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저도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면 영생의 자격을 얻지 못했다는 그런 극단적인 추측까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언을 성취하시고 택자들 대신 의롭게 되셔서 그 의를 전가해 주신 것은 예수님의 사역 중에 하나로 보여 집니다. 그것이 율법주의라고 생각되지는 않아 보입니다. 율법을 완성하시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부분만 다시 한 번 생각해봐주시면 정말 다른 부분들은 목사님을 통해 많은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답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간략하게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청교도주의자들의 칭의 신학에서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시지 않았다면, 자신을 위한 영생의 자격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망령되고 사변적인 추론이 나오는 것은 간단한 실수가 아닙니다. 청교도 신학은 성경과 기독교 신앙을 전체적으로 개조하였고, 그 결과의 하나로서 “그리스도도 율법을 지킴으로 자기의 영생의 자격을 얻었다!”라는 망령된 사변이 나온 것입니다.

청교도 신학이 어떻게 성경과 기독교 신앙을 전체적으로 조작했는지 또 한 번 설명드리겠습니다.

1. 아담이 하나님의 은혜와 영생이 없는 상태로 창조되었다고 조작했습니다.

2. 아담은 원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는 자신의 공로로 영생을 얻기로 하나님과 계약했다고 조작했습니다.

3. 영생 획득을 위해 아담이 지켜야 할 율법이 아담의 마음에 새겨졌다고 조작했습니다.

4. 영생 획득의 수단인 율법 준수를 거부한 것이 아담의 원죄이고, 그 때문에 저주받았다고 조작했습니다.

위 내용이 청교도 언약신학인 행위계약(웨민고백서 7,19장)의 핵심 내용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으로 살기만 하면, 즉 선악과를 범하지 않기만 하면 그대로 지금까지 자연적 상태에서 영생하도록 하나님이 창조했음을 부정합니다. 그러면 성경과 기독교의 핵심적 신앙이 깨어지게 됩니다. 어차피 영생이 없었던 아담이 영생을 얻는데 실패했으므로 하나님이 영구하게 저주했다는 것이니, 기독교와 하나님이 우스꽝스러워집니다.

영생하는 하나님 백성으로 창조된 아담이 하나님이 주신 첫 언약을 따라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작정하고(하나님을 반역하고) 선악과를 그 결단의 표시로 먹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도 소용없는 영원한 죽음에 처해졌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이 아니고서는 용서받을 길이 없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다고 가르쳐야만 기독교와 성경이 훼손되지 않습니다.

5. 청교도 신학은 그리스도가 아담의 실패, 즉 행위언약 복구하기 위해 저주받은 아담의 자리로 오셨다고 조작했습니다.

6.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 모든 율법을 완전하게 준수하여 영생의 자격이 되는 의를 얻었다고 조작했습니다. 그리스도라도 율법을 다 지지키 못했다면, 영생의 자격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7.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만 면제했다고 조작했습니다.

8.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율법을 지키신 공생애의 완전하신 삶으로 우리에게 칭의를 주었다고 조작했습니다.

9.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 율법도 다 지키고(칭의), 십자가로 저주를 대신 받으셨으므로(속죄) 사람이 철저하게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 믿기를 위해 애쓰고 노력함으로(회심준비론) 구원을 얻는다고 조작했습니다.

위 내용이 청교도 신학의 은혜 언약의 주된 내용인데, 어떤 부분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아담의 자리로 오셔서 율법을 모두 지키심으로 영생의 의를 얻었고, 심지어 그것이 그리스도 자신이 영생할 수 있는 자격이 되기도 했다는 사변적인 주장은 기독교를 파괴하는 이론입니다.

첫째, 예수께서 율법을 지키심으로 영생의 자격(의)를 얻었다는 가르침은 그 이전의 성경을 비트는 원죄 사상에 기반하는 사변적인 행위계약의 부산물입니다. 망령된 사변으로 탄생한 청교도 신학의 행위언약에 맞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방식(칭의-구원론)이 나타나야 하기 때문에 연이어 탄생된 거짓 구원론입니다. 이미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저주를 그릇된 행위언약으로 설명했으므로, 행위언약에 맞는 그리스도의 구원 방법이 나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담 대신 율법을 모두 지켜서 영생의 권리(의)를 얻었고, 전가하셨다!”라는 성경에 맞지 않는 사변적인 구원론이 탄생된 것입니다. 아담 대신 율법을 지키려고 오셨으므로, 만일 그리스도께서도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면 영원히 저주받았을 것이라는 망령된 사변이 함께 나온 것입니다

둘째, 성경은 하나님이 죄인을 살리기 위해 죄와 무관한 완전히 의로운 사람으로 출생하시었음을 기독교 신앙의 근본으로 강조합니다. 의로우신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심으로 죄용서를 주셨다고 가르칩니다.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죄용서가 곧 의롭다 선언하심입니다. 율법의 요구와 정신이 다 실현된 완전히 의로우신 분이 우리의 죄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하나님께 배상물로 드리셨고, 만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가 더 이상 없다고 (그리스도의 부활로)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은 동시에 우리의 칭의에 대한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죄 없으시고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를 속하신 그리스도를 믿어 그리스도와 연합되니,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이 우리의 것으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음이 우리의 죄용서이고 또한 의로다하심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십자가가 이전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공생애(율법 순종)가 우리에게 칭의를 주었다는 내용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1)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렘 33:16)
 

