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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2권 1장: 죄로 인한 인간의 비극 (1.15;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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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2권 1장: 죄로 인한 인간의 비극 (1.15; 2.1-4)
  • 김현일
  • 승인 2020.05.13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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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하반기에 프랑스를 기점으로 유럽 전역에 유행했던 철학적, 문학적, 지적 사조인 계몽주의 사상의 주된 특징은 보통 세속성과 합리성으로 말해진다. 그러므로 18세기 유럽인들이 인간세계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세속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러하기에 그들의 사조와 철학적 사상의 고취는 인간성에 대해 높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이 기독교를 바라보는 종교적 시각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주안점으로 그리스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았다.

더불어 계몽사상의 부흥을 통하여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부분은 기독교의 말하는 원죄라고 하는 것은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예시적 모델은 이미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아담의 타락과 배반은 죄로 인한 것이고 그로 인하여 더욱이 인류 전체가 저주에 넘겨졌고 원상태가 부패하였다는 원죄론을 들어서 인간은 도무지 독립된 존재도 그리고 어떠한 형태로서도 자율적인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다. 즉 아담 안에 있는 인간 모두는 죄인들이다.
 

1. 인간 안에 내죄한 인죄론

칼빈은 인간의 본성은 창조시 단지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에 의해 창조된 까닭에 탁월하였다고 주장한다.

“저속한 욕망이 그를 유혹하였을 뿐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불경건이 그의 정신의 성체 자체를 점령했고 교만이 그의 마음 깊은 곳까지 침투해 들어갔다.”

이 말은 인간 타락으로 인한 죄성이 인간 창조된 본성 안에 있는 어떤 약점의 탓으로 돌리려는 것으로 설명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그 책임의 소재를 하나님께 묻는 것이며 그릇됨의 과오를 돌려놓는 것이 된다.

‘우리가 우리의 원래 상태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가 멸망하게 된 것 같이 우리의 파멸은 하나님이 아닌 우리 육체의 죄책에서 오는 것이다.’(2.1.10)

즉 인간의 존엄은 오직 하나님께 기인하는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형상은 성령에 의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지는 관계에 의해서만 합당하게 정의될 수 있다고 그는 보았던 것이다.(1.15.4) 이러한 완전무결한 상태 가운데 인간은 만약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자유의지에 의하여 영생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타락했다고 하는 면에서 만약 그가 원했더라면 굳게 섰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는 견해를 가지고 아래와 같이 단언하여 말한다.

‘그의 모든 기관들은 그가 자신을 파괴시키고 자신의 축복들을 부패하게 만들기 전까지는 하나님께 복종할 수 있도록 바르게 구비되어 있었다.’(1.15.8)

인간 영혼의 두 가지 기능 즉 지성과 의지다. 거기에 하나를 가미하면 바른것을 구분함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 영혼에 지성을 주셔서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분별케 하셨고 또 이성의 빛을 안내자로 주셔서 피할 것과 쫓을 것을 구별케 하셨다. 하나님은 여기에 의지를 결합시키셔서 선택을 좌우케 하셨다.(1.15.8)

인간의 존엄과 비극의 이러한 역설은 칼빈이 죄를 취급하는 전반에 걸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만약 우리가 창조보다 전적 부패에서 시작을 한다면 부패로 인한 불행의 요소를 쉽게 놓쳐 버리게 될 것이다.

죄를 타락에서 온 것이라기보다 우리의 인간성 자체로 보는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원죄는 죄책과 오염 모두를 포함한다.(2.1.8)

그러다 보니 중국 사상에서 맹자의 ‘성선설’ 그리고 순자의 ‘성악설’중 어느 하나를 들어서 인간의 원래적 형태를 예시하려는 의도는 소견상 바르지 못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2. 전적부패한 인간의 죄 깊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히브리인의 반복 용법 따라서 동일한 말이다.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으나 죽을 인생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은 죽음 아래 있는 것이 아니다. 영혼이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의 영혼을 염두에 두고서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형상이라 부른다 해도 모순이 아니다.(1.15.3)

아담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이 전적으로 소멸되었거나 파괴된 것은 아니지만 남아 있는 것도 끔찍한 기형이 되어 버린 것이다.(1.15.4) 

그러므로 칼빈은 하나님의 창조의 본래의 모습을 높이고자 하여 그것은 신적인 형상이 전적으로 근절되었다고 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한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인간의 본성이 그 참된 선을 빼앗긴 후에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은사들을 남겨 두셨는지 그들의 예를 통하여 배워야 한다.(2.2.15)

성령님께서 택하신 자들 안에서는 구원을 위하여 그리고 유기된 자들을 향해서는 일반은총으로 일하신다.(2.2.16)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 언약의 참여자로 남아 있으며, 사람들이 죄악된 우상숭배를 하고 종교적으로 왜곡된 정교한 조직을 만들도록 동기를 주는 것은 실로 그러한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들은 종교가 없는 자가 아니라 우상숭배자이다.

