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가 무엇인가?

복음주의는 16세기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개신교회를 복음주의라고 부른 것은, 신약성경에 밝히 증거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왜곡시키고 복음 대신 성례나 신자의 공로적 선행을 가르쳐왔던 천주교회와 구별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복음주의는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믿는 입장, 곧 성경적 기독교를 가리키는 용어이었다.

20세기 초 자유주의 신학이 미국교회에 퍼지기 시작하고 1940년대에 소위 ‘신복음주의’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도 복음주의는 전통적 개신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의 근본 진리들을 수호하는 전투적 입장을 취했던 근본주의도 복음을 믿고 옹호한다는 점에서 복음주의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이 역사적 개신교회들 속에 들어와 교회들을 부패시키고 변질시켰던 20세기 중엽 이후, 복음주의적 교회들은 두 입장과 진영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자유주의자들에 대해 포용적이고 타협적인 입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자들과의 교제의 단절을 주장하는 입장이었다. 전자는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라고 불리었고 후자는 근본주의라고 불리었다.

미국에서 1920년대의 소위 보수주의(근본주의)와 자유주의(현대주의) 간의 신학적 논쟁에서 자유주의가 외형적 승리를 거둔 후, 1930년대에 성경적 교회들이 자유주의적 혹은 포용주의적 대교단들로부터 분리되는 일이 있었고, 1940년대에 와서 ‘신복음주의’라는 새 경향이 일어났다. 그들은 진리를 위해 계속 싸우기보다 평화와 안정을 더 좋아하였다. 그들은 성경을 그대로 믿는 보수적 교회들 간의 교제와 협력보다 자유주의 교회들을 포함하는 넓은 교제와 협력을 추구하였다.

이런 입장을 처음으로 대변했던 인물은 미국의 풀러신학교 초대 교장이었던 해롤드 오켕가이었다. 그는 풀러신학교 교장 취임시 분리를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을 비난하면서 자기 신학교는 대교단들의 목회자들을 훈련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1948년 풀러신학교 강연에서 ‘신복음주의’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1957년의 한 소식지에서 “신복음주의는 그 전략을 분리에서 침투로 바꾸었다”고 말했고, 또 후에 그는 “신복음주의는 분리를 거절함에 있어서 근본주의와 달랐다”고 회고하였다.

1942년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가 조직되었고, 1947년 미국의 풀러(Fuller)신학교가 설립되었다. 1951년 20개국의 복음주의자협회들이 모여서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를 만들었다(2001년 WEA로 개명함). 1956년 크리스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지가 창간되었다. 이것들은 모두 신복음주의의 대표적 기관들이 되었다.

역사적 대교단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들이 된 후, 거기에서 분리되어 나온 소수의 보수적 교회들이 과연 기독교회의 참된 계승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신복음주의자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느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분리의 입장을 포기하고 대교단들 속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것들을 개혁시키고 회복시키기를 원하는 소위 ‘침투’의 입장과 전략을 가지게 되었다.

신복음주의자들은 ‘근본주의’라는 용어를 싫어하였고 ‘복음주의’라는 말을 전유물처럼 사용하였다. 각국의 ‘복음주의자협회’(NAE)나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는 다 ‘복음주의’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죠지 마스든의 관찰과 판단대로, 신복음주의자들은 점차 자신들을 단순히 복음주의자로 부르기 시작하였고 신복음주의는 오늘날 흔히 단순히 ‘복음주의’로 불린다. 이와 같이 오늘날 ‘복음주의’는 신복음주의와 거의 동의어이며 신복음주의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윌리엄 애쉬브룩은 복음주의를 근본주의에 대해 혹평하면서 자유주의에 대해 동정적인 ‘신중립주의’라고 표현했다. 개리 코우언은 신복음주의를, 자유주의자가 이단이 아니고 견해가 다른 형제이며 따라서 그를 전도의 일에 참여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표현했다. 박형룡 박사는 신복음주의를, 근본주의에 대해 가혹히 비판하고 어떤 전통적 교리들에 대해 양보하고 WCC의 사회복음운동에 따라가고 자유주의자들과 우호적, 협력적 관계를 가지고 배교적인 교단을 떠나지 않고 거기 머무는 입장이라고 비평했다.
 

자유주의 포용의 예들

복음주의의 자유주의 포용의 대표적 예는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활동이었다. 빌리 그레이엄의 본래 입장은 건전하였다. 그는 1951년 4월 파일롯지에 “우리는 어떤 형태의 현대주의도 너그럽게 보거나 교제하지 않는다”고 썼고, 밥 죤스에게 보낸 1952년 6월 3일자 편지에서도 “현대주의자들은 어디에서나 우리를 후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린스보로와 슈립포트 외에 어느 도시에서나 교회협의회(NCC)의 후원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썼다.

그러나 그는 그 후 뉴욕,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컬럼버스 등에서의 전도 집회들에서 자유주의적 교회협의회의 후원을 공공연히 받았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전도집회시 제랄드 케네디 감독을 명예대회장으로 임명했는데, 케네디 감독은 하나님의 좋은 소식이라는 그의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명확히 부정한 자이었다.

