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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방언'(막16:17)이 현대의 옹알거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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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방언'(막16:17)이 현대의 옹알거림일까?
  • 정이철
  • 승인 2015.01.0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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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무관한 소리현상을 분별해야 할 때

오늘 날의 여러 종교에서 나타나는 옹알거리는 소리현상이 성경의 방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의 여러 종류의 말씀을 임으로 동원하여 자기들의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이 전에 그 대부분의 사례를 살펴보았는데, 두 가지가 빠졌다. 오늘 두 가지를 더 살펴보고자 한다. (거짓 방언현상을 위해 악용되는 성경 말씀들에 대해 더 알고자 원하는 분들은 아래에 표시된 관련기사를 보기 바란다.) 

A. ‘새 방언을 말하며’(막 16:17)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가복음의 끝 부분에서 오늘 날의 옹알거리는 소리현상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주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믿는 자들에게서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8,19)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새 방언을 말하며’라고 하신 부분이 현대의 옹알거리는 거짓 방언을 지지해 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내용은 이때로 부터 약 열흘 후 사도행전 2장에서 유대인 사도들과 제자들에게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배운 적 없는 이방인들의 외국어를 말하는 초자연적 이적현상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석해야만 타당하다고 할 첫 번째 이유를 새 방언을 뜻하는 헬라어 원어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의 방언이라는 헬라어 단어 ‘글롯사’는 그 시대의 일반 언어를 뜻하는 단어였다. 그리고 이때로 부터 열흘 후에 실제로 나타난 사도행전 2장의 최초의 여러 이방민족들의 실제 언어방언을 표현하는 단어로도 사용되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나타난 최초의 외국어 방언을 표현하기 위해 누가는 '디알렉토스'라는 단어와 '글롯사'라는 두 단어를 모두 사용하였고, 이 두 단어는 모두 그 시대의 일반 외국어를 뜻하는 일반적인 말이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영어 성경들이 이 부분을 ‘speak with new tongues(말, 언어, 혀)’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는 ‘(배우지 않은) 새로운 언어들로 말하다’라는 뜻이다. 한국어 성경 번역본들 가운데 현대인의 성경이 ‘배우지 않은 새로운 말을 하고’라고 매우 명료하게 잘 번역하였다.

고린도교회의 방언은 실제 외국어였던 사도행전의 방언과는 전혀 다른 영언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말이 수용될 수 없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의 방언이 모두 같은 단어 ‘글롯사’로 표기되었다는 것이다. ‘글롯사’는 혀, 언어, 이야기 등을 뜻하는 단어였다.

‘새 방언을 말하며’를 사도행전에서 나타난 외국어 방언으로 해석해야만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전체적인 문맥에 있다. 바로 그 다음에 나오는 뱀을 집고, 아무 독을 마실지라도 상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은 지금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자들이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아니다. 이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인류에게 죽음의 해를 미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는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사실을 말씀하는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이 전파되기 사작할 때 실제로 교회설립자들과 복음의 반포자들의 전도사역에서 나타났던 한시적인 특별한 영적인 권능을 뜻하는 말씀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결코 오늘 날 흔하게 아무나 일으키는 일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했던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제자들의 전도사역의 현장에서 일어났던 특별한 일들이었다. 만일 ‘새 방언’이 지금의 옹알거리는 현상의 모습으로 매일 수많은 신자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일이라면, 독사를 잡고 농약을 마시면서도 장수하는 신자들도 그 만큼 흔해야 할 것이다.
 

B.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롬 8: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 26,27절에서 성도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어려움과 환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신다고 말한 내용이 오늘 날의 일부 신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거짓방언 현상의 근거라고 주장하는 내용도 자주 등장한다. 연약하고 무지한 성도가 기도할 줄을 모르고 기도할지라도 무엇을 위해 간구해야 할지 모를 때,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그 신자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참 신자들이 끝까지 믿음을 부정하지 않고 천국에 이를 때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이유는 성령께서 그 신자를 위해 쉬지 않고 돌보시고 대신 하나님께 간구하여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실이 오늘 날의 거짓방언 현상을 지지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할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오늘 날의 거짓 방언현상의 정체가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그 신자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 주시는 현상이라면, 마땅히 성령을 모신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날의 옹알거리는 소리는 초대교회가 설립된 이후부터 1900년대 초까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사도들에 의해 성경이 기록되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설립된 이후 성경의 방언을 말했다는 신자들에 대한 기록과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단들에게서 간헐적으로 방언현상이 타나났다는 기록과 증거들은 발견된다.

