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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을 넘어 참교회와 거짓교회의 이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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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을 넘어 참교회와 거짓교회의 이해가 필요하다.
  • 김만옥
  • 승인 2020.03.17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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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이단’에 대해서 알레르기 반응이 심하지만 사실상 이단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현실’을 보면 신학교육에서 반드시 ‘이단연구’를 필수로 가르쳐야 하고 교회는 전문적인 강사를 불러 이단에 대해 강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단이 무엇인가를 논한다면 교부와 신학자들의 의견을 모으면 “이단은 정통으로부터의 분리”라 할 수 있고 이단(Heresy)을 판단하는 기준인 정통(Orthodoxy)이 무엇인가 하면 ‘성경’과 ‘신조(2대 신조로 사도신조와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이고 핵심은 니케아)’이고 16세기 교회개혁 전에는 ‘교부’까지 포함하여 3가지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반드시 이해가 되어야 하는 것은 문화적, 사회적, 도덕적 정의가 아닌 ‘신학’으로 논하기에 아무나 이단에 대해 논할 자격이 아니기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즉 자신의 주관적 판단으로 이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경과 신조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고 연구와 결정은 전문적 신학자와 공적 신학으로 연구한 목사와 단체에 있다.

그리고 이단의 기준은 정통 기독교의 역사로 보면 3가지 객관적 기준으로 ‘정통적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유일성’, ‘성경 무오성’이 보편적 이해이고 여기에 하나를 더 하면 ‘이신칭의’다.

첫째, ‘정통적 삼위일체’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예수님을 넘어서 궁극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이기에 신앙과 신학의 ‘핵심’이고 양태론(엘로힘의 이해, 성부수난설)과 종속론(계급적 이해)의 이단적 삼위일체가 아닌 교부들(특히 카파도키아 교부들)과 루터와 칼뱅이 가르친 ‘정통적 삼위일체(Orthodox Trinity)’를 바르게 알고 가르쳐야 하고 기독교 역사에서 모든 신조와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은 기본적으로 ‘삼위일체를 중심’으로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 방법을 따르지 않고 ‘사변적’으로 한 것을 청교도 대 연구가이며 조직신학자인 제임스 패커가 논하였다.

둘째, ‘그리스도의 유일성’이란 구원에 있어서 ‘종교 혼합주의’를 부정하고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요 14:6)를 통한 구원 주장이 근본이기에 신앙고백으로 반드시 복음의 요약인 ‘신조’를 하고 부정하는 자가 ‘이단’인 것을 기독교 역사에서 보여 주었고 신조를 무시하는 교파와 교회는 ‘이단적 사상’에 노출이 되어 ‘위험성’이 크다.

셋째, ‘성경 무오성’이란 기독교의 경전으로 신구약 66권이 정경으로 하나님의 말씀(verbum Dei)인 것을 믿고 성경의 3가지 대주제로 구속사, 언약사, 하나님나라를 바르게 알고 성경에서 온 복음의 요약인 ‘신조’를 중시하고 ‘교리교육’은 반드시 성경의 가르침으로만 하겠다는 것이다.

넷째, 이신칭의란 중세교회의 타락과 부패에서 나온 ‘신학적 선언’이고 이 표현은 ‘개신교회의 정체성’이고 교회개혁의 5대 원리의 시작이 ‘오직 믿음(Sola Fide)’의 궁극적 이해가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이고 율법이나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아닌 ‘오직 은혜(Sola Gratia)’로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2:8)라는 가르침이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 기록이 되었기에 신자는 칼뱅의 주장대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을 추구하는 ‘성화’의 삶을 추구하여 이단보다 더 악한 ‘나쁜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4가지는 이단의 ‘객관적 기준’으로 하나라도 부정하면 ‘이단’이라 할 수 있고 이 밖의 다른 문제는 이단이라는 표현이 아닌 ‘이단적’ 또는 ‘사이비’라 할 수 있고 이단은 구원이 없기에 매우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단은 기독교라는 좋은 밭을 이용하여 ‘불법’을 행하여 기독교 안에서 나오기에 종들이 자고 있을 때 와서 씨를 뿌리는데 ‘좋은 씨’가 아닌 ‘가라지’(마 13:25-30)이기에 기독교 안에 있는 이단이 사실상 진짜 ‘적군(enemy)’이기에 기독교 밖에 있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단들보다 더 자세하게 알고 논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16세기 교회개혁자들은 중세교회가 타락과 부패로 인하여 ‘참교회’가 아닌 ‘거짓교회’인 것을 알리기 위해 신학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 ‘신앙고백서’로 루터를 중심으로 한 자들은 아우크스부르크에 모여서 만들었고 칼뱅이 세운 신학교인 ‘제네바 아카데미’를 졸업한 존 녹스는 스코틀랜드로 돌아가서 존이라는 동일한 세례명을 가진 목사들과 함께 ‘제네바 신앙교육서(1537년)’를 기초로 해서 만들었고 화란 개혁파인 귀도 드 브레가 벨기에서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기에 신앙고백서들은 지역명을 따라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1530년),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1560년), 벨기에 신앙고백서(1561년)라 한다.

