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7 12:55 (화)
리차드 멀러는 성경과 칼빈의 신학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상태바
리차드 멀러는 성경과 칼빈의 신학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 정이철
  • 승인 2020.03.10 03:4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차드 멀러의 "칼빈 이후 개혁신학" 1장 독서

미국 칼빈신학교의 저명한 교회사 교수였던 리차드 멀러의 사상과 활동은 현대 기독교의 신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칼빈신학교에 유학하여 멀러 교수의 신학을 배운 많은 분들이 한국의 여러 교단들의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멀러 교수의 신학의 핵심은 "지금의 주류 개혁신학과 종교개혁자 칼빈의 신학의 관계"이다. 

하바드 대학의 역사학자 페리 밀러(Perry Gilbert Eddy Miller, 1905~1963)는 뉴잉글래드에서 발전된 칼빈주의 청교도 신학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그는 영국의 청교도 칼빈주의 신학이 진짜 칼빈의 신학과 다르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뉴잉글랜드의 청교도신학도 칼빈의 신학과도 다를 뿐아니라 영국의 청교도 신학과도 다르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영국의 회중교회에서 성장하여 회중교회의 목사가 된 로이드 존스는 청교도 신학과 칼빈의 신학이 동일한 신학이라는 입장에 서서 청교도 신학을 극찬하고 경배하였다. 특히 로이드 존스는 에드워즈의 성령신학을 분별없이 추종하여 후대의 오순절 운동과 신사도 운동의 거짓 성령론이 날개를 달도록 만들었다. 로이드 존스가 목회했던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후임자였던 로버트 켄달도 칼빈의 신학과 청교도 신학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칼빈의 신학과 그 이후의 칼빈주의자들의 신학에 많은 차이가 보인다고 평가하였다.

이처럼 칼빈의 신학과 이후 칼빈주의자들의 신학이 같은 내용의 신학인지 다른 주장을 하는 다른 신학인지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을 때, 두 진영의 신학이 같은 신학이라고 주장하여 무게중심이 기울어지게 만든 가장 대표적인 학자는 리차드 멀러였다. 멀러의 제자인 한병수 교수가 유학생 시절에 번역한 책 <칼빈 이후 칼빈주의>은 칼빈과 후대의 칼빈주의자들의 신학의 연속성을 대변하는 책이다. 현재 이 책의 1장만 읽었는데, 번역이 되었어도 읽기에 쉽지 않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책의 요지를 <바른믿음> 독자들과 함께 나누면서, 칼빈과 후대의 청교도 칼빈주의 신학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멀러의 핵심적 주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오늘은 이 책의 1장을 요약해 보고자 한다.

“칼빈과 이후의 개혁주의 신학자들 사이의 차이점은 미미하며, 개혁주의 사상에 대한 16세기와 17세기의 신학적 표현들 사이의 연속성은 더욱 뚜렷하다.”(멀러/ 48)

1장의 멀러의 핵심 주장은 바로 이 한 문장으로 대변될 수 있다. 종교개혁자 칼빈과 이후 청교도 칼빈주의 신학자들의 신학은 같은 노선의 신학이고, 차이가 거의 없다고 멀러는 주장했다. 멀러의 이 주장의 근거는 과연 무엇일까? 
 

리차드 멀러 교수(칼빈신학교 은퇴)
리차드 멀러 교수(칼빈신학교 은퇴)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 사상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지난 30년간 현저한 변화를 보여 왔다. 사실 1970년 혹은 1975년 이전에 이루어진 16세기 후반과 17 세기의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연구들은 종교개혁을 개신교 정통주의에 대립시키는 경향, 즉 더 보편화된 문구로 표현한다면 ‘칼빈주의자들과 대립되는 칼빈’ 식으로 다루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위대한 종교개혁자들의 사상과 데오도르 베자로 대표되는 그의 직접적인 계승자들 사이의 극단적인 이분법이 종교개혁과 개신교 정통주의, 인문주의와 스콜라주의, 그리고 경건과 교의에 관하여 고도로 신학화된 전제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멀러/ 21 페이지)

1975년 이전까지는 칼빈과 그의 사후 칼빈주의자들의 신학이 다르고 대립되는 요소가 많다고 보는 관점이 우세했다. 칼빈의 후계자 데오도르 베자부터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훼손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경향이 농후했다.

