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2 06:05 (화)
기독교인은 자본주의를 어떻게 볼것인가?
상태바
기독교인은 자본주의를 어떻게 볼것인가?
  • 정양호
  • 승인 2020.05.10 02: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본문과 직접 관련이 없는 자료 사진
본문과 직접 관련이 없는 자료 사진

 

옛날 주일학교 시절 교회 부흥회에 참석하였는데 강사 목사님이 이해하기 힘든 공산주의에 대한 코멘트를 하셨다. “지금은 민주주의 사회인데 그다음은 사회주의가 오고 그다음은 공산주의가 오고 그다음은 지상 천국이 온다”는 이야기가 암울한 뉴스를 볼 때마다 새삼스럽게 자주 떠오른다. 이미 지난 페이지에서 기독교인이 왜 사회주의를 배격해야하는지 살펴보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자본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말세지말(末世之末)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자본주의(資本主義)나 사회주의(社會主義) 정치 환경을 성경적 관점에서 분별하고 지혜스럽게 대처해야할 필요가 있다.

I. 기독교인 자본주의 (Capitalism)을 어떻게 볼것인가?

우리는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자본주의”라고 하면 마치 전공자나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학술적 용어 또는 공산주의(막시즘) 반대 용어 정도로 거리감을 느낀다. 코로나 사태로 세계경제 공황에 따른 금융위기 역사가 되풀이 되는 상황이라 이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그어느때보다 중요해졌다. 이 개념은 많은 키워드로 설명하고 무거운 주제이지만 단순히 문자그대로 생산수단(生産手段)인 돈(資本)과 돈을 가진 자본가가 이윤 또는 삶을 추구하도록 보장하는 자유시장(自由市場) 경제체제(經濟體制)라고 본다.

돈에 대하여 성경은 여러가지로 말씀하신다.

“... 너희가 하나님과(and) 재물(돈Mammon)을 겸(兼)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惡)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迷惑)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6:10) “…자기를 위하여 재물(財物)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富饒)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12:16-21) 이것은 영원을 바라보는 신앙인으로서 돈이라는 수단(手段)에 삶을 얽매여 돈의 노예(奴隸)가 되지 말라는 말씀이지 사유재산(私有財産)을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동시에 물질(物質)의 축복(祝福)도 약속하셨는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자기집에서 훈련한 318명의 특공대 사건을 보면 그가 개인적으로 얼마만큼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었는지 계산이 나온다.(창12장) 욥도 보통 부자가 아니었다. 성경은 사유재산(私有財産)을 인정하고 인류 역사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온 자본주의 시스템 역시 개인의 자유(自由)와 사유재산(私有財産)을 인정하기 때문에 신앙적으로 문제될 이유가 없다.
 

II. 청지기 (Steward)로서 재산 증식 및 이윤추구 (마25:14:30)

예수님의 달란트비유에서 주인은 종에게 맡긴 일에 대해 상당한 권한(權限)과 책임(責任)을 주었고, 종은 많든 적든 돈의 량(量)에 관계없이 자기 재량으로 최선을 다해 장사를 하여 주인에게 이윤을 보게 해야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허랑방탕한 것도 아니고 손해를 보거나 나쁜짓을 한 것도 아니고 본전(本錢)을 안전하게 잘 보관했지만 의도적으로 이윤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주인은 이 종에게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돈을 취리하는 자들(Bank))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利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악(惡)하고 게으른 종아!” 라고 책망하셨다. 왜냐하면 그종이 주인을 오해하여, “굳은 사람(포악자)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아주 질이 나쁜 구두쇠나 돈을 모으는 데만 집착하며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해 불로소득(不勞所得)을 탐하는 파렴치한 포악한 강도나 독재자로 보았고,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에서 그 돈이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강조해서 자기가 아무 일을 하지 않은 것을 당연시하고 나아가 주인에게 “당신 것이니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교만(驕慢)하게 빈정거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설 인간의 바른자세도, 바른 신자도 결코 아니다.

온천하 만물의 주인이신 분의 관심이 돈 그 자체의 이윤을 얼마나 벌었나 하는 계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과 명령을 제대로 알고 겸손한 마음으로 무슨 일이든 성실하게 순종하는 청지기인가?(눅17:7) “착하고 충성된 종”인지 “무익한 종”인지 평가한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이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절대소유라는 관점에서 그 소명(召命)과 사명(mission)을 위해 사유재산증식나 이윤추구를 통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마땅히 땀 흘려 일해야 하는 것이다.(살후3:10)

병든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미국은 UN의 각기구나 USAID같은 많은 사회기업을 통해 전세계의 가난한 나라를 돕는 일에 앞장서 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를 통해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린다는 미국의 국내 의료 시스템의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엄청 비싼 병원비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사실상 병원에 갈 엄두를 못낸단다. 의료단기팀에 의하면 약값은 아프리카보다 훨씬 비싸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병든 자본주의라 꼬짚는다.

인간의 본성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의 부족함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제시해주셨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利己的)이고 죄(罪)에 대한 욕심(慾心)으로 가득차 있다. “욕심이 잉태한 즉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약1:15)고 경고하였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영생을 얻으려면 어떤 선한 일을 해야하느냐?”고 물었을 때 청년에게 요구하신 것은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라오라”고했을 때 그 청년은 “재물이 많은고로 근심하며 돌아갔다”라고 하였다. (마19:) 재물이 많으면 많이 나눌 것 같지만 재물에 집착한 이기적 인생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영생 문제까지도 예수님이 아닌 내 자신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남아공은 백인 정부 때부터 전국 국립 병원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無料)로 치료해줄 뿐 아니라, 영세민들의 자녀들에게 자녀 양육비를 매달 일정금액을 지불해주고 있다. 인종분리정책으로 비난을 받았던 기독교 정부이지만 밝은 한 측면도 볼수 있다.

부족한 자본주의의 대안은 국가가 강제로 통제(統制)하는 사회주의는 아니다. 다수의 교회 지도자들이나 성도들도 한국의 현 정치계가 떠드는 것처럼 “문제(問題)는 자본주의, 사회주의가 정답(正答)”인 양 분별하지 못하고 동조, 옹호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하다.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 말씀, 성경이 제시한 바른 믿음에서 하늘의 상급으로 연결된 자발적 사랑과 나눔이 최선이다. “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27)

정양호 선교사는 고신에서 공부하고 안수받았으며, 현재 KPM(고신총회세계선교회)와 NGO Good Partners(김인중 목사, 이사장)의 파송을 받아 우간다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천주교와 오순절 운동 신학 류에 오염되지 않은 순결한 성경적 복음을 우간다의 원주민들에게 전하고자 애쓴다. 우간다의 낙후된 여러 지역들을 순회하면서 복음과 함께 의료 봉사로 영혼들을 섬기고 있고, 늘 기독교의 세계적 동향을 살피고 연구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