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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조물이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여 피조물의 한계를 벗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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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조물이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여 피조물의 한계를 벗는 것이 아니다. 
  • 서철원
  • 승인 2020.07.1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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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의 성경관 비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포하지만 또한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다. 성경은 인간의 말로써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를 전체로서 증거한다. 그러므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18세기부터 신학계는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분리하였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포되어 있다고 하였다. 성경에 내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내는 것을 신학의 업무로 삼았다. 하나님의 말씀의 범위는 계속 축소되어 산상수훈으로까지 한정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 칼 발트 (Karl Barth)는 전통적 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 반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Die Bibel ist Gottes Wort)라고 주장하였다(Kirchliche Deogmatik, I/1, 113).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전통적 개혁신학에서처럼 기록된 성경 말씀이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아니다 (KD, I/1, 112).

발트는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분리하면서 일치시킨다. 발트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 신학으로 만든 공상물일 뿐이다. 곧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셔서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도록 정하시고 이 신존재에 동참을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내신다. 신 존재에 동참을 이루어낸 자라는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본래 그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뜻하는 것은 신 존재에 동참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것은 성경의 진술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신 존재에 동참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성경이 신언이 되는 사건이라고 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것은 성경의 말들이 신 존재에 동참을 지시하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자체는 이미 발생한 계시가 아니다. 성경은 이미 발생한 하나님의 계시 곧 신 존재에 동참을 회상하는 구제적인 수단일 뿐이다 (KD, I/1, 113-114).

발트는 성경을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시킬 수 없는 이유를 제시한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신 신 존재에 동참을 회상하도록 하므로 말씀과 일치될 뿐이다. 그런데 교회는 성경이 기록된 말씀이라고 하여 성경 그 자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착각을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정경성 (Schriftlichkeit)이 성경을 규범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있는 비본질적인 것들로 교리를 구상하였기 때문에 전통적인 성경관은 더욱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KD, I/1, 109).

발트에 의하면 성경 중 구약은 고대 근동 아시아의 한 종족의 종교문서일 뿐이고, 신약은 이 종족의 종교가 헬라 세계로 뻗어가서 생긴 이방인의 문서일 뿐이라는 것이다 (KD, I/1, 171). 또 발트는 기록된 성경이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일 수 없는 이유를 든다. 성경의 중심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고 역사적으로 조사하기 어려운 존재로서 다른 종교들의 설립자의 하나와 같고, 평범한 나사렛 랍비일 뿐이라는 것이다 (KD, I/1,171). 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기적들도 세상에서 일어난 그런 사건들과 같은 것이어서 세상성 (Welthaftigkeit)의 벽을 넘지 못한다. 그것이 일단 해석되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KD, I/1, 171).

또 발트는 성경의 기사들 중에서 창조 기사를 사실적 역사로 전혀 보지 않고 북구풍의 전설 혹은 신화인 싸가(saga, Sage)로 본다(KD, III/1, 87-89). 성경의 창조역사는 시를 짓고 점치는 역사 싸가라는 것이다 (die der divinatorischen und dichtenden Geschichtssage; KD, III/1, 90), 그러므로 성경의 창조역사를 싸가로 보는 것에 혐오감을 가질 것이 전혀 없다고 주상한다(KD, III/1, 90). 사람을 남녀로 만든 것이라든가 낙원기사도 다 싸가이다 (KD, III/1, 91, 287). 왜나하면 이런 것들은 환상에서 나온 사건들이므로 역사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낙원기사는 역사 이전의 역사이고 따라서 싸가이며 (KD, III/1, 287) 순전히 상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KD, III/1, 318). 창조역사는 원인론적인 신화이거나 싸가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KD, III/1, 347).
 

