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정이철 목사님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부정하시는 건가요? 실질적인 면에서 장로교에서는 성경보다 힘과 권세가 큰 것이 웨스트고백서라고 합니다. 성경에 준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웨스트민스터 참신앙고백서의 모든 내용 100%를 영원한 진리의 헌법으로 믿는 것이 장로교의 신앙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단 한 줄도 예외 없이 전적으로 옳은 내용으로 믿지 않으면서 계속 장로교 목회자로 사역하시는 것이 떳떳하세요?

아무리 맹세를 우습게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맹세를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짐승에게도 맹세하고 약속하면 지키는 것이 사람의 도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웨스트고백문을 성경과 같은 진리의 말씀으로 믿고 따르고 순종하겠다고 서약하고 장로교 목사가 되신 것으로 압니다. 장로교를 떠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전부이거나 단 한 글자라도 웨스트고백서에 문제가 있다고 말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합니다. 모두가 이론상으로 성경만 틀린 것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의 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장로교에 오래 다닌 저 같은 사람은 웨스트 신앙고백서가 성경과 같고, 멀리 있는 성경보다는 가까운 웨스트 고백서가 실질적으로 더 중요한 진리의 말씀이라고 믿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

 

 

답변>
그 동안 몇 번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 번 더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이후 ‘웨신서’)에 대한 저의 입장을 다음과 같습니다.

웨신서의 대부분의 내용은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단지 7, 19장에 기술된 행위언약 사상이 창조시 아담의 상태와 다르고, 어거스틴, 칼빈, 서철원 등의 개혁신학자들의 성경해석과 다르므로 그 부분을 수정하자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일부의 논란이 많은 부분을 수정하자고 주장한다고 해서 (진지하게 연구를 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핍박하려고 하면 교회의 결정과 믿음을 성경보다 위에 두는 '악한 교회주의'의 포로가 됩니다.

천주교의 신앙의 정신은 개신교처럼 '오직 성경'이 아니고 '오직 교회'입니다. 교회(교황)이 결정한 것이면 모든 교회들이 따라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개신교의 절대 정신은 성경보다 위에 있는 것은 없으며, 교회도 성경의 권위 아래 있다고 합니다.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악한 종교 집단이 되는 것은 자명합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장로교단(PCA)는 목사 후보생들이 웨신서의 어떤 부분에 대해 동의하지 못한다며, 그 사실을 말할 수 있도록 하고 노회가 연구해 본 후 허락합니다. 청교도주의자 로이드 존스도 웨신서 등의 신앙고백서를 절대적으로 맹종하여 교회를 해롭게 하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웨신서의 행위언약 부분 외에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습니다. 당연히 웨신서를 중시합니다. 저의 교회에서도 웨신서 공부를 마쳤고, 지금은 밸직신앙고백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행위언약은 아담이 자연적 상태의 영생이 없이 창조되었고, 율법을 지키는 공로로 영생을 얻도록 마음에 율법이 새겨진 상태로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담이 율법 지키기를 거부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저주하셨다고 합니다.

웨신서(7,19장)에 나오는 이런 행위언약 사상과 타락 이전의 아담의 상태와 원죄에 대한 성경의 말씀이 다릅니다. 그리고 어거스틴, 칼빈, 그리고 한국의 서철원 박사 등의 정통 기독교 (종교개혁) 신학과도 다릅니다. 율법을 지키는 노력으로 영생을 얻었어야 할 아담이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고 하나님께서 회개도 받아주지 않는 영원한 저주를 내리셨다는 가르침도 어색한 설명입니다.

