 합니다. 그 주장도 사실 천주교의 '교회주의 이단사상'과 같은 논리입니다. 과연 그분들에게 무엇이 정통교회인지 모르겠으나, 성경의 가르침(사도성)에서 벗어난 것을 주장하고 계속 우기면 어느 교회라도 더 이상 정통교회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 로이드 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경적 근거가 없는 가르침들을 주장하고 옹호하는 자들(교수, 목사, 교단, 교회)을 형제로 여길 수 없습니다!”(로이드 존스)

예를들어 보겠습니다. 대한예수교 장로교회 통합 교단은 분명히 한국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공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교단은 처음부터 WCC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지금은 천주교도 기독교라고 합니다. 이 교단이 정통교단이고 공교회이므로 천주교와 WCC는 이단이 아닌 것인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교단이 이단의 무리가 되었고 이단 옹호집단이 되어 버린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청교도의 핵심 신앙은 과연 사도들의 가르침과 일치할까요? 사도성이 핵심인 공교회의 신학 입장과 청교도 신학의 핵심은 같을까요? 간단히 청교도 신학의 핵심적인 것 두 가지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1)원죄

사도들의 신학과 신앙을 근본으로 하는 공교회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을 따라, 그리고 모든 은사와 영생과 지혜를 부여하시어 아담을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또한 하나님은 아담의 영원한 하나님이 되기로 서로 인격적 관계 속에서 언약을 맺었다고 가르칩니다. 칼빈도 그 신학을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만족하며 즐거이 하나님을 섬기기를 거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리까지 찬탈하여 스스로 왕이 되려는 욕망과 교만을 품었습니다. 그리하여 침착하고 차분하게 선악과를 범함으로 자기의 반역을 실행했습니다. 이것이 아담의 원죄이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영원히 죽어야 할 죄라고 사도들과 공교회는 가르칩니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도 아니고 복과 은혜와 영생도 주지 않은 불완전하고 임시적인 존재로 아담을 율법 안에서 율법과 함께 창조하였다고 합니다. 아담이 율법의 기준을 따라 선하게 살면 그 공로에 근거하여 영생을 주겠다고 언약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담이 언약했으면서 언약한 대로 실천하지 않아 하나님이 그에게 회개해도 소용없는 영원한 저주를 내리셨다고 합니다. 청교도 신학에 의하면, 하나님은 단지 아담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 적이 없고, 오직 아담은 스스로 노력하여 자기의 공로로 하나님 백성이 되고 영생을 취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기대를 따르지 못하였다는 것이 원죄라고 합니다.

원죄를 이렇게 이해하고 믿으면, 창조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다시 찾아내시기 위해 스스로 사람이 되어 죄를 해결하신 그 사랑과 은혜가 설명됩니까? 그냥 아담을 사형시키고 다른 아담을 만드시면 되지, 왜 스스로 사람이 되시어 죽으심으로 아담을 다시 살려서 자기 백성으로 만드셨을까요?

과연 청교도의 윈죄론으로 기독교 신앙이 바로 설 수 있을까요?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인간이 뱀과 사랑에 빠져 뱀을 부리는 마귀의 씨앗을 잉태했다는 통일교의 원죄 사상과 청교도의 원죄 사상은 사도들의 신학과 공교회의 신학 입장에서 벗어났다는 면에서는 동일하지 않습니까?

청교도는 아담이 율법의 기준에 맞는 선행을 하지 않아서 구원 받지 못했다고 원죄를 변조함으로 이후 기독교 신앙의 여러 부분을 성경(사도성)에서 이탈되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큰 변조는 지금도 우리들이 최초의 사람 아담에게 부과된 율법 아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한 이신칭의를 주시기를 기다리고 소망해야 한다는 회심준비론 이단사상을 교회에 정착시킨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자기의 비참한 운명을 깨닫고, 회개하고,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율법지키면서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적용하여 이신칭의되게 해 주시기를 사모하고 간절히 간구해야만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사도들의 신앙인가요? 대체 어떤 공교회가 그런 구원론을 가르쳤습니까? 이러고도 청교도 신학이 이단사상이 아닙니까?


