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에 의존하지 않고 내면에 집중하는 영성수련의 끝은 귀신체험

영성이라는 말은 성경으로부터 나온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이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고 타락한 원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다시 하나님의 자녀됨과 영원한 생명의 언약이 회복되었다는 진리를 알지 못하는 일반 죄인들이 도덕적, 철학적, 종교적 수행정진을 통해 자기의 영혼을 스스로 돌보려는 노력하는 과정이 '영성', 또는 '영성수련'이다. 영성 사상의 본질적인 문제는 인간이 창조자에 대해 저지른 영원한 죄의 문제를 덮어두고 다른 기만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영혼과 삶을 높은 경지로 끌어돌리는 비법을 얻고자 도모하는 것이다. 인간을 이즈신 창조주 하나님과 무관한 방법응로 영적인 도약을 꿈꾸므로 결국 하나님이 아닌 잡신과 교제하는 사탄과의 교제와 사탄이 주는 거짓된 행복을 추구하는 깊은 미혹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죄을 안고 태어난 인간이 자기의 영적수준을 도약시킬 수 있는 참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영원한 진리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 달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아주 좁은 길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신이 멸망당할 죄인임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생명의 하나님께로 나아가기를 싫어한다. 대신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여겨지는 다양한 길을 스스로 개척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진행되는 세상의 다양한 종교들의 영성수련은 결국 인간이 사탄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준다. 영성수련의 끝은 하나님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사탄체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구원을 알지 못하는 우매한 죄인들은 영성수련하면서 귀신이 주는 얄팍한 지혜와 귀신과의 교제에서 느껴지는 희열에 빠져 마치 자기 존재의 불안정성과 한계를 초월하게된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잡신들과의 교제를 통해 영적으로 급격하게 도약하여 차원 높은 수준의 인생이 되었고, 세상과 인생에 대해 통달하게 만드는 지식과 능력을 얻었다고 자만하게 된다. 영원히 죽을 죄인이 진리와 구원의 하나님과 더욱 동 떨어진 화려한 흑암 속에서 허우적이면서 오히려 스스로 무엇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인생을 소모하고 탕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영성수련자들의 비극이다.

문제는 기독교인이면서도 영성에 매료되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도 결국 이 길로 간다는 것이다. 기독교 영성운동가들의 행태는 약간 모양이 다르기는 하나 일반 종교인들과 철학자들의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이유는 일반 종교인들의 영성수련 방법을 약간 변형하여 자신들의 신앙 속으로 끌고 오기 때문에 결국 성령을 가장하는 귀신과 교제하게 되는 함정을 피할 수가 없가 때문이다. 기독교인이고 많은 신자들을 가르치는 목사이면서도 그 지경에 빠지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세상 철학자들과 종교들의 영성수련의 방법, 즉 인간의 내면에 처음부터 잠재된 구원과 진리의 불꽃을 탐구하기 위해 고안된 보편적인 수행방법인 명상을 자신들의 기도와 혼합시키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종교들이 진리탐구, 득도, 해탈, 구원을 얻기 위해 진행하는 명상수행의 근본목적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소리와 정보를 차단하고 인간의 내면세계에 이미 존재하는 진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타락한 죄인의 내면에 진리와 구원이 존재하지도 않고 찾아낼 수도 없는데, 그것을 너무도 잘 안다면서 신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이 된 자들이 이방종교인들의 수행 방식을 따라 자기의 내면세계로 들어가려고 하니 결국에는 속이는 귀신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종교인들이 영성을 형성하는(spiritual formation) 가장 공통되는 수련방법은 바로 ‘명상’(meditation, contemplation)이다. 다른 종교인들이 명상을 중시하는 이유는 일상의 의식세계에서 벗어나 자신도 모르는 내면의식, 즉 우주와 인간에게 동시에 존재하는 궁극적 실제, 참된 자아, 신성 등으로 표현되는 존재를 만남으로 진정한 행복과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법륜스님 강연회 홍보지

