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5 14:31 (수)
박윤선 박사님이 계시면 회중교(청교도) 신학과 결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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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 박사님이 계시면 회중교(청교도) 신학과 결별할 것입니다
  • 정이철
  • 승인 2020.06.07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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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믿음의 독자 한 분이 (고) 박윤선 박사님의 책 <개혁주의 교리학>에도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에 대한 언급이 있다며, 다음의 내용을 보내주셨다.

“그리스도의 의가 신자들에게 전가됨에 대하여 개혁자들은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의를 성립시킨 그의 순종은 피동적인 것(Passive obedience)과 능동적인 것(active obedience)이 있다고 한다. 피동적인 것은 그가 우리의 벌을 대신하여 죽으심이요(갈2:21), 능동적인 것은 우리 대신 그가 율법을 완전히 복종하심이다(롬5:29; 갈4:4-5). 이 두 가지는 신자가 그리스도를 믿어 그와 연합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것(신자 자신의 소유)으로 인정받는다.”(박윤선, 개혁주의 교리학. P.347-348)

박윤선 박사님께서 회중교회주의 청교도들에게 의해 도입된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주장에 대해 계시의존 사색을 깊이 하지 않으신 것 같다. 기존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개혁자들은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의를 성립시킨 그의 순종은 피동적인 것(Passive obedience)과 능동적인 것(active obedience)이 있다고 한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모든 신학의 기준은 성경이고 모든 신학의 진위를 판정하는 기준도 성경이다. 성경의 이 기능이 약화되면 상당히 복음적인 사탄이 두 날개를 달고 교회를 유린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키신 행위나 그 무엇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지 않았고, 오직 죄없으신 분으로서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죄용서가 곧 칭의라고 가르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량'과 '피'를 통해 이루어진 죄사함이 우리의 칭의라고 가르친다.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의 온전한 행위(율법준수)가 우리의 칭의가 되었다고 말하는 내용이 없다. 심지어 구약에서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율법을 전혀 알지 못하였던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구약 성경은 가르친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구약 성경을 자세하게 보면, 율법은 칭의(구원)를 얻게하는 수단으로 오지 않았다. 먼저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칭의)을 얻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중요한 방법과 기준으로 율법이 주어졌다. 율법은 하나님 백성들의 하나님 섬김의 원리였고, 율법대로 행함이 곧 하나님 잘 섬김이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임종 전 마지막 설교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수 22:5)

율법의 기능과 하나님 백성되기 위한 칭의는 전적으로 무관하므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구약의 율법은 구원자의 길을 준비하는 특별계시였다. 어떤 청교도주의자들은 사람의 양심이 청교도 신학이 말하는 창조 때부터 사람에게 영생을 얻게하는 수단으로서 마음에 새겨진 율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인류에게 구원 얻게하는 특별계시가 주어졌다는 것인데,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양심은 모든 사람에게 여전히 남은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이고, 모세를 통해 비로서 주어진 구약의 율법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특별계시였다. 그리스도는 모든 계시의 완성이고 최종적 특별계시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주된 기능들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끝났고, 단지 율법의 죄를 지적하는 기능만 남았다.

그리스도가 오신 후 사람이 구원 받는 것과 율법은 0.000001도 연관되지 않는다. 한국의 청교도주의자들은 바로 이 부분에서 이단이다. 왜냐하면 율법을 선포하여 사람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준비되게 하고, 율법을 지키면서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정통 개혁주의 신앙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또한 구원 얻은 후에도 참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헌신의 차원에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저주한 이단의 올가미를 자신들의 목에 스스로 거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순진한 신자들에게도 그 올가미를 기꺼이 권고하는 죄악이다. 
 

장로교회와 개혁신학의 아버지 존 칼빈이 칭의의 원리에 대해 어떻게 가르쳤는지 보자. 칼빈은 자신이 죽은 후에 영국의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이 자신의 이름을 팔면서 이단적인 구원론을 전파할 것을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칼빈은 그릇된 칭의 주장에 대한 반박의 형식이 아니라 칭의의 성경적 원리를 말하고 가르쳤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칼빈도 오직 성경대로 대신 피흘리고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죄사함이 곧 칭의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붙들었고 가르쳤다. 