2)칭의

청교도는 칭의를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 율법의 기준에 맞는 선행을 행함으로서 얻으신 의의 전가라고 합니다. 청교도의 그릇된 원죄관이 계속하여 칭의론에도 이어지고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청교도 신학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목적이 구원을 위한 선행인 것으로 변조되어 버렸습니다. 과연 어느 사도가 성육신과 칭의를 그렇게 가르쳤습니까? 어느 공교회가 그리스도의 선행이 그리스도 자신과 우리에게 의를 주었고, 그리스도가 선행으로 얻은 그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칭의가 이루어진다고 가르쳤습니까? 대체 어느 사도와 어느 공교회가 그리스도 자신도 율법의 선행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가르쳤습니까? 그러고도 청교도 신학이 이단 사상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사도들과 공교회는 칭의를 오직 이렇게만 믿고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1)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6)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청교도들이 그리스도가 율법의 선행으로 의를 얻으심으로 믿는 우리에게 칭의가 주어졌다는 이단 사상을 주장할 때, 진정으로 공교회의 사도적 신앙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박한지 아십니까? 이미 제임스 1세가 그 이전에 그리스도가 아담을 대신하여 선행하여 구원의 자격이 되는 의를 얻었다는 이단적 칭의 사상을 결코 주장하지 말라고 명시한 문서를 낭독했습니다. 제임스 1세는 역사적으로 어떤 공의회(공교회)에서도 그리스도가 아담을 대신하여 선행하여 자신의 구원의 자격인 의를 얻었고 그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여 칭의가 이루어졌다는 이단적인 칭의론 고백하고 가르친 적이 없으므로 더 이상 그런 이단사상을 가르치지 말라고 명시했습니다. 공교회를 이끌었던 존경받는 교부들 가운데 그 누구도 그리스도가 율법의 선행으로 의를 얻어 우리에게 전가함으로 칭의가 이루어졌다는 이단 신학을 가르친 적이 없으므로 더 이상 그런 주장이 자신이 다스리는 영토 안에서 다시 나오게 하지 말라고 명시했습니다. (Robert Letham, The Westminster Assembly, 39)

가장 심각하게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기둥을 허무는 청교도 신학이 이단 사상이 아니면 세상 어디에 이단이 있을까요? 원죄를 변조시키고 칭의론을 변조시키면서 이단이 아닐 수 있다면, 세상에 이단이 또 있을까요? 청교도 신학은 기본적으로 1)원죄론 2)칭의론, 이 두 가지만 보더라도 사도들의 신앙과 공교회의 신앙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그 외에도 많습니다.

이런 이단 사상을 청교도들이 주장하면 상황이 뒤바뀌는 것인가요? 청교들이 참여하여 만든 웨민고백서에 그런 내용이 들어있다고 사도들의 신앙과 공교회의 신앙이 달라지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런 내용을 기술한 웨민고백서의 권위만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16-17세기에 작성된 신앙고백서에 율법주의적으로 묶일 위험성을 피해야 합니다. 신앙고백서는 부차적인 기준에 불과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로이드 존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고백서를 지침으로 사용해야 하지만, 폭군이 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고백서들이 어떤 항목도 손을 대거나, 바꾸어서는 안 되는 엄격한 규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로이드 존스)

“오늘날 신앙고백서들을 크게 잘못 사용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정직하게 그 신앙고배서들을 입으로만 인정하고 금방 박물관으로 던져 버립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신앙고백서들을 의지하고 서서 보수적인 행동을 취합니다. 이것은 때로 진리라기보다는 교회 정책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태도는 신앙고백서들을 그릇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정직한 자세는 이 신앙고백서들을 성경의 빛에 비추어 시험하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세대 가운데서 그러한 일을 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일을 하라고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자들을 부르셨고, 17세기의 선조들을 부르셨던 것입니다.”(로이드 존스)

청교도 신학의 이단성까지도 무조건 추종하고 절대시하는 한국의 잘난체 하는 목사들은 미국의 대표적인 장로교회(PCA)가 목사 안수를 행할 때에 웨민고백서의 그릇된 부분에 대해서는 양심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그 부분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피력하는 것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고쳤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한마디하고 마치겠습니다. 이단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정통교회의 관행과 오래 묵은 신념과 주장이 아닙니다. 오직 성경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입니다. 칼빈이 괜히 존경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가장 바르게 계승하였기 때문이다. 정통교회는 괜히 정통교회가 아니고 사도들의 가르침과 공교회의 신학을 바르게 따르고 지키기 때문에 정통교회인 것입니다. 존경받고 있는 이단이라고 해서 정통이라고 미화하면 그런 사람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형제가 아닙니다.

청교도 신학을 맹목적으로 주장하고 따르면 이단의 길로 가거나 하나님 앞에서 신앙이 더러워지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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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