대중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세계 도처를 여행하면서 불교인들을 가르치는 법륜의 강의에서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다. 명상은 외부세계로 향하고, 늘 외부에서 들어오는 요인에 의해 영향받는 인간을 자기 내부로 향하게 만드는 수련이라고 법륜은 가르친다. 다음은 아테네를 여행하면서 그곳에 사는 한인 불자들에게 법륜 이 강의했던 내용의 일부이다. 법륜은 화를 참는 방법에 대해서 묻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답변의 요지는 화를 내는 이유는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니 자기를 비우면 된다는 것이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너 또 미친다!’, ‘너, 또 네 성질부린다!’, ‘또 네가 옳다고 주장하는구나!’ 이렇게 자기를 자각시켜 보세요 ...(중략) 화가 날 때마다 ‘너 또 미친다!’, ‘또 네가 옳다고 주장하는구나!’ 이렇게 자기에게 주의를 주세요. 밖을 보지 말고 자기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명상하면 도움이 됩니다.”

한국의 최고의 불교 지성인 법륜은 명상이 인간의 내면에 있는 참된 자신을 탐구하도록 생각하고 말하는 자기 의식을 비우게 만드는 영성수련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명상으로 해탈과 득도에 이르기를 시도하는 불교의 영성은 곧 인간의 내면에 처음부터 존재하는 선과 고상함을 계발하고 찾아내는 영성이다. 그런면에서 석마모니는 명상을 통해 자신 안에 존재하는 우주의 진리를 발견하여 득도한 최고의 영지주의자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서도 인간과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인간이 자기 존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구원의 진리는 초월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부어주시는 은혜이다. 인간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는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타락하여 죄에 오염되었으므로 인간의 내면에서 구원과 진리의 빛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물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이겠느냐.”(욥 15:16)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가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 14:1)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4)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이처럼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악에 물든 더러운 인간이요 죽을 수밖에 없는 부패하고 오염된 인간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은 초월하신 하나님이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만 말미암는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계시가 없으면 죄 속에서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영원한 사망에 이르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그러나 다른 종교들은 반대로 가르친다. 인간의 내면에 고귀한 신성의 희미한 불꽃이 처음부터 내재하고 있으므로, 영성수련으로 인간 내면에 잠재된 신성과 진리의 빛을 들추어내고 더욱 활성화시키려고 시도한다. 다른 종교들이 그 일을 진행하는 과정이 영성수련이고, 그들이 수련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기원하는 목표는 ‘열반’, ‘해탈’, ‘도통’, ‘득도’이다. 이방 종교들에서 중시되는 이런 것들은 사실 인간이 영성수련을 통해 자기존재 안에 잠재되었던 영원한 진리, 우주의 궁극적인 존재, 신성을 발견하였다는 착각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철 속에서 명상하는 신세대 승려 코이케

오늘 날 기독교 안에서 침묵의 영성, 관상기도, 마음 비우기 등의 불교, 힌두교 스타일의 이야기를 자주하는 사람들의 사상을 조사해 보며, 한 두 다리를 건너서 이런 세상 종교들의 영성수련 사상과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요즘은 각박한 도시 생활에 지친 일반 대중들이 명상에 대해 지대한 매력을 느끼고 있으므로 기독교 안에서도 명상의 영성, 침묵의 영성을 이야기하면 쉽게 받아드려진다. MBC 방송이 현대인들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명상을 소개하기 위해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코이케 류노스케라는 동경대학을 졸업한 젊은 승려의 책 <생각 버리기 연습>과 현대인들에게 맞게 상황화된 그의 명상수행 방식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영상 속에서 나레이터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코이케는 동경대 출신의 신세대 스님(34세)이다. 한 달의 반을 묵언수행하는 코이케는 나머지 보름동안에는 적극적으로 세상 사람들을 만난다. 많이 생각하라는 세상의 가르침에 이 젊은 스님은 거꾸로 생각을 버리라고 강조한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로 인해 현재의 행복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그가 사람들은 만나는 곳은 동경 주택가에 자리해 있다. 주말마다 명상을 하려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출가 후 좌선호흡법을 접하고야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는 코이케! 그가 사람들과 나누려는 건 그 평안함이다. 좌선호흡법은 호흡만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복잡한 전철의 좁은 의자 위에 무릎 꿇고 앉아 명상수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코이케는 좌선호흡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뇌내생활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요, 현대인들은 뇌 속에서 말을 가지고 노는 생활만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사실 굉장한 스트레스가 됩니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대신 생각을 버리고 몸으로 느끼거나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능력을 키우자는 컨셉이 중심입니다.”