“개신교 정통주의 또는 스콜라주의 시대는 종교개혁 이후 2세기의 기간을 의미한다. 이처럼 개신교 정신의 지성사적 발전은 종교개혁 시간의 세 배에 달한다. 종교개혁 시대처럼, 정통주의 시대도 중세적 유산에 의지하는 동시에 중세적 유산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던 기간이며, 또한 근대 초기의 유럽의 정신사적 전환에 참여하는 동시에 저항의 몸부림을 보였던 시기였다.”(멀러/ 24,25)

종교개혁 신앙이 유럽의 교회들 속에 교리와 신학으로 정착되었던 '개신교 정통주의'와 그 시대의 칼빈주의 신학자들(청교도 신학자들)의 신학방법이었던 '개신교 스콜라주의'는 같은 시대의 같은 신학을 설명하는 다른 용어이다. 그것은 종교개혁이 진행되던 시간의 세배의 시간에 걸쳐서 유럽의 교회들 속으로 정착되었다.

“정통주의 초기의 첫 번째 국면은 신학을 집대성한 3세대와 4세대의 유력한 인물들의 죽음과 아르미니우스주의 논쟁으로 마감된다. 즉 프란시트쿠스 유니우스, 윌리엄 퍼킨스, 데오도르 베자, 윌리엄 부카누스, 토머스 카트라이트, 루카스 트렐카티우스 2세,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 바돌로매우스 케커만, 그리고 아만두스 폴라누스 등의 죽임이 여기에 대항한다.”(멀러/ 26)

개신교 정통주의(개신교 스콜라주의) 시대의 첫 번째 변곡점은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퍼킨스와 칼빈의 후계자 데오도르 베자, 잉글랜드 장로파 청교도의 조상 토마스 카트라이트 등이 죽었던 시점이었다. 

“정통주의 절정기(1640~1685~1725)는 갈등의 새로운 대적들과 맞서기 위한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의 원숙한 발전과 집대성의 시기인 동시에 후발적인 신앙고백서가 산출되고 이런 고백적 테두리 안에서 갈등이 발생한 시대로 규정될 수 있다.”(멀러/ 28)

개신교 정통주의(개신교 스콜라주의)의 절정의 때는 곧 웨민고백서 등의 신앙고백서들이 탄생하여 교회에 정착되었던 때였다. 

“칼빈을 칼빈주의자들과 대립시키는 시도가 이런 문제의 단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런 시도는 배경과 문헌적 장르와 한 전통 안에서의 발전을 논함에 있어서도 실패할 뿐 아니라 전통의 본질과 범위를 이해함에 있어서도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칼빈은 자신의 시대의 신앙고백적 개혁주의 전통의 유일한 표준이 아니다. 또한 칼빈은 그의 죽음 이후의 세대들 안에서 무엇이 개혁주의적인지를 가늠하는 잣대로서 유일한 인물로 거론되어서도 안 된다.”(멀러/ 32)

많은 학자들이 칼빈의 신학과 그의 사후 칼빈주의 신학자들의 신학이 다르다고 평가하고, 양측을 대립시키고 비교하기 시작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조금만 진지하게 읽으면 원죄, 언약, 칭의 등에 과한 칼빈의 가르침과 청교도 칼빈주의 신학자들, 즉 윌리엄 퍼킨스, 윌리엄 에임스, 존 오웬, 토마스 굿윈, 리차드 백스터, 조나단 에드워즈 등의 가르침들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을 보지 못하거나 부정한다는 것은 상당히 신비한 일이다. 더 나아가 칼빈의 신학과 그들의 신학이 같은 노선의 신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칼빈은 아담이 하나님의 은혜와 영생 안에서 창조되었고,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았다면 지금까지 영생을 누리고 있을 하나님 백성으로 창조되었다고 해석했다.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으면 영구하게 보장되는 하나님의 은혜와 영생이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를 통해 선포되었다고 해석했다.
 

“성례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더 강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주께서는 어떤 때에는 성례로 약속하신 일을 우리가 믿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성례 자체를 우리에게서 빼앗으신다.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셨다(창 3:22).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이 말씀을 다른 말로 옮긴다면, ‘나의 약속의 상징에 집착해서 헛된 확신을 즐기지 못하도록 불멸에 대한 소망을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그에게서 빼앗으리라’는 말이 될 것이다.”(기독교강요, 4.14.12)

칼빈의 이런 해석은 웨민총회의 <대요리문답> 20장에 나오는 생명언약 사상이다. 칼빈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은혜와 영생을 주신 상태로 창조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의 사후의 청교도 칼빈주의자들은 아담이 하나님의 은혜와 영생이 없는 상태로 창조되었고, 아담 자신이 요구되는 행위(율법준수)를 통해 스스로 영생을 회득하도록 율법의 경륜 안에서 창조되었다고 가르쳤다. 어느 기간 동안 선악과를 먹지 않았으면 영생을 얻도록 창조되었다고 추정하는 것 안에서 성경을 이해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런 가르침의 흔적도 찾을 수는 없다.