아담이 타락하던 때 인간성은 창조된 본성을 전혀 상실하지 않았다. 불순종에 대한 책임을 면할 만큼 인간성의 어떤 부분도 상실되지 않고 어떤 기능도 약화되지 않았다.

의지가 죄의 굴레에 묶여 있기에 선을 향하여 나갈 수 없고 선을 추구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의지가 남아 있어서 죄를 지으려고 하는 강한 성향을 가지고 죄짓기를 재촉한다.… 그러기에 단순히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에게 속하고 악을 행하고자 하는 것은 부패한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며 선을 행하고자 하는 것은 은혜에서 오는 것이다.(2.3.5)

여기에 필연과 강제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가지신 죄에 대한 면역성은 어떤 외적인 강제보다 그 분 자신의 본연의 선에서 나오는데 이것이 죄인에게는 역으로 되는 것이 사실이다.

칼빈은 인간은 어떤 다른 것이 아닌 자발적인 노예 상태와 같은 종류의 멍에에 압박을 받고 있다고 하는 Bernard의 논증에 호소한다.(2.3.5)

하나님은 사악한 자들에게 계속 일반은총을 베풀고 계신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일반적인 대화에서 이 사람은 천성이 좋고 저 사람은 본성이 부패해 있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2.3.4) 그러기에 인간의 ‘공의와 소견’ 에는 다양성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더 사악하고 어떤 사람은 더 덕스럽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고 재능이 있고 공의롭고 관대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모든 입은 다물어진다.

칼빈은 섭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사와 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 은혜, 필연과 강제, 창조된 본래의 본성과 오염된 본성, 하늘의 것들과 땅의 것들,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움과 사람 앞에서의 의로움을 구별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계속해서 창조의 선함을 단언함과 동시에 인간의 사악함을 가장 강도 높게 혹평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계시의 호수에서 수영을 한다 해도 우리의 마음은 스스로 무지와 헛됨을 붙들고 물속에 빠져들고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 안에서 말씀하실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에 대한 합당한 지식을 얻는다.(1.6.1)

우리는 오직 성경의 안경으로만 이전에 혼란스럽고 왜곡되게 보아 왔던 것들을 진정으로 인식할 수 있다.(1.6.1) 인간들은 신적 지혜의 가장 고상한 본보기들(1.5.3)인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는 고집스런 배은망덕은 더욱더 괘씸한 것이다.(1.5.4)
 

3. 하나님께서 죄악을 조성하는 분이신가?

칼빈주의(도르트신경)는 원죄를 자기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한 아담의 범죄 탓으로 돌린다.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 아닌 죄이다.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가 아니시다. 그분은 직접적으로 죄의 원인이 되시거나 죄를 일으키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악을 만들거나 창조하지 않으시며 피조물들에게 악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죄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은 신성모독이라 한다.(3.23.4-5) 영원부터 하나님은 인류의 한 부류의 사람들을 선택하시어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주시고자 하셨다.
 

4. 죄 가운데서의 하나님 은혜

칼빈은 로마서 1장에서 인간의 사악함을 노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곳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곧 우리 안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이다.(로마서 주석.68)

더 나아가 칼빈은 이 말씀의 주석에 덧붙여 회교도들이 천지를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 선포한다 해도 결론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오직 우상숭배와 미신으로 쉽게 변질되는 하나님에 대한 덧없는 지식밖에는 남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2.6.4)

김현일 목사는 중앙대학교 법학 수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B.A) 호서신학대학원 & 개신원(M.Div) 총회신학연구원 (Th.M) 에서 공부를 하였고 경북 영주 현대중앙교회(예장 백석 ) (1993~현재)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성경 중심적 칼빈주의 개혁주의 교회를 지향하여 바른신학, 바른믿음, 바른생활의 공동체를 세워 가고자 정진하고 있고, 늦은감은 있지만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해설집 공동 집필 및 기타 칼빈주의 정론에 관한 서적 집필에도 신학자들과 동역하며 연구하는 사역에도 주력하고자 뜻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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