그러면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의 의로운 삶의 의미는 무엇이고, 그 가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흠 없으신 삶에 대해 “율법을 지키셨다!”, “율법의 의를 얻었다!”라고 설명하면 기독교가 변질되고 조작되어 버립니다.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죄와 무관하신 분으로 오셨습니다. 성령께서 마리의 피와 살을 이용하여 아담의 죄와 무관한 한 사람을 창조하셨고, 성자께서 자기의 인격을 그 사람과 일치시키심으로 완전한 하나님-완전한 사람이 되시었습니다. 율법이 말하고 지시한 하나님 백성의 완전한 자격을 모두 구비하신 분으로 오셨습니다. 

죄가 없으시고 신성의 충만함을 가지셨으므로 그리스도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죄악된 생각, 반응, 행위를 보이시지 않았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 드리는 완전하고 순전한 생각과 행위로 반응하셨습니다. 그것을 율법을 지키신 것이라고 설명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가 아기였을 때 어머니의 품에 안기시어 할례를 받고 성전에 가진 것 외에 모세의 계명들을 찾아서 지키시려고 의도하셨던 흔적을 성경에서 단 1도 찾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죄없는 완전히 의로우신 사람이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신성의 충만함을 함께 가지셨던 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공생애 동안 직면하신 모든 상황에서, 그리고 원수들에게 끌려가시어 모욕을 당하실 때에도 아담처럼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생각이나 행위를 단 1도 저지르지 않으셨습니다. 죽으시기 전에도 하나님의 모든 뜻에 100% 순종하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을 실 때에도 하나님의 뜻에 100% 순종하셨습니다. 그렇게 흠없고 완전하신 분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속하는 피를 흘리셨으므로 하나님께서 만족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이렇게 설명해야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으셨다고 설명하면 기독교와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왜곡됩니다. 이제까지 청교도 신학이 그 방식으로 성경과 기독교를 조작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율법은 처음부터 죄인에게 의를 주는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은 1)이미 구원 얻는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삶의 원리와 지침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이 구약의 백성들을 책망하고 매질하셨습니다. 2)율법은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들에게 여전히 죄가 남아 있음을 지적하여 구약의 하나님 백성들이 완전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도록 만드는 특별계시로 왔습니다.

청교도신학이 조작하는 것처럼, 율법은 그 누구에게도 의를 주지 못합니다. 아무리 율법을 잘 지켜도 그것이 사람에게 의를 주신다는 말씀은 단 한 구절도 성경에 없습니다. 무지한 사람들이 바울이 로마서 10장 5절에서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라고 말한 것을 근거로 사람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면 영생의 의를 얻는 것이 원래 하나님의 법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바울의 로마서 10:5절은 구약 성경 레위기 18장 5절의 인용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원주민들의 동성섹스, 짐승섹스, 골육섹스 등의 죄를 본받지 않으면, 원주민들처럼 심판 당하여 멸망받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결코 구약 성경이 그런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영생의 의를 얻는 것이라고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구약 성경의 그 구절을 통해 바울이 강조한 내용은 바로 그 다음의 이 말씀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8,9)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 되시었다는 로마서 10장 4절의 말씀도 그리스도가 공생애 동안 모든 모세의 계명들을 하나씩 하나씩 다 지키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율법이 끝까지 지적하는 죄를 제거하심으로 하나님과 사람이 화목하게 만드신 것,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이 율법의 마침이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칼빈도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율법은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 논하게 될 때 더 명백하게 볼 수 있겠지만 그 유용성이 다양할지라도 특별히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목의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에게 맡겨진 것이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율법의 마침’(롬 10:4)이라고 부른 것은 여기서 기인된 것이다."(기독교강요, 1.6.2.)
 

정통 개혁신학자 서철원 박사도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율법의 마침'을 해석한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완전한 지킴을 요구한다. 그러나 범죄한 인류는 아무도 율법을 요구대로 지킬 수 없다. 그러므로 율법수여자가 율법의 요구 곧 율법을 범하므로 온 죄 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다 이루셨다. 곧 피 흘려 죄 값을 갚으므로 율법준수의 의무에서 사람들을 해방하셨다." (그리스도론, 166)

"그리스도가 율법의 수여자로서 율법의 요구를 총족시켜 율법의 속박에서 백성들을 해방하셨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성하신 것은 율법의 요구를 충족하므로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는 율법의 속박에서 사람들을 해방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다(마 5:17-20, 11:28-30). 이렇게 하여 율법준수의 요구가 더 이상 타당하지 않게 되었다."(그리스도론, 167)

"그리스도는 율법을 다 지키므로 의를 얻어 그것을 우리에게 전가하신 것이 아니다. 율법의 요구 곧 범죄하므로 그 죄 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따라 피 흘림으로 죄 값을 갚아 용서를 가져오셨다 ... 그 면에서 율법을 완성한 것이다."(그리스도론,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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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