오늘 날의 거짓된 방언현상이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신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현상이라면,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이 현상이 계속해서 교회사를 가득 채우면서 이어졌어야 했다. 성령이 신자들에게 내주하시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되고 교회가 설립된 이후부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누구든지 이 말을 허물 수 있는 역사적인 근거를 찾으면 말해주기 바란다. 거의 2천년 동안 사라졌던 방언이 사도행전 2장에서 이미 성취된 구약의 오순절이 1900년대 초부터 다시 재현되기 시작한다고 주장하는 종말부흥 이단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다시 등장했다. 현대의 옹알거리는 소리현상은 사도행전 2장에서 완전하게 성취된 오순절이 1900년이 지나 다시 미국에서 신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임한다는 거짓된 이론과 함께 출현했다. 오늘 날의 방언현상은 그 이단들이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오순절의 징조라고 소개되었다.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대신 기도해 주시는 거룩한 일이 왜 하필이면 이단들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까?

둘째로 현재의 방언현상이 성령이 신자를 위해 대신 기도하는 현상이라면 믿음이 뛰어난 역사적인 인물들에게서 더 많이 더 일찍 나타났어야 옳다. 종교개혁 시대의 믿음의 성도들은 교황이 가르치는 거짓 믿음을 따르지 않기 위해 모진 고문을 당했고, 목숨까지 잃어야만 했다. 교황으로부터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모진 고통을 당하며 참 믿음을 포기하도록 위협받고, 결국 죽음을 당한 성도의 수가 약 5천만에 달했다고 한다. 그 성도들이 피눈물을 흘리면서 참된 믿음의 길을 갈 때, 그들 안에 거하신 성령께서 얼마나 많이 그들을 위해 대신 기도하셨을까? 그러나 종교개혁자들과 그 시대의 참된 성도들이 옹알거리는 방언을 말했다는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종교개혁 이후 위대한 믿음의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신앙에서도 현재의 옹알거리는 방언을 했다는 내용이 발견되지 않는다. 지난 시대의 최고의 설교자 스펄전, 그 누구보다 많은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던 조나단 에드워드,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리, 5만 번 기도응답 받았던 죠지 뮬러, 삶이 곧 설교였던 오스왈드 챔버스, 조지 휫필드와 수 많은 청교도 지도자들, 존 스토트, 로이드 존스 등의 기독교 신앙을 우리들에게 밝히 설명해준 위대한 사람들이 옹알거리는 방언으로 기도했다는 내용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성령께서 대신 기도해 주시는 은혜가 없었던 것일까?

셋째로 오늘 날의 옹알거리는 현상이 성령의 대신 기도해 주시는 현상이라면, 그 기도의 형식은 마땅히 사람 쪽에서 하나님께로 간구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날의 방언이 시연되고 통역되어지는 모습을 보면 하나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어떤 메시지가 내려오는 모양새이다.

오늘 날의 방언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감 잡으려고 시도한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또렷하게 해석하는 모양새를 취하는가? 아니면 대충 느낌으로 뜻을 때려잡는가? 이 정도의 차이다. 거짓방언 재주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은근하게 즐기는 것은 결국 직통계시, 또는 그 비스므래한 것이다. 방언한다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뭔가를 직접 얻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착한 사람을 본적이 있으면 말해보라!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에게 계시, 또는 그 비스므레하게 내려오는 그런 것이 성령께서 신자를 위해 대신 기도해 주시는 역사일까?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보고 있는 방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 하나를 보자. 한 어린아이에게서 혀가 꼬이며 옹알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마 이 장면 촬용하여 인터넷에 올린 사람은 아이의 부모인 것 같다. 부모는 자신의 아이에게서 성경의 방언이 나타났다면서 좋아했으므로 이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을 것이다. 지금 과연 이 아이속에서 성령께서 대신 기도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한 새 방언일까?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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