“공기가 통과할 때 콧구멍 속의 피부를 문지르는 듯한 감각이 있습니다. 그 감각을 천천히 느끼세요. 숨이 들어오고 나오고 평소에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감각인데요, 그것을 느끼세요. 코뿐만이 아니라 숨을 들이마실 때에는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듯한 감각이 있고 목에 숨이 통과하는 감각이나 배가 불러오는 감각을 느끼세요.”

일본의 동경대학을 나온 34세 젊은 승려 코이케의 진리와 구원와 행복을 얻기 위한 명상수련을 요약하면 다음의 세 가지였다.

1)생각을 버려야 한다.
2)생각을 버리기 위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
3)좌선호흡법을 배우면 생각을 버리고 참된 자기가 있는 내면세계를 접하게 된다.

기독교 안에서 관상기도나 침묵의 영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가르침을 조사하면 반드시 자기의식과 외부의 번잡한 요인들부터 벗어나서 자기의 내면으로 들어가라는 가르침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객관적인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보다는 명상하는 인간이 경험하는 주관적인 내면의 음성을 중시하는 성향도 보인다. 이방종교의 명상의 영성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사상의 뿌리를 추적하면 명상수련으로 행복과 진리를 탐구하려는 세상 종교로부터 받은 영향받은 흔적이 반드시 나타난다.

성경은 의식과 생각을 비워 인간의 깊은 내면에 존재하는 뭔가를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인간의 내면에는 진리와 구원이 없으므로 인간과 세상을 넘어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통하여 만나는 종교이다. 인간의 영혼과 인격은 이미 타락한 아담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으므로, 이제 갓 태어난 어린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과 영혼이 순전하지 못하다. 인간 속에는 죄와 부패가 가득하다. 모든 인간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으로 새로워져야 한다. 기독교는 더러운 죄인에게 보혈과 성령과 말씀을 채우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생각 버리기, 비움, 명상의 영성, 침묵의 영성 등은 기독교와는 관련이 없다.

기독교의 기도는 명상이 아니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성경 말씀과 우리의 삶이 함께 나아가도록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청하는 행동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결국에는 우리의 속을 채우는 것이지, 결코 비우는 것이 아니다. 기도에 대해서 그간 못 들어본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또렷하고 맑은 정신으로, 인격과 지성과 정성을 담아 하나님께 들리는 말로, 들리지 않는 말로 간구하여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힘과 도움을 얻어야 한다. 그것이 기독교인의 기도이다. 스님처럼 한 곳에 가만히 앉아있게 하고, 스님들의 명상과 같이 조용하게 있도록 하는 기독교 영성가들의 기도를 버리기 위해서는 쓰레기통도 아깝다.

명상, 관상을 한다면서 스님이나 된 것처럼 마음을 비우느니 어쩌느니, 이상하게 기도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맑은 마음과 건전한 생각을 비우면 반드시 귀신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귀신들은 성령으로 인치심(엡 4:30) 받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들어가지는 못한다.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은 귀신에게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성령을 모시지 못한 모든 사람들은 마귀의 밥이고, 그 중에서도 자기의 또렷하고 건전한 생각과 마음을 비우려고 수련하는 명상가들은 더 쉽게 귀신의 집으로 개조될 수밖에 없다. 정신의 대문을 활짝 열고 누구나 들어오라고 하는데, 귀신들이 뭐가 무서워서 못들어가겠는가? 명상수련하면서 의지와 생각을 비우는 사람을 보고서도 들어가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귀신은 지능이 떨어지는 미련퉁이 귀신이다.
 

