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종교개혁자이며 성경 중심적 바른 석의와 깊이 있는 신학의 초석을 이룬 칼빈은 기독교 역사에 크게 이바진 인물이다. 그는 삶의 전 영역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원리로 풀어냈다. 그의 사상은 개혁주의의 시초가 되었으며, 오늘날 장로교회의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의 장로교회는 칼빈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신학과 성경관은 오늘날 개혁주의 신학에 아직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 진영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주장의 뿌리를 칼빈 사상에서 찾는다. 요즘 고도의 발달된 과학을 통하여 완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자연주의적이고 인간 본연의 의도에서 증명하고 풀어감으로써 말씀의 본질을 흐리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창조를 거슬리며 비성경적인 해석을 통하여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실정에 이르렀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유신 진화론이다. 아마도 유신 진화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까닭은 진화론을 과학적으로 확정된 진리로 믿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유신 진화론이야말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창조신앙을 잘 설명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상당히 의아하다. 무엇보다 진화론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만드셨다는 기독교 신앙의 첫 번째 명제와 어긋나기 때문이다. 동시에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확실한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처럼, 진화론은 자연 만물이 하나님에 의하여 직접 창조된 것이 아니라, 자연 만물의 이치에 따라서 스스로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론과 진화론은 서로 모순된다.

진화론이 참이면 창조론은 거짓이며, 반대로 창조론이 진리라면 진화론은 허구라는 것이 지금까지 통용되어온 자명한 인식이었다. 이러한 인식이 옳은 것이라면 유신 진화론은 모순된 주장일 수밖에 없다. 유신 진화론은 이러한 비평을 피할 수가 없다.
 

2. 비성경적 해석의 유신 진화론

우리는 성경의 계시에 따라 하나님께서 태초에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직접 만드셨다는 창조의 사실을 믿으며 나아가 창세기 1-3장을 비유적, 풍유적으로 해석하는 유신 진화론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창세기 1-3장의 내용의 바른 해석은 실제적인 사건을 다루는 역사적 사실이기에 그러하다.

창세가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따라 말씀으로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만물을 직접 창조하셨다 (창 1장). 그러하므로 아담과 하와가 모든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고 하며 아담과 하와 이전에 있던 선행인류에게서 육적인 몸을 받아 태어난 것이라는 유신 진화론의 주장을 너무도 비성경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것이 아무리 칼빈을 지향했던 학자들과 보수주의 학자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해서 결코 옳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최초의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셨다(창 1:26, 27; 2:22). 그러므로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며 예수그리스도 중심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아담과 하와 이전에 있던 선행인류들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기 이전에 이미 도덕적으로 악한 일을 행하였다고 주장하며, 아담과 하와는 무죄한 상태로 있었던 적이 없다고 말하는 유신 진화론의 주장 이것은 성경에 있지도 않는 내용을 가지고 의미를 부각 주지시키려는 터무니 없는 확장해석에 불과 한 것이다.
 

3. 창조론과 유신 진화론의 성경의 해석

이외에 더 나아가 유신 진화론의 신학적 오류와 비성경적인 대목을 여러 글과 책들을 참조하여 대조해 본다면 아래와 같이 살펴볼 수가 있다

1>
창조론 : 아담과 하와는 흠이 없는 순전한 상태로 창조되었으며, 아담과 하와는 첫 번째로 죄악을 행한 사람들이다 (창 3:6).

유신 진화론: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전에도 죽음은 이미 존재하였다고 하며, 아담과 하와 이전의 생물학적 조상인 선행인류도 죽도록 되어 있었고 실제로 죽었다는 것이다

2>
창조론: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본래 죽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은 아담과 하와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이다(창2:17).

유신 진화론: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식물과 동물)가 최초의 생명체인 어떤 공통조상으로부터 진화의 과정을 통해 출현하였다는 것

3>
창조론: 모든 식물과 동물들은 하나님께서 “그 종류대로” 창조하신 피조물이다(창1:12, 21, 25).

유신 진화론: 식물, 동물, 사람이 지구에 등장한 이후에도 새로운 생물의 종류가 계속해서 탄생하고 있다.

4>
창조론: 하나님께서는 정확히 6일 동안 창조 사역을 진행하셨고 일곱 째 날에 안식하셨기에, 새로운 종류의 생물을 창조하시는 그 이상의 창조 활동은 하지 않으셨다(창2:2).

유신 진화론: 세계의 생존 환경이 본래에도 지금과 같았다.


성경에 기록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는 본래는 “(심히) 좋은” 것이었으나,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에는 인간에게 적대적인 것으로 변질되었다 (창3:18, 19)는 것임으로 우리가 깨달아 느껴야 할 것이다.

유신 진화론은 성경의 창조론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인간의 타락과 원죄, 그리스도의 대리속죄와 부활, 재창조 등 기독교 복음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 되고, 복음과 교리 전반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는 것이 된다. 이처럼 기독교의 복음 자체를 뿌리째 부인하는 유신 진화론은 지금 세대는 물론 다음 세대에 속한 많은 이들이 성경의 교훈에 근거한 신앙을 떠나게 하거나 받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교회의 존립을 위협할 것이다.
 

