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수 교수가 번역한 리차드 멀러의 책 <칼빈 이후 개혁신학>은 전문가가 아니면 읽기 어려운 책이고, 꼭 읽을 필요도 없는 책이다. 이 책의 1장과 마지막 11장을 정독했고, 중간 부분들을 대충 보았다. 마지막 11장의 제목은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 안에서의 행위언약 및 거룩한 법의 견고성에 대한 연구”이다. 벌써 제목에서 은혜와 영생과 무관하게 창조된 아담이 영생을 위해 하나님과 맺었던 쌍방간의 행위계약의 효력이 우리의 신앙과 구원에서 영구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멀러 교수의 결론을 읽으면서 안타깝고 불행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들어왔던 그시대의 신천지 추수꾼들에게 선포한 저주가 멀러 교수에게도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멀러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행위언약 교리에 대해 현대적인 비판들이 가진 신학적 전제들을 보면서 확인했던 것처럼, 행위언약을 부정하는 것, 즉 언약의 율법적인 요소를 거부하는 일반적인 시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본래적 관계성을 뒤틀려는 견해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교리도 바꾸려는 이론이며 나아가 전통적인 개혁주의 입장에 미달하는 어떤 신학을 만들려는 것임을 빗치우스와 브라클은 잘 알고 있었다.”(462, 463 페이지)

멀러 교수의 위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아담과 하나님의 행위계약을 부정하는 것은 곧 언약의 율법적 요소를 부정하는 것이다. 창조 때 인간과 하나님이 율법을 중심에 두고 쌍방간의 계약을 맺었다.

2)행위계약을 부정하는 것은 곧 하나님과 인간의 본래적이고 근본적인 관계를 부정하고 뒤틀리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처음의 관계는 하나님의 은혜가 중심이 아니었고, 율법이 그 중심에 있었다.

3)행위계약을 부정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신 것에도 뒤틀림이 일어난다. 그리스도가 능동적 순종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비틀어 버리는 것이다. 

4)행위계약을 부장하는 것은 곧 개혁신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멀러가 말하는 개혁신학이 언제, 누가, 어떻게 만든 개혁신학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행위계약을 부정하는 것이 개혁신학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멀러는 결론으로 내렸다. 멀러는 또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결론을 제시하였다.

구속의 성취는 율법과 은혜의 관점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약속과 율법의 방식으로 구성된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지음을 받았다는 것, 아담의 타락은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사실, 타락 이후에 인간이 무능해졌다고 그것이 율법의 표준 혹은 요구를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만족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구원의 선물을 믿는 자들은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동시에 그 구원은 율법의 요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등은 여전히 동일하게 남아 있다.”(463 페이지)

멀러의 위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말미암는 것이 아니다. 원래 구원은 하나님이 세우신 율법과 더불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2)아담의 원죄는 은혜와 영생 안에서 창조된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 섬김에 대한 거부, 즉 아담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기를 거부하여 회개도 용납되지 않는 하나님의 영원한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은혜와 영생도 주지 않고 만들어 놓은 아담이 건방지게 하나님이 세우신 법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영원한 저주를 받았다.

3)인간은 타락 이전에도 율법에 종속되는 존재였고, 타락 이후 즉 율법을 지킬 능력이 소실된 상태에서도 율법의 요구에 종속되는 존재였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살아서 숨귀는 동안 율법을 지키려고 애써야만 하는 존재이다.

4)비록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고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었을지라도 율법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여전히 남아 있다.

멀러는 또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한 언약에서 은혜로 값없이 주어진 선물이 다른 언약 안에서는 율법의 견고성과 연관되고, 반면 다른 용도로 쓰이지만 두 언약 안에 율법이 동시에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신적인 본성의 불변성과 신적인 약속의 일관성을 의미하는 것이다.”(463 페이지)

멀러의 위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하나님 만드신 종교(기독교)는 율법을 중심으로 하는 행위언약과 하나님의 은혜를 중심으로 하는 은혜언약으로 구성되었다.

2)율법은 행위언약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은혜언약 속에도 여전히 현존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독교인은 창세부터 종말까지 율법과 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시종일관 율법의 하나님이다.
 

 

청교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율법주의’이다. 율법주의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이 완전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해 0.1%만큼이라도 이견을 가지는 신앙이다. 구원을 받기 위해 필요한 전부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것임을 0.1%라도 부정하면 율법주의이다. 왜냐하면 그만큼 사람의 행위와 공로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후 또 다시 율법을 지키라고 하면 율법주의이다. 왜냐하면 그 만큼 말씀과 성령으로 사는 하나님 백성의 신앙과 삶을 퇴보시키고 율법으로 돌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신약 성경 어디에도 구원받은 신자에게 율법의 요구가 남아 있다는 가르침이 1도 없다. 구원 받은 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내용이 성경에 과연 0.1이라도 있는가? 결코 누구도 그런 내용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믿어 구원 받은 후 율법을 지키라는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구속 경륜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신약의 성도는 말씀과 성령 안에서 성화되어가지, 절대로 다시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성도는 죄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를 이루어 간다.