행위언약 때문에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이라는 더욱 심각한 구원론, 그리고 사람이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도록 자신을 준비시킨다는 회심준비론이 교회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서도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사상과 회심준비론 사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칼빈은 아담이 하나님을 즐거이 섬기고 선악과를 범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자연적 상태의 영생을 누리고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즐거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배반하지 않으면 영생과 모든 복과 은사들을 영원히 누리도록 하셨으나, 아담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 자리까지 넘보았으므로 회개해도 소용없는 영원한 저주를 받았다는 어거스틴, 칼빈, 서철원 등의 성경 해석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청교도 신앙의 핵심은 율법이고, 율법이 창조 당시 아담의 마음에 기록되어 있었다고 사는데, 그것을 증거하는 내용이 성경에 없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웨신서보다 1년 뒤에 승인한 대요리문답 20장에는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자연적 영생을 누리도록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를 담보로 ‘생명의 언약’을 주셨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대요리문답의 ‘생명의 언약’이 맞는 개념이라면 웨신서의 ‘행위언약’은 틀립니다. 둘 다 성경적인 사상일 수가 없습니다. 성경-어거스틴-칼빈-서철원 등이 용어의 차이가 있으나 대요리 문답의 생명의 언약 개념을 가르칩니다.

지금도 언약 신학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고 통일되지 못했습니다. 웨신서가 탄생한 400년 전에는 언약신학에 대한 논의가 막 시작할 때였습니다. 웨신서의 행위언약과 대요리문답의 생명의 언약이 서로 모순된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장로교 신앙에 관하여 대요리문답이 더 실질적으로 권위가 있고 더 많은 풍성한 내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요리문답은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으면 그대로 영원히 복락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생명나무를 담보로 하는 생명의 언약을 주셨다는 사실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자연적 영생 안에서 창조되었고, 하나님을 섬기고 배반하지 않았으면 그 상태로 계속 생명을 누렸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담이 타락하여 저주 받고서도 950년을 더 살았는데, 타락하지 않고 저주 받지 않았다면 그대로 자연적 영생을 누리게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못 믿는다면 이상합니다. 하나님 섬김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셨으나 아담이 교만하여 하나님 자리까지 넘보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영원한 형벌에 처하신 것으로 이해하여야 성경이 바르게 해석됩니다.   

웨신서(7,19장)의 행위언약은
1)율법의 등장의 시기와 목적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고,

2)사람이 스스로 노력하여 영생을 얻게 했다고 하므로 하나님의 은혜와도 맞지 않고,

3)행위언약에 맞게 그리스도께서도 행위로 의를 얻었다는 거짓된 능동순종 사상도 따라왔고,

4)사람이 구원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회심준비 목회도 나오게 되어 기독교에 심각한 왜곡을 초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웨신서의 행위언약 사상을 수정해야 장로교회 신앙이 하나님 앞에서 더 바르게 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저 혼자만의 주장이 아닙니다.
 

2. 웨신서는 청교도운동의 산물입니다.

당시 영국의 청교도운동 속에는 다음과 같은 종파들이 있었습니다.

1)장로교 청교도 운동
2)회중교 청교도 운동
3)침례교 청교도 운동 등

스코틀랜드에서는 1560년대부터 장로교 청교도 운동이 자리잡았습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국교회에 맞서 싸워 장로교를 지키겠다고 하나님께 언약하는 국민적인 운동을 전개했으므로 ‘언약도’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영국 국교회(성공회)가 국가 종교로 자리잡은 잉글랜드에서는 1580년대까지 국교회를 장로교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하는 청교도 운동이 국교회 내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장로교회파 청교도 운동이 탄생한 것입니다. 비록 엘리자베스 여왕의 박해로 실패했으나, 장로교를 추구하는 청교도 운동은 웨신서가 만들어질 때까지 잉글랜드서 사라지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1590년대부터 잉글랜드 국교회 속에서 새로운 방향의 청교도 운동이 또 하나 나타났습니다. 회중교회 설립을 목표로 하는 청교도운동입니다. 회중교회는 거듭난 사람들 각자가 하나님에 헌신하고 충성하고 목회자에게 순종하겠다고 서약함으로 교인이 되고, 교인들의 모임인 회중이 누구의 지시를 받지 않고 스스로 교회의 모든 중대사를 결정한다는 교회정치입니다. 회중에게 교회의 모든 권력이 주어진다고 하여 회중교회라고 합니다. 장로교회는 교인들이 선출한 장로들에게 교회 권력이 주어지는 정치입니다. 국교회는 왕이 임명하는 감독들에게 모든 권한이 주어지는 교회청지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장로교(언약도) 청교도 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존 낙스이고, 잉글랜드의 장로교 청교도 운동의 기치를 든 사람은 국교회 목사였던 토마스 카트라이트이고, 잉글랜드의 회중교회 청교도 운동의 신학적 기초를 다진 사람은 윌리엄 퍼킨스입니다. 잉글랜드의 침례교 청교도 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존 스미스입니다.