그리고 이 신앙고백서들은 개신교회의 ‘3대 신앙고백서’로 매우 중요하고 공통으로 논한 것이 ‘참교회’와 ‘거짓교회’의 표징(Sign)이고 그 기준이 2가지로 ‘바른 설교’와 ‘바른 성례전’이고 1개를 더하면 ‘권징’이다.

그렇다면 ‘바른 설교’란 철저하게 성경 중심으로 ‘복음’을 논하는데 7가지로 십계, 주님의 기도, 사도신조, 세례와 성찬, 율법과 복음, 팔복, 오직 5가지 원리를 반드시 선포하여 가르쳐야 하는데 현실의 한국교회는 ‘복음신앙’을 세운 것이 아니라 ‘율법신앙’과 ‘번영신앙’이 지배하고 있는 ‘표징(sign)’이 많은 종류의 헌금들, 맥추감사주일, 송구영신예배, 추도예배 등이라 할 수 있고 이와 관련된 비판의 글은 ‘바른 믿음’에서 검색하면 볼 수 있다.

그리고 복음 이해에 있어 중요한 가르침으로 루터는 “복음의 요약으로 요한복음 3장 16장(John 3:16)”이고 칼뱅은 “복음이 없이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며 헛되다.”고 한스 큉은 “교회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신의 기준으로 삼을 때에만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매우 중요한 신앙과 신학적 표현을 하였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복음 이해는 ‘전체적 이해’가 아닌 ‘부분적 이해’로 문제가 있는 것을 ‘부활복음’으로도 알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앞에서 언급한 ‘7가지’를 올바르게 알아야 하는데 현실은 너무나도 잘못된 이해와 몰이해가 지배하여 목사가 우상화가 되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목사의 제자들이 다수를 이루고 ‘교회의 깊이’로 신본적이고 순결하고 성경적인 작은 교회가 아닌 ‘교회의 크기’를 추구하여 인본적이고 세속적 교회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바른 성례전’은 사실상 ‘성찬’의 문제를 논한 것으로 중세교회가 이해한 ‘화체설(중세 스콜라적 해석의 대표 중 하나)’을 반대하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성찬론 이해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명령과 초기교회 정신을 따라 성찬식을 자주 하는 참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기에 루터교회는 주일마다 성찬식을 행하고 있고 칼뱅도 제네바교회에서 성찬식을 자주 하기를 원하였으나 관료들로 인하여 불가능하였고 ‘성찬식’을 소홀히 하는 것을 ‘악마의 농간’이라 한 것이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다.

그리고 2가지를 넘어서 참교회의 기준으로 본 ‘권징’은 사실상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에 대한 ‘사랑의 훈계’로 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 ‘신앙의 법’으로 정죄와 심판이 목적이 아닌 참 그리스도인을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 사랑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2가지 또는 3가지 기준은 분명하게 ‘참교회’가 실천할 목회인데도 불구하고 과연 한국교회 중에 얼마나 되는 교회가 추구하며 실천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복음신앙’이 되기에 필요한 2가지는 바로 ‘바른 설교와 더불어 성찬의 회복’이 우선이고 다음에 ‘청빈하고 나눔의 삶’이 ‘표징(sign)’이기에 교회가 성찬의 올바른 이해와 성찬식의 자주 실천하는 것으로 주일마다 하거나 적어도 한 달에 한 번(루터와 칼뱅과 교부들의 가르침, 중대형교회의 비인격적이고 형식적인 성찬이 아니라 목사와 신자의 인격적 관계로 한 초기교회처럼 실천)과 신자들의 청빈과 나눔의 삶이라 할 수 있고 율법신앙과 번영신앙의 표징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역사신학자 김영재는 ‘성찬’을 소홀히 하는 교회는 그리스도부터 멀어진다는 주장은 너무나도 옳고 한국교회의 풍자로 “한국교회는 딱 세 마디를 한다. 모여라, 돈 내라, 집 짓자”라 한 것은 현실이고 여기에 ‘세습’까지 하는 것은 ‘교회론적 이단적’인 이유는 교회는 인간의 소유가 아닌 그리스도의 소유(엡 1:22-23)이기 때문인데 행한 거짓 목사와 동의한 신자들은 분명하게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신자의 삶은 무소유나 사유 재산 부정이 아닌 주는 자가 되어야 하기에 ‘청빈하고 나누는 삶’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잘 가르쳐 준 것이 초기교회고 부흥의 원동력이었다(마 25: 31-46; 행 20:35, 2:44-47).

김만옥 목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개혁신학연구원, Knox Theological Seminary(D.Min.), Grace Theological Seminary(D.Miss.Pro.)에서 공부하였고, <성찬식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 등 6권의 저서와 1권의 공저를 출판하였다. 전, 개신대학원대학교 강사였고, 현재는 경북 영주의 바른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바른성경아카데미(RBA) 원장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올바른 개혁주의 신앙을 위해 실천하려고 연구하는 실천신학자이고, 또한 장례지도사로서 지역 사회를 섬기고 있다. potentia-de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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