성화가 율법을 지킴으로 이루어지는 것인가? 율법을 지켜서 성화를 이루는 것이라면 구약의 율법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도덕적 계율들을 힘써 준수하는 불교의 고승들이 가장 잘 성화된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불교의 고승들을 성화되었다고 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기독교인의 성화됨의 본질은 아담 안에서 운명으로 타고난 죄에서 벗어나 처음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율법을 지켜도 하나님 형상이 회복되지 않으니, 율법을 지켜서 성화를 이루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 임재하시는 성령은 성도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뿌리신다.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성도를 죄에게서 해방되고 죄와 싸워 이기게하신다. 성화는 죄와 투쟁하여 이기는 일평생의 과정이다. 죄와 투쟁하여 많이 이기고 많이 해방되면 성화가 그 만큼 많이 진행된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불가능한 가정으로서) 처음부터 죄가 하나도 없었다면 그 사람에게는 성화가 필요가 없는 것이고, 죄의 오염과 부패가 조금 있다면, 그 만큼 그 사람에게 성화가 조금 필요하고, 죄의 지배와 부패가 엄청 많으면 그 만큼 많이 성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성화는 죄와 투쟁하여 이기는 것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의미로 한 말이다.
 

“성령의 역사가 ... 아담의 죄가 전가되지 않도록 하셨다. 수태의 전 과정에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취택된 형질에 오염과 부패가 제거되고, 병적인 것이나, 기형적인 것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셨다. 이 성화 작용에 의해 예수는 또 성화된 출생자였다. 역사상 성화하여 출생된 사람은 예수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중생을 위한 성령 수납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죄의 오염이 전가되지 않았으므로 성화를 위한 투쟁을 위해 성령의 성화의 역사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성령신학, 275)

예수 그리스도는 성화될 필요도 없는 분으로 출생하셨다. 성화를 위해 노력하실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  오셨다. 그 이유는 성령의 특별한 역사로 아담의 죄의 전가를 받지 않으시고 출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의로우시고 거룩하셨던 이유는 율법을 지키시고 행위를 잘 하시어서가 아니고 죄와 무관한 하나님-사람으로 출생하셨기 때문이다. 성도에게 성화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에서 벗어남으로 이루진다. 절대로 율법을 지켜서 성화와 하나님 형상의 회복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 구원 받은 후 다시 구약의 율법으로 돌아가도록 이끄는 자들을 성경은 가차 없이 저주한다. 성경의 말씀을 직접 읽으면서 말하자.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여기서 사도 바울이 경고하는 ‘다른 복음’은 그리스도의 피를 믿어야 구원 받는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갈라디아 교회에 그때의 신천지 추수꾼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와서 모략을 베풀면서 미혹했다. 그들의 요지는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고 또한 구약의 율법도 여전히 지켜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이것은 영국과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 다수의 핵심 신앙이었다. 잉글랜드와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율법을 지키지 못해 저주 받은 아담과 우리들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고 전가해 주시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 대신 저주와 심판을 받으심으로 우리에게 더 이상 저주와 심판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로부터 해방된 것은 아니다.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는 우리 대신 그리스도가 완전하게 순종하여 구원을 주셨으니, 성령 받고 새 사람이 된 우리가 이제부터는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구원받은 증거이기도 하다.”

놀라운 사실은 칼빈신학교에서 은퇴한 리처드 멀러 교수도 동일하게 주장한다는 것이다. 멀러의 다른 점은 조금 더 어려운 말을 사용한다는 것뿐이다. 멀러의 다음의 말이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구속의 성취는 율법과 은혜의 관점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약속과 율법의 방식으로 구성된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지음을 받았다는 것, 아담의 타락은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사실, 타락 이후에 인간이 무능해졌다고 그것이 율법의 표준 혹은 요구를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만족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구원의 선물을 믿는 자들은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동시에 그 구원은 율법의 요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등은 여전히 동일하게 남아 있다.”(463 페이지)

인간은 율법과 함께 창조되었고, 인간은 율법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경배하는 존재로 지어졌고, 인간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고, 타락하고 정죄를 받은 이후에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는 단 한 치도 변하지 않았고,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피로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기는 했으나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에 대해서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고 ... 바로 이런 뜻이다. 사도 바울에 의해 가차 없이 저주받은 이단 사상이다. 갈라디아에 찾아온 그 시대의 신천지 추수꾼들에게 선포했던 사도 바울의 저주가 하나님 앞에서 정당했다면, 이미 리차드 멀러에게도 동일한 저주와 심판이 하늘로부터 임했다고 보아야 맞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요 7:49)

요한복음을 보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향하여 이와 같이 말하면서 분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도에게 여전히 율법의 요구가 남아 있다고 가르치는 리차드 멀러의 신학이 곧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신앙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믿고 참 자유와 성화를 누리도록 율법을 먼저 모세를 통해 보내셨다. 율법은 하나님 백성이 예수 믿어 죄의 용서와 성화로 진입하게 하는 것으로 모든 역할을 다하였다. 이제 성도의 성화 안에 율법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교와 감리교 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운 리차드 멀러는 여전히 성도에게 율법의 요구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멀러는 스스로 율법의 모든 저주를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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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