4. 칼빈의 성경적 창조 인식

칼빈의 창세기 주석 창세기 1-3절 주석의 내용에 살피면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편 그 역사성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창조 섭리의 증거는 하늘과 땅에 무수히 많다. 하나님은 이를 천문학, 의학, 자연 과학 등 전문 분야의 종사자뿐 아니라 학식이 없고 무지한 사람들도 눈만 뜨면 볼 수 있도록 하셨다. 창조의 순서도 칼빈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하신 사랑의 섭리를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인간 창조에 앞서 인간의 필요를 먼저 세상에 채우셨고, 구원의 길도 열어 두셨다. 

종합해 보면 칼빈은 창세기 1-3장에 나타난 창조의 섭리를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신앙적으로 유익한 진리를 가르치려고 한다. 칼빈이 의도한 신앙적 유익이란 하나님이 모든 일에 우리의 구원을 정해놓으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 또 우리가 하나님의 큰 자비, 권능, 은혜를 느끼고 각성해 하나님을 신뢰, 찬송,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또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자연계시와 특별계시의 충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계시를 통해 특별계시가 더 특별해짐을 강조하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은 자신들의 이해를 넘어서는 자연계시의 전문 영역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폭넓게 발전하고, 발견되는 자연계시를 바라보며 칼빈 주장과 그의 신학처럼 그것이 어떻게 특별계시를 빛나게 할 것인가, 또 그것으로 성도들의 신앙적 유익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 하는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칼빈의 신학은 상반성, 모호성, 혹은 복합성으로 인하여 그의 자연관과 자연신학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다. 다시 말해 칼빈은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성경 이외의 자연계시에 대해서 열려있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칼빈주의 신학으로 현대의 과학을 무조건 비판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칼빈은 자연계시를 무조건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그 연구에 따라 밝혀지는 자연의 섭리는 칼빈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이다.

칼빈이 창세기 1-3장에서 집중하는 교훈은 과학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경이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의 그 의도가 분명한데, 그 안의 작은 주제로 신앙과 이념을 점검하는 표로 사용하기 어렵다.
 

5. 맺는말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창조론을 믿는다. 진화라는 단어를 들어서 창세기를 논하려는 것 자체만으로도 거부감이 들고 완전 비성경적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은 완전무오하고 과학적이며 나아가 영원, 불변하는 하나님 진리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어찌 피조물이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그분의 의도와 행위 나아가 계시하시는 내용을 바꿀 수 있겠는가? 그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올바른 것이라 목소리를 높여 그릇 행하며 가는 일이 너무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허점과 오류를 낳는다. 인간이기에 자신들이 옳다라고 인정한 소위 학설들이 다수설 소수설로 나뉘고 더 나아가 연구한 사상들이나 견해가 무참히 후대의 후학 자들에 의해서 물거품 되어버리는 것을 너무도 많이 접하며 살고 있다.

서철원 박사는 그의 저서 교의신학서론(29.2.5.) 성경의 해석은 문자적 의미를 참 해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단락에서 “성경의 내용은 구체적인 역사 환경에서 발생하였다. 그러므로 성경 언어는 하나님의 사역을 역사적 사건과 전개로 제시한다. 성경이 말하는 내용은 그 언어가 문장과 문맥에서 말하는 사실을 지시한다. 즉 문자적 문법적 의미를 성경 본문의 뜻으로 삼아야 한다. 문자적 의미를 벗어나면 그것은 곧 시대사상과 합치하여 성경의 사신 (使信)을 변조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문자적 해석을 덮어 놓고 성경의 역사적 기록의 진리를 너무 신선감과 색다름의 별미로 아주 독특함과 박식하다는 평을 듣고자 사람들에게 비추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현재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보존, 협력, 통치하심의 섭리 가운데 지구상에서 순례의 배를 타고 항해 가운데 노를 저어 가고 있다. 하지만 실상으로 노를 젓는 일보다 선용 되어야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바른 방향을 잡는 것이다. 그저 자연주의적이고 인본, 자유주의적 혹연 고도의 발달 된 과학으로 인간의 사고에 맞추고자 향방 없이 노만 저어 가는 일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제시한 방향에 이탈되어 가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한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오역하며, 교만한 가운데 역행하는 불순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반드시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성경 잣대의 노를 잡아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합당한 방향을 향해서 바른 믿음 안에서 확고함의 노를 저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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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일 목사는 중앙대학교 법학 수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B.A) 호서신학대학원 & 개신원(M.Div) 총회신학연구원 (Th.M) 에서 공부를 하였고 경북 영주 현대중앙교회(예장 백석 ) (1993~현재)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성경 중심적 칼빈주의 개혁주의 교회를 지향하여 바른신학, 바른믿음, 바른생활의 공동체를 세워 가고자 정진하고 있고, 늦은감은 있지만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해설집 공동 집필 및 기타 칼빈주의 정론에 관한 서적 집필에도 신학자들과 동역하며 연구하는 사역에도 주력하고자 뜻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