개혁교회의 신학은 칼빈을 무조건 우상으로 섬기는 신학이 아니다.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이 성경을 성경답게 해석하고 가르치기 때문에 칼빈의 권위를 높이 인정하는 것이다. “칼빈 혼자서 종교개혁을 했고, 칼빈의 신학만이 종교개혁 신학의 표준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라는 식의 멀러의 말은 객관적으로 옳다. 그러나 문제가 되고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칼빈의 성경 해석이 틀리지 않고 맞음에도 “칼빈의 신학만이 개혁신학의 기준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라는 주장을 펴는 것은 지극히 위험스럽다. 왜냐하면 옳은 것을 분명하게 높이고 따르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옳지 못한 것이 높이고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칼빈은 자신의 시대의 신앙고백적 개혁주의 전통의 유일한 표준이 아니다. 또한 칼빈은 그의 죽음 이후의 세대들 안에서 무엇이 개혁주의적인지를 가늠하는 잣대로서 유일한 인물로 거론되어서도 안 된다.”(리차드 멀러)

멀러의 이런 말은 객관적으로 옳지만, 내면으로 들어가면 마치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사에서 김 구를 중요시할 필요가 없다는 말과도 같은 교묘한 주장이다. 만일 멀러가 칼빈주의 신학 훈련을 제대로 받으면서 신학자가 되었다면, 절대로 이런 자세를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멀러는 칼빈주의 신학 훈련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다. 뉴욕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신학교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신학과정을 경험했고, 그가 박사학위를 받은 학교는 감리교 신학을 연구하는 곳이었다. 어떻게 이런 분이 칼빈신학교의 교수가 되어 “칼빈의 신학만이 개혁신학의 기준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위험한 말을 함부로 하면서 큰 영향을 미쳤었는지 의아하다. 칼빈의 신학의 권위가 약화되면 결국 복음주의로 갈 수 밖에 없다.

칼빈신학교는 개혁신학을 추구하는 학교임을 강하게 표방하지 않고, 대신 화란 스타일의 복음주의를 추구한다고 그 학교 출신들은 의례히 말한다. 칼빈신학교를 운영하는 CRC 교단이 천주교와 연합하는 세례협정문(2012년)을 맺었고, WCC에도 분명한 입장을 유보하고 있고, 오순절-신사도 운동 신학에 대한 입장 표명도 자주 유보하며 논란이 일어나면 영원히 연구에 연구를 영원히 지속하는 입장을 취한다. 진즉 여성안수도 시행하고 있다. 칼빈의 신학만을 개혁신학의 기준으로 여기면 안 된다는 멀러의 말과 칼빈신학교를 운영하는 CRC 교단의 분위기가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의 신학은 개혁교회의 신학, 즉 개혁신학이므로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을 규범과 근본으로 삼는다. 그리고 칼빈의 신학을 기초로 삼는다. 특히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신학 전개와 그의 주석에 나타난 성경이해를 준거해서 신학한다. 물론 고대교회이 교리를 기본 진리로 받아서 신학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서철원, 신학서론, 131)

서철원 박사와 같이 개혁신학을 추구하고 수호하는 분들은 성경과 고대교회들이 공의회를 통해 수용한 교리들과 신조들, 그리고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개혁신학의 주용한 기준으로 여긴다. 올바른 개혁신학자들의 입에서 “칼빈 만이 개혁신학의 잣대가 되는 유일한 사람은 아니다”라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칼빈의 모든 성경 해석이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중요한 부분에서 그의 해석이 틀린 경우가 많지 않으며, 개혁신학은 그의 성경 해석에 근거하여 발전된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양성과 신앙고백적 범위가 한 사람의 신학자에 의해서 확립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칼빈 이후의 개혁주의 인물들을 ‘칼빈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은 역사적 정확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또한 칼빈이 마치 정통주의 표준인 것처럼 간주하여 이후 세대 인물들을 칼빈과 대립되는 자들이 규정하는 것도 역시 무의미한 주장이다.”(멀러/ 32)

멀러가 이렇게 칼빈의 신학을 없신여기고 가벼이 말할 것이면, 먼저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 성경과 다르고 틀린 내용을 찾아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칼빈의 말만 전적으로 믿지 말고 다수의 사람들이 주장하고 가르친 내용을 고루 반영하여 민주주의 신학을 세우자고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종교개혁은 모든 믿음의 내용들을 성경에 근거시켰다. 따라서 개혁신학은 성경을 신학함의 원리와 근거로 삼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므로 성경의 권위를 신적 권위로 받는다. 신학함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하고 믿음의 내용도 다 성경에서 도출하고 성경대로 구성한다. 그리하여 성경을 신학의 원천과 원리로 고수한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메이는 것을 바른 신학함의 원리로 삼는다.”(서철원, 신학서론, 131-132)

멀러가 이런 위험한 주장들을 경솔하고 가벼이 말하기 전에 먼저 서철원 교수가 강조하는 것처럼, 성경을 절대기준으로 삼고 칼빈의 신학을 성경과 비교하여 칼빈의 신학의 권위와 당위성을 먼저 평가해야 할 것이다. 칼빈의 어떤 부분이 성경에서 벗어났는지를 먼저 규명해야 한다. 