데이빗 클라우드는 빌리 그레이엄의 문제점에 대해, 성경이 무오(無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변호하지 않는 점,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 기독교 신앙의 필수적 부분이 아니라고 말하는 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구원을 강조하지 않는 점, 지옥이 불 붙는 고통의 장소라고 믿지 않는 점,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이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 신학이 더 이상 자기에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 점, 이단적인 로버트 슐러의 복음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에 동의한 점,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자유주의자들을 칭송한 점, 수천명의 회심자들을 배교적 자유주의 교회들에 넘겨준 점 등을 열거하였다. 컬럼비아 국제대학교 명예총장 로벗슨 맥퀼킨은 빌리 그레이엄이 근본주의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 즉 천주교인, 헬라정교인, 자유주의자에게 따뜻한 에큐메니칼 포용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복음주의 기관인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는 처음부터 자유주의적 대교단들의 지교회를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성경의 무오와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교리를 포함한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부정하는 마틴 마티는 1992년 미국복음주의자협회에서 강연하였다. 또 그 협회 회장 돈 아규는 그 협회가 창설된 이래 최초로 자유주의적 미국교회협의회(NCC) 총회에서 연설하였다.

풀러신학교는 처음부터 대교단들의 목회자들을 훈련시키기를 원했다. 그 학교는 프린스톤 신학교 전 교장인 신정통주의자 죤 매케이를 연사로 초청하였었다. 그 학교의 1984-85년 요람은 자유주의적 천주교 신부 레이몬드 브라운을 강사로 열거하였다. 아더 후크는 1999년 7월 27일 풀러신학교를 방문하여 죤 골딘게이 교수의 강의에 참석했는데, 골딘게이 교수가 “여리고성이 있었고 그 성벽들이 무너져내렸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없다. . . . 아마 이것은 비유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거하였다. 이 학교는 처음에는 성경의 무오를 옹호했으나 오늘날에는 이 교리를 거부하고 은사운동을 조장하며 여성 안수를 강하게 지지한다.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 회장 데오도르 윌리암스는 WEF 뉴스레터 1993년 8월호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소속 교단 내의 복음주의자들은 그대로 머물러 복음주의 입장을 취하고 그 교회 안에서 복음주의적 영향을 끼치려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복음주의 대변지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1998년 9월 7일자는 레이몬드 브라운의 신약개론을 높이 추천하였다. 그러나 브라운은 예수께서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이 아니고 오류를 범하였다고 말한 자유주의적 천주교 신부이다. 그는 WCC에서 활동적이고 1971년 미국 뉴욕의 자유주의적 유니온 신학교에서 처음으로 종신직 천주교 교수가 되었다.

오늘날 복음주의가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우리나라에서의 예들을 보자. 1986년 9월 8일 한국장로교협의회는 새문안교회에서 노춘경씨 수세 100주년 기념 행사로 예장통합, 예장합동, 기장, 예장고신, 예장대신 등 5개 장로교단 연합성찬예배 및 강연회를 가졌다.

1990년 11월, 한국복음주의협의회는 홍콩 국립경기장에서 개최되는 빌리 그레이엄 홍콩 전도대회의 한국 위성중계 전도대회의 장소로 부산 수영로교회, 대구 서문교회, 대전 중앙교회 등 예장합동측의 큰 교회들을 채택하였다.

1991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총회는 “기감과 기장의 가입 문제는 일단 긍정적인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거듭 밝혔다.” 이 단체는, 자유주의 교단인 기감과 기장을 배제할 의사가 없다.

1993년, 한국장로교회 일치를 위한 특별좌담에서 예장통합 박성원 목사는 “개인 구원, 사회 구원을 각기 외치면서 교회가 진보, 보수로 나뉘어지는 것은 원칙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한국의 진보교회와 보수교회가 일치하려면 타협이 필요하며, 예컨대 보수측에서 ‘성경이 유일한 계시이다’는 입장을 고수하면 장로교 일치는 대단히 어렵다고 주장했다. 기장 신학연구소장인 김원배 박사는 교회 일치는 진정한 교회 회복 운동인데, 교회 일치를 위해 도그마에서 벗어나 봉사의 자세를 가져야 하며 교리만 따진다면 끝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예장대신 총회 총무 김재규 목사도 한국교회가 교리를 따지지 말고 선교에 함께 참여함으로 일치를 이루자고 말하며 “신학에 대한 고집이 곧 한국장로교회 일치의 저해요인”이라고 주장했고, 또 과거엔 김재준 목사를 이단이라고 정죄했으나 오늘날 보수 신학에서 그를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993년, 한국장로교협의회 소속 5개 장로교단 총회장 공동선언문은 한국 장로교회들이 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하면서 “우리 한국의 장로교단은 신앙의 본질적 항목들에 있어서 결코 분열될 만큼 의견의 차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선언하였다.

