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혁 교수의 '언약신학' 2장 : 윌리엄 퍼킨스 부분에 대한 여섯 번째 소감

안상혁 교수(합신, 교회사)의 저서 <언약신학>을 독서하는 이유는 잉글랜드 회중교회파 청교도들의 신앙이 기독교에 해를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안 교수가 옹호하는 회중파 청교도들의 신학적 동력원 ‘행위계약’ 개념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현저하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글은 안 교수의 책 2장의 윌리엄 퍼킨스에 관한 부분에 대한 여섯 번째 소감이다.

“그렇다면 예정 교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퍼킨스는 택자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예정론의 의도라고 확신했다. 예정 교리는 사람의 구원과 관련하여 선택과 구원의 영원한 기초가 하나님의 거져 베푸시는 은혜(사람의 공로가 아닌)임을 확실히 보여준다.”(안 교수의 말/ 115,116 페이지)

안 교수는 퍼킨스의 언약 신학에서 예정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 사람에게 구원의 확신을 준다고 설명했다. 퍼킨스도 칼빈처럼 예정 교리를 중시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퍼킨스의 예정 신학이 성경과 다르고 칼빈의 가르침과도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예정 교리는 사람의 구원과 관련하여 선택과 구원의 영원한 기초가 하나님의 거져 베푸시는 은혜’(퍼킨스와 안 교수의 설명)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의 영원한 기초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정교리를 통해 구원의 확신을 누릴 수 있다는 퍼킨스의 주장 속에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속임수가 있다. 그것은 택하신 자를 반드시 믿음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단지 택하여 주심과 구원을 받게 만드는 그리스도를 준비하여 주신 것까지만 하나님의 예정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면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최종적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인가? 퍼킨스와 청교도들은 ‘언약의 쌍방성’이라는 말로 이것을 설명하였다. 하나님과 사람이 구원을 위해 각자에게 정해진 조건과 역할을 수행한다는 개념이다. 구원에 대해 사람의 역할이 일정 부분 작용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택하심부터 최종적 구원에 이르는 과정 모두를 주관하지 않으면 결국 율법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구원의 100%가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으로 말미암는다고 가르치지 않고, 사람의 역할이 단 0.1%라도 작용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율법주의이다. 단 0.01%라도 구원의 조건으로서, 그리고 구원의 열매로서 사람에게 자기 힘으로 거룩을 이루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가르치면 율법주의이다.

퍼킨스와 청교도들이 구원 언약이 하나님과 사람의 쌍방적 언약이라고 가르칠 때, 이미 청교도 신앙은 율법주의로 변질되었다. 쉽게 말해보자!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구원을 얻기 위해 사람이 자기의 죄와 장래 자신의 영혼이 처하게 될 하나님의 지옥의 저주를 깨닫는 영적 각성을 먼저 경험하고, 스스로 예배, 기도, 율법준수, 회개, 자선(특히 에드워즈)에 힘쓰면서 하나님이 회심의 은혜를 주시기를 소망하고 기다려야만 한다는 회심준비론 목회가 율법주의가 아닐 수가 없다.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 율법의 정죄의 기능이 그리스도의 피로 해소되었을지라도 그리스도처럼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여전히 구원 받은 자에게 남아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율법주의가 아닐 수가 없다. 괜히 ‘청교도=율법주의’라는 말과 이미지가 생겨난 것이 아니다.

구원을 위해 참새 눈물만큼이라도 사람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가르치면 빼도 박도 못하는 율법주의이다. 하나님의 예정을 말하면서 반드시 그리스도를 믿게 만드시는 불가항력적 은혜를 말하지 않으면 결국 최종적 구원을 받기 위해 사람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다. 퍼킨스와 청교도 언약 신학의 하나님과 사람의 쌍방성이란 바로 그것이다. 퍼킨스가 예정을 말하면서, 단지 택하여 주시고 믿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준비하여 주신 것까지만 말하는 교묘함 속에 이와 같은 모략이 있음을 우리는 잘 몰랐다.

1. 전적타락(전적타락과 무능력, Total depravity)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3.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위의 칼빈주의 5대 강령은 칼빈이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고 도르트 회의(The Canons of Dordt, 1618-1619년)에서 알미니안 신학의 다섯 가지 항론에 대한 성경적 대응으로 탄생되었다. 이 중의 하나라도 빼면 성경의 예정에 대한 가르침이 바로 서지를 못한다. 특히 불가항력적 은혜가 빠지면 예정을 말할지라도 알미니안 신학과 다를 것이 없다. 퍼킨스가 예정을 말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예정된 자가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반드시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예정은 성경의 예정이 아니고 칼빈의 예정 신학과도 다르다. 결국 퍼킨스는 사람이 최종적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선행된 은혜를 따라) 스스로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알미니안 신학을 슬그머니 도입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국교회와 밀착되어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극도로 싫어하는 제도의 개혁을 단념하고 잉글랜드 국민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종교를 개혁하게 만드는 새로운 청교도 운동으로 개혁의 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칼빈처럼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강조하면 잉글랜드 국민들이 경건과 거룩을 추구하고,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헌신되게 만들수 없었기 때문이다. 퍼킨스가 말하는 예정 속에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 개념이 있는지 더 확인해 보자.
 