영성수련의 꽃은 접신체험

명상을 통해 또렷한 의식을 버리고 무념무상의 상태에 들어가면 영적인 존재가 찾아온다. 영성을 고양하기 위해 수련하는 사람들 주변에서 기회를 보던 귀신이 수련자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시간이 도래한다. 무속에서는 ‘신내림’이라고 하고, 심리학에서는 ‘영적인 안내자’, ‘신성한 내면아이’라고도 하는 영적인 존재가 찾아오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때가 이르기까지 주문암송, 생식, 금욕, 새벽치성, 찬물목욕 등의 정성이 수반되기도 하고 그것이 더욱 영성수련을 강화하기도 한다.

귀신과 영성 수련자 사이에 교제가 이루어지면, 그 사람에게 특별한 신통력이 생기기도 하고 음악, 의술, 예능 등의 재주가 영성수련자에게 전수되기도 한다. 구원에 이르지는 못해도 나름대로 세상사를 간파하게 만드는 철학을 깨우치게도 한다. 실제로 병을 고치는 능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신비한 비방이나 주줄적 주문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수련을 통해 도통에 이르렀다고 소문난 다른 종교들의 고수들에게서 실제로 어떤 신비한 능력이 나타나고, 그것이 과장되게 소문이 나는 경우가 많다. 마치 기독교에서 성령께서 교회를 섬기도록 신자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영성집회, 성령집회, 영성운동 등의 명칭으로 기독교 안에서 들어온 것들에 의해 거짓 방언현상, 점장이 예언, 쓰러짐, 몸의 진동 등의 신내림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수운의 동학사상

세상 종교들의 명상수련이 어떻게 지행되는지? 명상수행의 궁극적인 결말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깊이 알기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동학을 창시한 최수운(1824∼1863)의 일생을 연구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도울 김용옥 박사가 동학운동에 대해 강의한 영상들을 쉽게 구할 수 있는데, 동학을 이해하기 위한 참 좋은 자료라고 생각된다. 천도교, 증산교의 뿌리가 되는 동학은 나름대로 심오한 체계를 가진 철학이며 종교이다. 동학은 경주 출신 최제우(최수운)가 유교, 불교 등의 전통적인 종교들의 가르침을 통합하여 만들어 낸 한민족 고유의 민족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최수운은 당시 외국에서 유입되어 민족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서학(로마천주교)에 대항할 수 있는 민족종교를 창시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으로 수행하다가 드디어 큰 깨달음에 이르러 동학사상은 창시하였다. 

동학의 1대교주 최수운을 소개하는 책

최수운은 17세 때부터 고독을 좋아하면서 명상에 젖어들었다고 한다. 책 읽기를 좋아하여 여러 종류의 경서(經書)들을 읽으며 연구하였으나 일반 정치, 유교와 불교 등의 가르침으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침 집에서 불이나 있을 곳이 없어지자, 가족을 처갓집에 맡기고 금강간, 구월산, 지리산, 묘향산 등지로 다니면서 명상하였고, 여러 이름난 선비들과 불교의 고승들을 찾아 세상을 구할 방도에 대해 토론하였다. 결국 최수운은 하느님(상제)의 뜻 즉, 천명(天命)을 따르지 않으므로 세상이 어지럽게 되었다고 진단하였다. 사람들이 상제의 뜻을 알고 따르기만 한다면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의 나이 31세 되었을 때, 어느 날 한 도인이 나타나서「을묘천서(乙卯天書)」라는 책 한권을 주고 사라지는 신비체험을 경험했다. 그 책 속에 지극한 정성으로 하느님께 49일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으므로, 그는 천성산(千聖山) 한 동굴에서 홀로 49일 동안 치성을 드렸다. 그때 최수운은 어떤 신기한 술법과 이적을 경험하기는 했으나 세상을 구할만한 큰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다. 최수운은 끝내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결코 다시 세상을 보지 않겠다고 다시 결심하고서 고향의 구미산(龜尾山) 아래에 있는 용담정(龍潭亭)에 은거하며 더욱 침묵수행에 전념했다. 그는 도를 깨닫기 위해서 추운 겨울에 계곡의 얼음을 깨고 찬물로 목욕하는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나이 37세가 되던 해, 1860년 4월 5일 드디어 그에게 하늘의 큰 깨달음이 임했다. 동학사상을 탄생시킨 그의 큰 깨달음은 우주를 주재하는 상재가 그에게 찾아와서 직접 음성을 들려줌으로서 시작되었다. 다음은 동학사상에 대해서 깊이 연구한 도올 김용옥 박사가 최수운의 득도 장면을 강의하는 영상을 녹취한 내용이다. 마치 사이비 기독교에서 성령체험이라고 이야기되는 형상과 유사한 일이 그에게 일어났었다. 