"사도행전 13장에 있는 바울의 설교에 이런 말이 있다. ‘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 여기에 보면 죄의 용서를 말한 후에, 그에 대한 해석으로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말을 한다.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을 분명히 죄의 사면으로 해석하며, 의롭다함을 율법의 행위에서 분리시키고 있다."(기독교강요, 3.11.3)

"그는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사함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6-7, 시 32:1)고 말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칭의의 일부분이 아니라, 그 전체를 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다윗이 죄를 값없이 용서받은 사람들은 행복하다고(시 32:1-2) 그 선언한 그 정의에 찬성한다. 이것을 보면 바울이 말하는 의는 단순히 죄책의 반대 개념인 것이 분명하다."(기독교강요, 3.11.4)

"이것은 바울이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고 한 것과 똑같은 뜻이다. 그뿐 아니라, 로마서 4장에서 그는 처음으로 칭의를 "의의 전가"라고 부르며 칭의를 죄의 용서에 포함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사함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6-7, 시 32:1)고 말하였다."(기독교강요, 3.11.4)

"만일 하나님께서 무죄 방면과 사죄로 우리를 의롭다 하지 않으신다면 바울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라고 말한 것은(고후 5:19)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21절). 우선 나는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들이 의롭다고 인정된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에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심으로써 의롭다 하신다는 뜻이 포함되었다."(기독교강요, 3:11.11)

"믿음의 의는 하나님과의 화해이며, 이 화해는 곧 죄의 용서라고 정의한 말이 얼마나 옳은가를 이제 검토해야 하겠다."(기독교강요, 3.11.21)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신이 전하는 내용을 요약하여 말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여기서 바울은 의와 화해를 서로 구별하지 않고 말하여, 서로 한 쪽이 다른 쪽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해시키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이 의를 얻는 방법은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는 것이라고 그는 가르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심으로써 우리를 자신과 화목케 하신다는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가를 더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기독교강요, 3.11.22)

"누가가 보고한 것을 보면, 바울은 설교를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는 말로 끝맺는다. 바울은 죄의 용서와 의를 연결하여, 둘이 똑같다는 것을 보여 준다."(기독교강요, 3.11.22)

"죄인은 행위에 의하지 않고 거저 용납해주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다고 하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성경에서 아주 빈번하게 나타나며, 고대 저술가들도 간혹 그렇게 말하였기 때문이다. 어거스틴도 그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있는 성도들의 의는 완전한 덕성에 있지 않고 죄의 용서에 있다.’ 베르나르드의 유명한 말도 이와 부합한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의다. 그러나 사람의 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는 전에도 ‘그리스도는 죄의 사면에 있어서 우리의 의가 되신다. 그러므로 그의 자비로 용서를 받는 자들만이 의롭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기독교강요, 3.11.22)
 

처음에는 박윤선 박사님처럼 능동순종 교리를 수용했으나, 후에 스스로 성경을 기준으로 다시 연구한 후 능동순종 교리가 거짓 신학임을 발견하신 서철원 박사님은 다음과 같이 단호하고도 적극적으로 기존의 그릇된 신학을 수정하였다.
 

“전통적 신학이 제시하는 능동적 순종과 피동적 순종은 전적으로 그릇된 사변적 산물이다. 능동적 순종은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는 그리스도가 스스로 지켰으므로 능동적 순종이고 하나님의 작정을 따라 죽으셨으므로 십자가의 죽음은 피동적 순종이라고 구분하였다. 이런 것은 성경에 맞지 않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전혀 맞지 않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다 지키므로 의를 얻어 그것을 우리에게 전가하신 것이 아니다. 율법의 요구 곧 범죄하므로 그 죗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따라 피 흘림으로 죗값을 갚아 용서를 가져오셨다. 이 죗값을 갚아 용서를 이루신 것이 의이다. 이 의 곧 죄 용서를 우리에게 전가하신 것이다. 율법의 성취는 죗값을 갚으므로 율법을 성취해야 한다는 요구가 더 이상 없도록 한 것이다. 그 면에서 율법을 완성한 것이다.”(그리스도론, 147)

“전통적 신학에서 예수의 율법준수를 능동적 순종(obedientia activa), 십자가의 죽음을 피동적 순종(obedientia passiva)이라고 한 구분과 가르침은 전적으로 잘못되었다. 그리스도가 율법준수로 의를 획득하여 우리에게 전가한 것이 아니고, 피 흘려 죄 값을 다 치르므로 죄용서를 이루신 것이 의이다. 이 의를 받아 우리가 영생하게 되었다.”(그리스도론, 167)