행위언약 사상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사람은 회중교 청교도 운동의 조상 윌리엄 퍼킨스입니다.

1)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구원에 필요한 의를 얻었다는 사상,

2)사람이 구원을 위해 자신을 준비시켜야 한다는 사상도 퍼킨스의 신학에서 출발했습니다.

퍼킨스와 그 후배 회중교회 청교도들이 행위언약, 능동순종, 회심준비론을 본격적으로 전파하였습니다. 장로교 청교도들 가운데서도 그들이 쓴 책들을 통해 영향 받은 사람들이 생겨났으나, 회중교회 청교도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지 앞장서 발전시킨 것은 아닙니다. 회심준비 사상과 능동순종 사상을 주장하고 발전시킨 사람들 99%가 회중교회 청교도들입니다.

웨신서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잉글랜드 장로교, 잉글랜드 회중교, 잉글랜드 침례교 청교도들이 국교회를 대적하여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 그리고 영국에 하나의 교회를 세우자는 불가능한 목표 하에 만들어 진 신앙고백서입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장로교 회원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러나 회중교 청교도 대표 12명도 숫자는 비록 작았으나 자신들의 사상을 주장하고 문건에 들어가게 만들기 위해 힘을 다했습니다. 국교회에 필적하는 하나의 교회를 세우려는 목표로 모였으므로 소외되어 떠나는 종파가 없게 만드는 것이 그 당시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웨신서를 장로교 선조들만 모여서 장로교회만을 위해 만든 문서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국교회 측과 청교도 측이 생사를 걸고 전쟁하던 때였습니다. 국교회를 대적하기 위해 국교회와 반대 입장에 있었던 모든 청교도 종파들이 다 뭉쳐야 했던 때입니다. 그래서 각 종파의 신앙의 입장이 무시되지 않고 고루 반영되는 문서를 만들기 위해 힘을 다하였고, 서로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습니다.

1643년 7월 국교회 측과 전쟁을 벌이는 잉글랜드 의회의 주관으로 잉글랜드의 장로교, 회중교 등의 대표들이 먼저 모여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북쪽의 막강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군대의 도움이 필요했으므로 회의를 잠시 중단하고 대표를 스코틀랜드에 보내 군사적으로, 신앙적으로 협력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측도 국교회와 싸우고 있었으므로 궁극적으로 영국에 하나의 교회를 세우자는 조건을 제시하며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군대를 보내어 함께 국교회 군대와 싸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 ‘하나의 교회’가 장로교회인지 회중교회인지에 대한 의견의 일치가 없었습니다. 그냥 두루뭉실하게 하나의 개혁된 교회를 세우자는 식의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청교도 운동 안에서도 각 종파들 간의 연합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1643년 9월 스코틀랜드 장로교 대표들도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참석하여 함께 신앙고백서 작성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수적인 면에서 다수였던 장로교회 측과 소수였던 회중교회 대표들 사이에 자기들의 사상이 신앙고백서에 기술되게 하려는 신경전과 논쟁이 매우 치열했습니다.

웨신서 7,19장의 행위언약은 칼빈의 가르침을 물려받은 장로교회가 강하게 주장하였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원래 회중교회 선조들이 만든 신학이었고, 그것 때문에 회중교회가 중시하는 그리스도의 능동순종과 회심준비론이 발전되었습니다. 칼빈에게서 배운 정통 장로교 선조들 가운데 그런 신학을 만들었거나, 지지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원하는 내용을 다 반영하느라 웨신서를 만드는데 5년이 걸렸습니다. 신앙고백서를 만드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5년에 걸쳐서 작업했던 경우는 웨신서 외에 없습니다. 웨신서는 1646년에 완성되었고 몇 가지를 수정한 후 1647년에 의회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장로교와 회중교 선조들의 관계가 파탄나고 있었던 때입니다.