“(최수운이) 거기서 먹는데 몸이 이상했다 이거야! 잔치 상을 물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데, 자꾸 몸이 벌벌 떨리고 그런 뭐가 오더라 이거야! 그래가지고 엎어지고 자빠지고 하면서 간신히 자기의 집에 들어왔는데, 마루에 올라오자마자 자빠지고 하는데, 뭔가 또렷하게 신선의 말이 들리기 시작하더라 이거야! 이게 묘한 일인데, 여러분들 혹시 접신해 본 사람이 있습니까?”

동학에 대해 강의하는 도울 김용옥 박사

최수운이 친척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아 식사를 하는 도중에 몸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몸이 떨리고 중심을 잡을 수가 없어 넘어지고 구르고 했다는 내용이다. 그런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그에게 신의 음성이 들렸다. 이는 무속에서 신이내림이라고 부르는 현상이고, 요즘 도처에서 홍수를 이루는 사이비 기독교 집단들에서 성령운동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일어나는 현상과 같은 모습니다. 도울은 최수운이 <용담유사>에서 직접 그 당시의 상황을 읽으면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사월이라 초오일에 꿈일런가 잠일런가’(최수운)
그러니까 이게(4월 5일에 일어난 신비현상) 생시인지 꿈인지 비몽사몽간이었다는 것이지요.(김용옥)

‘천지가 아득해서 정신수습 못할러라’(최수운).
자기가 정신을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정신이 공중으로 붕 떠버리더라는 것입니다.(김용옥)

‘공중에서 외는소리 천지가 진동할 때’.(최수운)
공중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는데, 천지가 진동하듯이 들렸다는 말입니다.(김용옥)

‘집안사람 거동보소 경황실색 하는말이’(최수운)
아마 거품을 물고 쓰러졌는지 그 상황을 보고 우리 아버지(남편이) 완전히 갔다! 이런 상황이 된 것입니다.(김용옥)

‘애고애고 내팔자야 무삼일로 이러한고’(최수운)
도를 얻기 위해 공부한다고 해서 뒷바라지 해주었는데, 자빠지고 넘어지고 하늘에서 이상한 말이 들린다고 하니 가족들이 크케 놀랬다는 말입니다.(김용옥)

‘애고애고 사람들아 약도사 못해볼까’(최수운)
그 상황은 약으로도 고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김용옥)

‘침침칠야 저문밤에 누로대해 이말할꼬’(최수운)
(놀란 가족들이) 누구에게 호소할 수도 없었다는 말입니다.(김용옥)

‘경황실색 우는자식 구석마다 끼어있고’(최수운)
아버지가 거품을 물고 방안에 누워있으니까 애들이 놀래서 방구석으로 가서 울고 있었다는 말입니다.(김용옥) ...(중략)

‘공중에서 외는소리 물구물공 하였어라’(최수운)
두려워말라! 두려워말라!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 이겁니다.(김용옥)

‘개벽시 국초일을 만지장서 나리시고’(최수운)
다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그 초입에 벌어질 많은 종이에 쓸 내용이 구체적인 메시지로 자기에게 내려왔다는 말입니다.(김용옥)

‘십이제국 다버리고 아국운수 먼저하네’(최수운)
세계열강들을 다 버리고 상제님이 조선에 찾아와서 최수운 자신에게 계시를 내려주셨다는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김용옥)”