안상혁 교수(합신, 교회사)
ㅏㄷ안상혁 교수(합신, 교회사)


“그렇다면 예정 교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퍼킨스는 택자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예정론의 의도라고 확신했다. 예정 교리는 사람의 구원과 관련하여 선택과 구원의 영원한 기초가 하나님의 거져 베푸시는 은혜(사람의 공로가 아닌)임을 확실히 보여준다.”(안 교수의 말/ 115,116 페이지)

“이처럼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과 거저 베푸시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소개한 후, 퍼킨스는 이와 더불어 언약의 조건적 측면 역시 강조한다. 회개와 믿음은 가장 중요한 언약의 두 조건이다. 성도는 ‘믿음과 회개를 통해 그리스도를 받는다.’ 첫째,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조건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믿음이다. 언약의 조건으로서의 믿음을 말하면서 동시에 퍼킨스는 이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강조한다.”(안 교수의 말/ 120 페이지)

“회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퍼킨스에 따르면 (믿음과 마찬가지로) 회개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이러한 회개에 앞서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한다. ‘그 어느 누구도 회개를 자신의 힘에 의지하거나 자기의 힘으로 이행할 수 없다.’”(안 교수가 인용한 퍼킨스의 말/ 122 페이지)

아무리 보아도 퍼킨스의 예정 사상 속에 하나님께서 불가항력적 은혜로 역사하여 택자가 꼭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가르침이 없다. 선택하여 주심과 선택된 자를 위해 그리스도를 예비하여 주심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예정이라고 한다. 심지어 구원의 언약이 성립되기 위해 사람이 믿음을 가지는 것이 요구된다고 노골적으로 말하였다. 회개도 구원을 위하여 사람에게 요구되는 조건이라고 했다.

성경 어디에 최종적 구원이 완성되기 위해 사람이 먼저 믿음을 갖추고 회개하였던 사례를 단 한 건이라도 볼 수 있는가? 칼빈과 서철원 박사 등의 개혁신학은 성령의 역사로 복음이 택자에게 전파되고 동시에 성령의 불가항력적 역사하심으로 택자가 그리스를 믿는 순간 중생이 일어나고, 동시에 믿음과 회개가 시작된다고 가르친다.

“복음선포를 들은 사람들에게 성령이 역사하셔서 거듭나게 하신다. 거듭남과 동시적으로 성령의 권면을 따라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을 하게 된다. 믿음고백과 함께 회개한다. 믿음고백과 회개는 언제든지 같이 가기 때문이다.”(구원론, 66)

성경 어디에도 사람이 믿음과 회개를 보임으로 하나님이 구원을 주신다는 가르침이 없다. 퍼킨스의 구원 이해는 억지스럽다. 그 원인은 그 자신이 구원을 바르게 알지 못했고, 그래서 구원 받은 사람에게 언약이 주어졌다고 성경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고 대신에 구원 받기로 예정된 사람을 언약으로 부르셨다는 성경을 왜곡하는 언약 신학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언약은 이미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립하기 위해 주어졌다. 청교도 언약 신학은 성경을 조작하고 기독교를 변질시키는 심각한 거짓 신학이다. 누구든지 청교도 언약 신학의 맹점을 분별하지 못하면, 안 교수처럼 결국 알미니안 신학을 최고의 청교도 개혁신학이라고 두둔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안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회개와 믿음은 가장 중요한 언약의 두 조건이다. 성도는 ‘믿음과 회개를 통해 그리스도를 받는다.’ 첫째,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조건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믿음이다.”(안 교수와 퍼킨스의 말/ 120 페이지)

“회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퍼킨스에 따르면 (믿음과 마찬가지로) 회개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안 교수와 퍼킨스의 말/ 122 페이지)

그러나 구원을 위해 사람에게 믿음과 회개가 조건과 역할로서 요구된다는 가르침은 성경의 말씀에서 전혀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그런 주장은 천주교 신학으로부터 성경적 신앙을 회복하여 낸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과도 전혀 맞지 않는다. 대체 퍼킨스와 청교도들의 이런 가르침이 어째서 칼빈주의 신학인가? 칼빈주의가 술 마시고 뱅뱅 돌다 아직 제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였는가? 그 동안 우리는 칼빈의 예정 교리가 퍼킨스와 청교도들의 언약 신학에서는 하나님과 사람의 쌍방성으로 표현된다는 그럴싸한 거짓말에 속아버렸다.