1994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3·1절 기념예배 설교를 자유주의자로 알려진 강원용 목사에게, 3월 8일 임원취임예배 설교를 기장측의 조향록 목사에게 부탁했고, 또 4월 9일 남북교회협력을 위한 세미나 강사 명단에 강원용 박사를 포함하였다.

1995년, 한국복음주의협의회는 광복 5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움의 강사 중에 기장측 조향록 목사를 포함하였다.

1996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발표회에서, 홍순우 목사는 진보적 교회와 보수적 교회가 다 반성하고 한국교회 전체 정서에 맞는 연합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앞으로 NCC나 한기총 등의 연합기관이 합력하여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1996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발표회에서 한명수 목사(한기총 전 총무, 당시 합동측 기독신보 주필)는 진보와 보수는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어느 한 쪽을 강조하면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한기총과 교회협[NCC]이 새로운 이름을 가진 단체로 우뚝서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부회장 김명혁 목사(합동신학교 교수, 강변교회 목사)도 “양기구는 기구적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7년 3월, 예장통합,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대신, 예장개혁, 기장 등 장로교 9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장로교협의회 토론회에서 예장합동측의 한명수 목사는 “개신교계의 분열은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앞세운 데서 생긴 결과”라고 말했다.

1997년, 예장대신측 전 총무 조순태 목사는 사회가 정치적, 경제적, 윤리적으로 위기상황일 때 교회연합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면서 “내가 마땅치 않게 여기는 교파도 같은 사도신경을 믿고 있으며 . . . 교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7년, 예장고신 총무 심군식 목사는 사회 문제와 사이비 이단이 판치는 현실에서 한국교회는 보수와 진보를 구별하여 힘을 약화시키지 말고 일치단합된 연합운동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7년 7월,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통합 등 3개 교단의 전국남전도회 혹은 남선교회 연합회 임원들은 교단 간의 화합과 일치운동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1998년 2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지 덕 대표회장은 기자회견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차이가 이제는 그다지 크지 않다고 말했다.

1998년 6월, 예장합동, 예장통합, 예장고신, 기장의 목회자로 구성된 한국장로교목회자협의회(회장: 옥한흠 목사)는 “교회의 대사회적 영향력의 약화가 한국교회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협의회(교회협)로 나눠진 것에서 연유한다”고 말하며 “한국교회 일치와 연합은 늦출 수 없는 긴박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1998년, 한국장로교총연합회의 회원교단 신임총회장과 총무 임원 축하예배에서 길자연 목사(예장합동 총회장)는 “장로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자기 입장만 고집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며 “이제라도 우리 모두 하나 되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자”고 말하였다.

1999년 1월, 예장통합측 총회(총회장: 유의웅 목사)의 신년하례회에 초청된 예장합동측 총회장 길자연 목사(서울 신림동 왕성교회)는 “통합과 합동이 이심전심으로 장로교 연합과 일치 운동을 벌여 올해는 하나로 되어가는 분기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1999년, 복음주의 장로교단인 예장합동측 총회총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0% 이상이 예장통합과의 강단교류와 신학교류, 연합사업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또 64%가 통합측과의 교단 통합에 대해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 6월 27일, 예장합동측의 역사적 승동교회(박상훈 목사)와 예장통합측의 대표적 교회인 영락교회(이철신 목사) 간의 강단교류가 양교단의 분열 40년 만에 승동교회에서 이루어졌다.

2000년 3월, 한국기독교교단총무회는 교회연합운동에 최선을 다하기로 하고 교회협과 한기총의 연합에 적극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교단총무회는 예장통합,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합동보수, 예장개혁합신, 침례교, 감리교 등이 속해 있다.

이상의 예들은 우리나라의 보수적 교단들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무지하거나 고의적으로 타협하고 있음을 증거한다. 이것이 복음주의의 문제이다. 오늘날 복음주의는 단지 복음을 믿는 입장이 아니고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이나 자유주의적 혹은 포용주의적 교단들과 교제를 끊지 않고 서로 교제하고 협력하는 포용적 입장을 나타낸다.

오늘날 보수적, 복음주의적 교회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지 않고 포용함으로써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점점 더 해이해지고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단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교훈하였다(딛 3:10). 복음주의는 성경의 이러한 교훈을 저버린다. 복음주의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잘못된 교제의 문제이다. 그것은 사도들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명백히 반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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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목사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총신대학 신학연구원, 훼이스(Faith) 신학대학원(Th.M. in N.T. 미국 필라델피아), 밥 죤스(Bob Jones) 대학교 대학원 졸업(Ph.D. in Theology,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공부했다. 계약신학대학원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합정동교회(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담임목사이다. 신구약 성경을 주석하여 인터넷(http://www.oldfaith.net/01exposit.htm)을 통해 보급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견실한 설교를 준비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신학자이다. J. G. 메이천, 『신약개론』을 비롯하여 많은 10권 이상의 외국 신학자들의 좋은 저서들을 번역하여 한국 교회에 보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