최수운이 드디어 득도하게 되었다. 하늘의 상제가 그에게 찾아와서 직접 책으로 기록할 수 있도록 말로 메시지(계시)를 줌으로서 최수운이 도통, 깨달음, 득도, 열반,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최수운이 득도에 이르기 위해 노력한 과정과 결말을 보면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이방종교들의 수련과정과 결말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진리는 인간 안에 있으니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라!
2)인간의 내면을 성찰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침묵하는 명상이다!
2)낮은 수준의 명상 단계에서 계속노력하면 ‘영적인 안내자’(도승, 귀신, 천사 등)이 나타나 더 깊은 명상의 영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도움과 비방을 준다!
3)금식, 찬물목욕, 주문, 회개, 율법준수, 기도 등으로 정성을 다하며 명상수련을 진행하면 반드시 신(사탄)이 찾아와 음성과 메시지를 주는 때가 온다. 그래서 명상하는 영성가는 철학, 천문, 관상, 점, 우주의 원리, 구원 등에 대한 거짓된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일들이 기독교 안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900년대 초에 오순절을 재현한다는 오순절 운동이 등장하여 이미 구원받은 신자들이 다시 성령을 모셔드리게 하는 성령세례 운동이 전개되었다. 구약의 오순절을 비롯한 모든 절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 성취되었으므로 1900년이 지나서 오순절이 개인들에게 재현되고 반복된다는 것은 인정될 수 없는 이야기이다. 더군다가 그 일을 지행한 사람들이 이단들이었다는 것은 더욱 더 오순절이 재현된다는 사상을 의심하게 만든다. 실제로 그들은 통해 나타난 오순절의 재현되는 모습이라고 주장된 현상들은 영락없는 귀신수라장이었다.

그런데 1900년대 초 미국 아주사에서 일어난 그 일들이 최수운이 도를 깨닫기 위해 명상에 전념하다가 그의 나이 37세 되던 1860년 4월에 경험한 깨달음이 임할 때의 모습과 너무 유사하였다. 아주사에서 오순절이 개인적으로 다시 재현되는 체험을 했던 사람들의 입에서 의미없이 주절거리는 소리현상이 나타나고, 몸이 부르르 떨리고, 괴성을 지르고, 미친 짐승처럼 통제불능이 되어 구르고 뛰기도 했다. 동일한 현상이 신령을 접하였던 최수운에게서 나타났다. 최수운에게 신이 임할 때, 그의 가족들이 크게 놀라 아내와 아이들은 울게 만들었던 것처럼, 지금도 거짓된 성령을 받는 사람들에게서 거의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을 전문적으로 일으키는 사람들의 가르침 속에도 최수운이 스스로 했던 것과 유사한 금식, 기도, 회개, 율법준수 등의 인간의 노력과 결단이 동일하게 강조된다. 그리고 사이비 기독교 안에서 성령운동이라는 괴이한 일을 전문으로 하는 귀신의 부흥사들에게서도 최수운의 사상과 유사한 영지주의 - 뉴 에이지 사상이 흔히 나타난다. 최수운에게 동학사상을 만들게 한 깨달음 현상과 접신체험은 오늘 날 교회 안에서 성령세례, 기름부음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천주교에 유입된 명상의 영성

다른 종교들의 침묵과 명상하는 영성이 일찍부터 천주교 속으로 유입되었다. 중세의 수도원에서 행해지던 수도사들의 기도 속에도 다른 종교의 명상과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수도사의 영성’, ‘수도원적 영성’이라는 말은 곧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참선하는 불교의 스님들처럼 기도를 했다는 것과 관련된 말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관상기도’라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천주교의 관상기도는 이방 종교의 명상이 수도사들의 기도와 혼합되면서 생겨났다.