“그리스도는 자기의 의를 얻기 위해 율법준수를 이루신 것이 아니다. 의는 생존권을 뜻하는데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지켜서 의를 획득했다고 하면 그를 죄인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도덕적 칭의는 의롭다 함을 받는 자격을 갖추어서 의를 획득하는 것이다. 곧 고행과 선행을 행하여 의롭게 되어 의를 전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율법준수로 의를 획득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 이런 일은 결코 행할 수 없는 일이다 ...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의를 얻었으므로, 그 의를 우리에게 전가한다고 하는 가르침은 로마교회가 구성한 도덕적 칭의를 개신교식으로 각색한 것에 불과하다.”(구원론, 115)

“의롭다 하심은 예수 믿음에 근거해서 죄를 용서하여 무죄하다고 선언하심이다. 믿음고백에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이 온다. 칭의는 단지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에 대한 하나님의 무죄 선언이다. 따라서 법정적 선언이지 도덕적 칭의일 수 없다.”(구원론, 29)

“의롭다 하심의 중요한 점은 바로 죄책을 제거하심이다. 죄책 혹은 죄과의 제거는 죄인을 의인으로 확정하는 것이다. 무죄하다고 선언하는 것은 죄에 대한 책임이 제거되었음을 뜻한다. 그래서 범죄하였지만 죄책이 제거되었으므로 죄에 대해서 책임질 일이 없어진다. 곧 완전한 의로 인정되는 것이다.”(구원론, 124)

 

1800년대의 탁월한 장로교 신학자 윌리엄 커닝햄이 말한 것처럼, 능동적 순종 교리는 성경이나 칼빈의 책에서 명확하게 근거하는 것이 아니고, 영국의 회중교회주의 청교도 신학자들이 칭의교리를 발전시키면서 철학적 추론으로 만들어 낸 위험스러운 교리이다. 그 자신이 능동순종 개념을 수용하였던 커닝햄은 다음과 같이 능동순종 교리가 성경이 아닌 추론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우리의 죄 용서의 근거가 되는 수동적 의 개념과 우리가 하나님께로 받아드려지는 능동적 의 개념은 칼빈의 책들을 통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칭의 교리의 뒤를 따르는 더 섬세하고 구체적인 사변(사색)으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한 구분이 지극히 합당한 신앙적 유추라고 믿었고, 명확하고 분명한 개념 형성을 돕기 위해 유용할 수 있었다.”(William Cunningham, The Reformers and Theology of the Reformation, 404)


다음의 네 가지는 단단하게 결부되어 있는 잉글랜드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의 핵심 사상이다.

1) 자연적 영생도 없이 창조된 아담이 율법을 지켜 영생을 획득하고 하나님 백성이 되기로 하나님과 계약했다는 행위언약(이단적인 창조-원죄관)

2)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 율법을 지켜 자신과 우리의 영생에 필요한 의를 대신 획득하셨다는 능동순종 교리(이단적인 구원론)

3) 율법을 지키면서 믿음과 성화(회개) 상태에 도달하여 하나님이 구원 주시기를 사모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회심준비론(택하심과 불가항력적 은혜를 허무는 이단적 목회)

4) 교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특히 율법을 준수함으로 하나님께 충성할 것을 서약함으로 교인으로 받아드려지는 회중교회 교회언약(바울이 저주한 이단 사상)

위 모든 것이 신약 성경이 저주하는 율법주의와 과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 동안 회중교회파 청교도 사상에 대해 분별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숭배하였으므로, 이런 심각한 문제들이 지적되지 않았다. 오히려 ‘청교도 개혁주의’, ‘청교도적 경건’ 등으로 미화되었다. 공생애 동안 그리스도께서 1도 범죄(율법에 걸림)하지 않으신 것은 율법을 의지적으로 지켜 의를 얻으시기 위함이 아니고, 출생부터 죄와 무관하시었고 처음부터 성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늘 성령충만하셨기 때문으로 설명해야 더 바르다. 죄를 알지도 못한 그리스도가 우리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이 임했다. 이것이 성경적 진리이다. 

그러므로 이제 잉글랜드의 회중교회주의 청교도들이 발전시킨 율법주의 신학과 한국 교회는 결별해야 한다. 더 이상 성경을 허무는 잉글랜드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의 미혹에 한국 교회는 끌려다니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영국인들이 하나의 통합된 청교도 교회를 세우기 위해 준비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남아있는 회중교회 조상들의 신학의 흔적들을 칼빈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수정해야 마땅하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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