“회개에 앞서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한다. ‘그 어느 누구도 회개를 자신의 힘에 의지하거나 자기의 힘으로 이행할 수 없다.’”(안 교수와 퍼킨스의 말/ 122 페이지)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하여 사람이 회개를 한다고 가르치면, 아주 그럴싸하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이 이와 같이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 교수와 퍼킨스의 말은 하나님의 선행되는 은혜 안에서 사람이 자기의 최종적 구원을 준비하여 완성시킨다는 것인데, 성경 어디에도 그런 준비 과정이 나오는 구원의 사례가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그리스도와 함께 동시에 자기의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된 죄인이 과연 무슨 하나님의 선행된 은혜 안에서 회개하고 믿음을 준비하였었는가? 언제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받을 준비를 했었는가? 그는 자기의 십자가에 달린 상태에서 옆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로 말미암아 믿고 구원받았을 뿐이다. 그에게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은 그가 예정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환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막 2:5)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리스도를 찾아온 중병병자의 구원 사례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구원의 진리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의 역사로 그리스도 앞으로 나왔을 뿐이었다. 그 병자가 그곳에 와서 구원을 얻기 전에 하나님의 선행된 은혜를 따라 회개하고 믿음을 준비한 적이 없다. 단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되어졌을 뿐이었다. 이것이 예정된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의 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게하심과 더불어 중생이 일어나고 회개도 일어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3-17)

성경은 예정된 자에게 반드시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복음을 들을 때 반드시 믿게 하시는 은혜로 예정된 사람의 최종적 구원이 완성된다고 가르친다. 구원이 임하기 전에 사람의 회개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퍼킨스처럼 구원을 위해 먼저 나타난 은혜에 반응하여 사람이 회개함으로 구원의 조건이 완성된다는 주장은 천주교 신학, 알미니안 신학, 웨슬리안 신학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천주교 신학에서는 구원의 공로가 되는 사람의 믿음과 회개가 하나님의 ‘초기 도움의 은총’에 대한 반응으로 나온다고 가르치고, 웨슬리안 신학은 하나님이 먼저 주시는 ‘선행 은혜’에 대한 사람의 반응이라고 한다. 대체 그런 인본주의 구원 신학과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퍼킨스의 구원 사상이 뭐가 다른가?

“그렇다고 해서 퍼킨스가 믿음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떻게 우리가 선택을 받았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는가?’ 무엇보다 ‘구원 얻는 믿음’을 통해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고 퍼킨스는 말한다.”(안 교수와 퍼킨스의 말/ 117 페이지)

안 교수의 이 내용도 맞는 말 같으나 자세히 보면 여기에도 속임수가 있다. 성경과 칼빈의 예정에 관한 가르침의 핵심은 예정된 사람에게는 반드시 복음이 전해지고, 은혜가 역사하여 그 사람이 반드시 믿음에 도달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하지만,  퍼킨스와 청교도 신학의 예정과 구원은 결국 사람에 의해 마무리된다. 퍼킨스가 구원 얻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예정되었의 증거라고 하니 맞는 말 같다. 퍼킨스의 주장에 의하면, 구원 얻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예정된 사람들 가운데서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예정된 사람들 중에서 믿음과 회개를 보임으로 최종적 구원에 도달하게 되는 사람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부르시고 구원의 기초가 되는 그리스도도 준비하여 주셨으나 하나님의 은혜에 신실하게 반응(믿음, 회개)하지 못해 구원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퍼킨스의 하나님과 사람의 쌍방적 언약 신학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선택 받은 사람들 가운데서 믿고 회개하여 구원에까지 도착하는 사람들이 나온다는 것이지, 선택된 사람들 100%가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를 꼭 믿어서 구원에 이른다는 가르침이 아니다. 대체 이렇게 가르치는 목회자의 설교를 통해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이 가능할까? 사실 청교도 교회 신자들에게 구원의 확신은 사실상 가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신자들이 자주 이렇게 상담했다고 안 교수도 자신의 책에서 소개했다.

“퍼킨스 목사님! 그린햄 목사님! 저는 구원 받도록 예정된 사람일까요?”

언약의 쌍방성이라는 개념이 바로 이런 것이었는데 청교도 히로뽕 맞는 사람들이 무조건 좋다고만 하였으니, 어리석게도 우리 모두가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이제 더 이상 청교도 히로뽕 맞은 사람들의 말을 다 믿지 말아야 한다.
 

맺는 말

청교도 히로뽕 맞은 목사들 교회 신자들은 구원 받기 위해 오직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다른 요구사항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무슨 '은혜로 말미암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알고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신사도 사상을 가르치는 교회를 떠났으나 불행하게도 그런 것을 가르치는 청교도 교회에 사로잡혀 버렸다고 한다. 왼쪽으로 치우친 교회를 떠났으나 다시 오늘 쪽으로 치우친 교회에 사로잡혀 버렸으니, 참 불행한 일이다.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혜를 따라 예수 믿음이 구원의 요건이다. 그 외에 깨달음, 회개, 기도, 갈망 ... 등이 파리 똥 만큼이라도 구원을 위한 사람의 역할로 결부되면 사도 바울이 저주한 율법주의이다. 청교도 운동 신학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칼빈와 종교개혁을 다시 개혁(비틀어)하여 구원을 위해 사람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믿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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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