천주교 영성가 토마스 머튼

현대 교회에 유입된 다른 종교의 명상의 영향을 살펴보려면 천주교 신부였던 신비주의 영성운동가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토마스 머튼은 천주교의 신부였으면서 동양의 여러 종류의 종교들의 명상 영성에 깊이 심취되었던 사람이다. 그는 동양 종교들의 명상수련을 천주교 속으로 도입하여, 천주교 안에서 침묵과 명상을 통해 하나님의 세계를 접하는 영성운동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이전부터 천주교 안에 존재하였던 관상기도가 토마스 머튼으로 인해 더욱 더 관심을 받으며 크게 일어났다. 토마스 머튼은「관상의 새로운 씨앗들」(The Seeds of Contemplation)이라는 책에서 관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과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아니하며 초월적이며 무한하게 풍성한 근원(Source)으로부터 유출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생생한 깨달음이다. 관상이란 무엇보다 그 근원에 대한 실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만물이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유출되었으므로 관상 또는 명상을 통하여 존재의 근원을 인식하게 된다는 토마스 머튼의 사상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 하나님, 만물이 하나의 ‘궁극적 신성’으로부터 발출되어 존재한다고 보았던 고대 영지주의로부터 널리 전파된 비성경적인 사고이다. 미국의 어떤 영지주의 교회의 사제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의 책의 저자 소개란에서 당당하게 밝히는 스티븐 휠러(Stephan A. Hoeller)라는 사람이 있다. 가장 열정적인 영지주의 전도사라고 인정되는 그 사람의 책「이것이 영지주의다」는 고대의 영지주의 사상의 핵심, 영지주의의 현대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뉴 에이지 사상, 그리고 명상을 구원과 진리탐구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련 방법으로 삼는 모든 세상 종교들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스티븐 휠러는 우주가 존재하게 된 이유를 영지주의 사상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지주의자들의 하느님은 창조된 세계 너머에 있는, 어떤 점에서는 창조된 세계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궁극의 실재이다. 카발리스트(kabbalist, 유대신비주의자)들과 전 세계 대부분의 비교 신봉자들처럼 영지주의자들도 창조라는 관념 대신 ‘신성한 존재로의 방출’(emanation)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초월적 하느님은 창조에 참여하지 않는다. 신적 본질이 방출되어 나아감에 따라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 드러나고 그 과정이 더 진행되면서 훨씬 구체적인 창조가 이루어진다. 근본 하느님은 시종 제일원인으로 남아 있으며, 그 대신 다른 존재들이 창조의 부차적인 혹은 이차적인 원인이 된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교회’(?)라는 곳에서 사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니 옛날 사도들의 시대에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가 얼마나 심각하게 복음을 파괴하였겠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된다. 뉴 에이지와 현존하는 대부분의 종교들의 뿌리가 되는 영지주의의 하느님은 기독교의 하나님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기독교의 인격적이고 초월적인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서 그것으로부터 기운이 자연적으로 흘러넘치면서 인간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포함한 우주만물 탄생하였다고 본다.

성경은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으나 타락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영원히 죽음에 처하게된 불쌍하고 초라한 죄인이며,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영원한 세계의 안식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한다. 그러나 영지주의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우주의 궁극적인 신성의 파편과 불꽃을 담고 세상에 태어난 작고 무지하고 초라한 하느님이라고 가르친다. 다만 무지, 세상 번뇌, 불완전하게 만들어진 세상의 소란과 불협화음으로 인하여 그 사실을 발견하기 못하고 살고 있을 뿐이다. 영지주의는 어두운 외적 물질의 세계에 새장의 새처럼 갇힌 인간의 영혼을 해방시키는 것이 곧 인간 자신의 본래의 존재, 우주의 궁극적인 실재에게로 향하는 구원의 길이라고 여긴다.

현대의 뉴 에이지와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모든 종교들은 이러한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서 탄생하였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자기 속에 처음부터 내재한 희미한 신성의 불꽃을 발견하는 것이 종교의 최대목적이 된다. 인간과 세상을 지으시고 또한 타락한 인간에게 은혜로 구원을 주시는 초월적인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무지와 세상 번뇌를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여 자기 속에 이미 내재한 궁극적인 실재를 발견하여 만나려고 노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고귀한 정신과 영혼을 억압하고 있는 무지와 번민과 소란을 극복하고 정신과 영혼이 ‘깨달음’을 얻어 높이 도약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종교인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날마다 명상한다. 이것이 다른 종교들의 사상과 활동의 핵심인데, 천주교의 신부였던 토마스 머튼이 천주교 속으로 이러한 명상 개념을 끌고 들어온 것은 동양의 불교와 도교 등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토마스 머튼으로부터 영향받은 기독교 목사들에 의해 침묵을 강조하는 영성신학이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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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