1645년 국교회 측과의 전쟁은 의회 측의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의회 측의 연합군대를 지휘하여 승리를 만들어 낸 장군 올리버 크롬웰은 회중교회 신자였습니다. 크롬웰은 영국에 하나의 교회를 세우기로 한 약속, 그 열매로 나타난 웨신서와 대요리문답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원인은 회중교 신앙이 반영되기는 했어도 만족스럽지 않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장로교회는 올바른 교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장로교 청교도들과 회중교 청교도들의 싸움은 1662년에 둘 다 망하고 국교회가 다시 부활하여 영국의 유일한 국가 종교로 등극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 일의 시작이 전쟁에서 패배한 국왕 찰스 1세의 처리 문제로 시작되었습니다. 장로교 사람들은 찰스 1세가 장로교를 인정하면 다시 복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회중교회 사람들은 사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갈등이 고조되자 군대를 지휘하는 크롬웰이 무력으로 의회를 장악하였고, 장로교 사람들을 모두 추방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1648년, 1650, 1651년 회중교회 신자들이 주축이 된 크롬웰의 군대가 장로교회의 본산지인 스코틀랜드를 세 번이나 점령하여 장로교회를 말살시켰습니다.

결국 영국에 하나의 교회를 세우자고 장로교 청교도들과 회중교 청교도 등이 모여서 함께 만든 웨신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휴지가 되었습니다. 어렵게 만들어진 웨신서는 한 하루도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었습니다. 최고 권력자 크롬웰이 살아있는 동안 영국은 회중교 청교도들의 세상이었습니다. 1658년 회중교회 청교도들은 자신들만의 ‘사보이 신앙선언’을 별도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에게 웨신서는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크롬웰이 죽은 후 장로교회 사람들은 프랑스에 망명 중인 찰스 2세가 귀국하여 왕이 되도록 협조하였는데, 회중교회에 대한 경계심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1662년 찰스 2세가 다시 국교회를 국가 종교로 부활시키고 장로교회와 회중교회 등의 모든 종파들을 불법으로 선포하여 핍박하고 감옥에 보냄으로 영국에서 모든 청교도 종파들의 운동은 끝났습니다. 1689년 명예혁명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다시 장로교회가 수면 위로 나타났고, 그때부터 웨신서가 드디어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서로 자리잡았습니다.

처음부터 웨신서는 장로교회만을 위한 문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장로교회를 말살하는데 앞장선 회중교의 핵심 사상이 들어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장로교 청교도 운동과 회중교 청교도 운동은 하나가 될 수 없는 개와 고양이 같은 관계였습니다.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회중교 청교도들이 웨신서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결국 회중교 신자 크롬웰의 군대가 세 번이 장로교의 본산지 스크틀랜드를 점령하여 장로교회를 말살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회중교회는 자신들만의 신앙고백서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장로교회 선조들은 웨신서 속의 회중교회의 거짓 신학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전수하여 우상 같이 숭배하게 만들었습니다.

웨신서에 칼빈의 신학과 전적으로 다른 내용이 들어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연구를 하는 사람이 저 혼자가 아닙니다. 많은 학자들이 웨신서 속에 장로교가 받을 수 없는 사상이 들어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7, 19장의 행위언약 사상입니다. 웨신서를 전부 폐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웨신서 속에 들어와 있는 회중교회의 거짓 신학을 칼빈과 장로교회의 신학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웨신서의 행위언약 사상은 칼빈이 가르친 내용과는 정 반대이고, 회중교회의 조상 퍼킨스가 가르친 내용과는 100% 동일합니다. 그것을 고치면 자연스럽게 회중교회의 능동순종, 회심준비론 거짓 신학도 함께 떠나가게 됩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