“칼빈과 볼링거는 모두 하나님의 전적이고 일방적인 은혜의 언약을 구원의 근원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동시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대한 인간의 채임은 언급함에 있어서는 쌍방적 언어도 모두 사용하고 있다. 개혁주의 언약론은 하나님이 베푸신 전적인 은혜를 선포하고 인간의 책임과 순종이 은혜 아래 있으며 은혜로 말미암아 가능함을 강조하는 개혁주의 예정론과 결코 대립하지 않으며 어떠한 긴장 관계도 보이지 않는다.”(멀러/ 40-41)

“실제로 패너나 롤록이나 퍼킨스와 같이 언약론을 집대성한 초기 인물들은 예정론을 명확하게 표명하면서도 언약의 일방적 개념과 쌍방적 개념 모두를 그들의 신학 체계 속에 수용할 수 있었다. 퍼킨스는 확실한 이중 예정론과 일방적인 은혜로 주어진 언약을 가르쳤고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게 해야 할 것을 요청하는 언약의 쌍방적인 특성도 주장할 수 있었다.”(멀러/ 42)

예정론과 사람과 하나님의 쌍방적인 언약 사상은 결코 조화되지 않는다. 구원받도록 예정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불가항력적 은혜를 베푸신다. 억지로 예수 믿으라고 코를 꿰어서 끌고 간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 섬기는 신앙이 너무도 좋다는 것을 사람이 깨달아 알고 스스로 자원하여 핍박을 받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은혜를 하나님이 베푸신다는 것이다. 사람이 예수 믿음이 구원 언약의 완성이다. 예수 믿는 것 외의 다른 인간의 할 일이나 역할이나 조건이나 동의를 요구되지 않는다. 오직 예수 믿으면 구원 언약이 그 사람의 것으로 성취된다. 예수 믿게 먼저 은혜를 주시는 분이 성령이시므로 예수 믿는것도 사람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니다. 이것이 예정된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구원이고, 구원 언약의 성취이다.

성경과 칼빈의 언약 신학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에 기초하는 언약이다. 사람이 노력하여 조건을 충족하면 하나님이 영생을 합당하게 주시기로 했다는 거짓된 행위언약은 사람과 하나님의 쌍방적인 계약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이 아니다. 칼빈은 한번도 그런 언약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나 멀러는 하나님의 언약이 인간과 하나님의 쌍방의 조건적인 계약이고, 칼빈도 그런 사상에 동의했다고 한다. 대체 칼빈이 언제 어디에서 그런 소리를 했는가? 멀러 자신이 칼빈의 신학을 바르게 배우 적이 없고, <기독교강요>도 올바로 읽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하는 엉뚱한 말이다. 북한에 민주주의가 있다는 주장이나 마찬가지이다. 자유주의 신학교와 감리교 신학교에서 연구한 사람이므로 칼빈의 신학의 진수를 알 수 없었으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칼빈과 이후의 개혁주의 신학자들 사이의 차이점은 미미하며, 개혁주의 사상에 대한 16세기와 17세기의 신학적 표현들 사이의 연속성은 더욱 뚜렷하다.”(멀러/ 48)

그러므로 멀러의 이와 같은 결론, 즉 칼빈의 신학과 이후 개혁주의 신학자들(청교도 신학자)들의 신학이 연속되는 신학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해 보인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사탄이 세운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는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아세아연합대학 대학원(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을 졸업했다.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도 수학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Minn 2020-03-10 16:14:14
성경을 읽어보면 결국 마음의 변화가 먼저이고 행위는 그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새 언약은 마음의 변화를 약속합니다 (렘 31:33-34). 악인은 어떤 착한 행동을 해도 벌을 받게 되는 이유는 마음이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선해보이는 행동을 해도 결국은 자의 (self-righteousness)를 위해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 칭찬받지 못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행위만으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행위언약을 붙잡고 놓지 않습니다. 행위언약이어야지만 하나님의 뜻이 이해된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