 

발트에 의하면 성경은 그 자체로 발생한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이미 발생한 하나님의 계시를 증거하는 (KD, I/1, 114) 증인이라는 것이다. 성경적 증인들은 자신을 넘어서 타자를 지시하는 것으로 그들의 소임을 다하였다고 한다 (KD, I/1, 114). 성경적 증인들은 자기들의 권위를 주장함 없이 다자를 증거하므로 그 소임을 다했다는 것이다. 성경을 이 타자 (dieses Andere) 즉 계시 자체와 직접 일치시기면 성경을 계시 자체로 만드는 것이므로 성경이 오히려 불명예를 당한 것이라고 한다 (KD, I/1, 115). 그러므로 성경과 계시를 직접 일치시기는 것은 성립하지 않고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 때만 일치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성경 말씀이 증언으로 일하여 성경과 계시의 일치가 일어나면 그것이 신언사건이라고 한다. 이때 성경=계시가 사실이 된다. 그러므로 성경과 계시는 항상 일치하지 않고 둘이 하나가 되는 사건에서만 일치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KD, I/1, 116). 그러나 사건의 보고와 사건 자체가 일치할 때도 둘은 구분된다는 것이다 (KD, I/1, 116). 발트는 하나님의 말씀 혹은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넘어서서 그 안에서 일어난 신인합일로 이루어진 신 존재에 동참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정의한다 (KD, I/1, 120).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사람을 창조하셨다 (KD, IV/1, 8). 또 신 존재에 동참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육신이 일어났는데 (KD, IV/1, 13, 14)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 안에서 구원 곧 신 존재에 동참이 이루어졌으므로 (KD, IV/1. 22) 예수 그리스도가 화해라고 한다 (KD, IV/1, 35), 화해가 그 안에서 이루어졌으므로 그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라고 한다 (KD, IV/1, 47, 50, 54, 70, et passim).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신인합일을 통한 신 존재에 동참이 하나님의 원래 뜻이고 궁극적 말씀이라는 것이다 (KD, IV/1, 37, 49, 51, et passim).

발트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심중 형태로 구분한다. 신 존재에 동참이 하나님의 원 말씀, 성경 기록으로서 하나님의 말씀, 선포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눈다 (KD, I/1, 89-124), 선포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은 이미 발생한 계시의 성경적 증기를 반복할 때 말씀이 된다는 것이다 (KD, I/1, 90, 95, 120, 121, 124, et passim).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신언사건에서 원계시 (Uroffenbarung)인 하나님의 말씀을 지시하는 증거이고 (KD, I/1, 114) 그 면에서 계시와 일치한다 (KD, I/1, 116). 곧 성경의 증거가 하나님의 원계시를 지시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트는 신언사건으로 성경과 계시가 일치한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혹은 계시와 일치시킬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 없고 간접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KD, IV/1, 136). 발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시키지 않고 행동주의적으로 일치시기거나 분리시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는 신인합일 혹은 신 존재에 동참으로 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궁극적 말씀인 것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존재에 사람이 동참하는 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발트는 신 존재에 동참을 궁극적인 구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과 전통적인 개혁신학에 의하면 구원은 죄와 죽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출되는 것을 말한다. 피조물이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여 피조물의 한계를 벗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이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을 성경에서 말씀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 자제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 밖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만날 수 없다. 성경 속에 있는 어떤 부분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은 일치하고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말로 말씀하셨다. 성경은 사람의 말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경계시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신학서론, 268-72)

서철원 박사는 서울대학,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원(Th.M), 화란의 자유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다.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칼 발트의 신학을 지지하는 지도교수 베인호프와 다른 발트의 제자 신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칼 발트의 신학의 부당성을 증명하였다. 발트의 사상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논문 '그리스도 창조-중보자직'을 관철하여 박사학위를 얻었고, 이 논문이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 논문 100편에 수록되어 한국 교회의 위상을 드높였다. 총신대 신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 십년 동안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교수사역에 헌신하다 영예롭게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연구하시며 <바른믿음>의 신학자문 역을 맡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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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2020-07-19 01:26:52
칼 발트도 인간이 도달할 목표가 신 존재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피조 수준의 한계를 벗어나 신의 존재와 합일한다. 이 일을 위해 성육신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19세기 매개신학도 인류의 신화가 인류역사의 목표이므로,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육신이 필연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어도 신성과 인성을 섞는 것이 아니고 두 존재 간의 거리는 엄격하여 넘어설 수 없다. 유한은 무한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개혁신학의 근본원리이다. 따라서 피조물이 그 한계를 벗어나서 신(신화)되기는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영화되는 것은 신 되기가 결코 아니다. 그때도 피조물로 남는다. 그리스도의 구속 때문에 낙원의 처음 상태를 넘어가나 피조물의 한계선을 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서철원)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633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620

김리훈 2020-07-17 22:02:09
아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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